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
32화 퇴직
* * *
“운전 실력은 진짜 좋네.”
자동차 운전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크랭크축을 돌려 시동을 거는 단계에서 실패해버린다.
시동을 거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운데, 진짜 운전을 시작하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에릭슨 정도의 운전 실력이면 충분히 유명한 귀족가문 운전사로 고용될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원래 운전기사 출신일 수도 있지.
“봐, 내가 따라오길 잘했잖아.”
톤 단위의 금괴를 쇠사슬을 통해 다리에 걸어놓는 건 에릭슨 혼자 하기에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물론, 에릭슨은 확보한 금괴 전부를 쇠사슬에 걸어 다리 아래로 늘어뜨릴 생각은 없었다. 원래 계획은 따로 있었지만….
‘망할.’
하지만 혼자서 기사 다섯을 때려잡고, 달려서 자동차를 따라잡는 기인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데 금괴를 빼돌릴 용기는 에릭슨에게 없었다.
“이걸로 해야 할 일은 끝난 것 같은데.”
“그래.”
에릭슨은 그렇게 말하며 자동차 뒤에 달린 차량번호판을 능숙한 솜씨로 갈아끼웠다.
이제 이 강을 타고 움직이는 배가 와서 상자를 수거한 다음, 안타리아 대운하를 통해 베넷 시로 옮기면 된다.
즉, 여기에서 카이루스가 더 해야 할 일은 없다. 일을 마친 카이루스는 베넷 시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강도질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사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동안 할 일이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경험이긴 하다. 게다가 카이루스가 겪은 일을 보면 딱히 초심자의 운이 따랐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럼 고생했다. 어지간해서는 서로 볼 일 없으면 좋겠군.”
카이루스의 말에 에릭슨이 곧바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볼 일 없을 테니.”
카이루스는 순간 저 자식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했다.
저 말 바로 뒤에 ‘여기에서 죽을 테니까!’ 같은 소리를 덧붙이는 순간 훌륭한 협박으로 변하니까.
“젠장맞을 놈의 표정 좀 풀어. 오줌 쌀 것 같다!”
에릭슨은 슬쩍 뒤로 물러나며 급하게 말했다.
“너 같은 놈들이 나랑 어울리게 된 이유는 하나지. 아직 이름이 안 알려졌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카이루스가 해낸 일들에 대한 소문만 퍼져도 고용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닐 거다.
“인력사무실에서도 기공 대우는 해줄 거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더 자세히 말해봐.”
인력사무실은 뭐고 기공은 또 뭐야. 카이루스의 말에 에릭슨이 쯔, 하는 소리를 내고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카이루스는 베넷 시에 들어왔다고 해도 이 업계에 뛰어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히 이쪽 동네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원래 이 바닥 초짜들은 인력사무소를 통해 현장으로 향하는 게 보통이야.”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시공사에서 인력사무소로 전달하면, 인력사무소는 그날 나온 사람들 중 적당한 녀석들을 골라서 현장으로 보낸다.
베넷 시의 크고 작은 범죄들 중 도시 밖을 노리는 범죄들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더 세세하게 파고들면 시행자와 시공업자를 포함해 온갖 사람들이 달려들지만, 일단 카이루스가 꼭 알아둬야 하는 사실은 간단하다.
인력사무소에서 소개를 받아 현장에 가서 일한다.
“물론, 진짜 건축현장과는 좀 달라.”
보수 배분 방식도 진짜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기공이나 조공과는 달리 수익을 분배받는 형식이고, 보수도 어마어마하다.
저런 단어들을 사용하게 된 유래는 단순히 그들 중 몇몇이 자신들의 정체를 건축 관련 회사로 위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야 범죄니까 당연하겠지.”
카이루스의 말에 에릭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력사무소의 위치를 모르면 일을 받을 수 없고, 들어간다 해도 소개장이나 누군가의 추천이 필요하다.
조공으로 시작해서 경력을 쌓고 유명해지면 기공이 된다.
실력과 명성을 더 인정받으면 다른 기공들을 아래에 두고 활동하는 반장이 되기도 한다.
“쓸데없이 세밀하네.”
범죄가 생활인 놈들 아니라고 할까 봐. 어쨌든 카이루스에게도 상당히 흥미가 동하는 내용이었다.
가지고 있는 목표가 있기에 명성과 돈, 인맥 같은 건 필요한 상황인데, 그렇다고 어디에 속하려니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과 의무가 문제인 상황이었으니까.
‘딱 좋구만.’
