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문을 열고 쭈뼛쭈뼛 들어온 건 동아 신문의 편집국장 한수강이다.
그는 재환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 무겁게 가져온 음료수 박스를 들어보였다.
“몸 챙기시라고 하나 챙겨왔습니다.”
재환의 옆에 슬쩍 가져다 놓은 음료수 박스 안에는 5만원권으로 꽉꽉 들어 차있었다. 저 박스에 5만원권을 꽉 채우면 아마 1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환은 피식 웃고 박스를 밀어냈다.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잘못 걸리면 저나 편집국장님이나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 그렇죠.”
나름대로 고민해서 가져온 한 수였던 모양인데 재환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 회장직위에 오른 게 돈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멋쩍은 듯 맞은편에 앉은 그는 괜히 물만 홀짝였다. 재환의 따가운 눈빛이 그의 머리에 내려찍혔기에 눈을 어디에도 둘 수가 없었다.
“저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잠시만 기다리죠. 한 명 정도 더 올 것 같으니까요.”
재환의 말대로 10분 정도 지나니 문이 재차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건 조선의 류진혁 편집국장이었다.
그는 먼저 와 있는 한수강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흔들리지 말라고 했건만 결국 흔들렸던 거다. 한수강은 류진혁을 마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류진혁은 문을 닫고 한수강의 옆자리에 앉았다.
“더 올 사람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재환은 물을 홀짝이고 휴대폰을 슥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한 명은 이미 얘기가 끝났으니 안 와도 된다.
“식사들 들면서 얘기 나눌까요? 여기 꽤 맛있는 집이라더라고요. 근데 다 식어서 괜찮으려나 모르겠네요…….”
그리 말하고 능청스레 먼저 수저를 들었다. 한수강도 어물쩍거리다 밥을 한 숟갈 뜨기 시작했지만 류진혁은 재환을 빤히 바라봤다.
어차피 좋은 담화를 나누려고 모인 자리도 아니니 밥을 먹자는 건 불편할 뿐이다.
“본론이나 하시죠. 제가 알기로 강 회장님은 서론 길게 끄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렇죠. 본론부터 딱딱 얘기하는 게 제 타입이긴 합니다만 때론 뜸을 들여야 하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우리가 나눌 이야기에 뜸을 들이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건 뉴스 보시면 알 겁니다.”
재환은 방에 놓인 티비를 틀었다. 원래는 놓여있지 않은 건데 재환이 부탁을 해서 방에 잠시 들여놓은 거다. 이런 게 권력과 돈의 힘인가 싶다.
‘힘에 취하지 않도록.’
카르텔을 잡자고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서는 안 된다. 작게 다짐하고 재환은 TBS 채널을 틀었다.
때마침 TBS 저녁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검찰이 조선 신문과 동아 신문, 매일중앙 세 곳의 신문사에 여론조작 혐의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검찰 측은 익명의 제보를 통해 세 신문사가 국회의원과 한성 계열사에게서 돈을 받고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긴급 체포권을 발령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간판 아나운서가 또렷한 발음으로 기사를 읽어나가자 맞은편에 앉은 류진혁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는 재환을 매섭게 노려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재환은 음식들의 맛을 음미할 뿐이다.
“협박도 범죄입니다.”
“전 아무런 협박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셔서 밥 한 끼 대접해드리는 중인데, 세상 어느 범죄자가 이렇게 협박을 합니까?”
“강 회장님!”
“그만 짖어, 이 새끼야.”
재환이 목소리를 착 깔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조금 전까지도 그리 훈훈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방이 통째로 알레스카 한 복판에 내던져 졌다 해도 믿을 정도로 싸늘했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재환은 류진혁을 빤히 바라봤다.
“네가 세 신문사의 편집국장들 모아서 작당모의한 주동자지?”
“……증거 있습니까?”
“중앙과 동아의 편집국장이 자신만은 살려달라고 말 한 게 그 증거지.”
류진혁이 옆을 노려봤지만 한수강 역시 그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여기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불리하다.
“설마 스캔들 기사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강재환 회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히 쪼잔하신 분이군요? 아니면 이렇게 협박하는 건 찔리는 게….”
“내가 그만 짖으라고 하지 않았나?”
재환의 카리스마에 류진혁은 움찔했다. 재환의 손에 칼이 들려있었으면 사지가 도륙났을 거란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실 신문사 셋이 손잡아도 신경 안 쓰려고 했어. 같잖은 루머를 양산하고, 내 뒤를 캐고 다니는 것까진 살살 꼬리도 흔들면 이번 KG 그룹 때처럼 씹다 만 뼈다귀도 던져줄 의향도 있고 말이야. 근데, 너흰 선을 넘었어.”
재환은 가져온 서류를 꺼내 류진혁의 앞에 던졌다. 자연스럽게 밥그릇이 엎어졌지만 류진혁은 그런 것도 잊을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앞에 놓인 서류에는 한성 그룹에서 받은 비자금 내역과 한성 그룹을 위해 한 여론 조작 내용 일체가 담겨 있었다. 부하 기자들에게 내린 상세한 지시 목록까지 포함되어 있었기에 류진혁의 동공은 크게 흔들렸다.
“네가 원하던 증거야.”
“이, 이 증거의 진위 여부를….”
“그런 거 물고 늘어지면 상황 뒤집을 수 있을 거 같아?”
재환의 말에 류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강재환의 정보 수집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같이 죽자는 거냐?”
“아니, 죽는 건 너지. 뉴스나 봐.”
재환은 아직 멀쩡한 떡갈비를 입에 집어넣으며 TV를 고갯짓으로 까딱했다. 류진혁은 분노에 찬 눈으로 재환을 노려보다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바라봤다.
