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04)
“그래서 지금 적극적으로 투자를 받으면서 영화에 투자하고 있다고?”
“네, 아이돌 쪽도 받아들이고 있고요.”
“허허, 철없이 구는군.”
유민택은 보고를 받으면서 허허 웃었다.
마치 한이라도 풀려는 듯, 신동하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받아들이면서 신나게 사세를 불리고 있었다.
아예 매니저는 그만두고 전문 투자자로 나서고 있는 상황.
“우리야 좋지요. 어차피 문화 전쟁을 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일본 영화판을 먹어 버리겠다니, 좋은 생각이야.”
똑같이 만드는데 한쪽은 사사건건 터치하고 다른 쪽은 감독의 재량권을 보장한다.
거기에다 배우도 마찬가지.
사실상 터무니없는 돈을 주는 현재의 일본 영화 시장에서, 투자를 받아서 합당한 가치의 돈을 주는 영화사가 생기면 실력 있는 배우들은 그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퀄리티 차이가 워낙 심해서, 아마 개봉하면 어렵지 않게 압살할 수 있을 겁니다. 똑같은 실사화 영화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일본 실사화의 심각한 문제는 어설픈 코스프레에 있다.
만화의 스토리가 좋다면 그 스토리에 집중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일본은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CG 문제가 심각한데, 일단 인도 쪽에 우리를 제외한 일본 쪽 오더는 받지 말라고 해 뒀습니다. 사실 그다지 있지도 않았지만요.”
“그 부분에서도 차이가 심하겠군.”
한쪽은 할리우드 수준인 데에 반해 다른 한쪽은 발로 한 수준이라면 누가 후자의 영화를 보겠는가?
“그런데 그가 그렇게 성공한다고 해서 과여 대동에 타격을 줄 수 있겠나?”
“일단 신동하도 신씨 일가 핏줄은 맞더군요. 아직 어리고 철도 없고 후계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인가?”
“대동이 가진 문화 쪽 인프라를 흡수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생산 공장에 가 봤자 자신의 입김이 안 먹힌다는 걸 알고 있더군요.”
하지만 문화 쪽은 다르다.
외부적으로 스스로 문화로 일어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니 그가 할 말이 제법 있다.
“영화 몇 개 터트리고 나면 아마 그쪽은 신동하를 지지할 겁니다.”
“어리석기는 하지만 무능하지는 않다는 건가?”
“네.”
“음…….”
유민택은 진중한 표정이 되었다.
하긴, 가장 만만하다고 생각한 놈조차도 제법 머리가 굴러가는 듯하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문제는 없나?”
“일단 현실적으로 나온 문제는 없습니다만, 장기적으로 일본 방송국이 문제가 될 겁니다.”
“일본 방송국이?”
“일본에서는 방송국이 대부분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 쪽은요.”
애니메이션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이지만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당연히 그 제작비는 방송국이 댄다.
“영화도 애니메이션도, 방송국이 지원하는 자금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노리고 있는 문화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입을 자들은 방송국이지요.”
“그건 그렇지. 지금 네트웍플러스가 못 들어오게 하려고 방송국들이 난리지.”
그런데 노형진이 일본 시장을 먼저 삼켜 버리면 방송국은 주요 수입원 중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두 개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대동과 손잡고 저항할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그러지.”
“대동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조용하네. 사실 신동하가 성공했다고 해도 그들 입장에서는 새 발의 피니까.”
계열사 하나만큼의 힘도 없는 신동하다.
그러니 그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본이 왜 우리나라에 문화 말살 정책을 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노형진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이 늦게 반응할수록 자신들은 더 많은 것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자네가 그랬다며? ‘유명해져라, 그러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너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라고.”
“뭐, 그건 제법 오래된 명언 아닙니까?”
“그렇지. 이제 유명해졌으니…….”
유민택은 노형진을 보며 씩 하고 웃었다.
“우리가 심은 씨앗이 똥을 거하게 싸 주기만 기다리면 되겠군, 후후후.”
인간은 방법을 찾는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냐?
“흠.”
고연미는 볼펜의 끝을 물어뜯으면서 서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여자를 보고 안타깝게 말했다.
“이건 못 이겨요.”
“못 이긴다니요! 어지간한 건 다 이기신다고 들었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고연미는 안 된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어지간한 건 이기는 거지, 다 이긴다고는 안 했습니다. 거기에다 가해자 입장이지 않습니까? 송아람 씨, 아무리 그래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가해자라니요!”
송아람은 억울한 듯 외쳤다.
하지만 고연미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상간은 가해가 맞아요.”
상간녀.
바람피운 상대방 여성을 지칭하는 말.
“하지만 제가 꼬신 것도 아니고 남자가 꼬셨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중에 유부남인 걸 알고도 계속 만남을 이어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경우는 상간녀가 맞아요. 법적으로 보면 사후승인을 하신 셈이죠. 그런 경우는 책임을 지셔야 해요. 송아람 씨 남편이 바람피웠다고 생각해 보세요.”
