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853)
스파이 퇴출 작전 (4)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친구는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시유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찍혔구나.’
단순히 찍힌 정도가 아니다.
자신은 반동으로 분류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는다.
당장 자신도 그리고 자신의 부모도 공산당 당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시가 들어온다는 것은, 이미 자신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너…… 얼마 전에 가족들이랑 연락이 끊어졌다고 하지 않았냐?”
“…….”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친구는 슬쩍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다급하게 그곳을 벗어났다.
“자…… 잠깐만……! 야! 야!”
시유웬은 다급하게 친구를 불렀지만 이미 친구는, 아니 친구였던 자는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
시유웬은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있었고,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식당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집에서조차도 시선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건 절대 환각이 아니었다.
“도대체 뭘 하신 겁니까?”
그의 집에 온 도청 장치 검사관은 질렸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곳을 조사해 봤지만 도청 장치만 세 개에 카메라만 네 개인 집은 처음 봤습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넓은 집도 아니고 고작 작은 투룸이다.
그나마도 하나는 드레스 룸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카메라라니.
몰카를 전문적으로 검사하는 회사의 검사관 입장에서는 남자 집에 이 정도의 도청과 감시가 이루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 몰카의 피해자들은 여성이 많다.
물론 남자 피해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주 작심하고 붙은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흐리면서 그를 내보낸 시유웬은 상황을 보고 확신했다.
만일 중국으로 가면 그는 죽는다.
물론 여기서 죽을 수도 있지만, 타국인 이상 최대한 감시만 하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비자야.’
얼마 후면 비자가 끝나니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 비자가 아니더라도 당장 부모님이 준 돈이 떨어져 가고 있어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현실적으로 그가 받은 비자는 학생 비자이기 때문에 취업해서 돈을 번다는 건 불가능하다.
학생 비자로는 취업 활동을 못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취업한다고 하더라도, 시유웬의 취업이 가능하다는 건 다른 중국인도 취업이 가능한 곳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중국은 같은 직장 내의 다른 중국인을 이용해서 계속 자신을 감시할 것이다. 누구도 중국 공산당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
‘방법은 하나뿐이야.’
시유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그의 가슴은 미친 듯이 답답해졌다.
***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그 규정이 문제가 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강훈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공산당의 당헌. 그로 인해 모든 중국인은 스파이가 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스터 노가 제시한 방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군요.”
노형진은 그들을 막거나 협박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문제가 되니까.
“그들은 민간인이니까요.”
노형진이 노린 것. 그건 다름 아닌 중국인들에게 공산당으로서 접근하는 것이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중국인들은 공산당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그게 누구든 죽여 버리니까.
“그러니 우리가 공산당이라고 하면서 접근하면 당연히 그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혹시 당신이 공산당원이 맞느냐고 묻는 자는 없을까?
없다. 그건 공산당원더러 ‘나 죽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꼴이다.
공산당은 반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공산당에 대한 질문이나 의심은 가족의 죽음으로 증명된다.
“그러니 어떤 나라든 중국인에게 공산당이라고 접근해서 스파이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거절한다면 그는 충성심을 인정받지 못해, 감시받거나 쫓겨난다.
그러나 반대로 받아들인다면 진짜 공산당에게 사살될 가능성이 무한대로 증가한다.
“물론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다.
가령 공산당이라고 접근해서 진짜 공산당에 충성하는 자를 골라낼 수도 있고, 또 타국과의 분란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지요.”
시유웬은 중국에 쫓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를 추적했던 사람도 중국인이었고, 그를 납치하려고 했던 사람도 중국인이었다.
심지어 그가 알던 사람들조차도 중국 공산당의 명령을 받고 그를 감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중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당연히 두려움을 느낄 테고요.”
그러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이 이쯤 되면 중국에 돌아가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망명.
그러니 이쪽에서는 그 망명 조건으로 진실을 요구하면 된다.
“그리고 모든 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증거와 증인이지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증인으로서 시유웬이라는 존재가 생겼다.
죄를 지은 자가 아무리 죄를 부정한다고 해도, 증인이 존재하며 그 증인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면 그 죄는 성립된다.
그게 바로 법의 원칙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기가 죄를 저질렀다고 자수하는 놈은 1%도 안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 과정에서 고문이나 협박 등만 없으면 된다.
“우리는 한 적이 없고요.”
시유웬은 모든 죄를 인정했고, 중국 정부의 명령을 받아서 한아진에게 접근했으며 그녀에게 중국의 지원을 받는 장교들의 인사고과를 조작해서 승진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아마 이제 상황이 제법 재미있어질 겁니다, 후후후.”
