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63
063화
어김없이 오늘도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군이 몰리는 북부 전선.
북부는 지금 세계 온갖 인종들의 집합소로 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나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형태의 부대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 최근 들어 자치령 지원군들까지 끌고 온 영국군의 특징을 짚자면 난 가장 먼저 그들의 팔스(Pals) 대대 형식을 꼽겠다.
다양한 식민지 전쟁을 겪으며 영국군은 군인의 정신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확인했고, 이는 훈련받지 않은 징집군일수록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된 팔스 대대 형태.
같은 지역에서 자라난 비슷한 나이대 청년들을 묶어서 한 소대, 혹은 중대로 집어넣는 거다. 그리하여 징집 지역별로 대대를 구성한 게 팔스 대대다.
관리하기도 편하며, 사기가 떨어질 염려도 적다.
병사들도 자신과 함께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열심히 싸울 거다.
뭐, 이건 긍정적인 효과만 기대한 거고.
“지역 단위로 젊은 남자가 사라지기 딱 좋네.”
대대 하나가 전멸했다? 그 말은 영국 어느 지역 결혼 적령기 남자 씨가 말랐단 소리로 이해하면 되겠다.
전쟁 끝나면 어찌 감당할지 참으로 궁금한 군사 제도.
‘아, 책임은 안 지려나.’
이 시대에 국가한테 징징거리면 바로 ‘혹시… 빨갱이?’ 소리 듣기 딱 좋은 시대니까.
이를 딱히 비판할 생각은 없다. 우리 프랑스도 비슷한 상황이니까. 아니, 되려 스케일은 크려나.
의무 복무 시행 이후 프랑스군 편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현역 군인(20~23세)
현역 예비군(24~34세)
영토군(35~41세)
영토 예비군(42~48세)
일반적으로 나이대에 따라 구분하면 저리 나오는데….
영국 팔스 대대가 지역 단위로 죽었다고? 에이, 우리 프랑스랑 경쟁하기엔 멀었지.
“일단 우리 현역은 대부분 죽었다고!”
우린 무려 국가 단위로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현재 20대 초반 청년들은 이 나라에서 멸종위기세대다.
아마 전쟁 끝날 때쯤엔 몸 성치 않은 이들과 무사 전역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 거다.
지금 북부로 몰리는 이들도 대부분 현역 예비군들이다. 이것도 감지덕지한 수준의 양질 병력이라 불리고.
좀 더 병과별로 분석해 보자면, 누가 나폴레옹의 나라 아니랄까 봐 포병이 제일 미친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그다음이 최대한 현상 유지 중인 보병이다.
보병도 슬슬 징집 속도보다 죽는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어 겨우 150만 언저리에서 유지 중이다.
아무튼, 양군이 밀집됨에 따라 쓸데없는 공수가 늘어간다.
그러든가 말든가 오늘도 어김없이 개죽음 사절을 외치며 따스한 봄을 맞이하려던 차.
이놈의 역사는 정해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아, 이런 건 좀 크게 변해도 좋은데.”
릴 전선의 좌측에 위치한 이프르(Ypres)의 돌출부.
“하루 만에 사상자 4천 5백에 6km 후퇴라. 음, 가스가 확실하네.”
튀어나온 못이 정 맞는다고, 정면으로 독일의 화학전이 캐나다와 영국군, 그리고 프랑스 식민 사단을 강타했다.
보고에 따르면 캐나다 원정군 제13대대는 아예 전멸.
어김없이 오늘도 이름 모를 지역의 청년들이 멸종했다.
***
초기의 사람이 삽으로 파고 쏙 들어간 참호와 달리 온갖 자재를 때려 박아 잘 형성된 참호는 사실상 지하로 건설된 요새나 다름없다.
그 방어 능력이야 의심할 바 없으며 전략적 가치는 매우 크다는 의미.
그런 참호를, 지역 단위로 빼앗기게 되면 어찌 될까.
‘되찾는 일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참호를 재건설하기까지 얼마나 밀려날지 모른다!’
이프르의 패퇴. 이는 계속되는 공세 실패에 불안에 떨던 헤이그의 조바심을 기폭시키기엔 충분했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부대들의 전선 이탈은 절대 안 돼!”
“일부의 이탈 수준이 아닙니다. 가스 구름이 참호에 가라앉는 순간 총소리조차 멈춰버립니다. 헤이그 사령관님, 이건 명백히 기존의 참호전 형식을 뛰어넘는 전투 방식입니다.”
“그래도 밀려선 안 돼. 이프르에서 밀린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나? 우리의 상륙 지점이 위험해지고 이 거대한 장벽에 무료 요금소가 생기는 꼴이라고!”
