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30)
며칠 뒤 급하게 호출받아서 찾아간 대룡의 회장실에서, 유민택은 전보다 더 어두운 표정으로 노형진을 맞이했다.
“자네 기억하나, 대동에서 정체 모를 돈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거?”
“네, 기억합니다.”
그 때문에 노형진과 대룡이 선빵 차원으로 일본에서 신동하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아마도 전자연합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생각하고 있네. 아니, 확정적이라고 봐야겠지.”
“전자연합에요?”
“그래. 전자연합이 우리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내부에서 나오는 정보도 그렇고. 거기에다 이건 불법도 아니지.”
“그렇죠.”
전자연합은 절대로 규모가 작은 곳이 아니다.
물론 대기업 정도의 규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이 나 있다.
“하지만 판매 라인이 없어서, 판매 라인을 우리 대룡에서 제공하고 있지 않나?”
“그렇지요. 설마?”
“아무래도 대동이 그 허점을 노리는 것 같아.”
판매 라인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실 판매 라인 자체만 생각하면 대룡보다는 대동이 나은 선택이다.
비록 대동이 가전제품을 만들지는 않지만, 전 세계에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서 최소한 동남아와 아시아 쪽에 상당한 규모의 판매 라인을 만들어 둔 것은 사실이니까.
“전자연합에서 그 점에 넘어갔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어찌 되었건 대룡의 한계는 명확하니까.”
아직은 한국에서만 대기업이다.
세계적인 기업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에 반해 대동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
“그럼 그 돈을 당당하게 들여온 것도 이해가 가네.”
판매 라인을 정비하기 위해 한국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합법이며, 정부에서도 적극 장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전자연합을?”
“아마도 자기들이 부족한 게 뭔지 알아서 아니겠는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전자연합같이 먹음직스러운 곳은 흔하지 않을 테니까요. 여러모로…… 복잡하군요.”
전자연합은 대기업과 다르게 집중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외부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동은 전자 쪽 회사가 없고.
거기에다 전자연합은 가성비가 좋기로 소문이 난 회사다.
“그걸 집어삼키면 터무니없이 쉽게 전자 계열 계열사를 만들 수 있겠지.”
유민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한 겁니까?”
“확실한 거라네. 내부에서 우리 쪽을 지지하는 사장이 해 준 말이니까.”
“우리 쪽을 지지하는 사장이요?”
“그래. 이미 파가 갈렸다더군.”
심지어 대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파라고 한다.
대룡을 지지하는 쪽은 대동의 요구 조건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반대하고 있지만, 국내 전용 판매 라인이냐 아시아 지역 판매 라인이냐라는 비교 대상만 생각하면 사실 답은 나와 있다.
“그쪽에서 동일한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군. 주요 부품을 자기들이 독점 공급한다.”
“미친. 그걸 물었답니까?”
“지금이랑 바뀌는 게 없으니까.”
“바뀌는 게 없다고요? 독점이라는 말이 붙었는데?”
독점이라는 단어가 있고 없고는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과거랑 달라지는 게 없지 않습니까?”
대룡과의 계약에는 독점 공급이라는 단어가 없다.
물론 그런 주요 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독점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독점과 계약서상의 독점은 전혀 다르다.
“계약에 의한 독점을 하게 되면 결국 넘어가는 건 전자연합일 텐데요.”
독점 계약을 한 후에 대동에서 해당 물품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린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한다.
전자연합의 장점은 가성비다.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결국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망할 수도 있을 텐데요.”
“망할 수밖에 없게 만들 걸세.”
유민택은 우려 섞인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동남아 다른 공장들을 그런 식으로 망하게 해 왔으니까.”
일단 거부할 수 없는 사탕을 던진다.
그리고 자기 아래에 묶어 둔 후에 숨통을 틀어막는다.
그 후에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자금을 묶어 둔다.
“그러면 사장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네.”
헐값에 기업을 넘기든가, 공장이 망하고 장비가 경매로 싸게 넘어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든가.
“그리고 그건 대동에서 가지고 갈 테고요.”
“그래. 그리고 휘하 계열사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전형적이군요.”
한국의 다른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늘리거나 작은 기업을 집어삼킬 때 많이 써먹는 방법이다.
그렇게 망한 곳 중에서 큰 곳은 계열사로 흡수하고, 작은 곳은 소위 말하는 하청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사장단이나 이사단 출신에게 선물로 줘서 인건비 따먹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대기업들의 방법이다.
“그걸 모른답니까?”
“자네가 아까 한 말이 맞는 것 같아. 갑자기 대표가 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리더가 된 건 아니지.”
기존에 노예로 살아왔으니 새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테고,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거처럼 노예의 삶을 추구하게 된다.
