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82)
악마의 손가락들 (5)
실제로 의사는 의사와 안과 의사가 있다는 미국의 의사 조크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본인이 자부심을 가진다면 문제 될 건 없어. 문제는 그 자부심이 없을 경우지.”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고 1지망, 2지망을 거쳐서 내리 떨어져서 안과까지 온 경우라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 김소안의 경우는 회사가 두한이네.”
“뭐, 네가 두한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지만, 그냥 거기서 일하는 직원일 뿐이야. 설마 그걸로 뭘 하려고?”
오광훈의 질문에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그들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거지. 두한은 말이야, 극도로 남성적인 타입의 회사야.”
“남성적?”
“그래.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 달라. 그런데 두한의 경우는 거의 군대 이상의 분위기야.”
까라면 까라, 안되면 되게 하라 등등 결과만 나온다면 사람 몇 명 죽는 건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게 바로 두한이다.
실제로 두한은 과로와 사고사가 가장 많은 기업 중 하나다.
“그런 곳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
능력과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조직은 여성에게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
“좀 독하게 말하면, 두한은 아직도 여직원은 커피나 타 오는 존재라는 분위기랄까?”
“에이, 설마.”
“설마가 아니야. 진짜 그래.”
“그러면 그만두면 될 거 아냐?”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야.”
사회적으로 본다면 두한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하이 클래스라는 의미다.
더군다나 분위기가 그런 만큼 상대적으로 여성의 선발 비율도 낮다.
“그러니까 거기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런데 왜 그래?”
“그게 문제인 거야. 너 꼭대기에 있다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 봤지? 그때 기분이 어땠어?”
“아, 음…… 더러웠지. 아주 더러웠어. 그래, 뭔 소리인지 알겠네.”
그녀는 여자들 사이에서는 하이 클래스의 수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두한에 입사한 이후 그녀의 신분은 추락한다.
그녀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두한 자체가 문제다.
토익, 토플 만점에 수많은 자격증 그리고 톱클래스의 성적.
이런 스펙을 바탕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갔는데 정작 출근하고 보니 커피 타고 상관에게 아양 떨어야 하는 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존심이 엄청 무너지거든.”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두한이라는 타이틀은 어딜 가나 먹히니까.
“어떻게 보면 불쌍하네.”
“불쌍은 개뿔. 나는 다르게 생각해. 애초에 두한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타이틀이라고. 내가 아는 걸 다른 회사에서 모르겠어?”
“응?”
“장담하는데, 거기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고 하면 엄청 빨리 될걸.”
당장 대룡에서도 그런 조건이라면 쌍수를 들어서 환영한다.
두한 출신이라고 배척하는 게 아니라, 그 분위기를 모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안주한 채 더 이상 올라갈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쓴 순간부터 그 여자는 스스로 한계를 정한 거야.”
실제로 두한 출신으로 이직해서 승승장구하는 여성은 많았다.
“학생이라면 뭐, 성적이 문제일 테고.”
“그렇겠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공부도 재능이거든.”
지방에 살아도 혼자 공부해서 한국대에 들어가는 놈들이 있는 반면 8학군이니 하면서 최고의 교육을 받아도 한국대에 가지 못하는 놈들도 있다.
과거처럼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지역별로 뽑다 보니 생긴 일이다.
부모가 돈이 많아 8학군에 들어갔다고 해서 공부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천재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다음번에는 그 부분을 공략하면 되는 거야.”
“그놈들의 패배라는 부분?”
“그래.”
그들은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악플을 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들 스스로에게 패배자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들면 어떻게 되겠어?”
어쭙잖은 처벌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이 될 거라고, 노형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오늘은 저에게 악플을 다셨던 분을 찾아뵙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레일은 카메라를 보면서 신나게 웃었다.
“아, 물론 개인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 당사자분은 모자이크 처리할 겁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주변은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다.
당연히 사람들이 그걸 보면 그 동네가 어딘지 그리고 어떤 곳인지 대충 알게 된다.
“어디 보자, 저한테 총 152회 악플을 다신 심안의눈이라는 분인데요, 딱 하나만 읽어 보겠습니다. ‘아비 어미도 없는 놈이 돈맛을 보더니 눈깔이 돌아가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고 다닌다.’라고 하셨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레일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조부와 조모가 키웠으니까.
“네, 맞습니다. 저 엄마 아빠 없어요. 그런데 어쩌나? 그래도 엄마 아빠 있는 당신보다는 잘 큰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뒷부분도 맞네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고 있거든요? 그래서 짜잔! 찾아왔습니다!”
주변을 보여 주는 레일.
그리고 옆에 있던 오광훈이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스윽 꺼냈다.
“아이고, 검사님. 수갑은 방송에 나가면 안 돼요.”
“걱정 마. 덮어 줄 수건도 가지고 왔어.”
그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수건을 흔드는 오광훈.
“물론 나도 채우기는 싫고,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잘 따라온다면야 뭐.”
오광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 들어가겠습니다.”
레일은 히죽 웃으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주변 풍경을 보여 준 이유는 사람들이 대충 어디인지 알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정해진 층에서 멈추자 레일은 당당하게 내려 어딘가로 향했다.
“짜잔!”
“어머, 레일 아냐?”
“진짜 레일이야?”
“어쩐 일이래?”
웅성웅성하는 간호사들과 환자들.
연예인이 찾아온다는 것은 참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레일이 왔습니다! 퓨슝!”
특유의 권총 자세로 인사하는 레일.
“진짜예요? 어머, 카메라 봐. 방송 중인가 봐?”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다들 관심을 보이는 그때 레일의 입에서 나오는 말.
