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재환은 문체원과 함께 회장실에 들어갔다. 서진은 따로 일을 처리하라 내보낸 상태기에 직접 커피를 탔다. 그 모습에 문체원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긴장한 걸 느낀 재환이 커피를 앞에 놓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잡아먹으려고 부른 것도 아니니까요.”
“음…. 조금 직설적으로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네, 하세요.”
“왜 절 부르신 겁니까?”
문체원의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경계, 걱정, 불안, 그리고 기대감.
그 마음을 읽은 재환은 맞은편에 앉아서 부드럽게 웃었다. 앞으로는 그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하는데, 굳이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이유는 하나죠. 좀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싶어서요.”
“긴밀한 관계요?”
“불편하실 수 있지만 제가 문체원씨의 뒤를 조금 조사했습니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온갖 험한 일은 다 겪으시고도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시려는 멋지신 분이시더군요.”
재환이 듣기 좋은 말을 술술 늘어놓으니 문체원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기는 한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칭찬하니 그도 낯 뜨겁긴 했다.
“그것과 강재환 회장님이 절 찾으시는 이유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저희 KG 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재단이 있습니다. 힘드신 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그리고 영웅과 같은 분들을 돕기 위한 기금이 있죠.”
기존부터 KG 그룹이 해 오던 사업이었다. KG 그룹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주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게 이 재단이라 할 수 있다.
재환은 이 재단을 이용해 문체원을 지원할 생각이다.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시겠단 건가요?”
“맞습니다. 5천 정도는 지원 가능하겠군요. 물론 세금 관련된 부분은 저희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5천은 큰 돈이다. 누구라도 탐욕을 드러내기 충분한 금액이다. 하지만 문체원은 달랐다.
“그런 거라면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문체원이 모로 고개를 저었지만 재환은 놀랍지 않았다. 검소하면서도 완고한 기질이 있는 그는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걸 상당히 꺼려했다. 그걸 알면서도 재환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 거절하는 거죠?”
“전 돈이란 녀석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이든 보이지 않는 노동, 시간 같은 것들을 바쳐야 얻을 수 있는 게 돈이라고 생각하죠. 그런 개념으로 봤을 때, 지금 받는 돈이 순수한 호의로 주시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드는 군요. 순수한 호의를 지니신 분들은 돈이 아닌 다른 것들로 절 도와주시거든요.”
이 돈을 받고 자신을 쥐락펴락 할 생각이면 접어라. 난 누군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 따위가 아니다.
그리 말하는 문체원이었기에 재환은 마음에 들었다. 돈 몇 푼에 움직이는 않는 사람이란 건 다른 사람들이 그를 흔들려고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소리니까.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재환이 먼저 양손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가 좀 무례했던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정도 되시면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실 법 하니까요.”
그 말에 재환은 피식 웃었다.
돈은 세상의 대부분이긴 하고, 행복의 척도가 되기도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옛날 전래동화에 나오는 황금이 반만 찬 양동이처럼, 한없이 가져도 모자라게만 느껴지는 게 돈이고 재물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문체원씨가 절 어떻게 보는 지는 잘 알겠군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문체원씨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건 저니 이 관계에선 제가 을이겠네요.”
재환이 스스로를 낮춰보이자 문체원은 묘했다. 국내 2위 재벌 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자신을 을이라 낮췄다. 갑질을 하는 사람은 봤지만 스스로를 을이라며 깎아 내리는 사람은 또 처음 봤다.
여전히 문체원은 재환을 경계했지만 처음보다는 호기심이 커졌다.
“그렇게 낮추실 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국내 대 기업 회장님보다 높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친구 정도는 어떨까요.”
“그건 또 너무 격의없는 느낌이군요.”
재환은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다시 푼 뒤 말을 꺼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문체원씨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건 사실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흑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네요.”
“흑심이요?”
“전 문체원씨가 국회의원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것도 꽤 인기 있는 의원이 되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재환의 확답에 문체원은 사이비 교주를 만난 것만 같았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 돈을 주려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절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과장이 심하시군요. 저희 시에는 이미 유력한 후보가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들 물건이나 좀 들어주고 인자하고 배려심 깊은 척 다하는 한국당의 인간이요?”
경멸 어린 말투에서 문체원은 처음으로 재환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확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도 당선되기 위해 겉치레만 하는 한국당의 모습을 좋게 보지 않았다.
재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그런 인간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보다 문체원씨가 국회에 들어가는 게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 판단한 겁니다.”
“여전히 과찬입니다. 제 눈에 강재환 회장님은 질 확률이 높은 패를 들고 포커를 치려는 것만 같군요.”
“천만에요. 저는 질 패를 뽑지 않습니다.”
