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68)
‘왜 나한테만 자꾸 그러는데?’
그를 찾아온 사람. 주한 미국의 대사관 직원이다.
그는 며칠 전 송정한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앉아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안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가 온 이유. 그건 노형진에게 루이 에덤스의 사건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그건 의뢰인이 한국 정부이기 때문 아니었나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미국 정부의 의뢰라도 된답니까?”
“그럴 리가요. 미 정부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요.”
“그런데요?”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사적으로 말이지요. 퇴근 시간은 지났거든요.”
노형진은 힐끗 시계를 보았다.
오후 8시 10분.
명백하게 퇴근 시간은 지났다.
“그 말씀은, 루이 에덤스 씨가 개인적으로 사건을 의뢰하고 싶어 한다는 거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적으로라면서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고.”
노형진은 살짝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저한테 개인적으로 사건을 의뢰하고 싶다는 말이죠.”
자신의 뒤를 국가 단위에서 캐고 도와준다고 설레발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일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특정 나라의 도움을 받아서 그 나라와 친분이 생긴다는 것은 통상 장관인 루이 에덤스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약점이 되니까.
‘그걸 모르고 설레발을 쳤으니.’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한 가족의 입장에서, 그것도 누나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루이 에덤스 씨의 입장에서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는 거죠.”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하는 거죠.”
“정확하게 아시네요. 소문대로입니다.”
노형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의뢰를 하기 전에 이미 노형진에 대해 조사를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해결한 미결 사건과 미국의 미결 사건들을 보고, 어쩌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의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분께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서 온 거구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정부의 의뢰라면 받아들이면 문제가 되지만, 지금 루이 에덤스는 통상 장관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의뢰를 하는 거다.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통상에 관한 거라면 안 됩니다.”
아마도 지금쯤 루이 에덤스는 한국에 보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걸 막고 싶을 것이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결국 현 정권에서 자초한 것을 노형진이 막아 줄 생각은 없다.
노형진이 원하는 건 다른 거다.
“그런 거 아닙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요. 저는 사적으로 의뢰를 받았으니 공적인 국가 업무에 대해 조건을 달 처지는 아니죠. 제 조건은 다른 변호사를 대동하고 싶다는 겁니다.”
“누구를 말이죠?”
“송정한이라는 저희 대표 변호사님입니다.”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 * *
“이거 생각지도 못했는데?”
송정한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니, 날 왜 데려가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만 사람이라는 게 감정은 어쩔 수가 없거든요. 개개인이 친해지는 건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죠.”
송정한과 함께 가서 사건을 해결한다.
자신은 뒤로 빠지고, 모든 보고와 이야기는 송정한이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송정한이 그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큰 실수로 제대로 빡친 루이 에덤스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친한 사람을 써먹을 수밖에 없지요.”
“그게 나라는 거군.”
“네.”
송정한은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그 길로 나섰다.
“그런 거라면 기회가 있을 때 써먹어야지요.”
“허허, 자네 진짜 정치 안 할 건가? 자네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절대로 안 합니다.”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긴, 한국 정치판에서 미국의 고위 관료와 친하다는 것은 큰 이점이지.”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론에도 마찬가지이고요.”
송정한이 자리를 잘 잡을수록 새론도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건 모르지요.”
노형진은 자료를 넘기며 눈을 찌푸렸다.
상황이 묘하게 꼬이다 보니 공식적으로 자신은 루이 에덤스를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관련 자료만 넘겨받았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루이 에덤스의 누나는 분명 포르노 배우가 되었다.
FBI가 관련 필름을 찾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증발했다.
거기서 모든 정보기관들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쉽지 않겠어요.”
노형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중얼거렸다.
* * *
“아이고, 변호사님, 환영합니다.”
노형진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웃으며 다가오는 두 명의 남자들.
노형진은 그들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누구신지?”
“주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변호사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주미 대사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중 한 명이 친한 척하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아아.”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다급하다 이거군.’
