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62
“전쟁이 끝나고 내 자네만큼은 혹형에 처하도록 하겠어. 상관을 밥 먹듯이 능멸하니까.”
“좋을 대로 하십시오. 허나 한 가지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손관은 꽁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인가.”
“백수의 한중부도독 문빙과 서촉부도독 학맹은 백각경의 명을 받들어 이곳에 왔단 말입니다.”
“그렇지.”
“뭐가 그렇지입니까? 백각경께서 저렇게 허술하게 진을 치도록 명하셨겠습니까?”
“허면 저 자들이 백각경의 명을 고의로 어기고 있다는 말인가?”
우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무겸전의 명장이란 말씀은 취소하십시오.”
“괘씸한! 그냥 할 말만 하란 말일세! 상관 능욕은 관두고!”
우번은 손관의 말대로 했다.
“저 허술한 진은 백각경의 특수한 명령이 있는 까닭입니다. 문빙, 학맹, 저 분들이 하루 이틀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역전의 용장들인데 부러 저러시겠습니까?”
“허면.”
“함정이라는 것이지요. 하물며 내군경께서 아시는 걸 백각경이 모르실까.”
인내심이 바닥난 손관의 매서운 손바닥이 우번의 뒤통수를 후렸다.
손관과 우번이 유쾌하게 아웅다웅하는 그때, 마초의 막사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낙준은 고단한 잠에 빠져있었다. 마초는 막사의 불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용맹한 사자를 양각한 투구가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준비는 되었는가.”
마초의 물음에 사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의 역시 무장하고 있었다.
“예, 저하.”
“결행하게.”
사마의는 결연한 눈빛으로 읍했다.
“존명.”
사마의는 마대 이하 량왕부의 부장들에게 일제히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명령을 전달받고, 분주히 움직였다. 부장들은 각기 흩어져 누군가의 막사들로 향했다.
불 꺼진 막사에서 자는 척을 하던 마초의 병사들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 역시 모두 창을 베고 누워 있다가, 장교들이 손짓으로 표시를 하니 일어나 창을 들고 기립했다.
칼을 잘 쓰는 병사 몇몇을 이끌고 누군가의 막사들로 향한 각 부장들은, 굼뜬 눈빛으로 그들을 멀거니 보던 초병들을 비명도 못 지르도록 능숙하게 죽였다. 그리고는 그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을 느낀 서서가 부스스하게 눈을 뜨며 잠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서서의 물음은 맺어지지 못했다.
“으윽!”
목이 찔린 서서는 피를 뿜으며 즉사했다.
마량, 이엄, 여대, 이통. 모두 서서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잠이 반쯤 든 채로 절명했다. 사마의는 가장 칼을 잘 쓰는 살수를 대동하고 낙준의 막사로 향했다.
“대인, 진중이 소란스럽습니다. 대체 무슨 일……”
낙준의 막사를 지키던 장교는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 사마의는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막사의 안으로 들어갔다. 사마의는 보이지 않는 와중에 낙준을 향해 읍을 올렸다.
“대인.”
낙준은 진즉 몸을 일으켜 앉아있었다.
“앙큼하군.”
낙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마의의 대답에, 낙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되었군.”
살수들이 일제히 낙준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군데에서 칼날이 들어와 낙준의 경동맥에 박혔다. 낙준의 몸이 천천히 뒤로 고꾸라졌다. 사마의는 죽어가는 낙준을 등지고 막사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인,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부장의 보고에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어찌 하올까요?”
“서쪽 학맹의 진을 돌파한다. 세자께도 아뢔라.”
“존명!”
사마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우선 포위망을 돌파하여 형주의 남쪽에 웅거한다……”
어차피 자립은 불가능하다. 십만이나 되는 병력에서 이탈하는 자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만의 병력. 오래 유지할 수 없다. 특히 먹을 것 없이는 더욱 그렇다. 이대로 더 전쟁을 수행한다고 공언하면 내분으로 갈가리 찢길 것이다. 비참할 것이다. 허면, 전쟁 없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협상.”
신왕부와 협상해야 한다. 반역의 대가를 경감 받아야 한다. 수만에 이르는 병사들을 협상의 탁자 위에 올리면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거병의 악업은 저 죽은 낙준의 잘라진 대가리에게 전가한다. 죽은 자가 악업을 짊어지게 하여 손을 씻는다. 깨끗한 손으로 제갈찬과 협상한다.
지난날 진나라의 백기는 장평에서 장병 수십만을 묻은 것으로 잔혹의 대명사가 되었다. 화평의 사도를 자처하는 제갈찬이 장평의 오명을 승계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제갈찬의 자비에 의지에 기댄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참담하군.”
량왕부의 세자 마초는 낙준, 서서, 마량, 이엄, 여대, 이통의 수급을 소금에 절여 챙기고 몸뚱이는 버렸다. 준재로 이름났던 명사들이 꽃을 채 피우지 못하고 전장에 버려졌다. 마초는 즉시 막사를 버리고 남서쪽의 학맹을 기습했다.
마초의 야습에 학맹의 병력은 혼비백산했다. 사실, 혼비백산한 척 했다. 야습이 때 아닌 야습이었다면 정말로 혼비백산했겠지만, 마초의 야습은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막사에서 한동안 소란이 빚어지는 동안 학맹의 병사들은 태세를 모두 갖췄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혼비백산 할 태세를.
“적진을 돌파하라!”
마초는 선진에 서서 진두지휘했다. 마초의 용력이야 서량은 물론 천하 어딜 가나 수위로 꼽힐 만했다. 학맹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애초부터 마초에 맞설 의지가 없었으니, 마초는 손쉽게 학맹의 진을 돌파해냈다.
“어이쿠, 이거 무서워서!”