” 루저의 본질>입니다.”
” 루저의 본질>?”
“그게 뭐야?”
대부분은 그게 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고작 1화가 나갔을 뿐이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공중파가 아닌 인터넷 방송의 한계였다.
” 루저의 본질>요?”
그런데 한 명의 표정이 묘했다.
간호사인 그녀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오, 우리 방송 아시나 보네.”
“알기는 아는데…….”
그래서 문제다.
루저의 본질>은 악플러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분명 지난 방송에서, 악플러를 찾아가 피해자인 레일 앞에서 악플을 읽게 한다고 했다.
“아…….”
그런데 여기로 찾아왔다는 건, 바로 여기에 악플러가 있다는 소리다.
“이건 원장님에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세요. 저도 원장님을 뵈러 온 거거든요.”
간호사의 눈이 커졌다.
원장님에게 볼일이 있다?
방송국 사람을 데리고 안과 치료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면, 이유는 하나뿐.
‘당장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겠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반백의 남자가 뛰쳐나왔다.
“뭐야! 경찰 불러, 경찰!”
당혹한 원장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나 레일은 이미 예상하고 왔다.
“아, 경찰 말고 검사님은 여기에 계신데요.”
“헉!”
박비광은 옆에서 수갑을 흔들고 있는 오광훈을 보고는 숨이 넘어가는 표정이 되었다.
“이…… 이거 명예훼손이야!”
“아, 명예훼손요? 그거 어차피 처벌 안 하는 거 아니었나요?”
옆에 있던 오광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검찰청 처리 지침에 따라 명예훼손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기소유예지.”
“자, 들으셨지요?”
레일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건 업무방해…….”
“공익 제보를 위한 취재라면 업무방해가 성립되지 않아. 정확하게는, 조각 사유의 발생으로 처벌이 면제되는 거지.”
박비광의 말에 레일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우리 심안의눈 님, 저한테 하실 말씀이 많으셨나 봐요?”
웃으면서 품에서 꺼낸 종이를 건네는 레일.
“제 앞에서 당당하게 읽어 주세요. 그러면 합의서를 써 드릴게요.”
“처…… 처벌도 안 한다면서 무슨 합의서야!”
“민사는 아니거든요. 여기서 당당하게 읽으시면 제가 민사는 확실하게 까 드립니다.”
엉겁결에 종이를 받은 박비광.
그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질질 짜며 오줌까지 지렸다.
자신의 인생이 끝장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오늘 나 다니는 병원으로 루저의 본질> 촬영 팀 찾아옴. 원장 오줌 싸면서 레일한테 살려 달라고 빔.
-리얼?
-리얼. 레일이 악플 다 읽기 전에는 합의 없다고 못 박음. 원장 질질 짜면서 악플 다 읽음. 완전 개새끼임.
요즘은 인터넷이 너무 발달해서, 어지간한 정보는 금방금방 퍼진다.
특히 대중을 대상으로 촬영할 때는 더더욱 빨리 퍼질 수밖에 없다.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어쩌지? 어쩌지?’
김소안은 몇 번이나 검색하면서 덜덜 떨었다.
루저의 본질>이라는 방송에서 박비광을 찾아가 그런 짓을 했다는 말에 자신이 저지른 일이 기억난 것이다.
그녀 역시 레일에게 못 할 말을 써 가면서 모욕했으니까.
“일 똑바로 안 해! 어? 언제까지 검색만 할 거야?”
“그게…….”
“이래서 계집은 못 쓴다니까.”
김소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한 모든 일들, 그게 자신을 덮쳐 오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두한에 지원해서 합격한 것은 이런 취급을 당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일을 못해서 욕먹는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아예 일할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
간단한 서류 정리만 시킬 뿐, 자신을 일원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회사였다.
“김 양아! 커피 좀 타 와라!”
과장은 자리에 앉아서 고스톱을 치면서 외쳤다.
“달달하게, 알지?”
김소안은 그렇잖아도 머리가 복잡했다. 더군다나 방송에 나가게 되면 자신의 인생은 어차피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한에서 자신을 가만두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졌다.
“야! 커피는 네가 타 먹어!”
순간 사무실에 흐르는 침묵.
모두의 시선이 김소안에게 향했다.
그러나 해직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소안은 이제 뵈는 게 없었다.
“내가 다방 아가씨야? 너희들 다! 손이 없고 발이 없는 병신 새끼들이야? 내가 너희 커피 타 주러 온 줄 알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저항한 적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막장인 김소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너희 말이야! 내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
“아니, 너 미쳤냐? 어? 미쳤어?”
“이년이 정신이 나갔나!”
점점 흉흉해지는 분위기.
그러나 김소안은 그들에게 대꾸하는 대신에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걸 꺼냈다.
모든 직장인들이 다 가지고 있지만 차마 제출하지 못하는 것, 사직서.
김소안은 그걸 과장의 얼굴에 던졌다.
“나 그만둘 거야!”
“뭐야?”
“그만둘 거라고, 이 새끼야! 손대지 마. 손대지 마! 손대면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야!”
그러자 과장이 움찔했다.
“그래, 이참에 아주 잘된 것 같네. 네가 성추행한 거 대룡에 가져다 팔 거야. 내가 다 녹음해 놨거든?”
“야…… 야……!”
대룡이라고 하면 앙숙 중의 앙숙. 그걸 이용해서 뭔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과장 역시 잘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김 양아, 그러지 말고…….”
대번에 태도가 바뀌는 과장.
그러나 김소안은 이미 막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