혼자서 설레발치다가 치명적 통상 압력을 받게 되었으니 그걸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말이지요.”
노형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요.”
“얼마든지요.”
“그러면 공식적으로 제가 처음으로 하는 요청은 ‘꺼져 주세요.’입니다.”
“에?”
노형진의 말에 다들 당황했다.
‘그래, 그렇겠지.’
알아서 기는 문화는 저들에게는 일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사관 직원들은 자기들이 일반인들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 미친놈 생각나네.’
어떤 9급 공무원이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민원을 넣자 그 공무원이 한 말이, 내가 당신 따위한테 명령 들으려고 시험 봐서 9급 공무원씩이나 하는 줄 아느냐는 말이었다.
‘정신이 나간 거지.’
공무원. 말 그대로 공적인 임무를 하는 정부의 직원이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9급 행정직의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 합격했다고 해서 그의 신분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시험은 시험이고 업무는 업무다.
그런데 그는 9급 시험을 합격한 자신이, 합격하지 못한 일반인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외교부는 그런 성향이 아주 강하지.’
한국의 3대 고시라 불리는 행시, 사시, 외시.
행시는 행정 고시이고 사시는 사법 고시. 외시는 외무 고시다.
각각 각 부서의 주요 업무자를 뽑는 일인데,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뽑힌 인간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고.’
저들은 노형진을 기껏해야 변호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대차게 거절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꺼져 주세요.”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안 봐도 뻔한 거 아닙니까? 제가 이 사건을 해결하고 사라 에덤스를 찾으면 거기에 수저 올리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그걸 치적 삼아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려고 하는 것이 뻔하게 보인다.
“그래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뭘요?”
“운전이라든가.”
“운전하려고 외무 고시 보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점점 붉으락푸르락해지는 직원.
하긴, 주미 대사관에 파견될 정도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일 테니까.
“그리고 저, 국제 면허증 있습니다. 운전할 줄 알아요.”
“그럼 다른 행정적 업무라든가…….”
노형진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대사관에서 일을 잘한다고 해도 설마 미국 통상 장관보다 내부 행정 업무를 잘할까요?”
그의 전화 한 통이면 모든 게 일사천리다.
“그리고 행정 업무에 주미 대사관이 끼어들면 그거 내정간섭인 거 모르시나 봐요? 시험 어떻게 합격하셨대요?”
“아니, 그게…….”
남자의 얼굴은 진짜 붉어졌다.
딱 봐도 애써 화를 참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지는 않는다.
‘그래, 주미 대사가 무섭다 이거지.’
화가 나서 그냥 가 버리면 아마 주미 대사가 족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덮어야 하니까.
“노 변호사,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됩니다. 저들이 따라다니면서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저들이 섣불리 뒷조사를 해서 도와준다고 설레발치다가 이 꼴 난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다른 과거가 나오면 루이 에덤스 씨가 뭐라고 할까요?”
“아! 그렇군.”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고 하나 자신을 뒷조사한 부분에 대해 보복을 하려고 하는 그가, 대한민국 정부가 이번 사건에 끼는 것을 원할 리 없다.
“여기서는 주미 한국 대사관은 빠져 주는 게 돕는 겁니다.”
노형진은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분노해서 더욱 크게 말했다.
“하지만 노 변호사님을 도우라는 것이 주미 한국 대사관님의 명! 령! 입니다.”
명령이라는 말을 굳이 강조하는 남자.
딱 봐도 알아서 기라는 식으로 겁을 준다.
“그래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미국입니다.”
“그래서요?”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무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남자.
노형진은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렀다.
“누가 여기 경찰 좀 불러 주세요!”
미국은 테러에 대한 우려가 많은 곳이다.
당연하게도 공항 곳곳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노형진의 부름에 금방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저는 한국 변호사입니다. 업무에 관련하여 미국에 왔는데, 의뢰인의 소송 상대가 사람을 보내서 우리를 추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미심쩍은 표정이 되는 경찰.