이미 뉴스는 다음 이슈로 넘어갔다.
“최근 오보로 인한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조선 신문에서 쓴 기사로 인해 관련 가맹점들이 연이어 문을 닫았는데, 그게 오보로 판명이 났습니다.”
오보와 관련된 기사는 그 하나가 아니었다. 오보 특집으로 뉴스를 준비한 것 마냥 대부분의 기사가 오보로 인해 입은 피해자들의 진술을 담고 있었고, 그로 인한 실질적 피해 금액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제야 류진혁은 재환이 짠 시나리오가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양치기 소년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이 찍힌 후 그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소년은 진짜 늑대에게 잡아 먹혔다.
앞에 있는 재환은 조선신문을 잡아먹으려는 늑대였다.
“정치에서 중요한 게 선빵이라는 말이 있지. 근데 선빵 맞았다고 지는 건 아니거든.”
만회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재환이 준비한 기사들이 터져나오면서 조선 신문의 평가는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인터넷 여론은 신문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고, 이전의 기사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그와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생겨나면서 재환도 그에 합류했다. 이동훈이 올린 입장문과 함께 그가 납치되었었다는 이야기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장미래 역시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스캔들을 해명했다.
자신의 리스트를 보도하면서 친분이 생겼고, 방송국 입구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게 전부였다는 거다. 카더라하는 정보가 아니라 확실하게 팩트 체크된 정보들이 풀려나오자 루머들도 싹 사라졌다. 그건 루머에 강경대응을 시작했다는 정보가 흘러간 탓도 있을 거다.
“자, 조선 신문은 앞으로 기레기 신문사란 수식어를 달고 다녀야 할 거 같은데?”
“……이러고도 당신은 멀쩡할 거 같습니까? 저희 신문사에서 힘 좀 쓰면 당신의 오점 하나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이번에 협박한 걸 보도해도 당신은 무사하겠습니까?”
“그 고소장이 그렇게 문제 될 거 같아? 상황이 한 시간 전하고 달라졌단 걸 모르겠어?”
전과 달리 여론은 서서히 재환의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 여기서 조선 신문이 고소장을 직접 받았다고 언플을 해봤자 자신들이 잘못했단 걸 시인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완벽한 체크 메이트다.
“빚진 거, 내가 갚는다고 했잖아.”
류진환은 말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고작해야 재환에게 머리채 잡혀 질질 끌려다닐게 뻔했다.
“지금 나가면 상황을 타계할 방법, 못 들을 텐데?”
“항복 선언 하긴 이르지.”
방을 빠져 나가는 류진혁의 뒤를 보며 잔에 담아둔 술을 들이켰다.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다. 이 건은 자신의 선에서 해결 할 수 없다 판단하자마자 자리를 뜨다니. 이러면 플랜을 조금 바꿔야겠다.
“저도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았는데 앉으시죠. 동아 신문 편집국장님께 드릴 이야기도 있고요.”
자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한수강은 바짝 긴장했다. 그 긴장을 읽은 재환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도움이 될 이야기니 그리 긴장 안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아까 제가 한 말 기억하십니까?”
“어떤 말 말씀이시죠?”
“꼬리를 흔들면 씹다 만 뼈다귀라도 내줄 수 있다고요.”
재환은 빈 술잔을 다시 채우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한수강도 메이저 신문사의 편집국장이다. 재환이 무슨 제안을 한 건지 알아들을 수 있다. 그는 앞에 놓인 물잔을 내려다봤다.
한수강은 류진혁과 다르다. 뒷배도 없고, 동아 신문에서는 그에게 이 일의 책임을 물어 해고할 수도 있다. 아니, 해고만 하면 다행이지. 배징금까지 물리면 답도 없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도 같이 떠맡아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굴욕적이면서도 재환의 말을 경청하는 수 밖에 없었다.
“뭘 하면 되겠습니까.”
“얘기가 빠르신 분이라 마음에 드네요.”
재환은 가져온 또 다른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보다 예의있게 내밀어서 음식이 쏟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직 제안을 드리고 싶군요.”
“이직이요?”
재환은 답을 하는 대신 술을 들이켰다.
한수강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그 모습을 재환은 차분히 바라봤다.
서진이 그를 동아 신문의 말로 쓰자고 제안했다. 메이저 신문사 중 하나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쓸 수 있는 전략이 다양해지니까. 하지만 재환이 반대했다.
스캔들 기사가 워낙 크게 났기에 대처를 제대로 했음에도 하이에나 같은 음모론자들이 언제 또 악평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보다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그를 동아의 말로 쓰지 않아도 쓸 곳은 있다.
재환의 이직 제안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를 구원해 줄 유일한 동아줄처럼도 보였다. 동아 신문에서 물리는 모든 돈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했고, 연봉이 조금 줄긴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제가 KG로 가게 되면 무슨 일을 하게 됩니까?”
“한수강 편집국장님은 KG로 오는 게 아니라 TBS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거기서 국장 자릴 맡아 주셔야겠어요.”
지금 있는 보도국장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 신임하기엔 부족하다. 카르텔에서 접촉해왔을 때도 재환의 말을 들을 거란 안일한 생각은 할 수 없다.
그러니 한수강을 그를 견제할 수단으로 둘 생각이다.
스파이는 외부에서만 쓰지 않는다.
“……전 이번 스캔들 문제를 크게 만든 장본인 중 한명인데 이런 제안을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한수강 역시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하나를 알고 있다.
삶에 절대 공짜는 없고, 달콤한 제안은 언제나 그에 합당한 리스크가 있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 한수강 앞에 술잔을 밀면서 한 마디를 더했다.
“이직해주시기 전에 하나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