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53
053화
당황스럽긴 하지만, 저게 본론일 리는 없다. 고작 그딴 말이나 하자고 부른 것은 아닐 테니까.
아마 내가 어디까지 생각하는지 떠볼 생각인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질렀다.
“도와주십니까?”
“호오, 그럼 적어도 끝을 보고 싶긴 하다는 말이군?”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다니, 능구렁이가 따로 없네.
“제가 다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어디 날로 먹을 생각을 하는가. 쯧, 빈말이나 할 거면 되었네. 일개 중령이 어디 책임이나 질 수 있겠는가. 소장쯤 되면 몰라도.”
그러면서 이번엔 스윽 페탱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주 다 찔러보는구먼.’
조제프 시몽 갈리에니.
들은 바로는 식민지 총독 시절 총살도 서슴지 않았다기에 냉혈한일 줄 알았는데 능청스럽기 그지없다.
“저랑 조프르 총사령관님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부터가 문제 아닙니까.”
페탱은 겸손히 문제의 근본을 지적했으나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총사령관은 무슨. 그럼 나도 총사령관이고 포슈도 총사령관이겠군.”
“그게 아니라-”
“나 또한! 총사령관이라 불리기도 했다네. 그리고 지금 조프르는 연합군을 통솔하는 총사령관(commandant en chef)의 자리는 아니야.”
육해, 동맹 구분 없이 ‘명령’으로 움직일 권한은 없다.
즉, 총사령관이긴 한데 반만 총사령관이랄까.
“뭐가 되었든,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그게 용납되겠나. 그의 졸전에 영국도, 프랑스도 실망했다네.”
여전히 영국과 프랑스는 작전 주도권에서 엇갈리는 부분이 많았으며 사령부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레퍼토리는 야전까지 자자하다.
영국이 ‘너희가 이리 밀리지만 않았으면’이라고 탓하면 프랑스는 너희 잘난 해군이나 움직이라고 한다.
아직까진 육전에 한해서 프랑스가 미세하게 우세하다만 캐나다군, 호주군까지 속속히 도착하니 마냥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 거야.’
둘은 어느새 이탈리아와 남부 전선 이야기로 넘어가 ‘연합군의 범위는 어디인가’의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슬슬 영양가도 없는 주제에 입만 아파질 즈음, 갈리에니는 마치 첫 대면처럼 훅 들어왔다.
“아 참, 내 우연히 지나가다 들었는데 에두아르를 만났다고?”
“불과 몇 시간 전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
“의례적인 축하 인사였습니다.”
사단장님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구라를 쳤다.
“그래? 그럴 놈이 아닌데. 에두아르 중장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군단 하나쯤은 독일군 아가리에 넣을 수도 있는 놈이라고. 실제로 국경에서 제2군 말아먹은 거 보면 내가 생각한 범주 이상이었지만. 그런 새끼들은 마다가스카르에 한 10년 박아둬야 하는데 말이야.”
뭐랄까, 역시 갈리에니라고 해야 하나. 현 육군 중장이어도 자기보다 아래로 깔고 보는 게 참.
하긴, 조프르와 그 파벌도 제 손으로 멱살 잡고 흔들려는 양반인데 무슨 말을 못 할까.
“혹, 영입 제의는 없던가? 모헬이야 멀리 봐야겠지만 페탱, 자네는 당장 북부 전선에서 포슈를 제외하면 2인자나 다름없지.”
“계급상으로는 아닙니다.”
“그런 겸손은 집어넣어 두게. 한번 은퇴했지만 지금 육군 주요 인사들 전부 내 후임이고 부하였어.”
농담 같지만, 저 말은 놀랍게도 진짜다.
벨 에포크 시대에 프랑스에서 군바리가 출세하려면 무조건 식민지를 거쳐야만 했다.
당연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부터 마다가스카르까지 여러 곳을 전전했던 갈리에니를 거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안타깝게 죽은 자네 전임, 페슬린 사단장도 나랑 인연이 있었지. 그게 어찌 된 거냐면….”
수십 년 군 생활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다 할 작정인지 갈리에니의 필리버스터는 끝이 없었다.
‘드골이 나이 먹으면 이리되는 걸까.’
그럴 기미가 보이면 그 전에 연 끊어야겠다.
그리 한참을 또 쏟아낸 갈리에니와 이를 또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다 꾸역꾸역 받아낸 사단장님. 존경심이 생길 지경이다.
회고록 한 권 쓰고 만족했는지 갈리에니는 약간 풀린 자세로 잠시 입을 닫았다.
그의 휴식에 페탱과 나 또한 침묵을 지켰다.
‘설마 이제 겨우 전반전은 아니겠지?’
그럼 사곤데. 갈리에니 성정이라면 후반전, 연장전까지 할 사람이다.
