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62
62화 허점찾기 (4)
식사 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카이루스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상당수가 군사 비밀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대라면 나도 사춘기가 오기 전부터 경험했어.’
카이루스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군에서 온갖 경험을 한 사람이다.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서 질문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 대대의 지휘관이 지금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이라는 점도 카이루스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요소였다.
대대장의 경우, 면접관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해야 하는 취준생과 같은 상황이다. 다소 위험한 종류의 발언이라 해도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기 위해 털어놓는 중이었다.
‘역시 출세지향이군.’
그리고 대대 지휘관이 이러한 어필을 하면 할수록 카이루스가 세워놓은 계획의 실현 및 성공 가능성이 선명해진다.
카이루스는 대대 지휘관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박물관 내 순찰 주기를 마음속에 새겨넣으며 질문했다.
“대단하네요. 하지만… 아시죠? 순찰하는 사병들은 순찰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찰을 통해 이상한 걸 찾아내는 데에 목적을 두지 않고, 그냥 순찰 루트를 걷는 것 자체에만 의의를 두는 거다.
“그런 일이 없도록 당연히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두었고….”
지휘관은 말을 하면서 자그마한 금속판 하나를 꺼냈다. 한쪽 면은 붉게, 반대편은 하얗게 칠해놓은 금속 조각이었다.
“순찰 과정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지점에는 이러한 철판을 배치해 순찰을 할 때마다 뒤집도록 지시했습니다.”
“훌륭하네요. 생각이 향하는 방향이 굉장히 효율적이십니다.”
거기에 더해, 이 대대 지휘관은 계속해서 자신이 이 부대를 위해 시행한 다양한 제도들을 떠든다.
나머지는 별로 관심 없는 내용이었기에, 카이루스는 듣는 시늉을 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주요 순찰 루트에는 저 철조각이 놓여있다, 그거지.’
이런 식의 제도를 운영하면 본래 목적이 소실되는 경우가 꽤나 흔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고 뭐고, 어차피 순찰 도는 병사들은 그런 거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순찰 중인 병사들의 목적은 이제 수상한 요소의 파악이 아니라, 특정 장소에 놓여있는 철조각 뒤집기가 될 것이다. 그것만 하면 되니까.
‘즉, 나는 철조각과 철조각 사이를 잇는 최단경로만 피하면 된다.’
그럼 주둔지 내를 순찰하는 병사들과 부딪칠 일이 거의, 아니… 절대로 없다.
지금 이 대대의 병사들은 철조각이 있는 곳을 제외한 다른 장소를 살필 이유가 없어진 상태다.
‘우선 오늘은 철조각들이 놓여있는 장소를 체크하고….’
이후, 기억해둔 철조각들의 위치를 피해 대대장의 공관이나 집무실에 시신을 가져다두면 된다.
“식사 초대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분이 군에 계시니, 제국의 앞날이 밝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나중에 크게 되실 분 같으니, 이름을 꼭 기억해둘게요.”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폐하의 번영과 제국 신민의 안전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받을 일은 아니지요.”
라고 말하는 대대장의 입꼬리는 귀에 걸려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필이 나름대로 잘 먹혔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캘로그 가문의 외동딸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준다고 하는 그 대사가 지휘관이 듣기에 참 좋았다.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듣기 좋은 말 한마디는 ‘내가 말하면 안 되는 것들까지 떠든게 아닐까?’ 라고 하는 일말의 걱정을 깔끔하게 그의 마음속에서 쓸어내버렸다.
“그럼, 나중에 또 이야기 나눠봐요.”
인사를 마친 다음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공관을 나왔다.
“고생했다.”
“알아줘서 기쁘네.”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 일레나가 쓰고 있던 가면은 공관을 나서는 즉시 벗겨졌다. 제법 남녀 간의 사이가 깊어진 것처럼 연출했지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으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지간하면 힌트라도 하나 주지?”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물론 줄 수 있지. 하지만 당장 속 시원해진 대가로 성장이 멈출 텐데, 그래도 상관없으면 알려줄게.”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대답했다.
