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
028화
최전선같이 총포탄 휘날리는 곳에 있진 않았지만 나도 바보는 아니다. 지휘관으로 매일같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얻는 정보가 있다.
그리하여 지난 며칠간 이어진 제2군의 싸움을 보자면 이리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다.
로렌 뚫을 공세 능력 없음. 그나마 얻은 전훈도 전부 흘린 피에 비하면 하등 쓸모없는 것들뿐임.
물론 딱 한 번, 독일한테 리버샷을 때리며 적 제6군 지휘관 루프레히트를 긴장하게 만든 적이 있다.
페르디낭 포슈.
유일하게 꾸준히 진군하는 제20군단 사령관이다. 현재 페탱과 유일하게 비견할 만한 인물은 프랑스에서 그뿐이라고 본다.
허나 그라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능한 아군. 반면 너무나도 손쉽게 진격하는 포슈의 20군단.
이로 인한 측면 노출로 큰 피해를 입는다거나 매번 고립의 위험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포슈 때문에 조프르는 제2군에 몇 개 사단을 더 붙여줄 정도.
카스텔노 장군이 이끄는 제2군은 흔히 말해 1인분 못 하는 군단이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좌익 기동에 목숨 건 독일이 ‘쓰읍, 우익도 강화해서 한번 먹어봐?’라는 생각을 할 정도다.
그냥 막기만 해도 충분한 우익이 로렌에서 되려 역공을 가하니 몰트케가 병사가 부족한 동부에서 사단 몇 개를 빼내어 붙여줄 만하다.
매일같이 잘 포장된 소식을 뜯어 썩은 내용물을 확인하는 하루도 잠시, 슬슬 내 차례 또한 다가왔다.
“적의 주공은 우익입니다! 벨기에 방면이 적의 진정한 의도임을 란레작 사령관님께서 파악하셨습니다!”
“….”
그걸 이제 안 거야? 개전한 지 몇 주가 지나서야?
싸워보니 그제서야 알겠는지 프랑스군은 벨기에로 거대한 우회기동을 택한 우익이 그냥 우익이 아니라 몰트케의 영혼까지 끌어모은 우익임을 확신하였다.
이는 5조각의 프랑스군 중 최북단에 위치한 5군에게도 거대한 목표 변화를 주었다.
무엇인가 하면….
“제가 잘못 들었지요?”
“제대로 들었네. 우리도 아르덴 숲 공세에 참여한다네.”
“아니, 란레작 장군께서도 벨기에 방어를 강력히 주장하셨다면서요?”
지금 나만 이해 안 돼? 이미 충분하다 못해 과분하게 투입하는데도 본전도 못 뽑고 있잖아. 근데 여기서 물타기를 한다고?
혹시 제17계획이 장기 투자였던가? 난 고점 베를린까지 찍으려는 단타로 알고 있었는데.
“주장이 아니라 자리를 걸고 간절한 애원을 했지. 파리에 계신 군정장관님께도, 조프르 총사령관님께도.”
“군정장관님이면 갈리에니 장군 아닙니까? 조프르야 그렇다 쳐도 갈리에니 장군님은 왜….”
“갈리에니 장군도 조프르 총사령관의 ‘강력한’ 명령을 어겼다간 군 지휘권의 혼선만 온다고 거절하셨더군. 그리고, 조프르라니. 총사령관님이 자네 친군가?”
“차라리 제 친구면 때려서라도 똥고집 뜯어고쳤습니다.”
“하아….”
왜 이래, 우리가 윗선 씹는 게 원투 데이야? 입 안의 껌도 바꿔 먹는 사이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페탱은 내 언행 지적 대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나 설명했다.
“리에주 요새의 위험으로 조프르 총사령관님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네. 벨기에가 무너지기 전에 완벽한 돌파를 명령하셨어.”
“아, 그러니까 아직 자기 구멍에서 나온 게 피똥인지 토마토소스인지 분간이 안 가신다?”
“…뭐, 그렇다네.”
“그래서 더 싸겠다는 명령을 제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마. 나도 포기했으니까.”
페탱이 내 말에 꼬투리를 안 잡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나한테 이 상황을 설명하는 우리 사단장님의 수심 또한 맛이 갔거든.
한동안 우리 둘 사이에는 대화가 끊겼다.