송아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리를 푹 숙였다.
고연미의 말이 맞으니까.
고연미는 그런 그녀에게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이런 경우는 보통 1,500만 원에서 2천만 원 정도 배상은 해야 해요.”
입술을 깨무는 송아람.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거라는 말이 있다.
특히나 법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통죄가 사라졌다는 거네요.”
간통. 결혼한 남녀가 바람을 피우는 행위.
원래 법에서는 간통죄를 처벌했다.
하지만 간통죄가 사라졌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다.
민사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고작 6개월 만났는데…….”
“고작 6개월이 아니라 ‘무려’ 6개월인 겁니다.”
고연미는 차갑게 말했다.
‘도대체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왜 이렇게 철이 없는 거야?’
같은 여자로서, 이미 결혼한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여자들이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학적으로는 뭐 이미 검증된 사람이라 더 호감이 간다 어쩐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다 헛소리다.
‘결혼했어도 개새끼인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연미는 머리를 흔들어서 잡생각을 털어 내고 다시 한번 확고하게 말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이거 못 이겨요. 물론 합의는 진행하실 수 있겠지만요.”
“흑흑흑…… 하지만…… 2천만 원이면 제가 모아 놓은 돈 전부인데…….”
송아람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자신이 평생을, 비록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못 입고 못 먹고 아껴서 모은 돈을 모조리 날리게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봐 가면서 만나셨어야지요. 유부남인 걸 알게 된 순간 잘라 내셨어야 했구요.”
“그건…….”
“모르셨다면 몰라도, 알면서도 만난 이상 이건 못 이겨요.”
고연미는 송아람에게 그녀가 건넸던 서류를 내밀었다.
“제가 드리는 조언은, 끝까지 가 봐야 손해라는 거예요. 변호사비까지 물어 주셔야 할 테니까요. 최대한 합의를 해 보세요.”
말하면서도 고연미는 입안이 썼다.
그녀의 말에 상담을 마친 송아람은 소장을 들고 바깥으로 힘없이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고 변호사님?”
마침 바깥에서 들어오던 노형진이 고연미를 보고 물었다.
“간통이래요. 남편이랑 간통하다가 아내한테 걸렸다네요.”
“아, 간통요. 하여간 저도 변호사고 범죄야 다 이해가 안 되지만, 진짜 아무리 그래도 간통은 더 이해가 안 가요. 다른 건 뭐 이득이니 돈이니 복수니 그럴듯한데 그냥 하룻밤에 인생을 걸다니,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어쩐 일이에요?”
“아, 그게, 저희 팀원 하나가 휴가 가서 고 변호사님네 팀원 한 명만 빌릴까 하고요.”
“우리 팀원도 부족한데요.”
“그나마 사건이 적은 팀이 고 변호사님 팀입니다. 저희 쪽은, 아시잖아요, 저 갈아서 새론이 굴러갑니다.”
고연미의 말에 길게 한숨으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노형진이었다.
그나마 유능했던 손채림이 나가고 나자 진짜 일이 산처럼 쌓여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우…… 아니, 뭔 놈의 사건이 이렇게 많아요?”
“우리 새론 특징이잖습니까?”
“계약할 때 이렇다고 말해 줬으면 진짜 안 왔을 텐데.”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냥 일이 많다고 했지 죽을 만큼 많다고는 안 하셨습니다.”
팀으로 활동하다 보니 사건을 더 많이 가지고 올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압도적으로 수익이 많다.
물론 지금 같은 경우는 곤란하다.
“아니, 대체 팀원은 언제 뽑는답니까?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사람 부족하다고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는지 앞이 캄캄하네요, 정말.”
고연미의 말에 노형진은 안쓰러운 미소로 타깃을 정해 줬다.
“부지런한 무태식 변호사 팀을 탓하세요.”
무태식은 지난번 스포츠계의 비리 사건 이후에 눈에 불을 켜고 그쪽을 파기 시작했고, 그동안 돈을 줬던 부모들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냅다 소송을 맡겼다.
밀린 사건만 벌써 1만 건 이상.
전국에 있는 모든 스포츠 계열 학교를 털어 버린 성과였다.
“무태식 변호사님이 아주 그냥 스포츠계를 토벌해 버릴 생각인 건가요?”
“그런가 봅니다. 소문으로는 중고등 학교 축구 감독의 20%가 잘렸다고 하더군요. 교장이랑 교감이 매일같이 무태식 변호사님을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아아…… 무태식 변호사님이 열혈인 줄은 알았지만, 으휴.”
“오죽하면 하늘 쪽도 곡소리 난다고 합니다. 그쪽은 인원도 적지 않은데 그럴 정도면, 아주 일복 제대로 터진 거죠.”
법무 법인 하늘.
새론의 산하에 있는 법무 법인이다.
