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41)
누구 마음대로 답을 정해? (4)
그리고 희생자를 씻기고 꾸며서 옷을 입혀 두는 위란.
그런데 그 두 가지 시그니처가 동시에 나타났다? 이건 동일범의 소행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계획대로 한다. 무죄를 주장하고, 무죄가 확정될 경우 한국에 남겨야지.”
손하균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그마저도 노형진이 예상하고 있을 거라고는.
* * *
“우와, 시위 보소.”
중국에 있는 정보원이 보내 준 사진은 범인을 송환하라고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 벌어지는 중국인들의 시위 장면이었다.
그걸 보면서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도대체 뭔 깡이래?”
“그러니까. 저기 지금 코델09 돌고 있는 거 맞지?”
“확실하지.”
코델09바이러스 때문에 중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있는 상황인데 주중 한국 대사관 앞에 몇만 명이 모여서 시위를 하다니.
“아니, 왜 안 막아?”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분노를 대신 받아 낼 대상이 필요하니까.”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퍼져서 사람이 죽는 거?
사실 중국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어차피 사람들이 넘쳐 나는 게 중국이니까.
“중국은 인민들이 모이는 것을 극단적으로 경계해. 거의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이지. 그런데 수만 명이 모여서 시위하는데 공안이 주변에서 구경만 한다? 그건 관제 데모라는 소리지.”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벌이는 짓이라는 뜻이다.
당연하게도 한국은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 뭘 어쩌라고? 법원 문제인데.”
“그걸 아니? 중국에 삼권분립이 어디 있어? 그리고 말이야, 한국도 삼권분립은 그다지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만.”
“부정을 못 하니 슬프구먼.”
오광훈은 인터넷 영상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지금쯤 똥줄이 타고 있을 메이우와 위란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러면 이제 어찌 될까?”
“뭐, 한국에서는 풀려나겠지.”
“그리고 중국으로 가고?”
“가겠냐?”
저 상황에서는 중국으로 갈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죽으니까.
물론 아직까지 신분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손하균이야. 지금쯤이면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 내가 저지른 일이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겠지.”
“뭐야, 그러면 바뀐 게 없잖아?”
“바뀐 게 왜 없어?”
노형진은 화면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중국이 들고일어났잖아. 과연 그에 대해 대기업의 사장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 * *
한국의 대기업들, 특히 반도체 기업들은 어디 가서 쉽게 고개 숙일 곳들이 아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점유율은 절대적이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그들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르신다 이거군요.”
“그래, 난 모르는 일이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공개하도록 하지요.”
노형진은 한국의 거대 반도체 기업인 엑서스반도체 사장을 독대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공개라니! 우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니까!”
“네. 제가 뭐라고 했나요? 그러니까 그렇게 공개한다니까요.”
“자네 지금 뭐라고 하는 겐가!”
결국 엑서스의 사장인 당진환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내 움찔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당 사장님, 제가 지금 병신으로 보입니까?”
“뭐?”
“마이스터와 미다스의 정보력을 이렇게 개병신 취급하는 곳은 처음 봤네요.”
노형진의 상스러운 표현보다 마이스터와 미다스의 정보력이라는 말에 더 놀란 당진환은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눈앞이 노래졌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보다 더 정보가 빠른 게 그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심지어 그들은 기업에 관해서는 확실히 미국보다 빨랐다.
“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으시겠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이야기해 드릴게요, 일단은.”
“일단은……이라니…….”
“설마 진짜로 그 새끼가 무죄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걸 막지 않으면 항진 인더스트리에서 공급량을 줄인다고 일방적으로 압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부탁대로 압력을 행사해 준 것뿐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그렇게 발표해 드린다고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다.
중국의 언론을 통해 한국의 대기업이 살인마를 보호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관련이 없다고 하면 그냥 입 닥치고 있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엑서스반도체에서 ‘우리는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발표가 나가면?
그건 자기네들이 사건을 덮었다고 인증을 하는 꼴이다.
물론 반도체라는 특성상 국민들의 불매운동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조금이다.
반도체를 공급받는 업체들이 이쪽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그러고 보니 사장님, 오너 리스크라는 단어 아십니까?”
“오…… 오너 리스크?”
“네. 이 정도면 충분히 오너 리스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당진환은 가슴이 철렁했다.
오너 리스크.
