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물러터진 도시
카이루스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일레나는 반드시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두고 싶었기에, 자연스럽게 아침식사의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
“아, 레잔틴 일보 편집장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더라.”
“그래? 어떤 안 좋은 소문이길래.”
기왕에 식사를 하는 와중이고, 큰일을 앞두고는 간단한 잡담으로 긴장을 푸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카이루스는 잠깐 일레나의 잡담에 어울려주기로 결정했다.
“신문사의 편집장은 꽤나 권력자잖아? 언론의 힘 같은 거지.”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사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이란 공화국과 발로른 제국의 언론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 성질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의도에 따른 정보 왜곡이 가능하니까.’
신문사가 수집한 온갖 자료들을 특수한 목적하에 가공해 기사로 제작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패전을 승전으로 만들고. 가뭄이 들어도 옆나라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말하고. 진실을 거짓이라 호도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죽어 마땅한 범죄자로 만들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의도를 가진다면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다.
언론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다르다.
“레잔틴 시는 범죄율이 0에 가까운 무균실이잖아. 신문사가 끼어들 틈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포크로 달걀의 노른자를 터뜨리며 대답했다.
“편집장이 범죄자로 몰아가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이 6개월 사이 약 20명이야.”
인맥은 없는데 갑작스럽게 돈을 만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돈은 많은데 건드린다고 문제가 생길 일 없는 녀석들만 골라서 사냥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누명을 쓴 사람들의 재산 중 국고로 회수한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가담한 권력자들이 사이좋게 나눠가진다는 모양이다.
“이야, 수완 좋네.”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슥 눈총을 준다.
“스스로 노력해서 쌓은 재산인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부 빼앗기는 거잖아. 심지어 노동교화소까지 끌려간다고.”
“삶이 원래 그런 거야. 길을 걸어가다 차에 치이는 것처럼 불행이 너를 휩쓸지.”
권선징악이 아니라,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카이루스의 대답을 들은 일레나 입장에서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잘못된 일이고,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일련의 사태가 부당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베넷 시 사람들은 다 이런가?’
카이루스는 일레나가 만난 유일한 베넷 시 사람이다.
그녀는 베넷 시 사람에게 안 좋은 선입견이 생겼다며 걱정하고 있었지만, 사실 카이루스는 베넷 시 출신 중에서는 굉장히 건전한 사고방식을 자랑하는 편이다.
일레나가 그런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카이루스 또한 상당히 재미있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제 이어진 모든 사전준비는 시체를 대대장의 공관으로 옮겨놓기 위한 것들이었다.
‘시체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준비와 계획이야.’
즉, 당연히 시신이 있어야 한다. 카이루스는 살짝 계획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시신을 두 개 만드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무고한 희생자가 한 명 나와야 한다면, 그게 두 명이 되어도 변하는 건 없다.
마침맞게, 아침식사를 하는 와중에 일레나에게 꽤나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장을 죽여 시신을 대대장의 공관에 던져두고….’
수장품 조사위원회 소속의 학자 중 하나를 처리해 신분을 위장한다. 그편이 훨씬 더 좋은 계획이다.
‘공관에서 조사위원회의 일원이 죽어 있으면 시신 수습을 마친 뒤에는 분명히 레잔틴 황립박물관의 경계태세가 올라갈 테니까.’
물론 카이루스는 그 전에 일을 마치고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계획대로 풀리지는 않는 법이다.
‘신문사 편집장의 시체가 공관에서 떡하니 발견되면, 그걸 수습한다 해도 황립박물관에는 신경 쓸 여유는 없을 거야.’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수장고에 진입 후 문제가 생겨도 대처할 만한 여유 시간이 추가로 주어지는 셈이다.
‘뭐어, 덤으로 개새끼 하나 제거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레잔틴 시의 신문사 편집장은 나쁜 녀석이라 벌을 받는 게 아니다.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 편집장이 다른 운 없는 사람들을 치고 다니던 자동차였던 것처럼, 이번에는 카이루스가 그 편집장을 치고 지나가는 자동차 역할을 담당하는 거다.
언젠가, 카이루스를 들이받기 위해 누군가 또다시 달려들 것이다. 그때 피하지 못하면 카이루스도 마찬가지로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겠지.
그러니.
‘나쁜 놈을 죽인다는 식의 핑계를 대며 자위를 하는 건 역겨운 짓이란 말이지.’
결과가 좋다고, 그 의도까지 순수해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이 계획의 시발점은 ‘한 명 죽이나 두 명 죽이나 다를 게 뭔데?’라는 생각이었다.
“넌 아침부터 빵 몇 개를 먹어치우는 거냐.”
생각을 정리한 다음, 카이루스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일레나가 제거한 빵의 숫자를 어렴풋이 떠올려본다. 잠깐 사이, 그녀는 계란물에 적셔 구운 식빵을 무려 12조각이나 해치웠다.
“지금 많이 먹어야 해.”
끄윽, 하는 소리를 낸 일레나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고생하러 간다.”
일레나가 먼저 사라지고, 카이루스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집장은 출근했겠지. 참 다행인 점은.’
레잔틴 시는 기사단장 및 정예 대대의 주둔으로 인해 사실상 무균지대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범죄의 개념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게 레잔틴 시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몇 년 동안이나 범죄율이 사실상 0%였으니까. 여태동안 범죄자가 없었으니 오늘도 없을 거고, 내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으며 산다.
건물의 문을 잠궈두는 경우가 없어서 열쇠공이 망할 정도로 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곳이 바로 이 레잔틴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작은 위기를 하나 줘야겠지.’