재환의 눈빛이 진지하자 문체원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여전히 별 생각이 없었다. 일단 그가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어서다.
그는 그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더 생기지 않길 바라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선행을 행해왔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된다 하면 그 선행들이 마치 꾸며진 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 심중을 어느 정도 읽은 재환은 패 하나를 깔 때가 됐다고 여겼다.
“문체원씨, 제가 원래는 기자였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여러 매체에서 알려졌으니까요. 다른 재벌가와 다르게 기자라는 걸 이용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신 분이라고요.”
“과장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얼추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왜 KG 그룹의 회장이 되려 했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그야….”
돈과 명예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재환의 행동을 보면 명예를 쫓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명예만 쫓는다고 하면 기자로서의 삶만 추구하는 게 더 현명했다. 누구보다 신뢰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럼 돈 때문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미묘했다.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이 주변에서 본 사람들은 그러했다.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돈을 줄 정도면 돈이 썩어 흘러 넘쳐야 가능했다.
두 가지 큰 이유를 제하고 나니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찌라시처럼 떠도는 말은 주워들은 게 많긴 하지만, 재환을 직접 보고는 그 찌라시가 전부 거짓이란 느낌을 받았다.
“모르겠군요.”
결국 솔직하게 시인하자 재환은 그 답을 가르쳐 줬다.
“좀 밟아 버리고 싶은 조직이 있거든요.”
“조직이요?”
“네. 근데 그 조직을 무너트리려면 기자라는 직업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한계를 넘어 보려고 해도 장애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힘이 필요했거든요. 그게 KG 그룹의 회장이 된 이유입니다.”
“대체 무슨 조직을 밟으려고….”
“정재계에 긴히 연결된 커넥션이 있어요. 국회의원, 경찰, 검찰, 한성, YK 그리고 다음 대통령까지 말이죠.”
문체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내 재환이 이상하다 여겼다. 대체 저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한국의 상위층이 다 썩어 있다는 소리인데….
저 말을 믿느니 차라리 재환이 이른 나이에 노망이 났다는 말을 믿는 게 더 그럴 듯해 보였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증거가….”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심증은 충분하고 그와 관련된 정보들을 보여드릴 순 있습니다.
카르텔을 압박하기엔 조금 부족한 자료들이지만 문체원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체원은 그 자료들을 보고 기가 막혔다. 내용들을 보다면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봉건제 사회에서 아직 벗어나질 못했다.
“이젠 제가 왜 문체원씨를 이 자리에 불렀는지 조금은 아시겠습니까?”
“……이 자료들을 보고 강재환 회장님께 묻고 싶군요. 팩트라는 증거는….”
“당장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자료들을 믿고 말고는 문체원씨의 자유입니다.”
재환의 말에 문체원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물어 뜯었다. 어디까지나 의혹을 담은 자료들이지만 자신이 보기엔 타당성이 있고, 믿을만한 자료들이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재환 회장님의 목적은 이들을 도려내는 거군요.”
“도려내는 건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네?”
“국민의 몫이죠.”
문체원은 그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가 썩어 문드러져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아가 그들에게 죄값을 받게 한다면 당연히 당대의 영웅이자 위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테니까.
그런 명예 외에도 얻는 이익을 상당했다.
한성과 YK가 소멸한다면 그들의 자회사들 역시 박살이 나거나 기존에 있던 기업에 흡수될 텐데, 흡수하는 건 KG 그룹이 될 확률이 높았다. 흡수하지 않더라도 KG 그룹의 경쟁사가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순이익은 높아질 거다.
그런 막대한 이익을 제 발로 걷어차는 사람이 있다?
문체원은 사람의 선함을 믿는 올곧은 사람이지만 순수한 이는 아니다.
“어째서 국민의 몫으로 돌리는 겁니까. 당신이라면, 강재환 회장님이라면 직접 그들을 끌어내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국민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그건….”
“전 태생이 기자이지 홍길동이 아닙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기득권층을 경계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게 제 업이죠. 그들에게 마땅한 처벌을 내리고, 가져간 것들을 뺏어서 나눠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재환은 이번 생을 살면서 카르텔의 존재를 사회에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폭로를 해봤자 그들은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말게 분명했다.
그걸로는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재환은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했다.
“그들을 심판하는 건 국민이고, 법이어야 합니다.”
“……제가 앞장서서 그들을 심판하길 바라십니까?”
“아뇨, 그 일을 해주실 분은 또 따로 있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재환의 편으로 돌아서지 않은 김정연 검사지만 곧 자신의 편이 되리란 건 확실했다. 그가 앞장서서 칼을 휘두를 것이다.
“문체원씨는 그들을 심판할 토대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법을 뜯어 고쳐 달라는 거군요.”
재환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함께 일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