“됐네요.”
카이루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을 거다.”
“되게 성의 없는 위로네.”
일레나가 저렇게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카이루스의 말은 근거가 있는 위로다. 그냥 막연하게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게 아니다.
페더윙이 쌓아놓은 막대한 양의 통계가 이미 일레나는 성공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아, 그러면 실패할 거라고 말해줄까.”
“그건 또 별로네.”
카이루스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체크했다.
‘오늘 일을 벌이는 건 불가능하고.’
이미 오후 8시는 지나버린 시점이다. 지금 와서 일을 벌이는 건 힘들다. 어차피 카이루스가 일레나와 함께 대대장의 공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는 건 군 주둔지 내에 금방 퍼질 것이다.
‘내일부터는 통행이 훨씬 자유로워지겠지.’
이제 카이루스는 군 비밀이나 온갖 암호들이 보관되어있는 비합소 같은 장소만 아니라면 큰 제한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거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둔 카이루스는 일레나와 헤어진 다음 숙소에 도착했다.
“시작해볼까.”
오늘 밤 중에 색을 입힌 철조각들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내일 바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철조각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순찰 중인 병사들을 역으로 몇 번 미행하면 끝이지.’
순찰을 도는 병사들은 두 명이 한 쌍으로 움직이고, 동시에 주둔지 안을 배회하는 병사는 도합 여덟 쌍이다.
각각은 다른 순찰 경로를 따라 이동하기에, 모든 철조각의 위치를 파악해두려면 미행을 여러 번 해야 한다.
‘철조각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면.’
군은 굉장히 경직된 조직이다. 카이루스는 그렇기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상황을 연출할 생각이다.
“다른 수상한 것을 발견하면 보고하겠지. 하지만….”
순찰을 실시하는 병사들은 반드시 갖춰야 하는 복장이 있다.
‘지금은 한겨울이고.’
겨우나기 파티를 끝냈고, 날씨가 점점 풀리고 있다지만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카이루스의 기억이 맞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제국군의 경계근무 복장기준은 낮에도 동계 2형을 유지하고 있을 거다.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싸구려 외투 위에 추가로 껴입는 방한복이 필수다. 그리고 그 방한복은 순찰하는 병사들이 공용으로 사용한다.
‘그 방한외투를 슬쩍 하는 데 성공하면.’
수상한 사람이나 흔적을 발견한 것과는 다르다.
그런 건 바로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하지만, 방한복이 사라진 경우, 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일단 방한복을 찾느라 순찰을 중지하고 시간을 낭비한다.
‘여러 팀을 그렇게 만들 필요는 없어.’
딱 한 팀.
한 팀만 그렇게 사라진 방한복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면 순찰 루트에 구멍이 뚫린다.
카이루스는 그 찰나의 빈틈을 이용해 시체를 공관으로 옮겨놓으면 된다.
“좋아. 머리 굴릴 시간은 이제 끝난 것 같군.”
생각이 끝났으니, 행동해야 할 시간이다. 카이루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와 주둔지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겨가며 이동했다.
‘하기사, 밤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카이루스는 하늘 위를 떠다니는 열기구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들이 하늘 위에서 땅을 향해 탐조등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비행선도 아니고 열기구라면….”
카이루스에게는 대항할 수단이 있다. 제풍은 바람을 만들고 조종하는 힘이다.
프로펠러가 달려서 조금이나마 저항이 가능한 비행선과 달리, 열기구는 바람에 기본적으로 무력하다.
‘그건 비행이 아니라 부유지.’
열기구는 그냥 공중에 둥실둥실 떠서 바람 가는 대로 흔들리는 것뿐이다.
비행선이 열기구와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카이루스는 색유리의 출력을 끌어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닿을 수 있어.’