“일단 인근 부대에게 저지를 명령했습니다만 과연 그게 얼마나 갈지는….”
“알지, 나도 잘 아네.”
단 하루다. 사단 절반이 날아가는 데 걸린 시간이.
유럽에 파병 온 캐나다군의 1할이 사라졌고 동맹의 식민 사단 하나가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만약에 이러한 패배가 일주일만 지속된다면.
‘아미앵, 아니. 어쩌면 작년처럼 도망쳐야 할지도 모른다.’
패배로 인한 후퇴는 막지 못하면 끝이 없다. 이는 작년에 파리 앞까지 내주며 연합군이 뼈저리게 경험한 바 아니던가.
최악을 즉시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헤이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이름들뿐이었다.
“…페탱. 페탱 소장에게 당장 연락해. 이프르는 6사단이 직접 와야 한다고.”
연합군 내부에서 유일하게 화학전을 대비한 이들.
아무리 대영제국의 명예가 신경 쓰인다 한들 헤이그는 더 고집부릴 수 없었다.
지금 이프르를 틀어막을 수 있는 유일한 부대.
죽음의 안개 속으로 걸어가 줄 이들은 6사단뿐이었다.
***
첫 공격이 시작된 4월 22일. 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행동에 나섰다.
“모두 짐 싸! 당장 오늘 밤에 떠날 준비를 마친다!”
하루 만에 6km 공백이라. 1km 전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로 이 땅을 적시는지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패배.
어김없이 24일, 나름 상비군이라 정예라 떠들어대던 제1 캐나다 사단이 가스 공격에 1.4km 가까이 후퇴했다.
화학전 시작 단 삼 일 만에 튀어나온 이프르 돌출부가 적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날 당일. 6사단 전체 이동 명령이 내려왔다.
“위험천만한 곳에 곧장 우릴 보낼 정도면 확실히 쫄리긴 한가 보네. 하긴, 이프르에서 더 밀리면 답도 없지.”
화학전 소식에 딱히 놀랍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서부 전선에서 먹은 야전 취사가 수백 끼를 넘어서 그런가 아니면 남자들끼리만 있어서 그런가. 슬슬 심장이 급박하게 뛰는 일이 드물어지더라고.
우리가 있던 릴에서 이프르까지는 도보로 40km 정도밖에 안 된다.
사단 전체의 느린 이동을 고려해도 이틀 내로는 충분히 가는 거리.
25일 밤, 6사단의 장교들이 모여 급하게 투입될 이프르 전역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가 빠진 구역을 다른 부대가 막는답니다. 다행히 대기 중이던 예비 부대가 많아 교대는 빠르게 끝났습니다.”
“사단 하나가 완전히 빠지는데도 틀어막는다라. 확실히 병력이 많이 있긴 했군요.”
만약 북부로 병력이 몰리지 않았다면 이리 신속하게 이프르로 출발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 위치를 다른 부대한테 맡기고 이동해야 하니 못해도 이틀은 지연되지 않았을까.
내일이면 바로 이프르 도착. 오늘 지휘관들이 이리 모이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지금 이프르 전선은 어떻게 막고 있다던가.”
페탱도 화학전은 난생처음이라 그의 머릿속에 어찌해야 한다는 대응 교리 자체가 없었다.
“첫 번째로는 병력 투입. 가스가 바람에 사라지는 순간 피해를 감수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위 포병을 전부 끌어다가 대규모 폭격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어떻게든 저지는 하겠다는 의지군. 손해가 만만치 않겠어.”
“그렇기에 일시적인 방법입니다. 사상자만 하더라도 고작 삼 일 만에 곧 이만을 넘을 것 같습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프르 전체를 빼앗기는 아주 개같은 경우지.”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라곤 사실 얼마 없다.
우리가 틀어막아야 할 이프르 전선은 약 5km. 그러나 언제 저 구멍으로 댐의 구멍처럼 독일군이 쏟아질지 모르기에 아미앵에서까지 대규모 병력을 보낸단다.
다만, 병력이 많다고 상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전멸한 캐나다군 대대들이 말해준다. 쌍방 교전조차 성립하지 못했다고.
그 외로는 적의 공격은 염소 가스로 추정되며 적은 탄을 쏘기보단 대량으로 가스를 흘려보내는 식으로 참호를 넘어오고 있다는 점이 전부다.
“당장 적 참호 뒤로 얼마나 많은 군이 대기 중일지 모르네. 만약에 이프르가 완전히 넘어간다? 자칫 기껏 형성한 북부 참호 전체를 뒤로 물려야 할 수도 있단 의미야.”
“그 후퇴 과정을 적이 두고 볼 리도 없고요.”
슈티른 대령과 페탱의 염려는 아미앵 사령부의 생각과 일치할 거다.
