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진짜가짜 (1)
노라가 루나시커 요원들을 상대하는 동안, 카이루스와 일레나 또한 덴버 허드슨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길만 열어주면 된다니까?”
“내가 원하는 건 아내의 치료다.”
수백, 수천의 칼바람이 덴버 허드슨의 몸을 저며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어 카이루스를 향해 불타는 말뚝을 휘두른다.
그사이, 뒤로 돈 일레나가 덴버 허드슨의 뒤통수에 칼을 박아넣고 압축한 공기를 폭발시켜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미친.”
하지만, 그런 건 덴버 허드슨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터져나간 머리통의 파편이 다시 회수되어 원래 형태를 갖춘다.
뒤이어 반격을 이어가는 일레나. 하지만, 덴버는 그 공격을 막지 않는다. 그냥 몸으로 받아내며 일레나를 공격한다.
“무슨 싸움이 이래?! 자기 할 일만 하는 게 어디 있어!”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는다. 벽을 보고 싸우는 기분이다. 일레나는 그제서야 카이루스가 이전에 말했던 ‘두 명이서는 조금 힘들 수 있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덴버 허드슨은 다나 왓슨보다 약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나와 카이루스를 혼자서 막아 낼 수 있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상관없다.”
덴버의 손에 쥐어진 숯덩이에서 새빨간 불티가 흘러내린다.
“나는 무너지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는다.”
황제에게 향하는 길은 덴버 허드슨이 비켜주지 않는다면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덴버 허드슨을 옆으로 비키게 만드는 열쇠는 리리아나다.
‘가지고는 있는데.’
저들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야만 한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계속 의미 없는 싸움을 이어 갈 수밖에 없다.
“씨발 새끼.”
불타는 숯말뚝의 찌르기를 칼날로 흘려낸 다음, 가슴에 검을 박아넣었다. 박살난 왕궁의 천장 너머에 펼쳐진 먹구름이 우렛소리와 함께 벼락을 쏟아냈다.
가슴에 검이 박힌 채, 벼락을 연타로 얻어맞은 덴버의 몸이 잠깐 움찔거리더니, 이내 다시 움직인다.
“내가 한 번…!”
일레나가 크게 휘두른 대검이 덴버의 허리를 동강냈다. 잘려나간 덴버의 상반신이 일레나를 노리고 말뚝을 내지른다.
“지독한 새끼.”
일레나와 카이루스의 합공을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다. 덴버는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죽음을 맞이했다.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죽음이 덴버 허드슨에게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버 허드슨은 묵묵히 견뎌낸다.
“두들겨라. 의미 없으니.”
아침에 시작된 싸움이 저녁을 넘어 밤어귀까지 진행되었다. 오히려 이쯤 되면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조금 지칠 지경이다.
“아직까지도 아내를 확보했다는 연락은 오지 않는 모양이지?”
카이루스의 말에 덴버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숯말뚝을 바닥에 세워놓고 그를 응시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긴 했다.”
성공했다면 진작에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리리아나의 회수에 성공했다는 식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황궁에 전화선은 깔려있겠지? 우리 사무실에 연락해서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데.”
슬쩍, 일레나가 덴버에게 제안했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는 것은, 카이루스와 일레나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는 중이라는 뜻이니까.
“다연 대왕국에서 신약이 개발 중이다.”
“나도 알고 있다.”
다른 일도 아닌, 아내의 치료에 대한 정보다. 덴버 허드슨이 다연 대왕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임상시험에 대해 모를 리 없다.
“곱게 길을 비켜주면, 해당 임상시험에 아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안배해두지.”
덴버 허드슨은 잠깐 고민한다.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일이 틀어졌다면 리리아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카이루스의 제안에 동의하는 것뿐이다.
“일단 확인부터 하지.”
“좋아. 나도 깔끔한 일처리를 선호하거든.”
카이루스는 순순히 덴버가 그의 사무실에 연락하는 동안 기다려주었다. 덴버는 황궁에 있는 전화를 통해 카이루스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고.
― 여보세요? 그러니까… 카이루스의 사무실입니다.
연락을 받은 사람은 노라였다. 그것만으로도 참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리리아나는 아직도 데리고 있나?”
덴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노라가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 루나시커 요원들이 찾아왔었는데. 제국의 황제가 저지른 일이라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새끼.
자신을 지키는 호국경의 아내를 외국, 그것도 잠재적인 적국에 넘겨줄 생각이었다니. 노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덴버는 저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리리아나는….”
― 그 언니라면 내가 잘 데리고 있어. 예쁘더라, 동화에 나오는 잠든 공주님 같아.
노라의 말에 덴버 허드슨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계획은 그럴듯했다. 노라 갈라테아는 루나시커의 요원이고, 당연히 루나시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루나시커에서 리리아나를 거둬들이겠다고 말하면, 노라는 당연히 복종할 것이라 생각했다.
“너는 루나시커의 요원일 텐데. 지시에 복종하지 않는 건가? 루나시커의 이름을 버린 건가?”
― 나는 여전히 루나시커야. 약간 별종이긴 하지만.
지시에 복종하는 대신, 나름의 방침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조직에 이득이 되는 방향을 제시한다.
유니아는 노라의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회사 사장이라면 가져야 할 덕목이니까.
― 요점은, 아저씨의 아내분을 내가 잘 데리고 있다는 점이고… 이후 협상은 카이루스 오빠와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겠네.
“네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면?”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 으음… 뭐가 좋을까. 그래. 아저씨만 알고 있는 아내의 비밀이 있어?
