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
31화 금, 그리고 더 좋은 것 (2)
* * *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카이루스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세인트 드빌로 향했다. 그래서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차에 금괴를 챙겨서 제3 바실카 대교로 갈 거예요.”
타냐의 말에 카이루스는 그녀를 바라봤다. 바실카 강에는 다리가 다섯 개 있다. 제3 바실카 대교는 그중 하나다.
“그래서?”
“저희가 도착하면 강 아래에 상자를 던져버리는 거죠!”
카이루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강물에 금괴를 던져버릴 거라고?
“우리 계획이 금괴 강탈에서 금괴 유기로 변한 게 아니라면, 더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게 좋을거야.”
금덩이는 무겁다. 강에 던지면 당연히 강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금을 강물에 던지는 순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잔다라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사슬로 묶어 다리 아래로 늘어뜨려 두면 다리 아래로 배가 지나갈 예정이다.”
이제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네. 바실카 대교는 여기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모든 강은 바다로 향한다. 바실카 강도 예외는 아니다. 바다와 이어져 있다면 바다를 통해 안타리아 대운하에 도착할 수 있다.
제국에서 쥐어 짜낸 신민의 세금은 안타리아 대운하를 통해 베넷 시로 들어올 것이다.
“이후, 우리는 그 매력적인 금빛 반짝이들을 나눠가지면 된다는 거지.”
열심히 열차칸의 잠금장치를 쪼물딱거리던 다니엘이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육중하기 짝이 없던 문이 끼릭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서서히 열린다.
“역시, 괜히 아이란 공화국의 집행관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군.”
원래 공무원은 공무만 제외하면 나머지 일은 전부 다 잘한다는 시니컬한 농담도 있다. 금괴가 들어있는 열차칸으로 진입하는 문이 열렸다.
“금고째 뜯어낼 수는 없겠네.”
금괴를 보관하고 있는 케이스는 기차와 일체화된 붙박이 장롱 같은 형태다. 케이스째 옮기려면 기차칸을 통째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때려부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검을 들어올린 카이루스가 금괴를 보관 중인 케이스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케이스에는 흠집만 약간 생겼을 뿐이다.
“세상에,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내구도에만 집중했군.”
카이루스는 약간 욱신거리는 손목을 휙휙 흔들며 감탄했다. 색유리도 좋은 검이지만, 이걸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무게나 강성, 연성의 균형 따위는 아예 포기하고 그냥 무지막지하게 튼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낸 합금이니까.
봄달래가 제안한 것처럼 이 금고를 녹여버린 다음 안에 들어있는 금괴를 챙기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이게 그 문제의 화물인가? 사이즈가 별로 크지 않은데….”
잔다라가 다소 실망한 어투로 질문했고, 그에 대한 대답을 카이루스가 했다.
“금괴니까.”
금은 부피 대비 무게가 어마어마한 물건이다. 카이루스는 금괴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 정도 크기의 상자 안에 들어있는 금이라면….”
적어도 1.5t에서 2t 사이다. 봄달래가 말했던 금액보다 약간 더 많은 수준이다.
하지만 장물은 제 가격을 받기 힘드니까, 현재 금 시세를 그대로 받아 낼 수는 없을 거다. 잘 쳐줘도 1/3 정도의 가격을 받는 게 고작이겠지.
게다가 지금은 발로른 제국의 인증이 새겨져 있는 표준 금괴지만… 보관 케이스를 녹이는 과정에서 안의 금도 같이 녹을 거다. 그러면 새겨진 인증도 같이 녹아내린다.
인증이 녹아내린 금괴들의 값어치는 더 떨어지겠지. 하지만 그런 모든 요소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한 돈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거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곧바로 타냐가 챙겨왔던 다연 대왕국의 특제 발화 가루를 꺼내들었다.
“다루는 법은 알아?”
카이루스의 걱정 어린 한마디에 곧바로 타냐가 대답했다.
“걱정이 너무 많으시네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그분이 당신이 걷기에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실 거예요.”
“찬미 이테라.”
카이루스가 질린 표정으로 대충 성호 긋는 시늉을 했다. 그걸 본 타냐가 곧바로 정성스럽게 성호를 그은 다음,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그 와중에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니, 성가다.
