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 rate samurai with a carreer break RAW novel - Chapter 78
00072 거리의 등불 =========================================================================
금복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선 해경은 슬쩍 안을 훑어보았다. 크지 않은 집이었고 살림도 단출했으나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금복의 성정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금복은 들고 있던 핸드백을 소파에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아 맞은편을 가리켰다. 해경은 소화와 함께 금복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금복이 약간 지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바깥양반 일로 왔다고요.”
해경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 읽어 본 금복이 눈을 들어 해경을 보았다. 탐정사무소에서 무슨 일로, 하는 무언의 물음에 해경이 대답했다.
“며칠 전의 폭발사고 이후 사장님께서 찾아오셔서 폭발 사고의 범인에 대해 의뢰하신 일이 있습니다. 영사기사로 일하는 윤철구 씨가 고의로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의심되신다고요.”
“하나코의 애인 말이군요.”
금복이 조용히 말했다. 윤철구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약간 놀란 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장님께서는 하나코 씨의 일로 윤철구 씨가 원한을 품어 그런 사고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윤철구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잡아 달라고 하셨고요.”
“예나 지금이나…….”
금복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해경은 짐짓 금복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조사를 해 보니 폭발 사고는 윤철구 씨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더군요. 그 와중에 종로서에 누군가가 사장님에 대해 보험사기 혐의로 투서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택에서 체포되셨고 조사를 받다가 무혐의로 풀려나셨는데, 아침에 제가 사건에 관해 여쭈려고 찾아갔더니 의식 불명이셔서 병원으로 옮기도록 했고요.”
“그랬군요.”
금복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매우 침착한 태도였다. 초연함일까, 혹은 무심함일까. 아무리 별거중이라 한들 슬하에 아들을 하나 두고 근 이십 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인데도, 최근 며칠 사이 남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금복은 그리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남편에 대해 많은 것을 포기한 탓일 수도 있었다. 해경은 자신의 아내가 구식 여자이고 음전함으로는 신식 여자들이 따르지 못한다던 경두의 말을 떠올렸다.
“보험사에서 연락을 받으셨다고요.”
해경은 금복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금복이 대답 대신 부엌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손님이 오셨는데 차 한 잔도 드리지 않았군요.”
“괜찮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해경이 만류했으나 자리에서 일어난 금복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해경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거실 안을 둘러보았다. 장식장 위에는 작은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교복을 입은 남학생의 모습이었다. 허양혁. 문패에 적혀 있던 이름을 되새겨 본 해경은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찻잔 세 개를 쟁반에 받쳐 가져온 금복이 해경과 소화의 앞에 찻잔을 놓아 주었다. 붉은 빛이 도는 찻물이 찰랑거렸다. 해경은 잔을 들어 향을 먼저 맡아 보았다. 잠시 향을 음미하던 해경이 눈을 약간 가늘게 떴다. 곁에서 차를 한 모금 마셔 본 소화 역시 놀란 표정으로 코를 찡긋거렸다.
“송이 향이 나네요.”
소화가 해경에게 조그맣게 소곤거렸다. 해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마셔 보았다. 확실히 송이 특유의 강한 향과 은은하게 혀를 스치는 단맛이 있었다. 금복이 소화의 말을 들었는지 조용히 대답했다.
“말린 송이로 끓인 차입니다.”
송이는 버섯 중 가장 고급으로 치는 것이었고 일본인들에게도 몹시 인기가 있었으나, 일본에서는 조선만큼 소나무가 흔치 않아 조선에서보다 훨씬 더 귀한 버섯이었다. 그 때문에 송이 철이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보통 사람들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해경 역시 차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송이로 차를 끓인 것은 처음이었다.
해경은 들고 있는 찻잔을 슬쩍 살폈다. 무늬 없는 청자 찻잔으로 고려청자의 복제품 다완이었다. 고려청자는 조선보다 일본에서 훨씬 더 선풍적인 인기여서, 도기 제작자들이 도리어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조선에서 복제품을 제작하곤 했다. 몇 년 전부터 좀 사는 집이라면 일본에서 제작된 고려청자 다기 한두 가지쯤은 갖추는 일도 흔했다.
해경은 경두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 하던 말을 복기해 보았다. 경두는 금복이 몹시 구식 여자인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해경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입은 옷이나 집안의 가구는 물론이며 말투나 취향 등이 몹시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교육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타고난 것에 더 가까운 듯했다. 경두의 집안은 본래 상당한 부호였다. 금복이 그와 짝을 맞춰 중매로 혼인한 것이라면 그런 고상함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해경은 슬며시 금복을 떠 보았다.
“신식 교육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해경의 뜬금없는 물음에 금복이 차를 마시다 내려놓고는 잠시 해경을 빤히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꿰뚫어보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금복이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신식 공부랄까, 중국 상해에서 잠시 동양 미술에 대해 공부한 일은 있지요.”