익숙한 삶.
자신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
“생각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요.”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당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선택지는 언제나 정해져 있으니까.
“확실히 대동답다고 해야 하나? 섣불리 넘어갈 놈들이 아니야. 뒤에서 조용히 뭘 하나 싶었더니만.”
타격을 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가장 큰 약점을 메꾼다.
이게 성공하면 대룡은 전자 제품 쪽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성화와의 싸움이 끝난 후에 성화전자를 집어삼켜서 상당한 규모가 된 대룡전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제품의 상당수 부품들은 그들로부터 받아 온다.
“우리가 썼던 방법을 비슷하게 역이용하는군요.”
“그래서 우리 쪽도 다급해졌네. 우리 몰래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이 넘어가 있는 상황이니.”
“대룡은 정보 부서가 없습니까?”
상식적으로 대룡쯤 되면 이런 정보가 생기면 바로바로 이야기가 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다는 게, 노형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없는 건 아니네만 아무래도 하청이 아니라 동업자라는 입장상 감시에 한계가 있었지.”
“끄응, 그렇군요.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85%는 넘어갔다고 봐야 하네.”
“85%나요?”
즉, 거래하는 회사의 85%가 넘어갔다는 소리다.
그 말은, 그들이 한꺼번에 공급을 끊어 버리면 대룡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소리다.
“심각하군요. 당장은 그런 반응은 없습니까?”
“아직은 없네. 계약 기간이라는 게 있으니까.”
대기업이야 계약 기간을 어겨도 타격이 크지 않다.
재판부가 대기업을 편들어 줘서 상대적으로 배상금도 작으니까.
하지만 작은 기업은 계약 기간을 어기면 배상금이 크기 때문에 마음대로 끊어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면 아마 가차 없이 공급계약을 파기할 거라 생각하네.”
“얼마나 남았지요?”
“8개월 남았네.”
“오래 남은 건 아니군요.”
8개월 후면 대룡에 가전제품의 공급이 끊어지고, 그 후에 대동으로 모든 공급이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대동은 지금까지 진출하지 못한 가전 쪽에 쉽게 진출하겠지.”
처음에는 전자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그 후에는 대동전자라는 이름으로 바뀔 것은 뻔하다.
“지금 우리 쪽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난리가 났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기 위해 사장들을 만나고 있지만 사실…… 요지부동이야.”
대동이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을 알려 주면서 설득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동남아 작은 구멍가게들하고 같냐? 우리가 성장한다고 하니 배가 아픈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대꾸하면서 이야기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다.
“대동이라…….”
노형진은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뭔가 할 거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뜬금없이 전자연합을 공격 대상으로 삼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확실히 멍청한 놈들은 아니야.’
차라리 대룡 본사에 대한 공격이라면 돈을 처발라서라도 방어를 하겠지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다.
돈을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
애초에 이사회에서 동의가 나올 리도 없고 말이다.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제 의견은…….”
잠깐 고민하던 노형진은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마찬가지지 싶네요.”
“마찬가지라고?”
“네. 제가 말했잖습니까? 선별해야 한다고요. 때가 된 것뿐입니다.”
유민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선별한다는 것은 결국 지금 있는 자들과 척져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탈이 더 가속화될 텐데.”
“어차피 자를 놈들입니다.”
“이해가 안 가는군.”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싸움을 세력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요.”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의외의 순간에 한 방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몰랐던 것은, 노형진이 그중 상당수를 일부러라도 잘라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다르지요.”
“다르다?”
“네. 85%가 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85%만 넘어간 거죠. 공장이라는 곳은 나사 하나만 부족해도 멈추는 곳입니다.”
“그래서? 자네는 그들을 잘라 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그들이 그냥 당하지는 않을 텐데. 더군다나 아까도 말했지만, 계약 기간은 8개월밖에 안 남았네.”
“8개월이나 남은 거죠.”
노형진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해결책은 계약서에 이미 있습니다.”
“모르겠군,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우리 법무 팀이 계약서를 모조리 살펴봤네. 하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거대 기업의 법무 팀쯤 되면 그 실력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거야 그 계약서를 계약서대로 해석해서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가 먼저 위반하면 됩니다.”
“우리가 먼저 자르자고? 작은 곳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한두 곳이 아닐세. 그들에게 위약금을 물어 주려면 우리도 부담이야. 작다고 해도 뭉치면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거든.”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공장이라는 곳은 부품 하나만 없어도 멈춘다고.”
“그래서?”
“우리가 멈추는 게 아니라, 대신 멈추게 할 곳을 찾으면 됩니다.”
“대신?”
“네. 대신 누군가 멈추면 되는 거죠,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