차 한 잔을 다 비울 시간이 지나자 갈리에니는 다시 내게 물었다.
“자네가 판탈롱 루즈를 그리 싫어한다더군? 다른 이들은 사기 진작을 위해 꼭 입어야 한다고들 하던데.”
“그 붉은 군복 바지는 적의 눈에 너무 띄지 않습니까.”
“실전이라면 지겹게 겪어봤으니 잘 알지. 판탈롱 루즈는 다리에 총알 박아달란 신호밖에 더 안 돼.”
여전히 서로 꺼내지 않은 본론과는 떨어진 이야기였지만 왠지 약간은 진지해진 기분이었다.
“사실 난 다 싫어하네. 야밤에도 저격당하기 딱 좋은 군복도. 비효율적인 우리 포병도. 버러지만도 못한 러시아와 야성을 잃은 추한 사자도. 그리고,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우리 총참모부도.”
“그래서… 바꾸시려고 하십니까?”
“흐흐, 젊은 친구답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군? 방관하거나, 바꾸거나. 선택지가 둘밖에 없나?”
“그럼 뭐가 있습니까?”
“예를 들면, 바꾸는 척하는 거지.”
더는 방 안에 헛소리나 나불거리던 갈리에니는 없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이는 조프르와 대적하는 파리 총독이었다.
“사실 에두아르 중장이 무슨 제안을 했든 딱히 신경 안 쓰네. 어차피 진심이 아닐 테니.”
진심이 아니라니. 무슨 말인가. 애초에 제안조차 없었다만.
‘페탱과 비교되는 에두아르. 아… 설마.’
만약에, 에두아르가 내가 아는 대로, 그리고 갈리에니의 말대로 극단적으로 정치적 인물이라면.
‘어쩌면 페탱이 조프르 파벌의 일부가 될까 봐 두려운 걸 수도.’
그리되면 자신의 위치는 더욱 비교되고 흔들릴 테니.
꾸역꾸역 유지하고 있는 권력 순위에서 순식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 생각했을 거다.
그리 보면, 에두아르가 페탱을 첫 대면부터 적대한 이유는 되려 지금의 ‘잠재적 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게 아닐까.
그리고 이를 잘 아는 갈리에니는 에두아르가 다녀갔단 소식에 긴장조차 하지 않은 건가.
“모헬 중령,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착각하지 말게. 난 자네 둘이 나와 함께하길 바라지 않아.”
“…?”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갈리에니는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조제프 세제르 조프르. 그놈은 예전부터 자신의 판단과 다른 행동은 무조건 틀린 거라 여기는 놈이었다. 그에게 절대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란 없었다는 말이야.”
“갑자기 그 말씀은 왜.”
“가만히 듣게. 그가 참모본부장 자리에 오르고 나서 난 내심 그가 발전하길 기대했네. 허나 변한 것은 오직 자리뿐. 능력은 발전할 수 있어도 인간의 근본은 잘 변하지 않더군.”
난 잠자코 그의 독백이 끝나길 기다렸다.
“난 이미 은퇴했네. 올해 아내가 죽고 나서는 내게 남은 시간도 얼마 없음이 느껴지더군. 그런 차에, 전쟁이 터졌어. 마치 마지막을 불태우라는 듯이.”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은퇴한 장군들이 전쟁이 결정됨과 동시에 복직해야만 했다. 아마 지금이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많은 장군이 존재하는 시기일 거다.
“그런 나의 복귀가, 조프르한테는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더군. 뒷방 늙은이여야 할 사람이 다시 한번 야욕을 불태운다고 본달까.”
“모든 게 오해라고 하시는 겁니까?”
“오해라기엔… 조금 다르지. 왜냐면 난 그가 그렇게 생각하길 원하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현 국방정치 제1 야당 갈리에니 당이 사실 정권을 잡을 생각이 없다니.
“진짜 조프르와 경쟁하고 싶다면, 간단해. 먼저 뽑을 수 있는 손톱 발톱 다 뽑고, 부러트릴 수 있는 뼈는 잘게 부숴주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한 수준이 되겠지.”
“그게 무슨….”
“당장 나보다 1년 먼저 은퇴했던 마누리부터 움직이면 되네. 그 친구는 실패할 명령만 내리는 조프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조프르 아래에 있는 참모들? 앙리 베르텔로트(Henri Mathias Berthelot) 장군 정도는 손쉽게 공격해볼 만하지. 베르텔로트는 에두아르와 제17계획 책임으로 엮어버릴 수도 있고. BEF와 그 위 영국 정치인들은 나와 조프르 둘 중 누굴 좋아할까? 지금의 푸앵카레 내각은? 현 비비아니(René Viviani) 총리는? 차기 총리로 의장직 노리는 조르주 클레망소는?”
그가 쏟아내는 수많은 것들 중 과연 조프르에게 제대로 통할 게 얼마나 될진 모르겠다만 확실히 지금의 갈리에니는 조프르 파벌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거물임은 확실하다.
