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85)
제585화
#585. 강 건너 불구경도 그것보단 성의 있겠네.
강무혁이 카리브 해 건으로 에도아르도와 협의하는 동안 황룡 길드의 자오커지는 비원쥔에게 지시받은 대로 움직였다.
그는 일의 성사를 위해 약속장소로 차를 몰아 가는 도중 생각에 잠겼다.
‘부길마님께서 주세아와 합의한 내용대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썩 내키진 않는군.’
자오커지는 아이언윌과 손잡는 게 마뜩찮았다. 여러모로 악연으로 얽힌 탓이었다.
신의주 장악 실패, 마경 작전 실패, 관홍 이적, 미라주 사건, 플라잉 씨홀스 협상 등등.
황룡 길드가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대부분 문제가 아이언윌과 엮이면서 벌어진 것이다.
마음 같아선 비원쥔에게 아이언윌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자적인 계획을 수립하자고 건의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내가 그런 말을 꺼낼 처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
관홍 이적부터 시작된 연이은 실책.
자오커지는 황룡 길드의 책사가 꿈에 그리는 전략팀장 자리는커녕 이젠 참모진 2인자인 작전부장 자리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몰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책략을 내는 건 힘들었다. 일단 윗선의 귀에 곱게 들릴 리도 없거니와 자칫 실패라도 하게 되면 더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강무혁. 그 이름이 들릴 때마다 계획이 엉클어졌다.
그 부분이 불편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감정을 드러냈고, 이를 알아챈 비원쥔은 평소답지 않게 자오커지를 타일렀다.
‘운이든 실력이든 상대가 이기고 있을 땐 이기는 편에 서는 것이 훌륭한 책략이다. 아이언윌이 득세할 때는 그 기운에 편승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면서 아이언윌과 손잡아 얻은 이득을 예시로 들었다.
심월의 영웅적 죽음이 가져온 공을 황룡이 먹어 치운 일, 미라주와 황룡의 연관성을 테러리스트와 적대 길드의 모략으로 몰아가 역공을 가했던 일, 플라잉 씨홀스 도입의 주도권은 쥐지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낮은 확률의 협상을 성공시킨 업적 등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참 희한하단 말이지.’
분명 일은 실패했는데 크게 손해를 보지 않았다.
신의주 장악에 실패한 건 아쉽긴 해도 황룡 길드에게 큰 타격이 없었고, 마경 작전은 원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심월이 죽어 없어지면서 그녀의 소속이었던 낙일 길드가 황룡에 의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홍이 아이언윌로 넘어가면서 자신은 비원쥔에게 크게 책망받았으나 길드 내 라이벌을 없앨 수 있었으며, 미라주의 주구라는 의심도 적대 길드의 모함으로 몰아 역공을 가할 수 있게 됐다.
‘플라잉 씨홀스도 그렇고, 이번 건도 그렇고. 이상하게 진 것 같고 이용당한 것 같은데, 묘하게 손해가 없단 말이지.’
그 덕분인지 비원쥔은 아직 아이언윌을 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주세아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자리보전하긴 했으나 오히려 S랭크와 통쾌하게 싸운 게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덕분에 몇 가지 깨달음까지 얻었다고 하니 아군까진 아니어도 중립 세력으로 보는 게 당연한 시선인지도 몰랐다.
‘이번에 주세아의 요청을 받아들여 만난 것만 봐도 그렇지. 앞으로 계략을 전할 때 이 부분을 염두에 둬야겠군.’
재기를 위해 전략적 방향성을 재고하는 동안 자오커지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권력 중추가 모여 있는 중난하이에 도착했다.
중난하이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청 등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자오커지는 이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산하 국방부를 찾아온 터였다.
그가 맡은 일은 국방부장에게 비원쥔의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전화 한 통으로 국가 최고 권력 기관의 부장을 오라 가라 할 순 없기에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비원쥔 님이 오라고 하면 올 놈들이지만…. 비원 쥔 님이 겉으로 내보이는 절차라는 걸 중요시하는 분이니 어쩔 수 없군.’
자오커지는 차에서 내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국방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 뒤.
그가 국방부장을 만난 뒤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동해함대가 황룡 길드의 헌터 공격대와 함께 오키나와로 이동을 시작했다.
* * *
타츠야는 키신 앞에 목을 길게 빼고 부복해 있었다. 목을 자르겠다면 얌전히 죽겠다는 표현이었다.
마침 키신은 희귀 게이트 금속으로 일본 최고 대장장이가 만든 일본도를 꺼내 닦는 중이었다. 그 서슬 퍼런 칼날이 언제 휘둘러질지 모를 긴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키신은 무자비할지언정 이유 없이 잔인하지 않았다. 그는 사형수에게도 유언을 말할 아량을 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상대가 그의 행동을 아량이라 인정할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타츠야는 키신에게 말할 기회를 얻었다.
“인생 적지 않게 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일이 참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아. 변명은?”
“공작을 좀 더 빨리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상대보다 한발 늦은 것 역시 제 실책이니 뭐라 전할 변명이 없습니다.”
타츠야는 변명 대신 자기 잘못을 먼저 고했다.
키신은 일본도를 닦던 손을 멈추고 타츠야를 지그시 쳐다봤다.
“내가 자넬 아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그저 봉공의 은혜 덕분입니다.”
“바로 그것. 아부인데 아부처럼 들리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그리고 실패에도 변명하지 않지. 다음엔 실패 속에서 배운 뒤 만회하고.”
“…….”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나 역시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올라왔고. 하지만 실패 속에서 배우는 녀석은 적지. 그 배움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더더욱 적고. 그래서 네 랭크가 낮음에도 귀하게 썼다. 그런데 요즘은 회의가 드는군. 실패가 잦아. 실패가 계속되면 능력 부족이야. 어떠냐? 내가 널 앞으로도 계속 써야 할 이유가 있나?”