학맹은 부랴부랴 마초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다. 마초 역시 갈 길이 급한 입장인지라 굳이 학맹의 병력을 궤멸시키려고 들지는 않았다. 전속력으로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수 만에 달하는 병력이니 꼬리가 길었다.
그 꼬리에 매달린 몇몇 얌체들은, 슬그머니 좌우로 빠져 탈영했다. 몇몇은 걸음아 나 살려라 달음박질을 쳤고, 조금 더 머리가 명석한 부류는 학맹의 진에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차피 달아나봤자 굶기는 매한가지였으니 차라리 학맹의 휘하로 들어가 천한 취급을 받더라도 밥이라도 얻겠다는 심산이었다.
학맹도 지닌 병량이 없기는 하였으나, 귀한 전력이 스스로 찾아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주 달아난 병력이 대략 수천이었고, 학맹에게 귀순한 병력이 또한 대략 수천이었다. 지루한 전쟁으로 마초의 병력이 대략 오천가량 상했으니, 이제 마초와 사마의에게 들린 병력은 약 팔만이었다. 굶주린 병사 팔만.
“저하, 기춘을 통하여 송경으로 가는 것은 자살수와 다름이 없으니, 경로를 기춘이 아닌 곳으로 잡아야 합니다!”
사마의는 간신히 서량의 날랜 마술로 나아가는 마초에게 근접하며 진언했다. 마초는 머릿결을 휘날리며 사마의에게 물었다.
“허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팽택 호수의 남쪽으로 가시지요.”
마초가 되물었다.
“팽택?”
“예, 팽택을 경유하여 파양을 지나면 상료가 나옵니다. 상료는 남북으로 산지에 둘러싸여 있고, 여차하면 더 깊은 동쪽의 장산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장산에서도 이기지 못하면 산월의 소굴인 회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 이곳에 웅거하면 한동안 보신하며 적과 타협할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좋다. 그리하겠다. 남쪽의 팽택으로 향한다!”
“옛, 존명!”
량왕부의 병력은 남쪽의 팽택으로 이동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이 이 먼 땅에서 표류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사마의도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렸으나 티내지 못했다. 그가 흔들리는 낌새를 보이면 이 불안한 군대는 완전히 붕괴될 테니까.
그는 손자의 한 구절을 계속 되뇌었다. 부동여산(不動如山). 산처럼 흔들리지 말라. 부동여산, 부동여산, 부동여산…… 그러나 그렇게 되뇔수록, 그의 마음 속 여유는 사라져갔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면 자꾸 코끼리가 생각나듯, 조바심을 잊으려는 그의 시도는 더욱 끝없는 조바심을 생산해냈다.
환구를 떠나 팽택까지 그들을 막는 세력은 없었다. 군데군데 요새와 작은 성들이 있었지만 적은 병력만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량의 병력을 제어할 의지가 없었다. 제어한다고 해서 제어될 병력이 아니었다. 량의 병마 역시 그들과 불필요한 전투는 벌이고 싶지 않았다.
“교전은 최소화한다! 빠른 기동에만 주력하라!”
사마의의 방침이 그러했고, 병사들의 마음도 그러했다. 이따금 만나는 민가를 약탈하여 배를 불렸다. 굶은 백성들은 저항하지 못했다. 민가가 없으면 나무껍질을 벗겨 먹거나 크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었다. 그렇게 그들은 팽택을 향해 나아갔다.
팽택은 북쪽의 장강과 남쪽의 산지에 가로막힌 좁은 땅이었다. 그 협로가 장강을 따라 죽 이어져있었다. 그곳을 지나야만 파양을 지나 상료에 닿을 수 있었다.
“병사들이 저하에 대한 존중을 거두기 전에 상료에 닿아야 합니다. 다친 자는 버리고 성한 자만 이끄십시오. 상료는 작지 않은 고을이니 그곳에 가면 병사들을 반드시 먹일 수 있을 겁니다.”
마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다.”
마초는 부장들을 독려했고, 부장들은 병사들을 겁박하여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그들은 빠른 속도로 팽택의 한가운데 진입했다.
“사흘만 더 가면 팽택성에 닿습니다. 그곳을 점령하여 양식을 얻고, 곧장 바로 출발하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마초의 용맹은 금세 작은 성 하나를 떨어뜨렸다. 게다가 서황과 사마의의 아우 사마욱이 사마의의 명을 받들어 공성의 일선에 나서니, 팽택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팽택의 현령은 항복했다.
사마의는 그들을 구태여 죽이지 않고 지닌 양식만을 내놓게 했다. 떨어뜨린 팽택에서 하루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사마의는 바로 떠날 것을 건의했다. 마초는 휴식이 간절했으나 상황이 긴박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사마의의 진언을 따랐다.
량의 병마는 팽택의 좁은 길을 벗어나 파양을 향해 정남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했다. 긴 협로의 끝에 너른 벌판이 보였다.
“다 왔습니다, 다 왔습니다, 저하.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사마의의 말에 마초가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나는 이미 힘을 다하여 가고 있다! 병사들이 완전히 지쳐버렸다. 독려를 하려거든 저들을 독려하라!”
마초는 그렇게 신경질을 부리면서도, 정말 이제 지긋지긋한 협로가 끝나간다는 사실에 다소 안도했다. 마초는 지쳐가는 말에 채찍을 더욱 갈겼다. 너른 벌판으로 인도해다오!
“늦었다, 늦었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느냐.”
마음을 놓는 순간이 최악의 위기와 만나는 순간이다. 마초가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쪽의 산맥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위에서 내리꽂는 화살 비에 힘없는 병사들이 풀썩풀썩 엎어졌다. 순식간에 대오가 무너졌다. 마초는 급히 고삐를 확 잡아당겼다.
“무슨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