“이전에도 기회는 많았어. 조프르가 책임 회피를 위해 총알받이로 세운 이들 중 억울한 이들도 있었으니. 만약 자네들이 속해있던 제5군의 란레작을 내가 이 진흙탕으로 끌어들였다면 조프르는 큰 타격을 입었을 거네.”
갈리에니의 말에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란레작 장군이라면 조프르에게 확실히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패긴 하지.
모두가 란레작의 공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반항했단 이유로 잘랐으니까.
혼자서도 격하게 반항하던 양반인데 뒤에서 갈리에니가 등 떠밀어주면 얼마나 더 날뛰겠어.
“하지만 그리하지 않았네, 모헬. 이유를 아는가?”
“어째서입니까?”
“그랬다면 지금의 프랑스군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을 테니까. 파리 앞에서 보지 않았던가? 잠시나마 나뉘어버린 프랑스 육군을.”
적을 끌어들여 섬멸하려던 갈리에니.
적으로부터 수도를 지키려던 조프르.
결국 둘 다 실패했고 포슈가 아니었다면 자칫 병력과 파리 둘 다 잃었을지도 모른다.
“조프르, 최근 몇 달간 그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 한들 나를 필두로 수많은 이들이 최고 지휘부와 대적한다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야.”
“그럼 그냥 방관하시는 겁니까?”
“아니지, 아니지. 난 늙어 힘이 없지만, 아닌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 그게 무슨.”
그리 말하며 갈리에니 총독은 나와 페탱을 뚫어지게 처다봤다.
뇌 속의 무의식이 이성의 멱살을 붙잡고 뒤흔드는 이 기분. 딱 죽을 위기 때마다 느끼는 기분인데 지금이 그렇다.
“나야 죽기 전에 전쟁의 끝을 못 볼지도 모르지.”
“전쟁은 내년 5월에….”
“내년 5월은 무슨. 내후년 5월이어도 안 끝날 판에.”
“하하….”
매우 혼란스럽다.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사단장님은 처음으로 이 방 안에 들어와서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조프르에게 파벌이란 결국 그 자신을 빛내주는 도구에 불과하네. 이 나라의 군을 주무르는 게 목적은 아니란 말이야.”
“저희는 조프르 총사령관님 행동을 반대하진 않습니다. 일할 때 잘 맞는 사람 뽑는 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쯧, 그런 입바른 말이 아니야. 저리 계속 두면 자정작용은커녕 독불장군만 남게 된단 말이네. 반면 내게 파벌이랄 게 있나? 그냥 정치권 조금 기웃거리는 거랑 총사령관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막을 수 있는 것 정도가 전부지.”
음,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정도가 아닌 걸로 아는데. 아마 다음 내각 영입 우선순위 1순위이지 않을까.
이 양반이 마음만 먹으면 정부와 군 사이 길목을 틀어막을 수 있는 사람이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게. 나한테 자네 둘을 맞추라는 게 아니니. 우린 오늘 처음 본 사이 아닌가?”
처음 본 사이치고는 이미 할 말 못 할 말 다 해놓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니.
“다만, 페탱. 자넨 이거 하난 알아두게. 전쟁을 끝내고 싶다면.”
“총사령관을 교체해야 한다, 이 말씀이시군요.”
“…그래. 잘 아는군.”
그러곤 갈리에니는 마치 바람 빠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변했다. 그새 한 차례 더 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저 모습이 본래 갈리에니 총독일지도.
“내 할 말을 끝이네. 무슨 제안을 기대했을진 몰라도 접게. 나와 함께 침몰하긴 싫을 테니.”
“그저 순수하게 총독님과 만나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디서 아부인가. 떨어지는 거 없으니 빈말은 넣어둬.”
갈리에니 총독. 이유는 다를지언정 그 또한 에두아르와 같다. 그는 진정 페탱과 내가 그와 함께하길 원하진 않는다.
과연 오늘 대화 속에 진심은 얼마나 섞여 있을까.
순진하게 다 믿을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 또한 갈리에니가 조프르를 대체할 수 있다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갈리에니가 어디까지 내다보는지 전혀 모르겠다.
포슈 장군? 포슈가 얼마나 대단할진 몰라도 난 방어전에 한해서는 페탱보다 완벽한 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내가 아는 역사가 이를 증명했고, 그간 페탱이 보여준 지휘 능력은 확신을 더한다.
갈리에니는 아직까진 ‘일단 조프르는 아니다’라는 수준인 것 같다.
솔직히 조프르가 빠지면 지휘봉 잡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손 채우지도 못할 거다.
‘역시 페탱이 지휘봉을 잡아야만 해. 늦어도 2년 내로.’
아니면.
아니면… 프랑스는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몰락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