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야현은 팔뚝에 맺힌 피를 혀로 핥으며 붉은 눈을 번뜩이는 재규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어.”
야현이 재규어를 향해 걸음을 내딛자 재규어는 몸을 더욱 낮추며 다시 으르렁 울음을 내뱉었다.
그 순간 야현의 눈동자에서도 붉은 안광이 폭사되었다.
그 안광은 재규어의 눈을 관통했고,
끼이잉!
재규어는 갑자기 야현의 다리와 몸통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귀여운 녀석.”
야현은 재규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팔로 목을 감쌌다.
콰득!
단숨에 재규어의 목을 부러트린 것이다.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하고 죽은 재규어의 몸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그 순간.
“큭!”
미세한 신음.
야현은 빠르게 그 주인을 찾았다.
어느새 모인 다섯 명의 드루이드 중 제법 젊은 축에 드는 한 드루이드가 비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숲의 정령인가?”
드루이드의 또 다른 별명.
숲의 정령.
숲에 사는 것이라면 그 어떤 미물에라도 의지와 힘을 줄 힘을 가졌기에 그리 불리는 것이다.
촤라라락!
갑자기 땅에서 채찍처럼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야현의 팔과 다리를 휘감았다. 동시에 수십 마리의 짐승이 야현에게로 달려들었다.
짐승들이 야현을 덮치기 전.
“크하아아앙!”
야현의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광폭한 포효가 터졌다.
권능, 지배.
숲을 뒤흔드는 그 울음에 오로지 투기만 세우던 짐승들의 눈이 뒤집어졌고, 꼬리를 말았다.
끼이잉.
끼이이이이.
몇몇 짐승들은 땅에 머리를 박고 발발 떨었고, 몇몇 짐승들은 허연 거품을 물며 기절했으며, 몇몇은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
그와 더불어.
털썩.
두 명의 드루이드가 충격을 받은 듯 땅에 주저앉았고, 다른 두 명은 비틀거렸다.
중앙에 있던 얼굴을 보이지 않은 드루이드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로브 사이로 언뜻 드러난 입술에서 가는 피가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푸득, 콰드득!
야현은 양팔과 다리를 포박한 나무뿌리를 단숨에 뜯어내며 드루이드들에게 걸어가다가 말고 걸음을 멈췄다.
전장이라면 들려야 할 살육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음?”
악착같이 서로 죽이려 하던 두 다크 엘프 대부족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멀뚱멀뚱, 아니 조금은 겁에 질린 눈으로 야현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 싸우나요?”
야현의 말에 다크 엘프 전사들은 화들짝 다시 곡도를 들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터라, 우스꽝스럽게 앞에 서 있는 적과 몇 번 부딪히고는 이내 손을 내렸다.
흥을 잃어버렸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압도적인 기운에 눌려 버린 것이다.
마치 사자 앞에서 양 떼가 서로 맞부딪힌 느낌이랄까.
부족의 번영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건만, 야현의 압도적인 신위를 보자 이러한 싸움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건 두 다크 엘프이자 부족을 이끌어 가는 대족장, 카질라와 시미다는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또한 부족 내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쥔 대전사들도 그런 두 대족장을 지척에서 돕고 있었다.
시미다 대족장은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그런 그의 눈에 드루이드와 대치하고 있는 야현이 들어왔다.
야현.
저자만 죽이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욕망이 조금 전의 공포를 깡그리 지워버린 것이었다.
“저자를 죽여라!”
시미다 대족장이 대전사와 함께 빠르게 야현을 에워 감쌌다.
대전사들도 시미다 대족장과 매한가지로 눈이 욕망에 가득 차 번들거리고 있었다.
“욕망은 참으로 좋은 것이지요. 달콤한 게 종종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주기도 하거든요.”
야현은 고개를 돌려 시미다 대족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나 야현의 걸음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욕망에는 달콤함과 동시에 지독한 독도 함께 들어있죠. 문제는 너무나도 달콤해서 독을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야현은 고개를 돌려 힉스 공작과 카질라 대족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힉스 공작과 카질라 대족장은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흠칫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야현은 피식 웃음을 입가에 담으며 다시 시미다 대족장을 바라보았다.
“음?”
돌연 공간을 찢는 파동에 야현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공간의 틈으로 드루이드들이 어디론가 몸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크크크.”
야현은 시미다 대족장의 뺨을 툭 두들기며 몸을 다시 그들에게로 돌렸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녀와서 합시다.”
야현은 드루이드들이 모습을 감추고 서서히 지워지는 갈라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야현의 신형이 사라졌고, 바로 점차 사라져 가는 찢어진 공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지워져 가는 찢어진 공간의 크기는 손바닥만 해져 있었다.
“훗.”
