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백합의 명예 (2)
기차를 탄 카이루스는 턱을 괸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으으.”
인스턴트 커피의 맛은 강렬했다. 역청을 마시면 이런 맛이 아닐까.
바셀라 가문에 대해서는, 카이루스가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의심할 만한 점이 있었다. 가주인 에단 바셀라가 요 몇 년 사이 시술이나 애드온을 수집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배틀기어만 쏙 빠져있단 말이지.’
애드온을 수집하고, 다양한 시술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으면서 배틀기어에는 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걸까.
심지어, 바셀라 가문은 페더윙과는 달리 가문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훌륭한 배틀기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수상하단 말이지.’
원래 의심이 생기면 모든 것이 수상해보이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새로운 취미가 생겼나보네.’ 하고 넘어갈 것들조차 카이루스의 머리를 계속 맴돈다.
“와! 대추야자!”
카이루스가 고민에 빠져있는데, 노라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 대추야자를 한 아름 구매하더니 신나게 먹어치우는 중이다.
“넌 몸속에 피 대신 설탕이 흐를 거다.”
노라는 카이루스의 지적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카이루스도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바셀라 가문에 대해서는 좀 알아?”
뒤이어 일레나에게 한 질문은 카이루스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다.
“에단 바셀라가 공명심이 있다고 들었어.”
가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라면야 모든 가문의 가주들이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나가 언급할 정도라면, 그 정도가 특출나다는 뜻이다.
“애드온이나 시술 같은 걸 알아보는 것도 그런 방면의 노력일 수도 있겠네.”
인상적인 창술을 자랑하는 가문이다. 무가로서 성립된 가문이니, 당연히 그 방면으로 성공하고 싶을 거다.
“뭐, 목표는 포스트 페더윙이라지.”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일레나의 말투에서 다소 뼈가 느껴진다.
“누군가는 페더윙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게 6년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 발로른 제국이 성립되기 전부터 최강으로 이름을 날렸던 가문을 타 가문이 6년 만에 따라잡는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긴 하다.
“그런 소문이 도는 거야, 아니면 직접 말하고 다니는 거야?”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씨부리던데.”
입 밖으로 낼 정도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닐까. 카이루스가 궁금한 건 그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아, 그리고 귀족치고는 금욕적인 생활을 즐기는 편이지.”
아침에는 클램 차우더와 흑빵을 먹는다고 한다. 뭐, 길바닥을 헤매이는 인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진수성찬이겠지만, 훨씬 더 나은 걸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그걸 아침으로 먹는다는 건 확실히 금욕적이긴 하다.
아침식사는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고, 그 이외에도 상당히 검소한 생활을 이어간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여자가 무기 휘두르는 걸 굉장히 싫어해.”
방금 전부터 일레나가 다소 까칠한 반응을 보이던 이유를 카이루스도 이해했다.
“그럼 너네 단장님도 싫어하겠네.”
“대가리가 터지고 싶지는 않으니 아가리 여물고 있는 중이지.”
다나 왓슨 앞에서 여자가 검 들고 설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가는 좋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유는 뭔지 알아?”
“여자와 남자가 같이 돌아다니면 생기는 문제들. 그리고 포로로 잡힌 이후 발생한 일에 대한 뒤처리.”
“저런. 확실히 문제가 될 만한 요소긴 하네.”
전쟁 중에 옆사람이랑 연애하는 것도 곤란하고, 포로로 붙잡힌 여자들이 당하게 될 잔혹한 일도 모두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네 생각은 어때.”
“포로로 잡혀서 거지같은 일 당하는 건 여자뿐이 아니야.”
포로로 잡히면 다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남자라고 덜 당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딱히 더 가혹한 일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여자 대우를 받고 싶으면 그럴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화장실과 숙소를 따로 쓰는 등의 배려를 받고 싶다면 굳이 전장에 무기 들고 기어올 필요가 없다.
“어쨌든, 에단 바셀라가 어떤 양반인지는 잘 들었다.”
진짜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만나서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카이루스가 기차를 타고 일행들과 함께 바셀라 가문으로 향하는 사이, 에단 바셀라 또한 그 소식을 시미드로부터 들었다.
누군가 자신의 저택에 방문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에 관한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카이루스에 대한 정보 중 에단 바셀라의 신경을 상당히 긁는 자료가 있었다.
“페더윙의 유산을 수집하는 놈이라.”
에단 바셀라는 작게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서는 시미드 캘로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싶었다.
당연히 실제로도 거절했다. 하지만 시미드 캘로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거절하고 싶으면 그래도 괜찮네. 하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을 거야.]어쨌든 카이루스는 바셀라 가문에 찾아올 것이다. 카이루스가 해낸 일들에 대해서는 에단 바셀라 또한 들은 내용이 있다.
‘막을 자신이 없다.’
보안국으로부터 지부의 정보를 털어내고, 레잔틴 박물관의 수장고 목록을 털어낸 놈이다.
제아무리 에단 바셀라가 단단히 대비한다 해도, 막아내는 건 힘들 것 같다.
‘몰래 온 손님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찾아온 손님 쪽이 차라리 낫지.’
