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깨끔발 (1)
이딴 걸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사들은 지치고 병든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 녀석이 다시 온다. 이번에는 멈출까, 아니면 멈추지 않고 지나갈까?
지옥같은 이지선다. 방진을 이루어 전력으로 출력을 끌어올리면 카이루스는 이를 눈치채고 비행을 멈춘 다음, 제풍으로 방진을 무너뜨리고 돌격한다.
이게 싫어서 방진을 이룬 상태로 출력을 아끼면, 이번에는 그냥 들이받아서 방진을 박살 낸다.
‘일단 죽은 사람은 없군.’
저들이 고민에 빠진 사이, 카이루스도 적들의 상태를 파악 중이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싸울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계속할까?!”
이번에는 제풍도, 돌격도 없었다. 착륙한 카이루스는 농조연운의 출력을 줄이며 녀석들을 향해 외쳤다.
지친 표정의 기사들이 서로의 몰골을 살핀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진 녀석, 팔이나 다리가 요상한 방향으로 꺾인 녀석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흙투성이가 된 채 피로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도 보인다. 다리가 떨리는 꼴이 막 태어난 사슴 같다.
“계속한다면, 지금부터는 사람이 죽을 거다.”
카이루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명백한 경고였고, 최초의 조우와는 달리 이번에는 기사들도 저 경고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여기에서 계속하면….’
죽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게 자신이 될 수도 있고, 같은 기사단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전우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제미니에게 향한다. 제미니 또한 그 시선을 느끼고 있다. 명백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시선이었다.
‘항복을 선언해라.’
자신들이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분명하다.
‘네가 주도한 일이니 책임 또한 너에게 있다.’
이 자리에서 항복을 선언해야 하는 것은 제미니다. 여기에서 만약 더 고집을 피운다면, 그때는 기사들이 각자 항복을 선언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카이루스는 이들의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차기 기사단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충실히 평판과 실력을 쌓아올린 제미니였지만, 잘못된 선택 한 번에 자신의 행동에도 책임지지 못하는 머저리가 되어버리는 거다.
“항복… 하겠다.”
카이루스는 미소를 지은 채 허공에 검을 휙 한 번 휘두른 다음 집어넣었다.
“처음부터 이러면 얼마나 좋았겠어. 다치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제미니는 카이루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농조연운이 너무 강했던 거다. 그게 제미니가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순수한 실력으로만 따지자면 자신이 질 리가 없다. 제미니로서는 당연히 할 법한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실력이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배틀기어더군. 가문의 상징이라고 할 만해.”
그 말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카이루스가 모를 리 없었다. 카이루스는 하하하, 하고 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너는 일레나도 못 이겨.”
카이루스의 말에 기사들 중 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레나? 일레나 캘로그를 말하는 건가. 그녀는 견습기사야.”
이 많은 기사들 중 적엽기사단 소속이 없는 게 더 이상하다. 저렇게 반응한 기사는 일레나 캘로그를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일레나 캘로그는 카이루스와 만나기 전의 일레나다.
“애초에 배틀기어를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몰라서 타임렉이 있을 정도인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루스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적엽기사단 안에서 일레나 캘로그에 대한 평판은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걔도 고생하면서 살았구만.’
원하지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기사단에 입단했지만, 인정받지는 못했다. 긴 타임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장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뜻이니까.
“내 평가가 틀렸을 가능성은 낮은데.”
이런 걸로 말싸움하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다. 카이루스는 짧게 한마디 한 다음 다시 주제를 바꿨다.
“그리고 제미니라고 했나? 스스로의 실력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 보이는데, 그 정도로 뛰어난 건 아니고.”
제미니의 몸이 순간 움찔한다. 항복을 선언한 이상, 카이루스의 말에 불만이 있다 해도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질 수는 없다. 어쨌든 좋은 배틀기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실력의 척도 중 하나니까.
“꼬리깃은 준비해두지. 우리가 패배했으니 네가 가져도 좋다.”
누가 들으면 카이루스가 꼬리깃을 빼앗기라도 하는 것 같다. 사실, 빼앗는 게 맞긴 하다.
정당하게 돈 주고 산 물건을 카이루스가 원래 자기 물건이라고 주장하며 가져가는 거니까. 당하는 입장에서는 강도가 따로 없지.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건 원래 강자뿐이다.
