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49
EP.149 오늘, 어쩌면 어제 – 2
현우의 시신을 말없이 응시하던 베로니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다 늙은 학 수인. 뛰어난 대주술사 바론이었다.
“상황 설명을 부탁할게.”
바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설명을 시작했다.
트레버 마을의 일.
그리고 호수 밑바닥의 원혼들.
저주를 해주하며 얻은 명계의 열쇠.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게 된 현자.
일의 전말을 모두 들은 베로니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을 뒤흔들 능력을 지녔지만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 그는 항상 남을 위해 살아왔다.
가진 재산을 모두 털어 굶주리고 병든 이들을 치료해주었다.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 위한 대가로 동전 한닢을 받고 최선을 다했다.
누구나 피하는 일을 일부러 나서서 하고,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선인의 결정체.
만약 현우가 교회의 성직자였다면 바로 성자로 추대될 정도로 그는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줄이야.
“현자께선… 반드시 돌아오신다 말씀하셨습니다.”
바론의 목소리는 베로니카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완전한 부활의 영약이라고?
좋다.
오랫동안 불로불사를 연구한 자들이 남긴 영약이라고?
“…그 영약을 먹고 부활한 자가 있었나?”
세실의 질문에 바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까지 죽어가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약을 준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 중 단 한명도 부활하지 못했었다.
“이론상 그 영약의 효과는 확실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현자께서 받지도 않으셨겠지요.”
하긴 그렇겠지.
만약 뭔가 이상했다면 그가 쉽게 움직였을리 없겠지.
세실이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베로니카는 천천히 현자에게 다가갔다.
숨을 쉬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고, 산 자의 온기가 전혀 없을 뿐 그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차갑고, 차가우며, 차갑다.
성직자로서 수많은 죽음과 함께 해 온 베로니카이기에 알 수 있었다.
현우가 진짜 죽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눈물 한방울 흘러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베로니카는 말없이 그의 볼만 을 쓰다듬었다.
넘쳐나는 절망감이 그녀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에 휩쓸리지 않은 것은.
그녀의 몸을 충분히 적시고 있는 현우에 대한 마음 때문이겠지.
자.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그였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했을까.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절망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을까?
아니.
베로니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빨에 뜯겨 비릿한 피가 입 안에 차오르며 정신을 일깨운다.
냉정해져야 해.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바라보아야 해.
네가 그랬던 것처럼.
“…현우가 부활한다고 말한 것은 확실하지?”
“그렇습니다.”
“당신들의 판단, 그리고 현우의 판단에 따랐을 때. 부활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현자의 상태를 확인한 베로니카는 탓할 생각 없이, 진지하게 현실의 상황만을 물었다.
그렇기에 바론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설명했다.
“시간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대략적인 계산으로는 한달 이내 정도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베로니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정도는 아닐 것이다.
만약 오래 걸릴 것이었다면 며칠 정도 자리를 비운다고 전언하지 않았을테니까.
차라리 먼 곳으로 가야하니 좀 오래 못 본다고 말했겠지.
그렇다면. 대략적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해야 하는 일이 뭐지?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현우가 죽어 있는 동안, 그의 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을까?”
“…현자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론은 석관을 가리켰다.
주술로 만들어진 석관은 시체의 부패를 막으며 선도를 유지시켜주는 특별한 것이었다.
“현우가 이걸 봤어?”
바론은 고개를 저었고, 베로니카는 그의 시체를 다시 차분히 살펴보았다.
이 시신에 남아 있는 생명력을 보니 현우가 죽은지 아직 하루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생명의 흔적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생명이라는 것은 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을 때 유지되는 것이다.
지금 현우의 몸에는 혼이 없다.
즉, 육체에 남아 있는 생명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이 석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건 그저 생명력의 소모를 느리게 하는 정도에 불과하잖아.”
“그렇습니다.”
“그저 이곳에 넣어두는 정도라면 생명력은 계속 떨어질 것이고 결국 육체가 망가지겠지.”
“…그렇겠지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현우가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그 재활에 시간이 꽤나 걸릴거야. 아마 지금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베로니카는 이렇게 생명력이 떨어진 채 혼수상태에 빠졌던 이들이 일어났을 때를 떠올렸다.
치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다.
“그렇기에 저희 일족 중에 사제가 생명력을 불어넣게 할 생각입니다. 걱정마십시오. 입이 무거운 녀석들…”
“사제의 생명 부여?”
“예. 조금 어렵긴 하지만 세명이나 되니…”
“그거. 내가 맡을게. 생명력 부여 및 유지라면 누구보다 내가 더 잘해.”
이단심문관들은 항상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성직자들보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성법과 치유의 성법을 능숙하게 다루곤 했었다.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베로니카라면 바론이 부를 세명보다 확실히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베로니카는 현자의 손을 잡았다.
싸늘하다.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하다.
그와 잡았던 손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베로니카는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을 애써 부여잡았다.
여기서 흔들려서는 안된다.
낮은 기도문과 함께 베로니카의 성력이 발휘되며 현자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자 바론은 한숨을 쉬었다.
“그… 힘드실 겁니다. 적어도 며칠은 계속 그러셔야 할텐데…”
“괜찮아.”
이정도는 괜찮다.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현우다.
그렇다면, 이정도 고생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베로니카 추기경.”
“…..”
“현자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소.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대답은 없었다. 그저 말없이 현자만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레오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걱정할 것을 알기에 몰래 한다고 말했었소.”
레오의 말에 베로니카는 순간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 상황에서도.
