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캘로그 저택 (2)
* * *
카이루스는 집사의 안내에 따라 본관에 마련된 방으로 향했다.
“그럼, 잠시 쉬고 계시지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인사를 마치고 집사가 돌아갔다. 카이루스는 의자에 앉은 채 주변을 살폈다.
‘바로 옆 방이라.’
오해 한번 확실하게 한 모양이다. 사실, 카이루스가 일부러 조장한 것도 있긴 하다.
“일레나가 자기 아버지에게 나와의 관계를 말할 수도 있긴 하지만.”
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겠지.
사실, 털겠다고 정한 저택의 정문으로 떡하니 걸어들어와서 방까지 잡고 하인들 시중받으며 도둑질을 할 수 있는 이 상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유리한 거다.
“도미닉 랜돌프 님. 가주님께서 잠시 만남을 요청하셨습니다.”
현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시미드 캘로그가 카이루스를 호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랜만에 집에 온 외동딸이 옆에 남자를 하나 끼고 왔다는데 어떤 놈팽이 새끼인지 확인해보지도 않는다고?
일레나가 수양딸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카이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가지. 안내하게.”
“네, 응접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레나와 시미드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카이루스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다가가 시미드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재무청장님.”
사실, 시미드는 예전에 카이루스를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시미드는 카이루스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냥 6년이 지난 게 아니다. 소년 시절을 노동교화소에서 날려먹은 셈이다.
“…자네로군.”
시미드는 다소 불쾌한 것 같은 표정으로 카이루스를 이리저리 훑는다. 시선에는 의문 대신 약간의 적의가 느껴진다.
자기 딸에게 붙어먹는 데 성공한 놈팽이를 향한 적대심이다.
딸을 가진 아비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적대심이니, 카이루스도 불만이 없었다.
“이 아이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네. 문제가 있는데, 자네가 그걸 고쳐 줄 수 있다지?”
아무래도 일레나가 솔직하게 자기 아버지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은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이런 대답은 고민하면 상대의 의심을 사게 된다. 카이루스는 곧장, 선선히 대답했다.
잠깐 카이루스를 바라보던 시미드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또한, 이번에 딸아이가 자택으로 오는 길에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자네의 도움으로 곤경을 벗어났다고 들었네.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전하지.”
자칫 잘못하면 강간당할 뻔한 딸을 카이루스가 구해줬다.
감사 인사를 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다른 이야기보다 감사 인사를 더 먼저 했다면 좋았겠지만.
“저택에 머무르는 동안 불편한 일이 없도록 특히 더 신경 쓰도록 하지. 자네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쉬게.”
카이루스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일레나와 시미드를 한 번씩 바라봤다.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부른 건 아닐 거다.
“이제 뭘 준비해야 하는 거야?”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는 시미드 캘로그를 향해 말했다.
“파티가 끝나고 나면, 제가 부탁한 가건물을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알았네. 듣고 있으니 말해보게.”
시미드는 흔쾌히 대답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카이루스의 설명을 듣고는 살짝 안색이 변했다.
“…꼭 필요한 일인가?”
“네.”
시미드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썩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카이루스가 만들어 달라고 한 방은 분명히 일레나가 지금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방일 것이다.
“아버지.”
일레나가 시미드를 부른 다음, 시선을 마주쳤다.
“정말로 이걸 원하는 거냐. 기사로서 다소의 흠결이 있다 해도, 그게 캘로그 가문 여식으로서의 흠결은 아니다.”
“저는 기사단에 들어가서 단장님을 보며 목표를 정했어요.”
시미드 캘로그가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능력이 부족해 자식을 도와주지 못할 수는 있어도, 능력이 있는데 도와주지 않기는 힘들다더니.”
사실, 시미드 캘로그로서도 그렇게까지 나쁜 상황은 아니다. 기왕 외동딸이 기사가 되었다면, 견습기사에서 멈추는 것보다는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편이 좋다.
‘견습기사에게 하는 청혼은 캘로그 가문의 위세를 원하는 사람들이지만, 수훈기사 정도만 되어도.’
캘로그 가문의 위세에 더해 일레나 개인의 유명세까지 더해지게 된다. 당연히 훨씬 빵빵한 집안의 남자들이 청혼하겠지.
일레나가 제대로 된 배틀기어 사용법을 배우는 건 결국 캘로그 가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럼 자네는 파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머무르겠군.”
“네, 그래야 합니다.”
카이루스가 애매한 표현을 쓸 이유는 없다. 그가 여기에 머무르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일레나가 원하는 걸 확실히 이뤄 줄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알아듣겠네.”
“재무청장님, 일이 잘못된다면 그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카이루스의 말을 듣자마자 시미드의 표정이 싹 변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저는 일레나가 극복해야 하는 난관을 극복했기에 배틀기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저는 잘못되지 않은 방법을 알려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나가 배틀기어를 쓰지 못한다면, 그건 카이루스의 탓이 아니다.
“그건 일레나가 재능이 없는 겁니다.”
“내 딸이 기사가 될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거냐.”
무거운 목소리에 카이루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모르지요. 재능이 있으면 통과해서 배틀기어를 제대로 사용하게 될 겁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일레나는 사실 재능이 없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거다. 배틀기어와 연결되는 건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타고난 재능이다.
“저는 있는 재능이 피어나게 도와주는 겁니다. 없는 재능을 만드는 법은 모릅니다.”
보통은 이렇게 말하고 나면 문장의 끝에 죄송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붙일 법하건만, 카이루스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제국 재무청장 앞에서 잘도 떠드는군.”