“왜, 배틀기어 공평하게 하고 한 판 싸워볼까?”
여전히 불만이 있어 보이는 제미니에게 카이루스가 슬쩍 제안을 던졌다.
“그래준다면!”
제미니가 살벌하게 눈을 빛내며 카이루스를 향해 외쳤다. 카이루스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왜? 억울하면 배틀기어 새로 장만하던가.”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루스가 그래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하지만, 카이루스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내가 이겨.’
조건이 같아도 카이루스가 제미니에게 질 가능성은 없다. 물론 제미니는 실력이 일천하기에 모르겠지만, 더 높은 곳에 있는 카이루스는 알고 있다.
배틀기어의 조건이 같다고 했을 때, 카이루스가 질 확률이 있는 건 지금의 일레나 또는 노라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마 4할 정도의 확률.
하지만, 일레나는 완전히 카이루스 편이고 노라는 루나시커 소속이니까.
만약, 두 명이 손잡고 달려들면 카이루스도 자신 없다. 물론 농조연운이 없다는 전제하에.
“꼬리깃이나 빨리 가져와.”
이 자리에서 카이루스는 기사단의 젊은 피 70명을 맞이해서 아주 가지고 놀았다.
원하는 것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공장에 들어가서 꼬리깃을 빼내는 것보다 훨씬 확실하면서도 빠른 방법이었다.
여기에서 딱 끝나주었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카이루스 페더윙, 맞나? 안녕!”
대답 대신, 카이루스는 허리를 확 뒤틀며 농조연운을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농조연운과 격돌한 것은….
‘신발? 이런 신발.’
금색 버클로 장식된 신발이었다. 카이루스는 분사음과 함께 뒤로 쭉 빠졌다.
카이루스를 공격한 건 새하얀 단발의 여성이다.
“단… 장님?!”
제미니의 눈에 순간적으로 희망이 차올랐다. 그리고, 카이루스의 표정은 살짝 구겨졌다.
백로기사단 소속이 단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으니까.
“도로시 에버그린.”
기사단장들은 다들 유명하기에, 카이루스도 알고 있다. 주먹은 쓰지 않고, 다리만 사용하는 변태 같은 전투법을 고수하는 여자.
신발 주변에는 새까만 균열이 만들어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불길해보인다. 그런 주제에 면상은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것처럼 느긋하다.
“젊은 친구, 황명이야~ 내용은… 말하지 말라고 했었던가?”
순간 카이루스는 움찔했다. 순간적으로 분노할 뻔했지만, 이내 카이루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 같은 평민에게까지 황제 폐하의 자비가 닿을 줄은 몰랐습니다.”
눈앞에 황제는 없다. 황제라는 단어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키면 그건 이미 복수심이 아니라 정신병의 영역이다.
“그으래. 그래. 어쩌고저쩌고.”
그 순간, 카이루스는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전력을 다하라고 했으니, 당연히 전력을 다하기 위함이다.
상대는 기사단장이었다. 방금 전처럼 장난 같은 개수작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안 돼용.”
상대는 기사단장이었다. 날아오르려 하는 카이루스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팍! 하는 파공음과 함께 발차기가 카이루스의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든다. 발끝을 바짝 세운, 찌르기를 닮은 한 방이었다.
급하게 방향을 전환해 공격을 피하려는 순간, 카이루스의 목에 도로시의 다리가 뱀처럼 감겨든다.
곧이어 도로시가 자기 다리의 발목을 손으로 꽉 붙잡자, 그녀의 다리가 자물쇠처럼 카이루스의 목을 잠궈버렸다.
“어때? 이러면 다들 좋아 죽던데.”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남아있는 그녀의 다리가 카이루스의 관자놀이를 향해 무릎차기를 때려박았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카이루스의 몸이 순간 휘청한다. 바위 정도는 한 방에 아작 낼 수 있는 일격이었지만, 농조연운의 출력으로 어찌저찌 버틸 수는 있었다.
“좋아 죽는다고? 이건 그냥 죽겠는데….”
반격을 하기도 전에 도로시는 양 허벅지로 카이루스의 머리를 꽉 붙잡고, 몸을 뒤집으며 그를 땅으로 집어던졌다.