정탐용 열기구는 그 목적 자체가 순찰이고, 한 지점에 머무르기 위해 밧줄로 묶어놓는다.
이런저런 제한 때문에 순찰용 열기구들이 부유하는 고도는 일반적으로 약 50m 정도다. 그리고 그 정도 거리라면 카이루스의 제풍이 충분히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상승기류 정도만 만들어줘도….”
열기구를 고정하고 있는 말뚝 같은 건 순식간에 쑥 하고 뽑힐 거다. 그럼 열기구는 비상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비상착륙이 성공하려면 재수가 많이 좋아야 할 거다.
‘그러니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열기구는 근본적으로 꽤나 위험한 물건이니까. 그렇기에 급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해도 주둔지의 병력들이 수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카이루스는 주변을 살피고는 검을 휘둘러 이 일대의 대기흐름을 통제하에 둔다.
‘원래 이렇게 쓰는 게 제대로 된 활용법이니까.’
제풍은 한 명의 적을 상대하는 검술이 아니다. 페더윙의 검술은 전투가 아니라 전쟁을 상정하고 짜올려졌다.
최초의 지향점은 대량학살.
소규모 교전을 상정한 다양한 기술은 지엽적으로 파생되어 나온 것뿐이다. 주둔지 전체에,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돌풍이 뿜어진다.
사람을 통째로 하늘로 날려버리는 어마어마한 바람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 정도의 강풍은 필요 없다.
지금 만들어낸 상승기류의 속도는 약 10m/s 정도였다. 딱 우산을 쓰기 난처해지고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휘어지는 수준의 강풍.
하지만 그 정도의 상승기류가 굉장히 넓은 범위에서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
“좋아.”
그리고 큰 부피를 자랑하는 열기구에게는 그 정도의 강풍도 큰 부담이 된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부담이냐고 하면.
열기구와 땅을 밧줄로 이어주는 말뚝을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의 부담이다.
탐조등으로 여기저기 비추던 열기구들이 안정을 잃고 비상착륙을 시도한다.
“좋아.”
방금 전 카이루스가 만들어낸 일격으로 주둔지를 감시하던 열기구가 싸그리 무용지물로 변했다.
이제 하늘을 부유하는 순찰자들이 사라졌으니 지상의 순찰 경로를 확인하고, 그 경로들 중 어떤 것을 무력화할지 골라야 한다.
“…아이고.”
조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회중시계를 확인하자 이미 새벽 5시 30분이 넘었다.
겨울이라 밤이 길어서 다행이었다. 밤이 짧았다면 이미 어슴푸레하게 해가 밝아오기 시작했을 거다.
그래도 그렇게 긴 시간을 투자한 덕분에 순찰하는 병사들의 경로는 모조리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3번.’
대대장의 공관에서 주둔지의 본청까지 이어지는 순찰경로다. 이 순찰로를 담당하고 있는 중대의 방한복을 훔치는 게 핵심이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다.
딱 5분이면 시체를 공관에 가져다 놓을 자신이 있다.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카이루스는 길게 하품을 한 다음 눈가를 비볐다.
“망할.”
피곤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피곤하다고 때려 잘 수 있을 정도로 카이루스의 상황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바로 침대에 누운 카이루스는 그 이후 일레나가 밥 먹으러 가자고 찾아오기 전까지 약 2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커피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그럴 일이 있어.”
카이루스는 지독할 정도로 검게 내린 진한 커피를 아침식사와 함께 마시며 일레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오늘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나는 그냥 연무장에 처박혀 있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될까?”
그녀는 어제 새벽 3시까지 티슈를 쥐고 씨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서 약이 잔뜩 오른 상태였다.
일레나의 제안에 카이루스가 즉시 동의했다.
“뭐라도 얻고 싶다면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일레나가 한 말은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굉장히 반길 만한 대사였다. 혼자 움직여야 하는데 일레나가 따라붙으면 여러모로 귀찮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