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74
174
싸움은 거의 하루걸러 한 번씩 벌어졌다.
저들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각기 다른 부류의 인물들…… 도저히 한 집단에서 나온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그녀 앞에 섰다.
저들은 동료의 죽음을 알고 있다.
저들은 그녀 앞에 서기 전에 죽은 자들부터 살핀다. 어떤 수법에 의해서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낸다. 그래서 그 수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한다. 한 번 걸린 수법에 두 번, 세 번 걸려든다면 음자가 아니다.
그 결과, 저들은 그녀의 수법을 거의 꿰뚫어본다.
음자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은 이래서 어렵다.
무인 같은 경우에는 절정무공이 있으니 이처럼 복잡하지 않다. 한 명이나 두 명이나 똑 같다. 싸우면 된다. 수십 명이 새로 나타나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음자는 다르다.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란 거의 속임수에 가깝다. 맹수를 잡기 위해서 길가나 숲에 설치해 놓은 함정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속임수를 알아채면 이쪽이 당한다. 속임수가 통하면 저쪽을 죽일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지독술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땅에 독분을 뿌려놓고 시기적절하게 피워 올리는 수법이 지독술이다. 하지만 이런 독술은 사천당문 문인들도 한두 명밖에 수련하지 못했다. 수많은 독인을 탄생시킨 사천당문이 말이다.
독분을 피워 올리기 위해서는 강한 내공이 필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땅을 흔들지 않고 어떻게 가라앉아있는 독분을 분분히 휘날릴 수 있겠나.
땅을 흔들거나, 바람을 피워내야 한다.
인위적인 수단을 가하지 않아도 지독술을 쓸 수는 있다.
그때는 정말로 걸음을 내딛자마자 독분이 피워 올라야 하는데, 그러자면 독가루가 지극히 미세해야 한다. 동물의 움직임, 새들의 날갯짓, 스쳐지나가는 바람에도 휘날릴 정도로 극세(極細)해야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지독술은 수련하기가 쉽지 않다.
극세한 독분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절정독인 외에는 없다. 그러니 이 방법은 논외로 하고……
독분을 땅에 깔아놓고 인위적인 행위를 가할 경우만 생각해 보자.
이런 행위들은 모두 전조증상에 해당한다. 이제 공격을 가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음자들은 이런 전조 증상을 겪으면 두 말 않고 몸부터 빼낸다. 아무리 중한 일을 하고 있더라고, 탁! 하는 느낌이 오면 무조건 십여 보쯤 물러서고 본다.
아무런 전조를 보이지 않고 공격을 가해야 한다.
실제로 내공으로 지독술을 사용할 경우, 전조가 일어남과 동시에 독분이 퍼져오른다. 전조를 느끼고 몸을 움직여도 이미 늦는다. 이미 독분을 흡수한 후이다.
사천당문에서 지독술을 한두 명 밖에 수련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이런 경지를 일컫는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공이 그만큼 절륜하지 못하다. 그래서 약간의 속임수를 가미한다.
독분을 땅에 두지 않고, 허공에 흩뿌려놓는다.
죽는 자는 지독술인 줄 알고 죽지만, 사실은 지독술 꼬리조차 잡지 못하는 하찮은 속임수다.
그녀를 가르친 사천당문 독인은 정통 지독술을 선보였다. 그는 지독술을 수련한 한두 명 중에 한 명이다.
그러나 그녀는 수련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독술을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속임수이지만 지독술과 완벽하게 흡사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음자는 이런 정통 무공을 속임수로 전개한다.
그렇기에 속임수가 발각되면 두 번 다시 쓰지 못한다. 정통 무공일 경우에는 살상수법이 드러나더라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음자는 완전히 손을 떼어야 한다.
적이 아는 수법을 전개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녀는 자신이 배운 살수를 모두 썼다.
남은 것이 없다.
‘아!’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상대가 나타났다. 등에 쌍검을 엇갈려 매고 있고, 머리는 무명천으로 감싸 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무인의 모습이다.
그는 흔한 무인이 아니다.
우선 그의 발걸음을 보라. 걸음을 걷는데 발자국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는다. 마치 고양이가 먹이를 노리고 걸을 때처럼 살기어린 눈길이 사박사박 내려앉는다.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그 어떤 자보다도 강하다.
‘지독술.’
첫 사내를 죽일 때 사용했던 수법!