그렇기에 북부 사령부에서도 즉각적으로 6사단 투입을 명한 거고.
사실 우리라고 방독면 하나를 제외하면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걸 알 텐데 말이다.
“모헬 중령. 사실 난 이런 대규모 화학전을 구상조차 해본 적이 없네. 무엇보다 과연 우리 6사단이 홀로 저들을 저지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지. 자넨 분명 캐나다 대대가 전멸했단 소식을 듣자마자 올 게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게야.”
“……”
페탱의 단언에 옆에 앉은 파비앵이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나도 정답은 없다니까?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저 화학 부대 뒤에 막대한 군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거라면? 베르게르 모헬 위인전의 여러 결말이 머릿속을 촤라락 스쳐 지나간다.
왜인지 마지막 페이지에 ‘장렬하게 전사.’라고 끝날 거 같지 않나.
“제가 발 빼려는 건 아닙니다만, 화학전. 솔직히 저희가 대비는 했지만 그 이상은 없습니다. 막대한 가스를 제독할 방법도 없는 실정입니다. 저희도 가스에 오래 노출되면 죽는 건 매한가지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페탱이 내 입에서 듣고 싶은 게 안 되는 이유가 아님을 나도 잘 안다.
골똘히 생각하던 난 생각을 바꿔야 했다.
‘화학전은 둘째 치고 우리 6사단만 투입하면 너무 위험한 게 문제잖아?’
그럼 스케일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우리가 아니라 온갖 예비 부대까지 끌어들이는 거지.
“만약에… 저희가 되려 이프르를 통해서 진격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뚫린 구멍이니 아예 저희가 들어가는 겁니다.”
“가능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선두에 나선다 한들 적이 후방 참호에 숨으면?”
“마침 베이강 참모장의 선물도 충분히 받지 않았습니까.”
이걸 노리진 않았는데, 딱 마침 베이강이 3월에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더라고.
“전차, 이번에 써먹는 겁니다.”
“허나 모헬 중령님, 전차 부대는 아직 미숙하기 그지없습니다.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숙련이 부족합니다!”
한 참모가 옳은 소리를 꺼냈지만.
“음, 아니 아니. 그냥 전진하면서 포만 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비싼 거 알지. 하나하나 소중한 것도 알고. 숙련도? 실전 경험 하나 없어서 얼마나 개판일지 감도 안 잡힌다.
근데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르노15는 어차피 오래 써먹을 물건은 아니잖아?
고작 7톤 언저리에 철갑탄이 아니어도 중형 화포 직격으로 맞으면 무조건 망가지는 차체. 부족한 마력 탓에 속력도 느리고 짧은 포신과 소형포로 화력도 안 좋다.
뭐, 이것조차 세기의 혁신이다만. 기관총이라도 막아주는 게 어디냐구.
“사단장님, 저희가 일단은 틀어막는다 치고.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안 그래도 헤이그 경도 대규모 공세의 필요성을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기회에 한번 날뛰라고 해주죠.”
우리 헤이그 경께서 벌써 넉 달째 화려하게 불태우고 싶어서 안달 나셨잖아?
마침 밋밋한 참호에 구멍도 생겼겠다. 헤이그도 좋고, 베이강도 좋고. 전차 데뷔전으로 딱 좋아 보이는데.
딱히 의도하진 않았다만 이건 기회다.
이프르 하수구 배관에 뚫린 구멍으로 새어 나오는 독일 오물을 프랑스제로 역류하게 만들 기회.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좋은 방안은 없어 보인다.
“지금은 다들 처음의 화학전에 당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적도 마찬가지지요. 화학 공격은 하지만 정작 그 화학이 바람에 사라지기 전까지는 자기들도 못 들어오고 있다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 덕에 아직까지 이프르 전체를 빼앗기지 않은 거고.”
독일군이 가진 가스 대책? 아마 산소 공급기 몇 대가 전부일걸?
물론 옷에 오줌 싸서 얼굴을 가리는 캐나다군보다는 낫다만.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절대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역수출. 비록 판로는 독일이 뚫었다만 반대로 말하면 한 번에 밀어내면 생각보다 적 참호선 또한 쉽게 뚫을 수 있을 거다.
아, 공정 무역. 공정 거래. 수출로 먹고살던 국가의 영혼이 시대를 뛰어넘어 내게 말한다. 이건 무조건 된다고.
그러니 딱 한 번. 딱 한 번만 역류의 물꼬를 트면 되지 않을까.
특유의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는 습관을 반복하던 페탱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아미앵엔 내가 연락하지.”
천하의 페탱도 이프르로 쏟아지는 오물에 님비(Not In My BackYard)를 시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