***
한아진은 TV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믿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허상이었다.
-저는 중국 공산당의 명령을 받아서 한아진에게 접근해 그녀를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의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주요 장군들의 분석 결과와 인사고과를 빼냈고, 중국의 지원을 받는 장교들이 승진하도록 서류를 조작하도록 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하위 장교 몇 명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내의 대부분의 장군들을 바꿔치기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목적은 비상사태 발생 시 한국의 전복 또는 한국으로 오는 미국 세력의 제압이었습니다. 최악이라 하더라도 한국군과 함께 작전하는 미국의 작전 계획을 빼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TV 속의 시유웬은 모든 죄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모든 자료와 자신이 아는 모든 스파이와 정보들을 건네고 있었다.
애초에 훈련받은 정보 요원도 아니고, 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미인계를 쓰기 위해 동원된 인간이다.
그런 그가 변심한 상황에서 정보 요원들의 취조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아진 중령, 이미 모든 게 드러났네.”
작은 화면 속에서 모든 죄를 인정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시유웬.
양복을 입은 남자는 그걸 가차 없이 꺼 버렸다.
자신이 국정원에서 왔다고만 말하는 남자였지만, 그 남자의 존재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한아진의 파멸.
“…….”
“자네가 뭐라고 하든 이 정도 증언이 있는 이상 자네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질 거야. 자네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될 걸세.”
“…….”
“결국 두 딸은 다시는 못 보겠지.”
“흐흑.”
이를 악물고 버티던 한아진은 결국 무너졌다.
불륜 현장에 두 딸이 나타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그 일로 한아진의 정신은 이미 반쯤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기회는 잡을 수 있지.”
“기회라니……. 나한테 무슨 기회가 있단 말입니까? 남편도 딸들도 떠났는데.”
남편이야 당연하고 딸들조차도 자신을 더러운 창녀 취급하는 현실에,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원히 감옥에 있지는 않게 될 수도 있으니까. 최소한 세상에 나오면 딸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는 있겠지. 사과라도 할 기회 말이야.”
한아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자네가 한 모든 서류 작업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거야.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강제 예편 아니면 체포겠지.”
“알겠습니다.”
한아진은 결국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지 남이 아니었다.
언제나 말이다.
***
-오늘 3군 사령부 김 모 중장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군 내부에 다수의 스파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여 전군 장교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결정하고…….
뉴스를 보던 노형진은 강훈을 돌아보았다.
“대충 정리가 된 모양이더군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요.”
한아진이 입을 열고, 그래서 잡혀간 장교들이 다시 입을 열고 하면서 군 내부에서 중국 스파이에 대한 대대적 색출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군 내부 스파이에 대해 무심하던 국방부는 완전히 발칵 뒤집어졌고 육군, 해군, 공군 모두를 탈탈 털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그 안에서 적지 않은 스파이들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우리 감시 시스템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이번 일을 변절자 한 명으로 인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잠깐 조심하는 듯하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자신들은 스파이를 보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 세계 어떤 나라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다름 아닌 중국이 하는 말이니까.
“시유웬은 현재 모처에서 망명 심사를 밟고 있습니다. 망명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시유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변사체요?”
노형진이 눈을 찡그리며 쳐다보자 강훈이 양손을 흔들었다.
“저희는 아닙니다. 저희는 그렇게 비정한 곳이 아닙니다.”
“다른 곳도 아닌 CIA의 말을 믿기에는 제가 아는 게 너무 많군요.”
“음…… 필요에 따라서는 비정해지기도 하지만, 음…… 이 경우에는 필요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군요.”
“‘필요가 없었다’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시유웬에게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어 냈으니 굳이 그의 부모를 죽일 이유는 없다.
“저희는 그 두 사람을 풀어 줬습니다. 하지만 돌아간 후 5일도 못 버티더군요.”
시유웬의 배신에 대한 보복일 게 뻔했다.
“시유웬은 뭐라고 하던가요?”
“어디를 가든 공부만 시켜 달랍니다.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무너트리겠답니다. 필요하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말입니다.”
노형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중국이 그의 가족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실적에 대해 상부에서는 상당히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방법은 미국의 다른 중국계 라인에도 적용될 것이다.
“다 좋습니다.”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비밀을 지켜 줬으면 좋겠네요.”
강훈은 미소 지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그 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노형진도, 강훈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