날아오르던 카이루스가 땅으로 추락한다. 카이루스는 땅에 머리가 닿기 전 낙법에 성공했다.
충격을 흡수하자마자, 카이루스는 검을 들어올렸다. 도로시의 내려찍기가 농조연운과 충돌하며, 카이루스가 디딘 땅이 푹 파였다.
“다리가 굉장히 예쁘시네요.”
“고마워. 난 무기도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예쁜 게 좋잖아?”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도로시를 밀어내려는 순간, 카이루스의 뒷목에 뭔가 느껴졌다. 카이루스는 동작을 멈췄다.
도로시의 발등이 카이루스의 뒷머리에 무슨 갈고리처럼 걸려있었다. 이대로 밀어냈다면 카이루스는 자기 힘으로 자신의 몸을 미는 꼴이 되었을 거다.
“아쉬워라.”
여전히 발등은 카이루스의 뒷목에 걸려있다. 도로시는 그 다리를 당기며, 다른 다리를 쭉 뻗었다.
신발 밑창이 카이루스의 코앞까지 다가온다. 그 순간, 카이루스는 머리를 확 앞으로 떠밀며, 이마로 신발 밑창을 들이받았다.
충격량이 최대가 되기 전에, 역으로 밀어낸 거다.
충격파와 함께 도로시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날아간 도로시는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몇 번 튕기더니, 자세를 바로잡고 착지했다.
“….”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린 채, 왼쪽 다리로만 서 있다. 들어올린 오른쪽 다리는 완전히 힘을 빼서, 무슨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다.
그런 주제에 왼쪽 다리는 땅에 무슨 박아넣기라도 한 것처럼 굳건하다.
“안 오나? 날아오르는 거 말고는 재주가 없는 건가….”
대답 대신, 터빈음과 함께 카이루스가 쏘아져나갔다. 광풍이 불어닥치며 카이루스의 검이 쉬지 않고 도로시를 노린다.
방금 전까지 피곤한 표정이던 도로시도 표정을 굳힌 채 다리를 움직인다.
도로시는 왼다리를 쓸 생각이 없어보인다. 들어올린 오른다리만을 이용해 카이루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별명이 왜 그런가 했더니.”
백로기사단장, 깨끔발 도로시.
붉은혜성이나 취우검과는 달리, 좀 없어보이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방심하는 게 아니야.’
도로시는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다.
고속으로 날아드는 오른발차기는 한 방 한 방이 공성추처럼 무겁지만,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이 쏟아내는 화살처럼 빠르다.
“….”
하지만 카이루스의 시선은 폭풍 같은 연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내고 있는 오른발보다, 왼쪽 다리에 더 신경을 집중하는 중이다.
‘한 방은 저거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타탁, 하는 소리와 함께 도로시의 오른다리가 땅으로 내려오고 왼다리가 들어올려진다.
충격을 대비하며 몸에 힘을 끌어올리는 순간.
“?!”
다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올렸던 왼다리가 내려가며 오른다리가 카이루스의 옆구리를 노리고 휘둘러진다.
검을 들어올려 막으려는 순간, 옆구리를 노리던 오른다리가 기묘한 각도를 그리며 카이루스의 무릎을 내려찍어버린다.
“아니 씨… 발!”
뭘 당한 거지? 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다시금 탁, 타탁 하면서 쉬지 않고 도로시의 양 다리가 들어올려지거나, 내려지기를 반복한다.
‘말려들었어.’
이 거리에서 이런 식으로 주도권을 빼앗기면 후상황이 좋을 수 없다.
카이루스는 강풍을 일으켜 도로시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벌렸다.
“아파? 그랬으면 좋겠네.”
뒤로 물러나면서 도로시가 왼다리를 땅에 박아넣고 그대로 차올렸다.
카이루스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돌조각을 무시하며 확신했다.
‘시선처리가 이상하잖아.’
당최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쉬지 않고 다리를 바꿔가며 페이크를 넣으니, 카이루스가 거기에 휘말려버린 거다.
“그래서, 이게 다 보여주신 겁니까?”
가만히 서 있는 도로시를 향해, 카이루스가 말했다. 몇 대 맞기는 했지만, 부상이라고 불릴 정도의 피해는 없었다.
카이루스의 말에 그녀가 살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