살기가 치솟았다. 타츠야는 이 자체가 시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견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S랭크의 시험은 답을 알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풀이가 적절해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타츠야는 시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불만 한 점 남길 수 없는 실수를 했습니다. 다만, 뒷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가는 게 마음 편하지 못할 뿐입니다.”
“뒷일? 마무리 지을 방편은 있고?”
약간의 관심.
타츠야는 운명의 기로에 놓였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관심 한 조각이면 된다. 이것이면 충분해.’
그는 이를 악물어 각오를 다진 뒤 말했다.
“봉공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계획이라 차마 입에 담을 간담이 제겐 없습니다.”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는 내가 정할 문제다. 넌 숨김없이 말할 의무가 있고. 내가 따로 명령을 내려야 하나?”
“아, 아닙니다.”
“그럼, 말하라.”
키신의 서슬 퍼런 명령에 타츠야는 몸을 떨었다. 그건 공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희망이었다.
“안전항로기구의 드레이븐 국장이 한국에 먼저 들린 건 보고받으셨을 겁니다.”
“들었지.”
키신의 침중한 어조에서 노기가 느껴졌다.
타츠야는 마른침을 삼키며 뒷말을 이었다.
“여기 오기 전 한국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한국과 뭔가를 하겠다는 거로군. 확실히 내가 좋아할 얘기는 아니겠어.”
“한국은 국장이 자신들과 나눈 대화 일부를 제게 흘렸습니다.”
“흘렸다는 말은…. 자넨 상대가 일부러 말했다고 생각하는군.”
“예. 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입니다.”
“무슨 얘기였지?”
“안전항로기구는 이번 일에 개입하기 위해 중국에 지난 동남아 충돌 건에 대해 사과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퍼걱!
일본도가 다다미 바닥에 박혔다.
타츠야는 숨소리를 죽였다. 키신의 입에서 음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계획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거로군!”
“예.”
한국과 중국의 반대를 등에 업고 이를 명분으로 안전항로기구의 제안을 물리치는 게 일본의 계획이었다.
키신과 일본의 체면을 챙기면서 국제 사회와 기관에 우호적이라는 제스처를 유지하는 동시에 동맹을 맺은 동북아 국가에 의사를 물어 의리를 지킨다는 인상을 주려는 노림수였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항로기구가 오히려 두 국가의 찬성표를 얻어 일본을 압박하려는 모양새를 하니 이가 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키신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안정항로기구의 개입을 우려했다면, 이젠 국가 간 힘 싸움이자 자존심 대결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휘권 문제로 요즘 눈에 거슬리는 중국이었다. 한국은 원래 싫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안전항로기구가 분탕질을 치니 배알이 뒤틀렸다.
‘잠깐. 혹시 이것 역시 한국의 음모가 아닐까?’
중국과 안전항로기구의 화해라는 거짓 정보로 일본의 반발을 노리려는 술수.
이걸 진짜라고 믿으면 일본은 택일해야만 했다.
기구의 개입을 받아들이거나 중국과 한국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거나.
어쩌면 한국은 후자를 택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진짜라면 문제지만, 거짓이라도 문제다. 당장 이걸 확인할 방법이 없잖은가.’
복잡하고 빠른 정세 변화 속에선 그보다 빠른 판단과 대응이 필요했다.
그런데 정보의 참과 거짓을 가르는 것에서부터 발목이 잡히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키신은 난제를 가져온 타츠야에게 호통을 치려 했다. 이런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고 툭 던져놓았다는 데 대한 화풀이였다.
하지만 뒤이은 급보로 인해 화낼 시간조차 잃고 말았다.
얇은 미닫이문 바깥으로부터 급박한 목소리가 울렸다.
“키, 키신 님! 방위성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냐?”
“중국 동해함대가 헌터들을 태우고 오키나와 근해로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
* * *
강무혁은 TV를 켜두었으나 거기서 흘러나오는 뉴스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제 할 일만 묵묵히 했다.
그를 대신해 뉴스를 보는 건 주세아였다.
“와아, 이걸 뉴스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 단장님한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뉴스에선 중국 동해함대가 일본 영해에 침범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에 일본 방위성이 격한 항의와 함께 해상자위대 함대를 보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주세아는 뉴스 어디에도 헌터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걸 보고 코웃음 쳤다.
“나가가 득실거려서 오키나와 근처엔 가지도 못했을 텐데. 가더라도 헌터가 군함에 타고 있을 게 뻔한데 말이야.”
영해를 넘은 함대에 헌터가 탑승했다는 건 곧 중국 헌터계와 일본 헌터계의 갈등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순 국경 분쟁이라도 헌터가 끼게 되면 그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잘못했다간 국제기관의 개입마저 불러올 수도 있었다.
“어? 잠깐만요. 단장님!”
“예.”
“혹시 이번에 벌린 판, 이거 안전항로기구가 끼어들라고 만든 판이에요?”
“예.”
“아니, 그렇게 무심하게 서류 정리하면서 대충 말하지 말고, 좀 더 현실적인 감정을 담아서. 정말로요?”
“예에~”
“그게 감정을 담은 거?”
“예.”
주세아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뱉었다.
중국과 일본 함대까지 동원하도록 분탕질을 설계하고선 당사자는 정작 길드 상반기 결산 자료나 체크하고 있었다.
두 국가의 충돌보다 적자난 예산을 더 걱정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얼굴을 보니 어쩐지 키신과 비원쥔이 불쌍해지는 기분이었다.
“참나, 강 건너 불구경도 그것보단 성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