페탱은 그냥 한숨만 내쉬며 할 말을 잃었고 난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쌓인 기억을 뒤지고 있었다.
‘제5군이 벨기에 수비에 투입되는 것은 정해진 역사다.’
근데 그게 과연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크진 않아도 원 역사는 틀어졌으며 이건 역사의 인과관계를 떠나 조프르라는 인간 개인의 고집이었으니.
만약 투입을 원 역사보다 늦춘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혹시 파리가 점령당하려나.
과연 여기서 가만히 조프르의 고집이 꺾이길 기다려야 하는 걸까. 전쟁의 큰 흐름은 빼곡히 알아도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은 예상하기 힘들었다.
아르덴 숲은 지옥이다. 이건 2차대전 나치 독일이 아르덴 숲에서 프랑스군을 반으로 쪼개기 전까지 정해진 명제나 다름없다.
“란레작 장군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제5군의 재배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니 일단 기다려 볼 수밖에.”
“아니, 그건 도박 수가 아닙니까.”
만에 하나 ‘응, 너네 알자스-로렌 절대 못 뚫어.’라고 세상에 고래고래 소리 지른 나 때문에 조프르 장군이 더욱 이러는 거라면 진짜 난 프랑스를 멸망시킨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
아르덴 숲. 여기에 대한 매우 확고한 역사적 평가가 있다.
‘무섭고, 공포가 가득 찬 곳(A frightful place, full of terror).’
카이사르의 로마군의 보고다.
그리고 이를 몸소 체험하신 포슈께서는 나중에 한마디를 더 하시는데.
‘뚫을 수 없다(It is impenetrable).’
이처럼 2차대전 나치 독일이 뚫기 전까지는 불멸의 명성을 지니고 있던 땅이 아르덴이다.
이미 역사는 조금씩이지만 내가 아는 것과 날짜가 틀어지고 있었다. 페탱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6사단 사단장 지휘권을 몇 주 더 일찍 손에 쥐었고, 이는 5군의 재배치가 언제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증거였다.
난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연 원 역사대로 흘러가게 놔둘 것인가. 아니면 틀어볼 것인가.
만약 이대로 역사가 틀어지지 않는다면….
‘나와 내 병사들은 대부분 참호에서 죽겠지.’
8월이 끝나고 9월이 시작되면 마른 전투가 시작된다.
난 마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한 번은 나의, 정확히는 페탱의 가치가 겉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뒤 참호전이 시작되면 전공 세우긴 글러 먹거든.
“아르덴 공세,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죠. 단, 저희는 언제든지 빠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런 식으로 공세를 펼치는데 과연 적이 모를까? 무엇보다 아르덴 숲을 뚫을 순 있고?”
“정중앙 돌파는 아닙니다. 숲 북부만 아주 얕게 들어가는 겁니다. 제5군 재배치는 무조건 일어납니다.”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왜냐면 곧 벨기에가 무너지거든. 수도야 진작 넘어갔고 곧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벨기에 도시, 몽스도 넘어간다.
역사적으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영국군이 독일군을 물리친 몽스의 천사(Angels of Mons) 기적도 이제 끝이다.
“파리 앞까지 적이 밀고 들어오면 아무리 총사령관이어도 재배치합니다.”
“…그 말은, 독일군이 2주 내로 우리나라 북부를 지나 파리 앞까지 온다, 이 말인가?”
“예. 그리고 어차피 선택지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가서 말하십시오. 차라리 아르덴 공세를 서두르고 재배치받는 게 낫다고.”
“쯧, 착각하지 말게, 모헬 대위. 사단장이라고 뭐 발언권이 있는 줄 아는가? 총사령부 가면 다 나 군단장입네, 나 사령관입네 하는 사람들 천지야.”
“하지만 란레작작 장군은 다르죠. 제5군에서 유일하게 사단장님과 같은 생각을 해온 사람 아닙니까?”
사령부에서 지금 나 군단장이다, 뭐다 하는 것들도 쉬이 입 못 연다. 다들 자라 목처럼 움츠러들었거든.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휘관의 무능이 드러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연 이들은 곧 어떻게 될까.
다들 약간은 짐작하겠지만 프랑스 군부의 선택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끝없는 숙청.