“몸에 화상자국이 있다.”
― 확인해볼게.
노라는 그렇게 말한 다음 잠깐 자리를 비웠다.
― 아저씨, 그런 거 없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장난치는 거야?
그 대답을 들은 덴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노라가 아내를 아직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걸로 증명된 셈이다.
이 이상 대화를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덴버는 통화를 마친 다음 카이루스 앞에 섰다.
“대답은?”
덴버는 손에 쥐고 있던 숯말뚝을 집어던진 다음, 옆으로 물러났다.
“다연 대왕국의 임상시험, 지켜라.”
“걱정할 필요 없어. 난 필립 4세랑 다르거든.”
덴버는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다. 카이루스는 드디어 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문짝을 열어젖힐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두껍네.”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는 은백색 금속문에 의해 막혀있다. 카이루스는 잠깐 그 문을 바라보다가 손등으로 한 번 때려봤다.
소리가 퍼져나가는 꼴을 보아하니,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문짝이다.
“명멸로 하면 얼마나 걸리려나.”
카이루스는 문짝에 명멸을 박아넣고 약 10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제외.
“아니, 장난하나.”
명멸이 제외시킨 부분 너머로, 금속판이 하나 더 준비되어 있었다. 카이루스는 얼굴을 구긴 채 덴버를 바라봤다.
“저런 격벽 15개가 더 있다.”
“좋아.”
카이루스는 명멸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런 구조라면 명멸로 통과할 수 없다. 제외시킨 너머에 또다시 격벽이 있는 구조니까.
그냥 때려부숴야 한다. 카이루스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농조연운의 출력을 끌어올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일레나 또한 에인젤린의 해답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쾅거리는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은 열심히 격벽을 부쉈다.
“헤엑… 헥….”
몇 시간에 걸친 대작업이었다. 최초의 계획과는 달리 하나하나 격벽을 모조리 부숴가며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지하로 나아갔다.
마침내, 마지막 격벽까지 박살내는 데 성공한 카이루스는 그 너머를 바라봤다.
“씹새끼.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켜?”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지만, 더더욱 죽이고 싶은 생각이 강렬해졌다. 카이루스는 살의를 불태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야! 어딨냐!”
예의 같은 건 필요 없다. 이미 역적놈이니까. 강도가 피해자에게 존대를 써주는 경우는 드무니까.
“…왔군.”
어두운 공간 안에 희미하게 촛불이 하나 켜졌다. 중년 남성이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바라보고 있다.
입고 있는 복장과 머리에 쓴 왕관은 이 남자가 카이루스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필립 4세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카이루스 페더윙, 일레나 캘로그.”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이제 어쩔 작정이지?”
“목소리를 떠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잖아.”
카이루스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슥 쓸어내며 황제에게 다가갔다. 필립 4세. 페더윙에 누명을 씌우고 멸문시킨 원수.
그게 바로 눈앞에 있다. 손을 뻗어서 목을 꺾으면, 황제는 저항하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다. 발로른의 드넓은 땅의 주인은 그렇게나 쉽게 끝나게 된다.
한동안, 카이루스는 녀석의 눈을 바라봤다. 한참 눈을 마주치고 있던 카이루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야, 옥새 꺼내봐. 한번 구경이나 하자.”
“….”
눈앞에 서 있는 필립 4세가 가만히 카이루스를 응시했다. 그 눈은, 조금 더 떨리고 있었다.
잠깐 동안 대답을 기다려주던 카이루스는 작게 한숨을 쉰 다음 말했다.
“없지? 황제가 챙겨갔을 테니.”
“카이루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일레나가 카이루스를 향해 질문했다. 그리고 잠시 뒤, 카이루스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몸을 흠칫했다.
이 새끼는 황제가 준비해둔 가짜다. 카이루스는 녀석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핀 다음 말했다.
“시술이냐? 기깔나게 잘 되었네.”
뼈를 깎고 피부를 갈아치운 모양이다. 아마, 이런 대타가 준비되어 있다는 건 덴버 허드슨도 몰랐을 거다. 카이루스가 복수를 마쳤다는 생각에 만족하고 돌아가버리면, 때를 노려 다시 복권할 생각이었겠지.
‘그러니 옥새를 챙긴 거야.’
그게 있어야 자신이 진짜 황제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날… 날 죽여라.”
카이루스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녀석의 등을 탁탁 두들겼다.
“연기 잘하던데. 교육도 따로 받았겠지?”
황제를 연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교육받아서 황제로서의 행동거지나 황궁에서 지켜야 하는 법도 같은 것들을 달달 익혔으리라.
“…긴 시간 자리를 비울 것도 대비해 국정운영도 교육받았다.”
상상 이상이다.
카이루스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더 진해졌다.
“그렇단 말이지.”
카이루스는 벽에 기댄 채 잠깐 지하대피소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 진짜 황제 한번 해볼 생각 없냐?”
핵심은 옥새다. 황제가 챙겨간 옥새만 찾아내면, 눈앞에 있는 이 가짜가 진짜가 된다.
그리고, 카이루스와 일레나의 가문을 멸망시킨 진짜 황제는 가짜 황제가 된다.
“….”
“네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협박이건,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실수를 저질렀건. 어쨌든 여기에 있으면 카이루스에게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제 연기를 했다.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카이루스의 알 바는 아니다. 사실, 눈 앞에 있는 가짜 필립 4세의 원래 이름이 뭔지도 안 궁금하다.
“내가 옥새를 찾아서 너에게 주마.”
“…그게, 무슨.”
가짜 황제는 카이루스의 말에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