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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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어따 팔아먹었냐? (4)
“안 됩니다. 그렇잖아도 이번 사태로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주소를 공개하면 자살할지도 모릅니다. 그가 집중 공격당하게 하는 건 비도덕적입니다.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서 말씀 못 드립니다.”
도저히 말할 수 없었던 무광민은 필사적으로 둘러댔다.
그러자 사람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이해했다.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채 인터넷에 올라간 탓에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그를 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상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할머니뻘 되는 사람의 얼굴에, 그것도 빌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는 게 용납될 리가 없으니까.
그 상황에서 주소까지 털린다면 아마 누구라도 자살할 거다.
“대표? 누가?”
하지만 이미 한부원은 상황 파악이 끝난 상황이었다.
“뭐요?”
“당신이 대표라고 누가 그래?”
“애초에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접니다만?”
“아니,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그거 위임받았어?”
“뭐라고요?”
“나는 위임장이나 동의서를 써 준 적이 없거든. 나도 아까 말했잖아, 비인가라고. 나도 아직 동의서를 다 못 받아서 비인가라고 말하는데, 너는 동의서를 받았느냐고.”
“그거야…….”
못 받았다.
아니, 신경도 안 썼다.
그는 주민들을 선동했고, 계획대로 주민들은 선동되어서 달려왔다.
그러니 딱히 동의서를 받은 적은 없다. 받을 생각도 해 본 적 없고.
“아직…….”
“아직 동의서도 못 받았는데 뭔 대표라고 지랄이야? 네가 뭔 자격이 있어서 대룡이랑 협상하는데?”
“그거야…….”
당황스러운 사태에 무광민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한 사태였다.
대충 무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건이 무럭무럭 부피를 키워 가더니 자신의 대표성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 무광민을 향한 한부원의 날 선 힐난에, 잠시나마 그에게 동조했던 주민들 역시 아차 했다.
그냥 비대위 대표라고 부르기만 했지 위임 여부는 단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다. 심지어 비상대책위원회라고 하는데 정작 선발 과정도 거쳐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자기네들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라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 대룡에서 돈을 받아 낼 수 있다고, 아니면 집값을 올릴 수 있다고 들쑤시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동의서를 써 준 적 없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동의서도 써 준 적 없는데 무슨 대표야?”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주민들이 따지기 시작하자 무광민은 다급하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자 자, 지금이라도 동의서를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틀린 상황은 이제 와서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랄. 뭘 믿고 너한테 동의서를 써 줘?”
“뭐라고?”
“뭐라고 했냐? 나이도 어린 게 말이 짧아진다?”
한부원은 지금이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더더욱 무광민을 몰아붙였다.
“동의서도 받지 않고 초대형 사고를 치고, 심지어 그 새끼 주소도 못 알려 주는 너의 뭘 믿고 동의서를 써 주냐고.”
“제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니까…….”
“자칭 대표는 나도 하고 있어.”
한부원은 기회를 잡은 듯 말했다.
“이참에 확실하게 하자. 나도 이번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자리에 출마할게.”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가 안 돼? 장난해? 이런 자리가 자칭하는 걸로 끝나는 자리야?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사고 쳐도 되는 자리냐고! 우리 마을 이미지는 어쩔 거야? 우리 마을 집값은 어쩔 거냐고!”
한부원의 말에 주민들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해 보니 동의서도 없이 대표 노릇을 하다 마을 이미지만 망가트렸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대표를 뽑는 게 맞지.”
“암, 그럼.”
자기편을 들어 주던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 보면서 무광민은 식은땀을 흘렸다.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브레이크도 걸 수 없었다.
* * *
“아마도 투표에서 한부원이 압도적인 차이로 이길 거야.”
“그러겠네.”
이미 이전부터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던 한부원.
자칭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고 설레발치다가 초대형 사고를 친 무광민.
이 둘의 싸움은 사실상 답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무광민에게 표를 주지는 않겠지. 더군다나 한부원은 자칭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한계를 알고 있거든.”
그가 재건축조합을 만들고 설득하러 다닌 건 사실이지만 그 직함을 이용해서 공적인 일을 한 적은 없다.
이름을 선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이용한 것도 아니다.
그가 한 일은 이제까지 동의서를 받으러 다닌 것뿐.
그러니 사칭해서 사고를 친 무광민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무광민 일당은 아마 쫓겨나겠네.”
“그러겠지. 우리가 살짝 도와주면 어렵지 않게 끝날 거야.”
“도와준다고? 어떻게? 그런데 설마 쫓아내는 걸로 복수가 끝났다고 치는 건 아니지, 오빠? 그건 영 꺼림칙한데.”
노형진은 서세영의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고작 그걸 복수라고 하면 섭섭하지. 이건 그냥 협상 상대방을 특정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여기까지는 대룡의 정상적인 업무를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복수를 끝낸 건 아니라면서 노형진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려고?”