실제로 조프르 파벌이 전쟁 초기의 실패에도 군권을 유지한 방법이 무능한 야전 지휘관들을 싹 자르고 조금이라도 성과를 보이면 승진시키는 거였거든.
마치 정어리 떼가 자신들의 일부를 희생해 살아남는 것처럼 군부는 숙청을 주저하지 않을 거다.
“목적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5군의 재배치로 우익 방어.”
“으음….”
아르덴 북부 찍먹만 해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나도 안다. 대신 그 막대한 피해의 지휘관들은 페탱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겠지. 그렇다고 그 피해가 5군의 역할을 망칠 정도는 아닐 것이고.
“란레작 장군이라면 이 절충안을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상관인 조프르의 명령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최종적으로 제5군 재배치까지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절충안이라, 이건가.”
“그렇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페탱은 천천히 눈꺼풀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이틀 뒤, 제5군에서 10군단과 11군단을 주축으로 아르덴 공세가 결정되었다.
***
“역시 나와 페탱의 힘이 약하긴 한가 봐. 완벽한 답을 만들어도 떠먹여 줄 수조차 없네.”
제5군은 1, 2, 3, 10, 11군단과 4기병 사단, 그리고 2개의 예비사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름 란레작과 연이 있는 페탱 사단장님의 강력한 주장에도 ‘5군은 치고 빠지기’를 완벽히 시행하긴 힘들어 보인다.
조프르가 주장하는 ‘5군의 아르덴 공세’는 냉정히 보자면 며칠 내로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꺾일 주장이다.
왜냐면 몽스에 있던 영국군이 어제 뚫렸고, 곧 독일군이 국경을 넘을 거거든.
적의 본토 침공. 이는 자연스레 공세 위주에서 방어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며칠의 틈 동안 난 페탱의 이름에 광 좀 칠하고자 한다.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원래 제5군은 개전 이후 무기한 대기하다가 파리 앞까지 오는 독일군을 막는 데 투입된다.
그 대기하는 시간을 약간만 활용해보자고. 조프르도 좋고, 나도 좋고. 이게 매부 좋고 누이 좋은 거 아냐?
솔직히 말해서 과연 이게 정치 논리 싸악 빼고 서부 전선에서 조금이라도 프랑스를 유리하게 만들어주냐고 묻는다면, 난 당당히 아니라고 답하겠다.
아르덴 북부 스쳐서 적 몇천 더 죽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되려 우리가 더 크게 피해 입을 가능성도 크고.
나도 안다. 지금 내가 하는 건 전쟁이 아니라 정치라는 것을.
그래도 상관없다. 아니, 무조건 해야 한다.
내가 볼 때 아르덴보다 페탱의 데뷔 무대로 좋은 곳은 없거든.
결과만 보자면 샤를 란레작의 건의는 받아들여졌다. 어차피 조프르 또한 우익에 제5군 투입은 필수라 내심 인정했고 아르덴 공세에서 완전히 빠지겠다는 의미도 아니었으니 마지못한 척 허락한 거다.
조프르 총사령관 아래에는 현재 알자스 방면으로 폴 파우 장군이, 로렌 방면으로 미셸 모누리 장군이 공세 사령관으로 있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폴 파우의 알자스 공세군은 곧 전면 해체된다.
원인은 극도의 무능함과 군사 재편의 필요성.
폴 파우 장군은 군정장관과 란레작 급으로 은퇴 짬이 있는 데다 조프르도 어지간한 일 아니면 언터처블이니 책임을 묻긴 힘들 거다.
다만 이후로 야전에서 다시 뛰게 두진 않겠지. 적당히 나이에 걸맞게 감투 하나 던져주고 뒤로 빼지 않을까.
이 또한 좋다. 어두운 심야가 작은 촛불 하나도 돋보이게 해주는 법.
판은 불패 로마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 아르덴 숲이다.
“살아남아 보자고.”
페탱에게 아르덴 북부를 가볍게 들렀다 가는 것처럼 말했지만 난 엄연히 야전 지휘관. 아르덴 공세 도중 적의 눈먼 포탄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허나 장담컨대 앞으로 2년간 참호에서 무지성 엘랑 비탈 하는 것보단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담배를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듯 피우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튕겼다.
누가 그랬던가.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고.
제5군의 아르덴 공세 날 또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