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79)
자리가 바뀌면 법이 바뀐다 (2)
그렇게 말한 노형진은 유영민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나저나 저를 여기 왜 부르신 건데요?”
“네가 배워야 할 게 있으니까.”
“뭘 배워야 되는데요?”
“사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유영민은 할아버지에게서 충분히 배우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배웠다고 해서 그걸 전부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십 년간 영어 교육을 받아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제대로 못하듯이 말이다.
“네가 오늘 배워야 하는 건 남을 찍어 누르는 법이야.”
“네?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불편한 얼굴이 되는 유영민.
그러나 노형진은 단호했다.
“너도 알다시피 사람은 착한 것만으로는 안 돼. 솔직히 너는 인성이 좋아.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인성이 좋기만 한 건 나쁘게 말하면 그냥 호구라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알죠.”
인성이 좋다고 해서 그저 참기만 해서는 안 된다. 보복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유영민은 그런 경험이 없다는 거다.
“너는 나중에 대룡을 물려받아야 해. 그런데 그 안에 너희 팀장 같은 새끼가 한 명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건…… 아니겠죠.”
아무리 유민택이 내부를 청소한다고 해도 계속 생기는 미친놈들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새끼들을 쳐 낸 만큼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는데, 그들 중 일부가 부패한 놈일 거라는 걸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너는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인내해야 하는 시점도 있지만 참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워야 해.”
“이해는 하는데…….”
유영민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듣기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오늘 겪어 봐야지.”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세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둘이서 다른 놈들 인생을 좀 조져야 할 거다.”
그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 * *
변호사가 찾아왔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때 현장의 소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아직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것 같은 변호사라는 계집애 하나와 고생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어 보이는 직원 하나, 이렇게 둘이 앞으로 나서는 걸 본 순간 어찌어찌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서류 절차를 보셔도…… 아시겠지만.”
“그래요. 서류 절차야 조작도 어렵지 않고.”
실적도 없는 신생 회사. 그런 곳에 일을 맡긴 지역 소장은 당연히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서류야 어렵지 않지.’
당당한 소장의 태도를 보면서, 노형진은 뒤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허가제도 아닌 신고제이니 이런 서류를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다.
당연히 조폭들이 신고했을 거다. 신고도 하지 않은 업자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은 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규정대로 일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동안 거래하던 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갑자기 신흥 업체를 받아들였느냐 이겁니다.”
서세영 역시 그걸 알기에 강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소장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생각보다 뻔뻔했다. 그는 경험도 없는 여자 변호사를 몰아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자신감에 차 있기까지 했다.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그런 겁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한 트럭당 단가가 10만 원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모든 걸 다 의심하면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애써 변명하는 소장.
하지만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노형진은 이미 상황을 다 읽고 있었다.
‘뭐, 두둑하게 받아 챙기신 모양이네.’
이 정도의 쓰레기를 버리는 데 과연 몇만 원 할까?
아니다. 한 트럭당 수백만 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비용에는 단순히 운송 비용만 포함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폐기물은 법에서 지정한 곳에 가져다 버려야 한다. 당연히 그곳에서도 그와 관련된 비용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한 트럭당 비용이 500만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쓰레기를 버리는 비용은 300만 원 이상이 된다.
그러니 그걸 몰래 버리면 최소 300만 원 이상은 남는 게 현실.
당연하게도 그들 입장에서는 그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땡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나눠 먹기 마련이지.’
이런 대규모 건축 현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양은 트럭 한두 대 수준이 아니다. 한 대당 50만 원씩만 받아먹어도 수억은 쉽게 챙길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이라는 조직은 새로운 거래처를 뚫는 걸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
특히나 새로운 기업과 거래하는 건 더더욱 조심스럽다. 실적도 없고 기록도 없으니 이들이 믿을 만한 조직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노형진은 소장더러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새로운 기업과 거래하는 경우는 크게 네 가지야. 첫 번째, 과거에 거래하던 기업이 사고를 쳐서 더 이상 거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보통은 파산하거나 사회적 분란을 일으킨 경우지.”
가만히 있던 노형진이 나서서 입을 열기 시작하자 소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두 번째 경우는 새로운 기업이 신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미래의 가능성이 있을 때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지. 기존에 해당 사업을 하던 곳도 아닌데 새로운 기술을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쓰레기를 버리는 데 딱히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말을 이으며 터벅터벅 앞으로 나서는 노형진.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노형진에게로 향했다.
“세 번째는 기존에 있던 임원이 나가서 기업을 세운 거지. 영민이 너도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해. 이런 경우는 거의 100% 확률로 기업을 빼앗거나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거든.”