스스로 죽어 많은 이들을 구원하려는 상황 속에서도 내 걱정을 했단 말야?
죽음이 두려울만도 했을텐데.
아무리 너라고 하더라도 힘들었을텐데 거기서도 다른 사람을 걱정했단 말야…?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하지만 생명력을 보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 생각했기에.
“무리하지 마시오. 바론. 만약을 대비해서 사제들을 대기시키시오. 베로니카 추기경. 그정도는 괜찮겠지?”
안쓰러움이 가득 차 있는 레오의 말에 베로니카는 씁쓸함이 가득 담긴 어조로 말했다.
“예.”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저만 무리하는 것이 아닌걸요.”
타인을 위해 죽음까지 각오한 현자가 있다.
그런 현자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있어서, 이정도는.
조금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거 그냥 내버려둬도 되나?”
베로니카가 집중할 수 있게 그녀를 방 안에 두고 나온 세실은 바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쨌든 이 부분은 그가 제일 잘 알테니까.
바론은 방 안쪽을 살며시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베로니카 추기경이시라면 적어도 세명분 이상으로 잘 해내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런데 왜 현자가 그녀에게 부탁하지 않은걸까?”
“말했잖소. 베로니카 추기경이 걱정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아무리 그래도 죽음인데.”
레오는 착찹한 속을 애써 달래며 안쪽을 보았다.
베로니카는 아무런 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가슴에 올린 채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었다.
“이거 참. 저런다고 해서 정말 살아날 수 있을까?”
에드워드는 하얀 수염을 쓸어만졌다. 그 역시 현자가 정말 부활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활이라는 것을 성공한 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걱정할 수 밖에.
이러다가 송장을 둘이나 더 치우는 것 아닐까 싶었다.
“아. 카린.”
바깥에 나갔던 카린이 돌아왔다. 약간 안색이 흐릴 뿐,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는 그녀는 세실에게 차분하게 보고했다.
“이쪽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 자는 없습니다.”
아까 지하실로 들어갔을 때, 직원들 모두 바깥에 있었다. 즉, 현자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뿐이라는 것이다.
“일단 최대한 이 일은 숨기고 있도록 하자.”
“하지만…”
“현자가 스스로 부활한다고도 했으니까…”
그 누구도 해주하지 못한 용의 저주까지 해주한 현자다.
그런 현자라면, 어쩌면 생각치도 못한 방법을 써서 최초로 부활에 성공할 지도 모르지.
“바론 남작.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가… 부활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수많은 주술사와 마법사들이 시도했던 부활이고,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그저,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해내기를 바랄 뿐 이었다.
“…이번에도 그가 맞았네. 죽은 현자가 산 세실을 이겨버렸어.”
자조감이 감도는 목소리로 세실은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
“현자가 했던 말.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이야기.”
어차피.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며 걱정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현자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며 베로니카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조금씩이나마 줄어들어가던 생명력이 복원되기 때문일까?
현우의 안색은 처음 석관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결국은 혼이 빠진 그릇.
혼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결국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으리라.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멈추지 않았고, 멈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생명이란 과해도 좋지 않고, 모자라도 좋지 않다.
그저 흐르는 물처럼 유유히 순환해야 하는데, 그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이들은 교회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많지 않은 사람 중 한명인 베로니카는 현자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그만큼 베로니카가 채워주기 때문인지 그냥 잠든 것처럼 보일 정도다.
숨을 쉬고 있다면.
심장이 뛰고 있다면.
정말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짜잔~! 사실 속으신거에요~! 라 장난스럽게 말하고 벌떡 일어날 것 처럼.
그는 너무나도 평온해보였다.
그 모습에 베로니카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움직였었다.
함께 일을 할 때, 그가 제대로 자는 것을 본 적이 극히 드물었고, 먹는 것 역시도 그저 배만 채울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곤 했었다.
오로지 그는 임무에만 집중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이렇게 그가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 참으로 평온해보였다.
이상한 남자다.
삶보다 죽음에서 더 편안해보이다니.
그 이상함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 이상함에 흥미를 느꼈고, 그리고.
관심이었다.
애정이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이었다.
점점, 그에게 끌려 어느새 자신은 현자라는 비에 흠뻑 젖어 그녀의 모든 사고가 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바보같아.”
그래. 정말 바보 같다.
성직자조차 아닌 사람이 이렇게나 이타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성직자라는 사람이 오직 한 사람만을 쫓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바보같고.
또 너무나도 행복해서.
베로니카는 현자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돌아와줘.
네가 없으면 안돼.
“…제발…”
꾹 참고 있었던 눈물이 뚝, 한방울 떨어져 현자의 얼굴에 닿았다. 그것이 생명수라도 되는 양 조금씩 흘러 현자의 얼굴을 적셔가기 시작한다.
“…왜 내 걱정을 해…”
그가 자신을 걱정해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말이 너무나도 기쁘지만, 그만큼 너무나도 슬펐다.
물론 아팠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은 가슴에 칼이 찔리는 것보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함께 하고 싶었다.
현자가 자신에게 숨기고 홀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베로니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쉴새없이 터져나오던 눈물을 간신히 멈춘 채.
그녀는 현우를 내려다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 성력을 전부 가져가도 좋아. 내 생명을 전부 가져가도 좋아. 그러니까…”
현자가 부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은 외면하기로 했다.
그 절망감에 무너졌다가. 그에게 생명력을 보내는 것을 늦췄다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베로니카는 현자를 응시하며 계속해서 생명력을 흘려보냈다.
그저,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하게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