“상해에서 미술 공부를?”
“처녀 적 이야기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고미술품 수집을 몹시 좋아하셔서요. 저는 아무래도 흥미가 생기지 않아 결혼을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요.”
금복의 처녀 적 이야기라면 대략 이십 년은 된 일일 텐데, 그 당시에 아들도 아닌 딸에게 미술 공부를 시킨 데다 아버지가 고미술품 수집을 취미로 할 정도라면 금복의 집안 역시 상당한 재력가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금복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꺼냈다.
“보험사에서 연락받은 일에 대해 물어보셨지요. 네.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의 문제로 남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 않아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화재보험을 들어 놓으셨다고 하던데요. 보험의 내용에 대해 잘 아십니까?”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남편은 평소 사소한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일부러 고액의 보험을 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급액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모르시는 겁니까?”
“보험사에서 대략 십오만 원 이상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만약 사장님께서 어떤 사정으로 본인이 보험금을 받지 못하시게 될 경우에는,”
최대한 돌려 말하려 애를 썼으나 금복이 말을 중간에 잘랐다.
“남편이 죽으면 그 돈을 누가 지급받게 되는지를 묻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수령인은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어조는 부드러웠으나 내용은 날카로웠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속으로 생각한 해경은 정중하게 사과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해경은 다시 한 번 아들의 사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열여덟이나 열아홉쯤 되었을까. 수령인이 아들이라 하더라도 아직 학생이라면 결국 그 돈을 관리하는 것은 금복이 될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해경은 그 사진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보험사기 혐의로 투서를 받고 끌려간 것은 알고 계십니까?”
“종로서에서 설명해 주더군요. 적은 돈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 돈이 아쉬울 사람도 아니지요. 말씀드렸듯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치고는 간이 작은 편입니다.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에는 손을 대지 않아요.”
근 이십 년 가까이를 함께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금복은 남편을 매우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의 말에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남편에 대해 잘 안다는 확신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해경은 약간 식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금복을 마주보았다.
“사장님은 보험사기 혐의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다 어젯밤 아홉 시 경 종로서에서 풀려나셨습니다. 그리고 밤 열한 시쯤 대화정의 집으로 돌아가셨지요. 종로서에서 대화정까지는 걸어서도 이삼십 분이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데 왜 두 시간이나 걸렸을까요?”
해경의 물음에 금복은 대답 대신 해경을 응시했다.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던 그 얼굴에 미묘한 동요 같은 것이 일렁였다. 해경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젯밤 사장님께서 여기 들르셨던 건 아닙니까?”
금복의 입매가 설핏 비틀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그 움직임은 명백했다.
“그랬습니다.”
금복은 해경의 말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혹시 투서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는지요?”
해경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으나 금복에게는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녁을 차려 주었지요.”
“저녁 식사를 하러 오셨다고요?”
생각도 못한 말에 해경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밤 아홉 시라면 물론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아 돈을 주고 사 먹을 수는 없었겠지만, 왜 대화정으로 가지 않고 굳이 별거중인 부인의 집으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금복은 해경의 표정을 보고는 짧게 웃었다.
“하나코는 집안일을 전혀 할 줄 모릅니다. 남편은 입맛이 까다로워 바깥 음식을 잘 먹지 않고요. 명월관이나 향운정 음식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제는 굳이 요릿집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아홉 시 반쯤 찾아와 저녁을 달라고 하기에 밥을 주었습니다.”
“무엇을 드셨습니까?”
“찹쌀을 섞어 한 밥에 미역국과 조기, 버섯 무침을 내었습니다. 저녁에 먹은 반찬에 조기만 따로 구워 올렸지요.”
금복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해경의 질문에 대답했다. 해경은 점점 더 금복에 대해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별거중인 남편에게 여자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군소리 한 번 없이 밥을 차려 주는 부인이라니, 어떤 의미에서는 경두의 ‘구식 여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여인이기는 했다. 그러나 해경은 금복의 태도가 매우 순종적이면서도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에 찔리는 듯한 느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중국에서 고미술품 공부를 했을 정도의 여인이 지금 이런 수모를 받으며 말 한 마디 없이 고분고분하게 모든 상황을 수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물론 경두와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이십여 년의 세월이 그녀를 그런 일에 무뎌지게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경은 그녀가 잘 벼려졌으나 누군가가 오랫동안 뽑아 쓰지 않은 칼 같다고 느꼈다. 칼집 속에 숨겨져 있어 누구도 그 날카로움을 모르지만 함부로 뽑았다가는 피를 보고야 마는 그런 칼이었다.
“저녁을 드신 뒤에 무언가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아니오. 먹자마자 부리나케 대화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하나코가 혼자 있을 것을 걱정했겠지요.”
