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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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0로 정벌군(2)
기병은 현대전으로 치면 장갑차와 유사한 위력을 뽐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말 한 마리에 사람 한 명 값이었다니 그 가치를 짐작해볼 수 있다. 더군다나 전쟁을 위해 길들여진 전마(戰馬)는 짐말 따위와는 격이 달랐다. 소리에 놀라지 않고 튀기는 피에 긴장하지 않는 말들. 그렇기에 기병 한 기와 보병 한 명은 같은 목숨이라도 전장에서의 살상력이 천지차이였다. 이를 테면 전투기 파일럿 한 명과 육군 사병 한 명의 살상력이 다르듯. 뭇 강한 친구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오롯이 기병으로만 4천을 운용하는 내 휘하 병력은 장막·진궁의 세를 압도할 수 있었다. 호랑이 같은 나의 상장들을 앞세워 무지막지한 말발굽으로 그들의 병력을 파고 들면 어찌할 도리가 없으리.
“합비후께 보고! 장막의 병마가 찬현의 아군 진채를 습격하고 있습니다!”
영자가 나를 돌아봤다.
“장막 녀석, 신이 잔뜩 났는데?”
감녕이 흐흐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중여포를 꺾었으니.”
“정신 좀 차리게 해줘야지.”
노숙이 우려를 표했다.
“막 아군을 꺾은 적의 기세가 두렵습니다. 조금 식은 다음에 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량은 이에 반대했다.
“물론 적의 기세가 거셉니다만, 저 기세는 술 취한 자의 것과 진배없습니다. 당장 목전의 찬현만 눈에 있으니, 허리를 찌르고 들어오는 공세를 저들이 어찌하겠습니까?”
그의 말이 내 말이었다.
“또한 우리가 찬현에 합류한다면 주눅 든 아군에 근주자적 할 것이니 적의 의표를 찔러 찬현의 기세를 올려주는 것이 옳습니다, 치중.”
노숙은 짧은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장사의 말이 옳고 합비후의 판단이 옳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다들 이의가 없으시면 그대로 진격입니다!”
나는 고삐를 바짝 쥐고 말의 궁둥이를 채찍으로 내리쳤다. 이에 질세라 나의 등등한 효장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를 따랐다. 한 사람만 빼고.
“야아… 이 빙시 같은 말놈아아! 퍼뜩 못 가구 뭐더는겨!”
허저의 말은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것은 혀를 죽 내민 채로 후들거리는 종아리로 부단히 달렸다. 허저는 그 육중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자신의 말을 보챘다.
“야야 계속 뒤지잖여! 언능 못 가냐아!”
양심 좀 있으세요, 허 장군……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절뚝거리며 달리는 말을 보며 나는 전장의 와중에 동물복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이의 생각이 그러한지 일말의 인간적 측은지심을 발하지 않던 만지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혀를 끌끌 찼다.
허저의 부단한 재촉은 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하여, 그는 감녕·영자·진도·만지 등과 말 머리를 나란히 하여 달렸다. 귀신같은 장수들이 앞서자 자연히 힘이 솟은 사병들도 고함을 지르며 뒤따랐다. 졸장부인 나는 당연히 지휘를 한답시고 그 뒤에 숨어 목소리를 깔았다.
“전군! 적을 궤멸하라!”
내 좌우의 병졸들이 고둥을 길게 불고 북을 쳤다. 고둥소리는 그들의 머리 속에 남은 불안감을 불어버렸고 일정한 장단의 북소리는 병사들의 제각기 다른 심장박동을 한 박자 안에 가두었다. 그것으로써 개인은 한 개의 무리로 묶였다. 하나의 덩어리가 된 병사들은 적을 향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본디 장군은 전투 일선에 나서지 않는 법이다. 장군이 조무래기 몇몇을 해친다고 하여 대국의 흐름을 바꿀 수 없을뿐더러 혹여나 재수 없는 화살을 맞아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전장은 삽시에 뒤집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전장의 법칙을 나의 보신책으로 삼아 절대 앞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은 통상적인 전장에서나 가당한 말이었다.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 날붙이를 휘둘러 피를 튀기는 저들에게는 통상적이라는 수식은 효용이 없었다.
누가 허저를, 감녕을, 만지를, 영자를, 진도를 통상적인 장수라고 하겠나. 범장이라고 하겠나. 귀신의 눈깔을 하고 역린이 범해진 용처럼 몸을 비트는 저들을 누가 감히 범장이라고 하나. 저들은 통상적인 법칙이 통하지 않는 예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들의 예외적인 힘을 끌어올릴 계책을 잘 알고 있었다.