‘금고를 녹일 준비를 하며 성가를 부르다니 참 가관이구만.’
카이루스는 벽에 기댄 채 물로 목을 축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잠시 뒤, 타냐가 말했다.
“모두 시선을 돌리세요. 눈을 다칠 수도 있어요.”
타냐의 말에 에릭슨이 살짝 놀리는 태도로 말했다.
“아버지가 보호해주지 않는 모양이지?”
타냐가 부드러운 어조로 그런 에릭스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가 스스로 피할 수 있는 재난을 아버지의 힘으로 극복하려 드는 것은 제 아버지를 시험하려 드는 거예요.”
말을 마친 타냐가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금고에 부착한 덩어리에 불을 붙였다.
“와 씨.”
순식간에 기차칸 내부가 열기로 휩싸인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화염이 살벌한 소리를 내며 합금 상자를 녹여낸다.
이 정도 열기라면 합금도 충분히 녹일 수 있을 것 같다.
“분량 정확히 계산한 거 맞아?”
“전장에서 상처 입은 병사에게 투여하는 약재는 소량의 오차로도 치명적인 결과가 나와요.”
타냐는 전장에서 군인들을 치료하며 살아왔다. 그녀에게 있어 재료의 정확한 분량 조절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서히 불길이 잦아들었다.
“튼튼한 케이스가 진짜로 녹아내리네.”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시뻘겋게 녹아내린 케이스 너머에, 마찬가지로 형체가 흐물거리는 금이 보인다.
“제값 받을 수 있는 금괴는 절반 정도구만.”
“별 수 있나? 제대로 된 금괴를 얻고 싶으면 황궁에 가서 열쇠를 훔쳐와야 하잖아.”
당연히, 녹아내린 금과 녹아내린 케이스의 일부는 서로 뒤섞이고 있다. 그걸 바라보던 에릭슨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이러면 합금이 섞여서 순금은 아니게 된 거 아니야?”
“그거야 금을 사들인 놈들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지.”
섞인 금을 다시 순금으로 분리하는 방법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은 분명히 있을 거다.
“불만은 이쯤 해두고.”
기찻길은 카이루스가 분리한 기차칸들로 인해 막혔다. 추격자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제한 시간이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녹은 금을 빨리 식힐 만한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타냐의 말에 잔다라가 그녀를 툭 치고는 턱짓으로 기관실에서 바로 이어지는 기차칸을 가리켰다.
“아, 그렇지.”
기관실 바로 뒤편에 이어져 있는 건 석탄과 물을 적재한 탄수차다. 당연히 저 안에는 물이 잔뜩 들어있다. 저걸 이용해서 녹아내린 금을 빠르게 식힐 수 있을 거다.
“눌어붙은 금은?”
에릭슨의 질문에 카이루스가 검을 휙 하고 휘둘러 대답했다.
“방금 전 합금이라면 몰라도 금을 잘라내는 건 일도 아니야.”
금은 원래 무른 금속이라서 색유리를 휘두르면 순식간에 분리해 낼 수 있다.
카이루스가 다니엘을 바라봤다.
“저것도 딸 수 있어?”
다니엘이 탄수차의 잠금장치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 장난 수준이지. 조금만 있어보게.”
쿵, 하고 장비를 부착한 다음 다니엘이 잠금장치를 따기 시작한다.
“그냥 검 휘두르면 안 되는 거냐?”
에릭슨의 말에 타냐가 고개를 저은 다음 단호하게 말했다.
“물탱크 수압을 생각하세요.”
물로 얻어맞는다는 표현은 다소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한번 처맞아보면 더 이상 웃지 못할 거다.
어디 한 군데 부러졌거나, 아니면 죽었을 테니까. 다니엘이 잠금장치를 따는 걸 기다려야 한다.
“됐다. 기껏해야 석탄이랑 물 보관하는 곳이라 그런지 잠금장치도 별거 없군그래.”
다니엘이 순식간에 문을 따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카이루스를 포함한 강도 일행이 물을 퍼내 금과 합금이 뒤섞인 채 흘러내리는 곳에 물을 퍼부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이 수증기로 바뀐다.
카이루스는 후우, 하는 소리와 함께 손부채질을 했다.
“이거 완전 사우나가 따로 없는데.”