댁들이 사는 도시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기사단장이 움직일 확률은 높지 않다. 기사단장이 움직이려면 보고가 들어가야 한다.
‘다나 왓슨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성격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일이 아닌 것까지 찾아서 하는 성격은 아니다. 기사단장은 보고가 들어오면 움직인다.
보고도 없는데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신문사에서 들키지 않는다면 기사단장은 움직이지 않아.’
공관에서 신문사 편집장의 시체가 발견되면 대대장은 기사단장에게 보고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신문사에서 편집장을 죽이고 빼돌리는 게 힘든가? 라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도시에 전반적으로 팽배해있는 범죄에 대한 무지가 굉장한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물러터졌어.’
과장 조금 보태서, 첼로 케이스에 시체를 넣고 일주일 넘게 돌아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게 이 도시의 분위기다.
청결의 역설, 온실면역 같은 게 바로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색유리를 챙기고 복장을 가다듬은 카이루스는 그 길로 주둔지를 벗어났다.
“충!”
이미 대대장이 아침 회의 같은 곳에서 따로 전파를 한 건지, 병사는 물론이고 군 간부들도 주둔지를 멋대로 돌아다니는 카이루스를 의심하거나 목적지를 캐묻지 않는다.
주둔지를 벗어나 도시에 진입한 카이루스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신문사 앞에 도착했다.
지나가다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걸어도, 그 누구도 경계하지 않는다.
‘다들 속도 좋아.’
식사를 하다가 가방을 그냥 자리에 두고 화장실을 간다. 카이루스의 눈에는 소지품을 빼앗기고 싶어 환장한 것 같아 보이는 행동이었다.
자기 자리라고 표시하기 위해 의자에 물건을 올려두는 모양이다. 카이루스의 상식에 따르면 자리도 빼앗기고 물건도 빼앗긴다. 덤으로 병신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범죄의 표적이 되겠지.
애들이 식당에서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른다. 베넷 시에서 애들이 저 지랄을 하면 10분 뒤 코뼈가 부러진 채 길바닥에 나뒹군다.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전장을 넘어 극악한 범죄자들만 모이는 노동교화소, 그리고 베넷 시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사악해지고 추해질 수 있는지 그 정수만을 경험하며 살아온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도리어 이 도시가 너무나도 이상해 보인다.
‘위기의식이라는 게 없나?’
가게에서 커다란 화환을 하나 구매하고, 신분을 숨기기 위한 위장을 마친 카이루스는 신문사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누구시죠?”
당연히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질문을 받았지만, 카이루스는 간단하게 꽃바구니를 보여주며 말했다.
“꽃 배달하러 왔습니다. 편집장님께 전하라고 하던데요.”
카이루스의 상식하에서는 이런 선물이 왔을 경우에는 당연히 자신들이 직접 전달하겠다고 말하며 꽃바구니를 받은 후 검사를 하고, 배달부는 돌려보내야 한다.
“그런가요? 누가 보내신 걸까.”
하지만 이 도시는 카이루스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카이루스의 말을 들은 직원이 머리를 긁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기, 제가 조금 바빠서 그런데 서둘러도 될까요?”
“아, 네. 그러세요.”
카이루스의 말에 곧바로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베넷 시에서 ‘내가 좀 바빠서 그런데 서둘러줄래?’ 같은 핑계를 대면 ‘여기 안 바쁜 사람이 어딨냐? 븅신새끼야.’ 같은 빈정거림이 돌아온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통했다. 카이루스는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고 화환을 든 채 이동했다.
수상한 사람이 배달원으로 위장한 다음, 화환 속에 칼을 숨겨서 들어올 거라는 걸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은 태도다.
‘상식적으로 그걸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의문 속에서, 카이루스는 간단하게 편집장의 집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무슨 놈의 화환이야 또. 거기 두게.”
편집장이 서류를 훑어보다가 카이루스가 옮기는 화환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신경을 끈 채 서류를 살핀다. 최소한, 수상한 사람이 들어왔으면 나가기 전까지는 경계하는 게 보통이긴 하다.
‘상식은 원래 상대적인 영역이라고들 하잖아. 집어치우자.’
이 도시에서는 저렇게 행동하는 게 상식인 모양이지. 카이루스는 커다란 화환 속에 숨겨두었던 색유리로 편집장의 경추 사이를 쑤셨다.
칼날이 스며드는 것처럼 경추 사이로 파고들어 단번에 편집장의 숨통을 끊는다.
그렇게, 편집장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시체를 어렵게 숨길 필요도 없다. 주변을 살피던 카이루스는 캐비닛 안에 죽은 시신을 집어넣었다.
그 옆에는 서류가 가득 담긴 박스 여러 개가 올려진 운반차도 보인다. 소위 대차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어디….”
잠깐 고민하던 카이루스는 테이블을 뒤적여 종이를 찾아낸 다음 크게 글자를 써내려갔다.
[폐기]“이거면 충분하겠지.”
그 종이를 캐비닛에 붙인 다음, 카이루스는 대차 위에 캐비닛을 올리고 끈으로 고정한 채 건물 내에 만들어진 비탈길을 따라 1층에 도착했다.
“….”
대차로 캐비닛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몇 명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커다랗게 붙어있는 폐기, 라는 글자에 이내 관심을 끊었다.
이 안에 시체가 들어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 캐비닛을 나르고 있는 카이루스의 정체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서둘러야지.’
시신이 하나 더 필요하다. 이 시신은 군의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카이루스는 한 명 더 처리해야 한다.
“이건 그냥 이대로 근처 쓰레기 집하장에 던져두면 되겠지.”
상황이 이즈음 되자, 카이루스는 이 캐비닛을 집하장에 던져두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