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모용란은 당린린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당신도 나가요.”
그리고 나온 말.
“그리하지요.”
야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 문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아니, 나가지 마요.”
모용란은 다시 야현을 나가지 말라 말렸다.
야현이 나가면 당린린을 찾아갈 것만 같고, 그리고 그녀와…… 더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정말, 정말 당신은 나쁜 사람이네요.”
“확실히 좋은 남자는 아니죠.”
야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혹 서방에도 여인들이 있나요?”
“있습니다.”
“혼례를 치렀나요?”
모용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닙니다. 언젠가 주모(主母)가 생길 거라 여기고는 있어 본인이 그대와 혼례를 치른다면 그대가 그녀들의 주모가 될 것입니다.”
야현은 찻잔을 채웠다.
한동안 둘 사이에 말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용란의 말이 잠시 끊긴 것이다.
“만약……, 만약에…… 소녀가 이 혼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본인은 바로 떠날 겁니다.”
“……그런가요?”
“네.”
“가가께서는 소녀를 사랑하지 않으시나요?”
모용란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사랑은 모르겠고. 그대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또 그런 약속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혼례를 치르지 않으면 모용세가는 당신을 끝까지 쫓을 거예요.”
“본인은 도망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가는 죽어요.”
“아마 모용세가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현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섬뜩한 미소에 모용란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런.”
야현은 의자를 당겨 모용란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소름이 오른 팔을 다정하게 매만졌다.
“미안합니다.”
“당신은 정말…….”
모용란은 양손으로 야현의 뺨을 감쌌다. 그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야현은 그런 모용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야현은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본인은 말입니다. 살면서 혼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
“본인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입니다.”
“……!”
놀란 듯 모용란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녀의 놀람은 이제 시작이었다.
“본인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이랍니다.”
야현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 * *
벌컥벌컥!
야현은 벌거벗은 몸으로 침상에서 내려와 술병을 들어 병째 들이켰다.
파삭!
술을 마시던 야현은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손아귀에 힘을 줘 술병을 부숴 버렸다.
부서진 파편들이 술과 함께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야현은 일그러진 얼굴로 침상을 쳐다보았다.
전라의 당린린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침상에 피가 흥건했다.
‘울었어. 본인을 보고.’
야현의 얼굴은 흡사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조금 전 야현은 장남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나 그랬듯 가벼운 유흥이었다.
죽지 못하는.
보이는 것과 달리 실상은 백칠십 살이 넘어가는.
피를 마셔야 살아가는.
그런 괴물이라고.
언제나처럼 장난조로 말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서운 농담을 하지 말라고 하며 애교를 피웠다. 겁에 질린 얼굴로, 발발 떠는 몸으로. 간혹 어둠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여자들은 단숨에 공포에 휩싸여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떨며 살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야현은 짓궂은 표정으로 농담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반응은 둘 중 하나.
장난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 애써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서둘러 자리를 뜨거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듯 품에 안기거나.
그런데 모용란은 아니었다.
자신을 푹 안으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뜻하게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야현의 죽음을 한 번 봤었다.
‘당신을 안아줄게요.’
모용란은 눈물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야현의 입에 입을 맞췄다.
뱀파이어가 된 후 처음으로 여인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격한 감정이 튀어나왔다. 야현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당린린이 머무는 객잔으로 와 그녀를 거칠게 덮쳤다.
짐승처럼.
피를 뿌리며…….
* * *
당린린은 인기척에 눈을 떴다.
여전히 아랫배에 남아 있는 짜릿한 쾌감에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렸다.
비록 거친 사랑이었지만 오늘의 사랑은 처음과 달랐다.
첫사랑이 뜨문뜨문한 기억과 고통,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묵직함에 지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사랑은 몇 번이나 정신이 까마득해질 정도의 환희, 쾌락 그 자체였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린린은 몸을 일으켰다.
“아!”
석양에 비치는 야현의 뒤태에 당린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사내의 몸이 어찌…….’
무가에서 자라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성의 몸을 자주 봐온 그녀였다. 강해 보인다거나 굳건해 보인다는 느낌은 간혹 받은 적이 있어도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몸이 아니야.’
그녀도 무인이기에 근육에 대해 잘 안다.
무식하게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잘게 잘린 근육을 가진 몸이 어떤 몸인지 잘 안다.
느껴지는 내력은 잘 파악할 수 없었지만 저런 몸을 가지기 위해 어떤 수련을 거쳤을지 굳이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권력에 재력만으로도 족하다 여겼는데.