다른 점은 구성원이 로스쿨 출신이라는 것.
그들의 우세한 점은 압도적인 숫자다.
새론에서 방어나 공격 방법을 시스템화해 처리 가능한 일은 하늘 쪽에 맡겨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곡소리가 날 정도면 일에 치여 죽을 지경이라는 소리다.
“그나마 큰 건만 우리 쪽에 온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요. 아…… 진짜 싫다, 으으으.”
고연미는 툴툴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돌 그만두는 게 아니었어요. 그때는 최소한 여덟 시간은 잤다고요.”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정도는 잘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때는 인기가 없으니까 그렇게 잤죠. 성공한 아이들은 세 시간도 못 잔다는데요.”
“누가 노 변호사님 아니랄까 봐 팩트 폭력을 하시네요? 아군이라고 해도 아주 인정사정없으시네요. 그리고 제 나이를 생각해야지요. 그때는 날아다녔지만, 지금은 나이가 있다고요.”
“아직 20대이십니다만? 다른 분들은 30대, 40대입니다. 벌써 그러시면 그분들은 팔에 링거 꽂고 일하셔야 합니다.”
“또! 또! 팩트 폭력! 아, 진짜! 채림이는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네요. 이거 이직한 이유가 뼈까지 아파서 그런 건 아닌가 모르겠네.”
노형진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왠지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나저나 누구를 보내 드리지?”
툴툴거리면서 고연미는 자신의 팀원 중 누구를 보내야 하나 고민했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전직이 언론을 타던 아이돌 출신이다 보니 사건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론의 대변인 역할도 같이한다.
그래서 확실히 타 변호사 팀보다 사건 배당이 적은 편이기는 하다.
“효연 씨한테 이야기해 둘게요. 얼마나 가는데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엥? 또 왜요? 휴가라면서요?”
“우리 팀원이 언제 복귀할지 몰라서요.”
“휴가 계획서 안 냈어요?”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휴가 내고 출근 안 하는 거라. 통화도 못 해 봤고요. 다급한 것 같은데 출근해서 휴가 계획서를 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숨을 푹 쉬는 노형진.
목소리를 들어 보니 이만저만 큰일이 아닌 듯했다.
“일단은 효연 씨한테 내일부터 우리 쪽으로 출근해 달라고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숨통이 좀 트이겠네요.”
“알았어요.”
고연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고연미와 대화를 마치고 나가려던 노형진은 문득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
“왜?”
“사진이…… 있는데? 사건 서류에서 빠진 건가요?”
“아까 그 사람이 떨구고 갔나 보네요. 이리 주세요. 제가 연락할게요.”
몸을 숙여서 사진을 들어 보던 노형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이상한데?”
“뭐가?”
“이 사진의 남자요.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같은 사건이 저희 쪽에 들어와 있나요? 아니면 다른 사건이 또 엮인 게 있나?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고연미는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하긴, 아는 사람이 바람피웠다고 하면 어이가 없을 테니까.
“아니 아니, 개인적으로 아는 거 말고, 제가 사건 기록에서 본 겁니다.”
“사건 기록?”
“네, 다른 사건 기록 조언을 부탁받은 적이 있어서요. 그 사건에서 봤던 사람이네요.”
변호사들이 일을 하다 보면 막히는 때도 있는데, 노형진이 사건 자체를 도와주지는 못해도 조언 정도는 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노형진이 모든 사건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
“뭐, 보통 저는 큰 건만 찾아서 보기는 하는데…….”
확실히 얼마 전에 봤던 사건의 남자였다.
“이상하네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 사건도 간통이었던 것 같은데요.”
간통 사건이 한꺼번에 두 개가 동시에 들어온다? 한 남자한테?
그건 상당히 특수한 경우다.
물론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간통? 그 남자가 또 바람피운 건가요? 거참. 하긴, 남자든 여자든 바람피우는 인간은 계속 피우더라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고연미.
하지만 노형진의 말은 그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거 고작 세 달 된 건데요.”
“뭐?”
“합의한 지 세 달 된 사건입니다. 네,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최근에 간통 합의 건 중에서 제가 본 건 그게 유일하니까.”
남자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형진.
그리고 당황하는 고연미.
“그럴 리가 없어요. 의뢰인 말로는 6개월을 만난 사건이라던데요.”
그러면 양다리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 다른 간통 사실이 드러날 때 한 번에 다 털어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 후에도 몰래 만났다?
‘아니, 그 전에, 여자가 이혼하는 게 보통이지 않나? 아내가 몰랐던 건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는 고연미.
“이거 기록을 확인해 볼까요?”
“그럴 필요 있을까? 우리 사건도 아닌데.”
“그건 그런데…….”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감이 그렇게 이야기하네요.”
“감?”
“제가 또 번득이는 감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리고 그 감에 여럿 갈려 나갔죠, 호호호.”
이때까지만 해도 고연미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결코 그렇게 쉽게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