근본적으로 프리랜서로서 일감을 받아 처리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분배받는다.
연달아 성공하거나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 데 성공하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명성이 따라온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나름의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겸업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에릭슨과 헤어진 다음 베넷 시로 향하며 카이루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겸업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나단과의 계약은 이미 겸업이 가능하도록 바꾸기도 했으니까.
“안 되겠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처음부터 롱웨이브 비스트로는 오랫동안 머무를 예정이었던 장소가 아니었다. 향후 방침이 정해지고, 나름의 정비가 끝나기 전까지 잠시 스쳐가는 장소였다.
게다가 조나단에게 분명히 민폐를 끼치게 될 거다.
“발로른 제국 재무청이 이 사건을 정정당당하게 처리할 이유는 없으니까.”
비리문서를 털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카이루스를 처리하려고 할 텐데, 공정한 대결 따위로 해결할 리가 없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테고, 그 과정에서 조나단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꼭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인연이 닿은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떠나야겠구나.”
카이루스는 그렇게 결심하고는 걸음을 서둘렀고, 며칠에 걸쳐 베넷 시로 복귀했다.
“다녀왔습니다. 문 고치셨네요?”
카이루스는 롱 웨이브 비스트로의 문을 열고 들어가 조나단에게 인사했다.
대답 대신, 휙 하고 앞치마와 수세미가 날아왔다.
“설거지가 쌓였어.”
“네, 저도 간만에 두령님 얼굴을 보니 참 좋습니다.”
인사 대신 날아온 앞치마를 입고 수세미를 손에 쥔 카이루스는 곧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조나단의 말대로, 부엌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설거지가 쌓여있었다.
“좀 치우고 사시지 그러셨습니까.”
조나단은 대답할 시간도 없이 거대한 솥 안의 스튜를 삽으로 휘젓고 있는 중이다.
“떠들 시간 있으면 반죽 좀 구워라.”
“계속 구울 테니 충분할 것 같으면 말하세요.”
카이루스는 빠르게 설거지를 이어가며 무쇠판 위에 닭껍질이나 비계 덩어리, 내장 따위를 던져넣었다.
불판 위에서 그 부산물들이 익으며 기름을 토해낸다.
카이루스는 커다란 고무통 안에 들어있는 물반죽으로 식사용 팬케이크를 말 그대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말이 팬케이크지, 그냥 소금으로 간하고 물을 많이 넣어 주르륵 흘러내리는 밀가루 반죽을 무쇠 프라이팬에 구운 거다.
메뉴를 시킨 사람들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식전빵 같은 거다.
“좋아, 이제 그만.”
약 1시간 정도 팬케이크를 찍어낸 다음 조나단이 카이루스에게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다.
“응? 아직 가게 문 닫으려면 시간 남았잖아요.”
“피곤해서 못해먹겠다.”
조나단은 그렇게 말하더니 행주에 대충 손을 닦은 다음 고개를 홀 쪽으로 내밀고 말했다.
“오늘 주문은 여기까지 받는다! 남은 거 다 먹고 나면 꺼져!”
잠깐 손님들이 궁시렁거렸지만, 조나단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너클을 슥 들어올리자, 모두가 조용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주인장! 술은?”
“술도! 아, 그리고 오늘은 피곤해서 빨리 끝내는 거니까 먹은 그릇은 너희들이 부엌으로 가져와라!”
조나단은 그렇게 말한 다음 카이루스를 향해 말했다.
“홀에 나가서 정리하고 있어.”
“넵.”
카이루스는 곧장 밖으로 나가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나단이 많이 피곤한 점과, 손님들이 조나단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주는 덕분에 카이루스는 홀 청소와 정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대충 다 끝난 것 같은데.”
이제 그릇만 마저 닦으면 정리될 것 같다.
강도질을 하고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애초에 그러기로 서로 합의한 거였다. 카이루스는 별다른 생각 없었다.
“…?”
턱턱, 하고 테이블 중 하나에 조나단이 음식이 담긴 접시와 술잔을 꺼내놓는다.
대충 봐도 커다란 접시 8개에 각각 다른 종류의 음식들이 가득가득 담겨있다.
“갑자기 왜 빨리 끝내나 했더니, 누가 예약을 해뒀던 모양이네요.”
카이루스의 말에 조나단이 대답했다.
“예약은 무슨 놈의 예약.”
조나단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앉더니,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어. 가기 전에 밥이나 한 끼 먹여 보낼라니까.”
“네?”