안 된다. 사내를 끌어내어서 지독술을 펼쳐볼까 생각했지만 곧 머리를 내둘렀다.
사내가 고양이 걸음을 걷는 것은 지독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지독술을 염두에 두고 저런 걸음을 걷는다기보다는 그런 종류의 암습에 충분히 대비되어 있는 자라는 뜻이다.
‘목상진.’
진으로 가둬둔 다음에 살상하는 법!
그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내둘렀다.
사내의 보법을 자세히 보면 팔괘(八卦)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내는 자신의 주위에 무형의 검막을 쳐놓고 있다. 목상진이 저런 검막과 부딪칠 경우, 틀림없이 반발력이 생긴다. 사내가 즉시 알아본다는 뜻이다.
목상진으로는 공격하지 못한다. 공격은 시도할 수 있지만, 암습은 가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살수를 떠올리면서 암습 기회를 엿봤다.
사삿! 사삿! 사사삿!
사내는 신기하게 움직인다. 얼핏 보면 매우 거칠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세상에 저런 신법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가 관도를 버리고 황야로 들어섰다.
‘쳇!’
그녀는 다시 한 번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음자가 수교빈을 버리고 쓸쓸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 그 뜻은 명확하다.
옛날에는 자신이 이런 모습이었다. 그때는 아마도 상대가 아랫입술이나 어금니를 꽉 깨물었을 게다.
쓸쓸한 곳으로 간다.
네 놈이 뒤쫓고 있다는 것을 안다. 길게 끌지 말고 끝내자.
이 두 개의 말은 같은 의미다.
그렇게 따라 들어온 자들이 지독술에 당하고 목상진에 당하고 활도법에 당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무조건 따라 들어온 것뿐인데…… 뒤를 쫓다보니 암습이 가해졌다.
그렇다. 이 순간, 사내가 쓸쓸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 순간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지금부터는 촌각도 한눈을 팔면 안 된다. 피부를 스쳐가는 바람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힘들겠어.’
그녀는 단도 두 자루를 꺼내 양손에 움켜쥐었다.
그녀는 아직도 공격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홍화문에서 배운 수십 가지의 살수비기가 모두 무용지물이다. 사내가 지녔을 법한 절기 앞에 드러내면 형편없이 구겨진다.
이런 상태에서 적을 따라 싸움판으로 간다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다. 그녀가 등을 보이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역전된다. 저 자가 쫓고 그녀가 쫓긴다. 그것도 지금 즉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따라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않으나 똑같다.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치잇!’
그녀는 그리운 사람을 떠올렸다.
세상 사람들은 홍화문 여인에게 무슨 진심이 있냐고 말한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 세상에 정 줄 사내가 어디 있냐고 생각했다. 여자의 미색에 눈이 어두워서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내주는 사내들의 추잡한 모습, 실망스러운 모습……
한 사내를 만났고, 즐겼다.
홍화문에서 배운 것을 모두 써먹었다. 교태도 부렸다.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십 가지 수법을 모두 써봤다.
사실 해과월에게는 너무 과분한 대접이다. 그는 무뚝뚝하다. 그는 순진하다. 홍화문 절기들 중에 한두 가지만 써서 뼈가 없는 문어처럼 노골노골 해진다.
그녀가 홍화문 비기를 서너 가지 정도 썼을 때, 해과월은 이미 그녀의 사내였다.
이 무식한 사내는 정(情)마저도 깊다.
순진한 줄은 알았지만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다. 자신이 홍화문 여인인 줄 알면서도 깊게 깊게 빠져든다. 늪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깊이 파고들어서 밑바닥까지 닿으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사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내들 중에는 사랑했던 여인이 홍화문 여인임을 안 후에도 변함없이 지속적인 사랑을 주는 자들이 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주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준다.
순정? 지고지순한 사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네 사네 매달리는 경우를 옆에서 보면 부러워야 하는데 웃음부터 나오니 말이다.
해과월도 그런 부류다.
그는 순진하고, 지질하다.
홍화문 비기? 그런 것을 쓸 필요도 없다. 사내를 녹이는 방법?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그는 그저 마주 앉아서 웃어주기만 해도 기뻐하는 것을.
그런데 홍화문 비기를 모두 썼다.