에단 바셀라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차피 오게 될 녀석이니 당당하게 오도록 만들고, 그 뒤에 감시를 철저하게 붙여놓는 편이 차라리 쉬울 거다.
“손님들이 도착했습니다. 응접실로 안내해두었습니다.”
“알았네.”
카이루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던 에단은 시종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의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이루스와 일레나, 노라는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무청장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지.”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먼저 자리에 앉은 것은 에단이었고, 뒤이어 카이루스와 일레나, 노라도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차와 케이크가 준비되었다.
에단의 시선은 카이루스에게 한동안 집중되어 있다가, 이내 일레나에게 향했다.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구나. 검을 들고 있기에 아까울 정도야.”
“그런가요.”
일레나는 에단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직 견습기사에 머물러 있다고 들었는데.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곳을 보는 편이 현명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레나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다른 길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일레나의 실력은 에단이 알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과거의 일레나라면 지금의 일레나를 상대하기 위해 50명은 달려들어야 할 거다.
“저 친구가 도움이 좀 되었나보지.”
“도움이 된 정도가 아니에요. 지금이라면 아드님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레나의 말에 에단이 하하하, 하고 웃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레나의 성장속도는 원래의 재능에 더불어 온갖 경험, 그리고 카이루스의 지도를 통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치고 올라왔으니까.
“바깥바람이 좋긴 하구나. 농담도 늘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루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세상이 넓다는 걸 모릅니다. 기왕 말씀을 꺼내셨으니, 한번 가르침을 내려주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일레나와 대련을 해보라는 뜻이었다. 물론, 그 속내는 약간 다르다.
‘싸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어느 정도 실력인지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는 게 카이루스의 계산이었다.
“찾아온 목적은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부수적인 목적도 하나 달성하면 즐겁지 않을까요. 찾아온 목적은 간단합니다.”
카이루스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집하신 물건들 중에 페더윙의 유산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한 번 견식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바셀라의 창술을 경험해 보고 싶다던 건 핑계였나? …그나저나, 이쪽은?”
카이루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에단이 노라를 바라봤다.
“함께 일하는 동료입니다.”
노라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제국 귀족들의 예법은 아니었다. 베넷 시의 사람이라고 간주한 에단은 이내 관심을 끊었다.
카이루스라는 범죄자와 얽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자가 더 추가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저는 질문에 대답을 해드렸는데, 제 질문에는 언제 대답해 주실지 궁금하네요.”
카이루스의 말에 에단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어지기 마련이라지. 가문에서 오랜 세월 노력해 모아놓은 것들을 외부인에게 선뜻 공개하고 싶지는 않은데.”
길게 말했지만 요점은 거절이다.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면전에서 거절당했지만, 카이루스는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하고 있었다.
곳간 문 열어달라는 말에 ‘그래! 열어줄게!’라고 말할 리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제가 왜 재무청장님과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베넷 시의 범죄자 새끼 주제에.”
카이루스의 말에 살짝 날이 서 있는 걸 느낀 에단이 곧바로 대답했다.
“나도 그게 궁금하긴 했었지.”
“돈이 되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제 목적도 이룰 수 있었거든요.”
카이루스는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어지기 마련이라고 하셨는데,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페더윙의 유산을 확인해보고, 있다면 제가 가지고 싶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지불하겠습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에단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번 거절했네. 천금을 준다 해도 거래를 할 생각은 없으니 그리 알고 있게.”
이렇게 비협조적인 대화가 오가는 중인데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수는 없다. 침묵 속에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고, 찻잔이 달그락거리고 포크가 접시를 건드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우리, 소유 자격에 대해서 한번 말해볼까요.”
이대로 계속 부드럽게 나가면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자격이라니, 우리 가문이 찾아내서 수집한 물건이네. 무슨 자격을 논하겠다는 말인가.”
“지킬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빼앗기기 마련이잖습니까.”
카이루스의 말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을 내려진 에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고 싶은 말은 짐작이 되는데. 다음에 이어질 말은 조심하지.”
“제가 싸우면 이길 것 같은데, 여기에 페더윙의 유산이 있다면 양보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카이루스는, 에단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 말을 조금의 여과 없이 그대로 던져버렸다.
한마디로 에단을 두 번이나 무시한 셈이다. 주먹을 꽉 쥔 채 잠깐 몸을 떨던 에단이 이내 숨을 푹 내쉰 다음 말했다.
“의도는 알고 있어. 그리고 나는 그런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라네.”
그 말에 카이루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요. 술자리에서 떠들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
어거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표정을 풀고 있던 에단은, 카이루스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떠들 이야기라니.”
“바셀라 가문의 가주가 한 판 붙자는 말에 꼬리를 말고 대결을 회피했다. 꽤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아니겠습니까.”
베넷 시의 범죄자가 시비를 걸었는데, 응징하기는커녕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공명심이 강한 에단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소문이었다. 그가 지금껏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보내온 시간과 노력이 훼손당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 어디 기사단 소속의 이름 높은 기사도 아니다. 베넷 시의 범죄자 따위가 걸어오는 시비를 회피했다는 소문은 분명히 가문의 위세에 치명적인 손해를 불러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