노형진의 말에 유영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부분은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관련자가 뇌물을 두둑하게 받아 처먹었을 때지.”
“당신 누구야?”
노형진이 지금까지 뒤에서 조용히 있었기에 그가 변호사가 데리고 온 직원 중 한 명이라 생각했던 소장은 왠지 꺼림칙한 기분에 부러 세게 나갔다.
하지만 노형진의 대답을 듣고, 그는 자신의 가벼운 입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노형진 변호사입니다.”
“노…… 노형진!”
대룡의 유민택 회장과 언제든 독대할 수 있는 변호사.
대룡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자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변호사.
본 적은 없지만 현장 소장쯤 되면 그 이름은 들어 봤을 수밖에 없다.
노형진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자 소장은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방금만 해도 나이 어린 두 사람을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 취급하며 막무가내로 행동했지만 이제는 ‘나는 억울합니다.’라며 읍소하는 방향으로.
“아니, 노 변호사님. 그건 아니죠.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공정하게 한 겁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러니까 조사 좀 해 보면 되겠죠.”
“해 보세요. 전 깨끗하니까요.”
“계좌야 깨끗하겠죠. 하지만 과연 부인께서 명품을 샀을까요, 안 샀을까요?”
그 말에 소장의 얼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대형 공사 현장에서 소장쯤 되면 뇌물을 받지 않는 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아내분하고 자녀분들까지 탈탈 털면 뭐라도 나오겠죠.”
“그건…… 부, 불법입니다.”
“방금은 털라면서요?”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닙니다.”
“미안해서 어쩌나요, 우리는 가족도 건드리는데? 우리가 바보로 보여요? 요즘은 뇌물을 계좌로 받는 지능 떨어지는 놈도 있나 보네.”
노형진의 비웃음에 소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긴, 뇌물을 받는 이유가 뭔가? 잘 먹고 잘사는 게 목적 아닌가? 조사를 시작하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영민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심각한 문제죠.”
유영민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경우는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이지만, 뇌물을 주는 놈들이 건축자재를 납품하는 놈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룡건설은 방사능에 오염된 건축자재가 들어와서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날려 버린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 막대한 방사능오염물을 처리하기 위해 적지 않은 폐기 비용을 날려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거잖아요.”
사람 목숨이 걸려 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뇌물을 받아 처먹는 놈들은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민아, 이런 놈들은 말이야, 남의 목숨 같은 건 신경 안 써. 그러니까 처벌할 때는 똑같이 이놈들의 목숨도 신경 쓰지 말아야 해.”
“그 말씀은?”
“유영민, 서세영. 너희들이 봤을 때는 어떤 처벌이 좋을 것 같냐?”
그 말에 듣고 있던 소장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들이! 너희들 뭐야? 어? 너희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어?”
적반하장식으로 언성을 높이는 소장을 보면서 서세영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저 사람 왜 저래, 오빠?”
“사람은 자기가 위험해지면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지.”
“본성?”
“그래.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뭔지 알아?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거야. 특히 이런 곳에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지. 너도 알 거야. 적반하장이라고 하지? 때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서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놈들이 있단다.”
“아, 그런 거. 많이 들어 봤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잘못이 들통 나면 반성하고 사과할 것 같지? 사실 그런 사람들은 드물어. 70% 이상이 목소리를 높여서 상대방을 압박하려고 하지. 특히 평소에도 갑질 잘하는 놈들은 거의 100% 그렇지.”
“어디서 감히 지들끼리 떠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여기 소장이야, 소장!”
노형진과 서세영이 조용히 이야기하자 속으로 걸리는 게 많은 소장은 더더욱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노형진의 얼굴에 섬뜩해 보이기까지 하는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감히? 지금 두 번이나 ‘감히’라고 했습니까?”
그러자 서세영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이고, 저 아저씨 큰일 났네.”
유영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세영을 돌아보았다.
“왜요?”
“우리 오빠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감히’라는 단어거든요. 그런데 그걸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했으니 오빠 성격을 제대로 긁은 거죠.”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사상이 녹아 있는 단어가 바로 ‘감히’다.
물론 노형진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감히’라는 말을 하는 놈들은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기에 남들을 어떻게 취급하든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범죄자가 내지르는 ‘감히’라는 말은 보통 힘으로 피해자를 찍어 누르겠다는 의미가 강했기에, 노형진은 범죄자가‘감히’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반쯤 눈이 돌아가서 찍어 눌러 죽였다.
“야! 이 새끼들 조져!”
아니나 다를까, 다급해지자 일반 노동자들을 시켜서 세 사람을 억류하고 위협하려고 하는 소장.
“네?”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직원들이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