야현은 광소를 머금으며 빠르게 작아져 가는 공간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어 다른 손도 공간에 밀어 넣었다.
촤아아아악!
마치 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강제로 찢기며 크기가 커졌다.
얼굴 크기보다 좀 더 커진 찢어진 공간 너머로 조금 전 도망을 치던 드루이드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놀란 나머지 두 눈을 화등잔처럼 뜬 한 드루이드가 입을 열었지만 심하게 말을 더듬은 것도 모자라 말을 끝까지 잇지도 못했다.
“호오! 이곳이 드루이드들의 은거지인가요?”
야현은 사라지려고 발버둥치는 찢긴 공간의 틈을 강제로 더욱 크게 찢었다.
“컥!”
한 드루이드가 몸을 바르르 떨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마도 이 공간을 찢은 드루이드인 모양이었다.
“크크크크.”
야현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찢긴 공간으로 넘어갔다.
강제적인 힘이 사라지자 찢긴 공간의 틈도 빠르게 사라졌다.
* * *
치이― 찌지지직!
야현은 공간의 틈새를 강제로 찢으며 새로운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현이 틈새를 완전히 지나오자 찢긴 틈새가 빠르게 지워졌다.
야현은 바로 지척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드루이드를 잠시 흘겨보았지만 이내 무심하게 그를 넘어 좀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엘프들의 마을과는 좀 더 다르군.”
투박하다 못해 마치 커다란 상자를 내려놓은 것 같은 석조 건물들이 숲 안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흡사 드워프 마을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법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드워프 마을 역시 석조 건물로 지어져 있지만, 면면히 살피면 화려하면서도 상당히 실용적이다.
만약 드워프들이 드루이드의 이 자그만 도시에 발을 디딘다면 그 순간 절규를 내지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미적 감각을 완전히 무시하고 필요에 따라 그냥 석조를 올려 건물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엘프들과 달리 필요하다면 나무쯤이야 쉽사리 베어 버린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치 폐허 속 폐가가 연상되게 만드는 넝쿨들을 치우지 않고, 쓸데없이 길을 내지 않는 등 숲을 해하지 않는 것을 보면 숲의 정령이라는 애칭이 그저 만들어진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만들어낸 숲 속 도시는 기묘한 분위기를 내보이고 있었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작은가?’
그렇다고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컸다.
어찌 되었든.
야현은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스으윽!
마치 귀신들처럼 인기척 없이 모습을 드러낸 드루이드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얼굴을 드러내면 곧 죽을 것처럼 하나같이 로브와 이어진 큰 후드에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스스스스슥!
도시 깊은 곳에서 나무뿌리가 뻗어 나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드루이드의 몸을 감싸 데려갔다.
“허락 없이 침입한 자.”
노기로 가득 찬 노성(老聲)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짙은 회색 로브가 아닌 갈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목소리도 그러했지만, 소매에서 드러난 자글자글한 손등의 주름으로 대략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걸걸한 노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본인은 이미 죽었습니다만?”
야현은 히죽 웃으며 죽었지만 살아가는 자들의 상징인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대는 누군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 로브를 입은 초로의 노인이 물었다.
유일한 색의 로브.
“그대가 드루이드들의 왕인가요?”
“네 이놈!”
호통이 터져 나왔지만, 녹색 로브의 노인이 삐쩍 마른 손을 들어 말렸다.
“우리에게 왕은 없소이다.”
“왕이 없다라, 재미있군요.”
“이제 이 노부의 질문에 답을 주시겠소?”
“야현.”
“……?”
발음조차 어려운 낯선 이름.
“야누스라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모르겠군요.”
또 다른 이름에 녹색 로브를 입은 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깊은 그림자 속에 폭사된 안광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면서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렇구려.”
녹색 로브의 노인은 조금 전 정신을 잃은 드루이드가 어디로 갔었는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잠시 주억거렸다.
“흐음!”
“으음!”
뱀파이어의 왕, 야현의 등장에 여기저기서 묵직한 신음들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분위기마저 무겁게 내려앉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야현은 혼자이고, 자신들은 다수이기 때문이었다.
“크크크.”
그러한 분위기를 읽은 야현은 음산한 웃음을 내뱉었다.
“어찌하여 외부의 발길을 거부한 이곳에 온 것이오?”
녹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야현의 웃음을 자르며 물어왔다.
“몰라 묻는 것인가요, 아니면 알면서 묻는 것인가요?”
야현은 다크 엘프 부족 간 전쟁에 참전했던 드루이드들을 잠시 일견한 후 대답했다.
잠시간의 침묵.
“그대들이 본인의 전쟁에 끼어들었지요. 감히! 본인의 전쟁에!”
야현은 차가운 목소리.
“하지만!”
이내 야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본인은 관대합니다.”
야현은 양팔을 벌려 사방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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