안 그래도 기차칸 안이 열기로 달궈져 있는데 거기에 더해 녹은 금속에 물까지 뿌리니 완전히 습식 사우나가 따로 없다.
“달군 금을 사용해 사우나를 하는 건 제국 황제도 못 해본 일이겠지?”
에릭슨의 말에 사람들이 작게 키들거린다. 뿜어지는 수증기 사이로, 녹아내린 형체를 유지한 채 단단하게 굳은 누런 금덩어리들이 보인다.
“황금 폭포네.”
녹아내리던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 황금덩이들은 자그마한 금빛 폭포 같다.
이 누런 금속 덩어리가 뿜어내는 빛에는 확실히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카이루스는 금광을 찾아낸 광부와도 같은 마음으로, 또는 다 익은 벼 이삭을 수확하는 농부와도 같은 마음으로 검을 휘둘러 금덩이를 채취한다.
“그아아아아아아! 진짜 더어럽게 무겁네!”
썰어낸 금덩이의 폭포는 당연히 그 찬란한 빛에 걸맞을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부지런히 금괴를 자동차로 옮겼다.
“그래서, 이게 굴러가긴 하는 거야?”
어림짐작해도 1톤은 넘어가는 무게의 금덩이들이다.
부피가 작으니 담을 수는 있지만, 자동차가 이 무게를 버티며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 제3 바실카 대교까지 거리는 그렇게 먼 편이 아니야. 다만 무게를 생각했을 때, 운전수를 제외하면 각자도생해야 할 것 같은데.”
운전을 담당하는 건 에릭슨이다. 즉, 에릭슨은 자기 혼자 차를 몰고 다리까지 가겠다는 거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단 에릭슨에게로 향하고, 그다음 카이루스에게 향했다.
지금까지 한 일을 미루어 보면, 이 현장의 지휘관 역할을 카이루스가 담당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거다.
“그거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겠군. 금괴 처리는 맡기지.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흩어진 다음, 자력으로 베넷 시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정작 카이루스는 별다른 고민 없이 시원스럽게 에릭슨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도 괜찮겠나?”
다니엘의 의심스럽다는 듯한 말에 카이루스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문제없잖아. 어차피 장미정원의 보증도 받아두었는데.”
“그래, 그래.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보증된 일에 똥탕을 치겠어?”
카이루스의 말에 곧바로 에릭슨이 동의한다. 대충 이후 해야 할 것들을 결정지은 카이루스가 툭 하고 자동차의 옆면을 친 다음 말했다.
“가자.”
“…응? 하지만 네가 자동차에 타면.”
카이루스는 에릭슨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너 혼자 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냥 달려서 따라가면 되거든.”
이미 카이루스는 노동교화소에서 나온 직후, 달려서 자동차를 따라잡는 기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
한 번 했는데 두 번 못 할 이유는 없지. 카이루스의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미치셨나요?”
심지어 타냐조차 카이루스에게 미쳤냐는 질문을 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에게 듣고 싶은 질문은 아닌데.”
질문을 던진 타냐는 카이루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말했다.
“아… 아버지,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버지의 딸이 입에 담으면 안 될 단어를 말하고야 말았어요.”
스스로를 신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자동차를 달려서 따라가겠다는 카이루스의 말은 개소리로 들렸다.
“아, 그냥 가라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카이루스의 말에 일단 에릭슨은 자동차에 기어를 넣었다. 어차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 건 카이루스였으니, 에릭슨이 잘못한 건 없는 셈이다.
“세상에.”
그리고, 사람들은 달리는 자동차를 질주하는 사람이 따라잡는 진풍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엔진음을 뿜어내며 나아가는 자동차 옆에서 카이루스는 달리고 있었다.
“전방 주시해.”
당연한 말이지만 차를 운전하고 있는 에릭슨의 시선은 차량 전방과 카이루스를 번갈아 바라보는 중이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어?’
달려서 자동차를 따라잡는 인간이라니.
카이루스가 죽였던 애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많이 흐려진 지금, 에릭슨은 자신이 저 괴물딱지에게 적의를 품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자식에게 덤빌 생각을 했던 걸까. 야지를 달리는 중이라 심각하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도 에릭슨은 멀미를 하거나 엉덩이의 통증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저 멀리 거대한 철교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