“간단해. 전에 하지 않은 고소를 해야지.”
“모욕?”
“그래.”
“이제 와서?”
“이제 와서가 아니라 지금이니까 고소할 수 있는 거야. 아니, 지금 해야 해. 그래야 복수가 제대로 될 테니까.”
복수는 타이밍이다. 그리고 노형진은 복수의 타이밍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 * *
노형진은 그 당시에 모욕했던 인간들과 시위하던 사람들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상황에 벌벌 떨었다.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이름.”
“김배단.”
“주소!”
노인에게 가래침을 뱉은 놈을 담당하게 된 형사의 말투는 거칠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도 그 영상을 봤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하나 남은 손자라도 살려 보겠다고 비는 노인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은 인간을, 그는 사람 취급해 주기도 싫었다.
“…….”
“주소!”
“…….”
“이 새끼야! 주소 부르라고!”
“…….”
“하, 이 새끼 봐라? 이제는 경찰도 만만해 보이냐?”
주소를 부르라는 말에 답을 하지 않는 김배단을 보면서 경찰이 화내려는 그 순간, 뒤에 있던 노형진이 다가와서 김배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기억을 읽고는 피식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였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수사관님.”
“노 변호사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니? 주소지가 길바닥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은 반쯤은 맞았다.
“김배단 씨 주소지는 여기가 아니라 전남 광양이거든요.”
“뭐요?”
“애초에 여기에 산 적이 없는 거죠.”
예상대로 김배단은 여기 주민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문 시위꾼들. 돈을 받고 와서 깽판을 치고 사업을 방해하는 놈들이었다.
“아니, 광양 놈이 여기에서 뭐 해?”
“대룡의 업무를 방해하고 돈을 갈취하기 위해서죠.”
“아…… 아닙니다.”
김배단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부인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이 늦어 버렸다.
그의 주소지가 상상동이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상상동에 집이라도 한 채 있다면 그는 사건의 당사자로서 무슨 말을 하든 시위를 하든 권한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당연히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
“법에서는 그걸 업무방해라고 하지요.”
노형진은 떡하니 미리 준비한 소장을 꺼내며 말했다.
“주소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고치겠습니다.”
“……!”
김배단은 사색이 되었다.
그에 대해 언질을 받아서 어떻게 해서든 걸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던 거다.
그런데 노형진이 자신의 주소지를 까발렸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
그 상황에서 노형진은 한마디 더 던졌다. 김배단을 코너로 몰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배상금이 어마어마하겠네요. 수십억 단위는 나오겠는데요?”
“수…… 수십억?”
“원래대로라면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이 시작되었어야 할 종합병원급 병원입니다. 그런데 그걸 몇 주간 영업을 못 하게 막았으니 당연히 그 정도 돈은 나오겠죠.”
안타깝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노형진.
“벌어 둔 돈이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영 부족하겠는데? 압류만으로는 턱도 없을 것 같은데.”
그 말에 김배단은 온몸이 달달 떨렸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당연히 그는 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시키는 대로 한 거라고요?”
“네, 진짜예요. 진짜로 저는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누가요? 누가 시키던가요?”
“무광민이요! 무광민 그놈이 시켰어요. 병원 앞에서 시위하면 돈을 준다면서…….”
예상대로였다.
그는 전문 시위꾼이었고, 시위하라고 시킨 건 무광민이었다.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들을 대거 고용, 대룡장애인복지병원 설립을 막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비상대책위원회 무 모 씨는 상상동 비상대책위원회의 대표를 사칭하면서 사람을 고용해 장애인 전문 병원의 건립을 막을 목적으로…….
“이런 젠장!”
무광민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잖아도 투표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불리하기는 더럽게 불리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런 뉴스가 뜨다니.
“형님, 어쩌죠? 우리 진짜 좆 된 것 같은데요?”
같이 일하던 동생들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모든 걸 잃어버리게 생겼으니까.
“괜찮아. 어떻게 해서든 투표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때 한 동생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형님, 그게요. 아까 회의에 잠깐 갔다 왔는데…….”
오늘 비대위 회의가 있다고 해서 몰래 거기에 저놈을 보냈다. 그는 아예 입장도 안 시켜 주니까.
“아예 투표를 안 하는 분위기던데요.”
“뭔 소리야?”
“아니, 그러니까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미 십창 나서 그걸 이어받아 봐야 더럽기만 하니까 아예 새로 조직을 만들어서 대룡이랑 이야기하자고…….”
“뭐? 그러면, 씨팔, 난?”
“그거야…….”
당연히 나가리 되는 거다.
사칭하여 문제를 일으킨 놈을 쫓아내기 위해 새로 조직을 만드는데 그 사람을 후보로 받아 줄 리도 없고, 어찌어찌 출마한다고 해도 그를 뽑아 줄 리도 없으니까.
“이런 염병.”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는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