오너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
그리고 살인범을 풀어 주는 행동으로 인한 주가 하락은 분명 오너 리스크다.
“아시겠지만…… 마이스터와 미다스는 오너 리스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노형진이 있는 건 단순히 검찰의 협조자가 아니라 마이스터와 미다스의 대리인으로 있는 거라는 확실한 통지.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너 해고.’
당진환은 엑서스반도체의 전문 경영인이다. 창립자 같은 게 아니라 월급쟁이 사장이라는 거다.
물론 월급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아시겠지만 마이스터와 미다스는 오너 리크스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죠.”
단순히 해고로 끝이 아니다.
그게 개인의 범죄로 인한 경우 다른 주주들을 설득해서 손해배상까지 받아 내 철저하게 몰락시킨다.
두둑하게 받은 월급? 배상금의 100분의 1이나 될까?
“자, 잠깐…… 이야기를 하시죠. 이야기를 좀…….”
“그다지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안 하셨다면서요? 그러면 할 이유가 없죠.”
물론 노형진이 증거가 있어서 이렇게 막무가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노형진은 당진환의 기억을 읽어서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우리 엑서스반도체의 주가가 폭락할 겁니다.”
“그럴 리가요. 엑서스반도체는 대중을 상대로 영업하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엑서스반도체는 전 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이고, 현대 문명에서 반도체는 문명의 쌀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엑서스가 욕을 먹을지언정 주가가 폭락하거나 갑자기 거래가 후드득 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당신만 조지면 됩니다.”
당신만 조지면 된다, 사형선고에 결국 당진환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는 무슨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진짜로 기업을 살리기 위해 그런 겁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오셨겠지만, 항진 인더스트리에서 공급을 못 받으면 공장이 멈춥니다.”
“그건 뭐 인정을 하죠.”
“항진은 그 점을 노리고 요구했습니다. 아마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요구를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법원은 대기업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는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 그런 게 아닙니다. 기업을, 아니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지랄하네.’
노형진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경제를 위해서’다.
경제를 위해서라는 말은 말장난이다. 매번 그런 핑계로 사람들을 풀어 주고 범죄자들에게 자비를 베푼다.
하지만 그건 경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를 인질로 삼아서 하는 짓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발표하지요.”
“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발표한다고 했습니다만?”
그 말에 당진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노 변호사님,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진짜로 저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래서 애들을 서른 명이나 죽인 살인마를 풀어 주겠다?”
“아니…… 그게, 살인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살인도 안 한 새끼가 기업 거래까지 협박용으로 삼아서 법원에 압력을 행사하라고 하겠습니까?”
그 말에 당진환은 입을 다물었다.
노형진의 말대로 진짜로 억울했다면 그런 협박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억울하게 처벌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2심이 있고 3심이 있다.
즉,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아니 공식적으로는 경찰에서 그들을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 부르기도 전에 사건을 무마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당진환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물론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부분에 관해서도 이해가 가죠.”
“그러면…….”
“좋습니다. 외부 공표는 미뤄 두죠. 하지만 문제를 확실하게 바로잡읍시다.”
“바로잡으신다는 건?”
“압력을 넣은 사람들에게 전화하세요, 제대로 재판하라고.”
“하지만 그건…….”
“싫습니까?”
“아니, 좋고 싫고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손하균입니다.”
손하균은 법률계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물론 노형진 역시 힘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노형진이 잘못된 것을 고치는 힘이라면 손하균은 모든 것을 뒤트는 힘이다.
“우리가 손하균을 항진 인더스트리에 소개해 준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미 메이우를 위해 돈을 받고 일하기 시작한 손하균이 돈을 포기하고 사건을 그만둘 가능성은 없다고, 당진환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의 말대로 이건 단순한 재판이 아니다.
설사 이제 와서 사건에 대한 압력을 더는 행사하지 않겠다고 해도 일단 손하균은 뇌물을 줘서라도 사건을 정리할 게 뻔하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압력을 넣지 않겠다고 전화하세요.”
“알겠습니다.”
결국 당진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손하균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걱정했다.
손하균이 누군가?
노형진의 별명이 분쇄기라면 손하균의 별명은 승리자다.
노형진이 상대방을 박살 낸다면 손하균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긴다. 설사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말이다.
‘아니, 내가 무슨 걱정을?’
손하균을 걱정하던 당진환은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 자기 목숨 줄이 걸려 있는데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서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