“나라 살림살이라면 몰라도, 기사가 되는 일이나 강해지는 길이라면 제가 재무청장님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동안 카이루스를 노려보던 재무청장이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래. 틀린 말은 하나도 없군.”
카이루스는 시미드를 만난 적이 있다. 물론, 시미드도 카이루스를 만난 적이 있다.
중요한 건 카이루스는 상대가 시미드라는 걸 알고 있고, 시미드는 상대가 카이루스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카이루스는 시미드가 어떤 사람들을 선호하는지 기억하고 있다.
애매한 대답을 싫어하고, 자신의 역할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최소한, 랜돌프 가문에서 자식 하나 정도는 제대로 키우는 데 성공한 모양이군.’
자신이 선호하는 성격을 연기하고 있으니, 시미드 캘로그 입장에서는 카이루스를 꽤나 고평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고평가가 신뢰로 이어지는 건 별개의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건.’
겨우나기 파티가 열리는 중에 목표로 잡은 서류를 털어내서 빼돌리고, 이후 일레나의 훈련을 도와주며 1달 정도 더 머무르는 거다.
물건을 훔친 도둑이 현장에 한 달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까. 오히려 카이루스가 여기에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시미드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일한 문제점은 카이루스의 정체가 들키는 가능성뿐인데….
‘랜돌프 가문의 허락을 받고 위장한 신분이니까.’
들킬 수가 없다. 나중에 카이루스가 수상하게 느껴져서 랜돌프 가문에 연락을 해봐도 ‘그게 내 아들이 맞아요!’라는 대답만 돌아올 테니까.
카이루스는 슬쩍 시미드의 눈치를 봤다. 이제 저 양반도 카이루스와 일레나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인지했다.
‘과연 오늘 밤 내 숙소 주변을 얼씬거리는 시선들이 있을까 없을까.’
대화를 마친 다음, 카이루스는 응접실을 나와 자신을 위해 마련된 방으로 향했다.
파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다.
“산책이나 좀 할까.”
저택의 구조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판단해 둘수록, 실전에 들어갔을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저택의 청사진은 이미 봐두었지만, 그래도 현재 모습도 눈에 담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캘로그 저택은 여러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구간은 한 곳에 서서 경비하는 한 쌍의 경비와, 순찰을 하는 여러 쌍의 경비로 구성되어 있다.
‘가만히 있는 경비는 주변을 감시하는 게 아니야.’
순찰하는 경비들이 주기적으로 자기 앞을 지나가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게 주된 업무다.
“안녕하십니까.”
경계를 서던 경비들이 카이루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경례했다.
“도와드릴 것이 있을까요?”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경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 중 하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
‘바로 의심받겠지.’
손님이 저택의 경비 상황에 대해 궁금해할 이유는 없으니까. 지금이야 선선히 대답해주고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저택에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 즉시 카이루스는 의심 후보 1등에 등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외부인이 저택의 경비에 대해 궁금해하며 질문했는데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경비는 없을 테니까.
“고생이 많구만.”
그저, 카이루스는 간단하게 고생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카이루스를 대하는 경비원들의 태도가 정중하다. 물론 카이루스는 현재 귀족의 신분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정중한 태도로 대응하겠지만….
다른 귀족들을 상대할 때보다도 더 정중하다는 소리다.
‘소문은 빠른 법이니까.’
저택의 고용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소문은 원래 빠르게 퍼지는 법이고, 퍼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는 법이다.
심지어, 카이루스가 일레나를 임신시켰다는 식의 소문이 퍼져도 그렇게 놀라울 건 없다.
원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옮기는 소문은 사실보다는 흥미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니까.
“뭐어,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써먹을 수 있겠군.”
그런 소문이 돈다면 저택의 하인들이나 경비들도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의심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주 외동딸의 남편, 또는 정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정부라고 무시당하는 건 귀족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저택에서 일하는 아랫것들에게는 정부나 첩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다른 귀족들에게 무시당해서 생긴 분노를 쏟아낼 테니.
“저택 중앙의 대정원과, 저택을 감싸고 있는 외벽.”
캘로그 저택은 약 10,500평 정도의 부지 위에 지어진 저택이다.
저택 건물은 ㅁ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중앙에는 저택 건물에 둘러싸인 약 3,500평 정도 넓이의 대형 정원이 존재한다.
카이루스는 쉬지 않고 정원을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이 저택을 털어먹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 바로 이 정원이다.
“정원 넓지?”
카이루스가 가만히 정원을 살피고 있으려니,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일레나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이루스는 자신과 일레나 근처에 있던 하인들의 기척이 모조리 사라지는 흥미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예산을 엄청 쓸 것 같은데.”
“야, 우리 가문을 뭐로 보는 거야. 이 정도 정원을 관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카이루스는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랜돌프 가문이 부리는 하인이 한 50명 정도 되는데, 너희 가문은 더하겠지?”
카이루스의 말에 어음, 하는 소리를 내고 일레나가 자기 뺨을 검지로 긁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이 저택은 경비와 하인 등등을 모두 합쳐 약 800명의 고용인이 존재한다. 50명이면 일레나 한 명에게 따라붙는 고용인이라고 해도 큰 과장이 없을 정도다.
일레나는 새삼스럽게 랜돌프 가문과 캘로그 가문 사이의 격차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
“….”
잠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카이루스는 여기에서 정원을 가로질러 반대편 건물로 가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 중이었고, 일레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