그녀가 수련한 것들을 모두 펼쳤다. 홍화문이 수집한 사내에 대한 상식들을 모두 사용했다. 사내가 즐거워할 만한 것들을 모두 생각해냈고, 그에게 사용했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첫사랑이니 그럴 거란다. 첫 남자이니 잊지 못하는 거란다. 누구나 처음에는 다 그런단다. 한 여름에 열병을 앓듯이, 뜨겁게 한 번 앓아보면 괜찮아질 거란다.
세월이 약……
가장 많이 들은 소리다.
정말 그럴지 모른다. 세월이 약일 지도…… 사오 년, 십여 년……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보면 시리디 시린 가습이 무덤덤하게 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꼭 한 번은 더 보고 싶었다.
“후후후!”
사내가 웃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들판에서 지나가는 바람을 향해 말했다.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기회는 충분히 엿봤을 터. 기회가 없더냐?”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는 혼자 서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나 인도가 사오 리 정도 떨어져 있는 궁벽한 곳이다.
그는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따라왔다.
“공격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수법이 고갈되었다는 뜻인데…… 더 이상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깨끗이 결판내는 것도 좋지 않나. 어디, 얼굴이나 보지.”
사내는 말을 하면서 손목을 감싼 아대를 꽉 조였다.
휘이이잉!
찬바람이 쓸쓸한 들판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는 여전히 허공에 대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듣고 누군가는 몸을 드러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후후후! 아직도 사용할 수법이 있나? 이따위 치졸한 수는 쓰지 말고.”
그가 지나가는 바람을 움켜잡았다.
허공을 움켜잡았으니 잡히는 게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꽉 쥐는 시늉을 했다.
스읏!
사내의 등 뒤,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사내는 등 뒤에서 사람이 나타났어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빈손을 활짝 펼치면서 말했다.
“무색, 무취…… 좋은 독이야. 바람도 잘 잡았고.”
“이름이 뭐야?”
그녀가 물었다.
“이름? 하하! 하하하!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던가? 네가 죽인 사람들, 이름을 물었던 게야?”
“아니, 내가 죽인 사람들은 기억할 필요 없어. 하지만 날 죽일 사람은 누군지 알아야 하니까. 그래야 다음에 꼭 빚을 갚지.”
“얼굴, 얼굴을 기억해. 그럼 되지.”
얼굴은 이미 기억했다.
그녀가 이름을 물은 것은 사내의 배후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이름을 묻고,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 이어지고, 조금 더 깊게 파고 들 수도 있고.
화안염소(花顔艶笑)!
얼굴은 만개한 꽃처럼 아름답게, 미소는 붓으로 그린 듯이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모습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나지 않게끔 얼굴 근육의 긴장을 풀고……
화안염소는 자신의 첫인상을 좋게 만든다.
사내의 마음을 여는 첫 번째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내는 흔들리지 않는다.
“난 이름이 필요해. 치잇! 그 까짓 이름 석 자 말해주는 게 뭐 그리 대수롭다고.”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화안미소까지는 괜찮은데, 청음공(淸音功)은 조금 과하지 않나. 그런 걸 펼칠 진기가 있으면 검에 집중해야지.”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진기를 탁 풀었다.
홍화문의 절기를 모두 알고 있는 자에게 더 이상의 염공(艶功)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알고 싶은 것이 있었다. 사내가 음살문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는 바이고…… 여인으로 구성된 음살문에 어찌 사내가 음자로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음자는 본문에 대해서 말하지 않지만,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무리였다. 사내의 입은 자물통이다.
스읏!
그녀는 진기를 다시 이끌어 양손에 운집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수단이 막혔다. 홍화문의 모든 절기가 차단되었다. 염공이 통하지 않고, 살공이 짓뭉개졌다. 전심전력으로 마지막 일검을 쳐내겠지만…… 글쎄?
5
쒜엑! 쒜엑!
비비는 연달아 십여 수를 떨쳐냈다.
예측대로 사내는 유유히 피해냈다. 보법이 문제가 아니다. 신법에서부터 한 수 뒤지고 들어간다. 그러니 아무리 신랄한 검초를 펼쳐도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싸움은 음자의 싸움이 아니다.
스스스스!
검두(劍頭)에 구멍이 열렸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미세한 구멍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서 먼지보다 가는 독분이 흩어져 나왔다. 단검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가 검초를 펼칠 때마다 아주 미세한 분량이 분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