무공까지.
무위가 대단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힘을 가진 남자와 아닌 남자는 엄연히 다르다.
‘내 남자야.’
어젯밤의 환락이 떠오르자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최소 이튿날 찾아올 줄 알았는데 바로 야현이 찾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거칠게 자신을 안았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당린린은 잘 알고 있었다.
‘호호호호.’
당린린은 전라의 몸을 가리지 않고 자리에서 야현의 등을 껴안았다.
“발 조심해.”
“어머!”
야현의 말에 바닥을 내려다보던 당린린은 깨진 술병 파편을 보며 깜짝 놀랐다.
“괜찮으세요?”
야현은 몸을 돌려 당린린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말을 놓고 계시네요.”
누구에게나 말을 높이는 야현이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야현을 올려다보는 당린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그녀의 입가에 요염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전히 말을 높였다면 서운했을 거예요.”
남들과 다른 취급, 그건 기쁜 일이다.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야현은 당린린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의자로 걸어가 대충 걸쳐놓은 겉옷을 대충 걸쳤다.
“어때요?”
당린린의 목소리로 고개를 돌려보니 나신의 당린린이 농염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름답나요?”
“아름답군.”
야현은 당린린의 몸을 감상하며 의자에 앉았다.
순수한 의미로 그녀의 몸은 아름다웠다.
어릴 적부터 무공을 수련해서인지 군살도 없었고 균형이 잘 잡힌 몸매였다.
“호호호.”
야현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당린린은 웃음을 보이며 다가와 야현의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야현의 얼굴과 헐렁하게 여민 앞섶 사이로 드러난 가슴을 쓰다듬었다.
“모용 낭자와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군.”
“꼭 물어야 하나요?”
“아니야.”
야현은 당린린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
당린린의 입에서는 단내음이 흘러나왔다.
“욕심도 많지만 현명하군.”
“마음에 든다는 말이죠?”
당린린은 손가락으로 야현의 입술을 지그시 쓰다듬었다.
“주군.”
그때 문밖에서 베라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모용 낭자께서 찾아왔습니다.”
“다음에 오라고 해.”
야현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베라칸은 무표정한 얼굴로 모용란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오시지요.”
“들어가겠어요.”
모용란은 다부진 얼굴로 걸음을 내디뎠다.
“죄송합니다.”
베라칸이 몸을 틀어 그녀를 막아섰다.
“꼭 막아서야 하나요?”
베라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들어가게 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모용란은 그런 베라칸의 눈을 바라보았다.
‘흠―.’
베라칸은 흔들림 없는 모용란의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녀를 만난 후 야현의 거친 모습은 베라칸으로서도 처음 보는 행동이었다. 야현은 언제나 냉정하고 차갑고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오늘 야현의 행동은 이성적이라기보다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주군에게 있어 이 여인은 화인가, 아니면 복인가?’
베라칸은 야현이 언제나 외로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동족인 뱀파이어와의 교류는 거의 없을뿐더러 만나는 여인들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야현에게는 안식처가 없었다.
속마음이야 그렇지 않지만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용란의 눈동자에 베라칸의 마음이 흔들렸다.
“모른 척해 주세요.”
베라칸을 비켜 지나 문을 여는 모용란, 한순간이지만 베라칸은 그녀를 잡지 못했다.
문을 연 순간 모용란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겉옷을 걸치고 있다지만 벗은 거나 매한가지인 야현과 그 무릎 위에 전라로 앉아 있는 당린린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모용란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녀는 곧 그것을 수습했다.
그리고 차분한 표정으로 문을 닫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자리 좀 피해줄래?”
모용란은 야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린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야현의 무릎에서 일어나려는데 야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다시 무릎에 앉혔다.
“됐어. 할 말이 있습니까?”
야현은 입꼬리 한쪽을 말아 올리며 모용란에게 물었다.
“자리 좀 비켜줘.”
거듭된 모용란의 말에 당린린이 야현의 무릎에서 일어나 침상 위에 널브러진 얇은 이불로 대충 몸을 둘렀다.
“그냥 있어도 돼.”
야현의 말에 당린린이 다가왔다.
“나중에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목욕하고 올게요.”
당린린은 모용란에게 미소를 살짝 보인 후 방 한편에 딸린 줄을 당겼다.
그러자 종소리가 났고 곧 시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목욕 준비해.”
그러고는 방과 이어지는 욕간 앞에서 다시 이불을 바닥에 벗으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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