해경은 금복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코의 이름이 무감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집에서 쫓아낸 원인이자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젊은 여자에게 저토록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도 금복이 보이는 의뭉스러운 태도의 일환인지, 아니면 정말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는 탓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평소 지병이 있으셨다거나…….”
“기관지가 나빠 바람이 바뀌면 기침이 잦은 편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지병은 없어요.”
금복의 대답에 잠시 생각하던 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갑자기 찾아뵈어 무례한 질문을 드려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남편이 공연한 것을 의뢰하는 바람에 신경 쓰실 일이 많겠군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 주십시오.”
금복이 정중하게 말했다. 해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화도 얼른 해경을 따라 일어나더니 손을 모으고 금복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금복이 인자한 어머니 같은 얼굴로 소화에게 마주 미소를 지었다. 소화를 데리고 금복의 집을 나온 해경은 잠깐 말없이 걷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군요.”
“나쁜 분 같지는 않았어요.”
소화가 곁에서 해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해경은 대답 대신 살짝 웃었다. 나쁜 분 같지는 않다, 라. 소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말하자면 무서운 사람 쪽에 더 가까울 듯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뒷짐을 진 채 걷던 소화가 해경에게 물었다.
“참, 아까 그분께서 허경두 사장님의 지병에 대해 말씀하셨지 않아요?”
“바람이 바뀌면 기침이 잦다는 것 말입니까?”
“네에.”
“무엇이 마음에 걸립니까?”
해경의 물음에 소화가 걸음을 멈췄다. 해경이 따라서 멈추자 소화가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행인(杏仁)은 진해(鎭咳: 기침을 그치게 하는 것)에 효능이 있어 행인수(杏仁水)라는 기침약도 있지요? 그런데 행인에는 독이 있어 장복(長服)하지 못하게 합니다. 행인수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고 쓰여 있는데…….”
“기침 때문에 행인수를 먹었다가 그리 되었을 것이다?”
해경이 묻자 소화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행인을 장복하거나 과용하면 구토를 하거나 호흡을 잘 하지 못하고 심하면 마비가 오는데, 증상이 몹시 비슷한 것 같아서요.”
해경은 소화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행인이란 살구씨를 말하는 것인데, 옛날부터 기침이 심하면 살구씨를 그냥 먹거나 혹은 가루를 내어 먹는 일이 많았다. 이 살구씨를 원료로 한 기침약인 행인수는 흔한 상비약 중 하나였다. 병원에서도 쉽게 처방하는 기침약이었고, 가정에서도 한 병쯤은 많이들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살구씨에 본래 독이 있어 행인수도 절대 과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과용할 경우 청산 중독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탓이었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경두의 증상을 청산 중독으로 판단한 것은 행인수 때문일지도 몰랐다.
“일리가 있군요. 확실히 그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생각해 내었군요.”
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인수에는 특유의 향이 있었으나 색은 거의 없었고, 잠결에 기침이 심해 무심코 마셨다면 자신이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른 채 다량을 복용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랬다면 하나코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 경두는 집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무언가를 먹었냐고 물었을 때 약을 먹은 것까지 떠올릴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또 잠결에 일어나 먹은 것이라면 경두가 무엇을 먹었는지 하나코가 일일이 알 수도 없을 것이 당연했다. 해경의 칭찬을 받은 소화가 기뻐하는 얼굴을 하다가 곧 약간 풀이 죽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기는 하네요. 행인수를 그리 많이 마셨다면 증상이 훨씬 빨리 나타났을 텐데…….”
“하나코 씨가 무슨 꿍꿍이를 품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기는 합니다. 부인이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허경두 사장이 일단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나가 집까지 멀쩡히 돌아간 것은 사실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소화가 뒷짐을 진 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해경의 뒤에서 반 보쯤 떨어져 따라오며 길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소화가 문득 해경에게 물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생겨 별거하면서도 본래 부인에게 밥을 해달라고 하는 사내가 그리 흔한가요?”
“글쎄요, 제가 본 사람 중엔 처음이군요.”
“아무리 하나코 씨가 살림을 하지 못한대도 허경두 사장님 정도로 돈이 많은 분이라면 어차피 집에서 사람을 쓰지 않을까요? 굳이 왜 불편한 사이인 부인의 집에 저녁을 드시러 갔을까요?”
“그렇지요. 아무리 입맛이 까다로워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행동이기는 합니다.”
해경은 대답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경두가 병원에 누워 있는 것만 아니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을 텐데, 손발을 묶어 놓고 움직여야 하는 기분이라 속이 답답해졌다. 자신이 어떤 물음을 던지든 차분하게 막힘없이 대답하던 금복의 태도를 떠올린 해경은 흠, 하고 짧은 숨을 뱉었다.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점이 해경에게는 더 마음에 걸렸다. 해경은 일단 경두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무엇도 할 수 없었으므로, 금복에게서부터 다시 이 사건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소화가 종종걸음을 치며 해경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