조나단은 카이루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베넷 시에서 밥집 한 게 벌써 몇 년째인지 아냐? 떠날 놈이 떠날 때가 되면 바로 눈치를 까게 된단 말이다.”
조나단의 말에 카이루스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그게 또 티가 난 모양이네요.”
카이루스의 말에 조나단이 대답했다.
“네 상황을 보면 답이 나왔을 뿐이다. 어제 즈음 도착한 다른 녀석들 덕분에 소문이 쫙 퍼졌어.”
조나단은 마주 앉은 카이루스의 잔에 맥주를 채우며 말했다.
“기사 다섯을 작살냈고, 그중 하나가 수훈기사였다지.”
“뭐, 수훈기사라고 해도 다 같은 수훈기사는 아니니까요.”
카이루스의 말에 조나단이 병 하나를 꺼냈다.
“이건.”
“밥집 하면서 생기는 노하우라고는 식재료 구하는 재주뿐이더라.”
세인트 드빌에서 생산된 피나무 꿀이었다. 정확히는 생산되었던 꿀이라고 해야겠지.
“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베넷 시에서 돈 내고 못 구하는 건 거의 없어. 무슨 한정판 술 같은 것도 아니고 꿀이라면 웃돈 적당히 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지.”
조나단은 그렇게 말하고 꿀이 담긴 통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선물로 줄 건 한 통 더 남겨놨다.”
카이루스는 가만히 통을 바라보다가, 준비된 빵 위에 꿀을 약간 올렸다. 피나무 꿀은 굉장히 농후해서 잘 흘러내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잼처럼 떠서 바를 수도 있다. 카이루스는 빵을 한 입 먹고 말했다.
“기억하고 있던 맛이네요.”
“그러냐? 너무 달아서 이가 빠질 것 같던데.”
그 말에는 카이루스도 동감한다.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강렬한 단맛이다.
하지만 단맛이 그토록 강렬하기에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카이루스의 기억에 남아있을 수 있었고, 즐겁던 어린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물건이 될 수 있었던 거다.
노동교화소에 있을 때도 이 꿀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원래 못 먹고 고달픈 시간을 보내면 몸이 단맛을 원하는 법이니까.
“감사합니다.”
카이루스는 감사 인사를 하고, 조나단과 함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감사는 개뿔. 이전에 구해준 내 목숨값이라고 생각해라.”
조나단은 카이루스가 떠날 것을 예상하고 이 자리와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그렇다면 마련된 자리에서 잘 먹고 잘 마시는 게 카이루스가 할 일이다.
술자리는 꽤나 길게 이어졌다. 조나단은 말술이었다. 카이루스 같은 경우에는 노동교화소에서 프루노로 단련된 간이 있다.
거기에 더해 조나단의 요리실력은 굉장히 훌륭하니까.
“그렇다고 뭐 쌩까지는 않겠지.”
“생각 날 때 밥이나 가끔 먹으러 오겠습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앞으로 할 일이 뭐냐?”
그 질문에 카이루스는 픽 웃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걸 마치고 나면 인력사무소에 나가보려고 합니다.”
조나단이 등유램프에서 하늘거리는 조명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고양이 찾아주고 실종된 사람 찾아주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은 그런 카이루스를 보며 짧게 한마디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일이 있다면 처음 갔을 때부터 사장에게 확실하게 말해둬라.”
카이루스는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조나단을 바라봤다.
“현장을 본 다음 하기 싫다고 하면 늦어.”
하겠다고 온 주제에 그때 가서 안 하겠다고 하면 온갖 소리를 다 듣게 될 거다. 게다가 카이루스를 소개해준 인력사무소에도 피해가 간다.
그런 일이 몇 번 생기고 나면 인력사무소에서 일을 주지 않게 된다.
“원래 노동교화소 출신이라고 했지? 일하면서 만나는 상황은 옛날 경험 생각하며 대처하면 될 거다.”
“어려울 건 없겠네요.”
카이루스는 커다란 접시 위에 올려진 고깃덩어리를 썰어 앞접시에 덜어낸 다음 대답했다.
결국 얕보이면 안 된다는 단 하나의 진리는 어딜 가도 똑같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뭐, 하겠다는 이야기는 대충 알아먹겠는데 인력사무소 찾아가는 길은 아냐? 참고로 난 몰라.”
조나단의 모른다는 말에 카이루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제 떠날 놈이 어떻게 또 두령님 신세를 지겠습니까.”
게다가, 곧장 인력사무소를 찾아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제법 있다.
새벽 4시 즈음이 되어서 술자리가 끝났다. 조나단은 하품을 한 다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