“옳아! 거기 복양후 장막의 아우인 거야후 장초 공이 아니십니까?”
나는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장초의 투구는 밝은 녹색이라 쉽게 눈에 띄었다. 내가 부르자 장초의 몸이 움찔거렸다. 짜식, 쫄기는.
“오랜만이올시다! 비록 전장의 일이 바쁘나 이리 와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장초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외면했다. 나는 킥킥 웃었다.
“거동이 불편하시어 이쪽으로 오기가 곤란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규규무부여! 거야후 장 공께서 몸이 무거워 오시기가 힘든가 봅니다. 오시기 편하도록 무거운 몸뚱이는 그대로 두고 가볍게 대가리만 오시도록 하십시오!”
감녕은 예리하게 벼린 칼을 들고 섬뜩하게 웃었다. 내 편인 걸 알면서도 닭살이 돋았다. 장초는 얼마나 무서울까? 아이구, 가여워라!
“존명!”
규규무부의 허리춤에 달린 방울소리가 격렬하게 울렸다. 감녕은 쏜살처럼 장초를 향해 내달렸다. 방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기가 장초의 졸병들로 하여금 얼어붙게 했다.
“허 공은 저 큼지막한 전공을 교위 감녕에게 넋 놓고 뺏기려오?”
이 말에 허저는 허리를 바짝 곤두세웠다.
“그럴 순 없슈!”
허저는 말을 몰아 감녕의 뒤를 쫓았다. 진도도 그를 따라 말의 배를 걷어찼다.
영자에게는 그를 향해 입술을 쭉 내밀고 우물거리니 말이 필요 없었다.
“고참이 나서서 솜씨 좀 보여주고 와야겠어.”
그도 날렵하게 말을 몰아 어느새 멀어져갔다.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명을 슬며시 바라봤다. 만지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나까지 꼭 가야허우……?”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빤히 만지의 얼굴을 볼 뿐이었다. 만지는 버틸 데까지 버티다가 한숨을 팍 쉬었다.
“똥 뀌라구 똥구멍을 긁으시니 안 싸고 배기겠수.”
그는 칼집에서 칼을 빼들었다.
“피 튀길 거 내 손으로 목을 따야겠수. 배신자 장초.”
공말으로라도 무운을 빌려 했는데 만지는 이미 저만치 가고 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권태롭게 병사들을 독려할 뿐이었다.
감녕과 허저, 진도, 영자, 만지는 일제히 맹수처럼 장초에게 달려들었다. 장초의 부장이라는 조무래기들이 필사적으로 엄호했지만 누가 그들을 당하겠는가? 이미 장초의 주위에는 주검들뿐이고 맹수들의 날붙이들이 장초의 살진 목덜미를 겨누었다.
“내가 먼저 명받은 적장이오. 모두 칼을 치우시오.”
감녕이 으르렁거리자 만지가 콧방귀를 뀌었다.
“먼저 명받았음 잽싸게 굴 것이지, 이 노인네가 올 때까지 목 안 따고 뭘 하셨소?”
“내가 잔챙이를 다 흩어놓으니 만 공이 쉬이 온 게 아니오!”
영자가 킬킬거리며 그들 사이를 쌩하니 지나쳤다.
“영감님들은 입씨름 하고 계세요들!”
그가 칼을 내리쳐 장초의 목을 자르려는 찰나 진도가 그의 칼을 막았다. 그 사이에 허저가 겨드랑이 사이에 장초의 목을 끼워 넣었다. 장초는 사지를 버둥거렸지만 그가 허저의 완력을 어쩔 바는 아니었다.
감녕과 만지는 달려드는 잡병 몇을 처단하며 끓는 분기를 잠재웠다. 장초는 장막의 아우인 만큼 군내의 위상이 컸다. 그런 그가 산삼이 심마니에게 캐지듯 허저의 겨드랑이에 껴서 허둥거리니 일대의 군심이 흐트러졌다. 먹이를 빼앗긴 맹수들은 적진을 초토화시켰다. 찬현의 진채를 치던 장막과 진궁은 뜻밖의 맹격에 군을 저만치 뒤로 물렸다. 아군은 구원되었다.
“합비후 덕분에 살았습니다.”
장료는 성문을 열고 나를 맞이했다. 고순 또한 나를 향해 읍했다.
“적절한 때에 와주셨습니다, 합비후.”
나도 맞절했다.
“저는 후방에서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무장들이 잘 해내주었죠.”
장료는 흐흐 웃었다.
“합비후께서는 항상 겸손하십니다.”
나는 멋쩍어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공연한 겸손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가감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