일단 한국 변호사 자격이 미국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소송 상대방이 소송 대상의 변호사를 따라다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말입니까!”
“왜요? 내 말이 틀립니까?”
대사관 직원은 입을 쩍 벌렸다.
엄밀하게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저한테 의뢰를 한 분은 루이 에덤스 통상 장관입니다.”
“네?”
“장관의 사건을, 사건 상대방이 개인적으로 추적하려고 우리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 사람들끼리의 사소한 트러블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현 자국 장관에 대한 사건 뒷조사가 벌어진 셈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잠깐, 당신 멈춰요. 그 품 안에 있는 거 뭡니까?”
경찰은 순식간에 손을 총 쪽으로 옮기며 그들을 노려봤다.
“아니, 이건…….”
대사관 직원의 뒤에 있던 남자의 품이 불룩한 것을 본 경찰은 소리를 높였다.
“이건 지갑일 뿐이고…….”
“아무리 봐도 지갑 아닌데?”
“권총일 겁니다.”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권총?”
“네.”
대사관 직원의 뒤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남자.
그의 건장한 몸을 보건대 아마도 주미 한국 대사관의 무관일 것이다.
무관이란 경호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총기 자유국인 미국에서 그들이 무장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우리는 주미 한국 대사관 직원입니다.”
다급하게 말하는 남자.
하지만 믿지 않는 경찰들.
“천천히 신분증을 꺼내겠습니다.”
결국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서 증명하는 대사관 직원.
노형진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타국에 파견되는 외교관에게는 처벌받지 않을 권리, 즉 면책특권이 있다.
‘당연히 여기서 신분증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지.’
노형진은 실실 웃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외교관이 현 통상 장관의 개인적 사건과 치부를 추적하고 있다는 말이네요.”
신분증을 받아 들고 곤란한 표정이 되었던 경찰들은 순간 다시 날카로운 표정이 되었다.
“이거 스파이 행위라고 보면 되는 거죠?”
“아니, 그게 아니라…….”
스파이 행위라는 말에 사색이 되는 대사관 직원.
안 그래도 외교 마찰이 벌어졌는데 스파이 혐의까지 뒤집어쓰게 되면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두 분, 저희랑 같이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저희는 외교관입니다! 면책특권이 있어요!”
항변하는 그들에게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면책특권은 처벌을 면할 권리지 체포를 면할 권리는 아닙니다. 거기에다 현장에서 스파이 행위를 하다가 잡힌 거라면 면책특권의 적용을 고민 좀 해 봐야겠네요.”
노형진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경우는 FBI나 CIA에 보고하고 사건을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것 같네요.”
경찰들은 여전히 권총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두 사람은 당황한 채로 경찰에게 끌려갔다.
“두 분은?”
“저희 연락처는 여기 있습니다. 루이 에덤스 씨의 의뢰서는 여기 있고요. 저희에 대해서는 루이 에덤스 씨에게 연락하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질문이 있을 수 있으니 연락처는 계속 유지하십시오.”
“그러지요.”
경찰은 그들을 데리고 갔고 송정한은 혀를 끌끌 찼다.
“알아서 기다가 알아서 무덤 파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도 자기 버릇 못 고쳤네요. 이번 주미 대사가 보은 인사로 날아와 박혔다고 하더니.”
“그렇다고 하더군.”
아무리 그래도 두 번이나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으니 바꾸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도 보고가 위에 올라갈 테고.”
처벌과 별도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루이 에덤스의 신분상 스파이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멍청하긴.”
노형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깥으로 나왔다.
“일단은 숙소로 가죠.”
“그나저나 괜찮겠나?”
“뭐가 말입니까?”
“그래도 대사관인데.”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우리를 도와준 적 있습니까? 애초에 그 애들이 한국 사람들을 위해 한 게 있던가요?”
“그건 그렇지.”
한국 대사관은 한국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괜찮습니다. 자기들이 어쩔 건데요. 제가 이깁니다.”
노형진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가죠. 그래도 좋은 숙소를 잡아 놨으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