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125
*****
“정신사납게 하지 말고 앉든가. 아니면 나가든가. 넌 준비 다 했냐?”
관평의 방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던 하후상은 그의 퉁명스러운 말에 자리에 앉았다.
그를 힐끔 본 관평은 수건을 들고 참마도를 닦았다.
예전 진창에서 얻은 이후로 계속 써오고 있는 참마도다.
그가 그것을 정성스레 닦는 것을 지켜보던 하후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마도랑 결혼할 생각이냐? 매일 애지중지 잘도 닦는군.”
“부러지면 다른 검이 있지.”
관평이 가리킨 곳에는 길다란 대검이 있었다.
그의 용력을 견뎌낼 정도의 강도와 탄성이 담긴 서주의 병기다.
아직까지는 그것을 쓸 필요가 없다 생각하며 전에 얻은 참마도를 무기로 쓰고 있던 관평이 뚱하니 답하자 하후상은 인상을 썼다.
“야.”
“음?”
계속해서 참마도를 닦고 있는 관평을 뚱하니 바라보던 하후상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이대로 끝낼거냐?”
“무슨 소리냐?”
“…몰라서 묻는거냐. 아니면 아는데 모르는 척을 하는거냐?”
“몰라서 묻는거다.”
그의 답변에 하후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말 안하면 이놈은 평생 이러고 살 것 같습니다.’
진유하는 괜히 끼어들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래가지고서야 뭐가 어떻게 되겠나.
“친구여. 솔직히 말해보게나. 손가의 아가씨를 어떻게 생각하나?”
“손 도위? 흠…”
하후상의 질문에 관평은 참마도를 닦던 손을 멈췄다.
그것을 본 하후상이 기대감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훌륭하지.”
“어? 진짜?”
“그래. 검술 솜씨도 그렇고 적절히 상황을 지배하는 것도 그렇고. 손가에서 제대로 배운 것인지 전투에서 밀리는 일도 적어.”
“…아. 그러냐.”
“여자면서 꽤 힘을 가지고 있어. 예전에 조 부인과 대련을 한 적이 있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고, 무예를 갈고 닦는다면 조 부인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 같다. 여 누님은… 힘들것 같고. 혹시 모르지. 계기만 있으면 더 강해질지도.”
“…그리고?”
“그리고… 아.”
하후상이 기대하자 관평은 천천히 답했다.
“머리도 좋더군. 전에 전략을 짤 때 손 소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진짜 그게 다야? 응? 이 자식아.”
하후상이 성을 내자 관평은 뚱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뭘 원하는건데?”
“하아… 답답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이런 놈에게는 단순하게 말하는게 제일이다.
“손가의 아가씨와 결혼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냐?”
“결혼? 갑자기 왜?”
“….진심이냐? 너?”
“훌륭한 동료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부장으로서의 자질도 대단하고. 하지만 결혼이야기가 왜 나오는거지?”
“이 답답아. 지금 교주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거냐?”
“무슨 생각을 하시지?”
“어휴. 차라리 돌벽에 대고 얘기를 하는게 낫지. 그렇게 대놓고 다가오고 있는데.”
“대놓고?”
이건 진짜 모르는 건가?
아니면 바보인건가.
이미 하급 장교들이나 병사들은 손상향이 관평에게 보내는 호의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이 모양이라니.
가끔씩 보면 날카로운 식견을 보이는 주제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린애나 다름없다.
차라리 성이랑 얘기하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다.
하후상은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전에 들었는데 교주목께서 너를 아주 좋게 보신다고 하셨다.”
“흠… 그러겠지. 유언장에 대한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나는 숙련된 장수이니까. 양 승상께서 교주에 내려가셔서 일남군을 제압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교주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래?”
“음. 손 도위가 말해주더군. 교주에는 여러 부족들이 있는데 그 부족들 중에는 잔인하고 포악한 성정을 지닌 이들이 있다고. 사 교주목께서 그들을 포섭하려 했지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오…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자신은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그것을 관평에게 했다면 그를 교주로 데려가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넌 뭐라고 답했는데?”
관평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래. 그래서 내가 괜찮은 인재들을 추천해주었지.”
“…응?”
“등애, 그리고 낙통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들을 포섭하며 움직일 수 있을거다.”
“….”
어처구니 없어하는 하후상을 무시하며 관평은 참마도의 날을 확인했다.
날카롭다.
이정도라면 당장 전투를 치뤄도 될 듯 싶다.
“또 조충 역시도 괜찮지. 지금은 승상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 경험을 쌓는다면 큰 도움이 될테니까. 나도 북방에 있을때…”
한참 말하려던 관평은 하후상이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자 뚱한 얼굴로 말했다.
“뭐.”
“…하아아.”
‘이건 바본가?’
손상향이 그냥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도 어느정도 마음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관평이 대응을 한다면 생길 마음도 금방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하후상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보급지원 갔다와서 넌 나랑 얘기 좀 하자.”
“갔다와서라… 할 거면 지금 하면 안되냐?”
“왜?”
“승상부주께 청하여 나도 전투에 참여하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관평은 다 닦은 참마도를 옆에 두고 갑옷을 챙겼다.
갑옷도 다시 정성스럽게 닦는 그를 보며 하후상이 묻자 관평은 천천히 말했다.
“저번에 병에 걸렸을 때 알게 되었지.”
“무슨?”
“죽음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말야. 그것을 한번 더 느껴보고 싶다. 그것을 넘어서고. 익숙해진다면… 나는 좀 더 강해질 수 있을거야.”
“미친놈이네. 야. 유서 쓰고 가. 그럴거면.”
“나 죽으면 내 재산 네가 다 가져.”
관평이 인상을 쓰자 하후상은 떨떠름히 말했다.
“농담은 제쳐두고. 주군께선 네가 출정하는 것을 허락하실까?”
“진심으로 고하면 받아주시지 않을까 싶다만…”
“그렇게 공을 세워서 뭘 하려고? 너 지금 공이면 중랑장, 아니 교위까지도 노릴 수 있는 것 아니야?”
하후상의 질문에 관평은 눈을 감았다.
“관인으로서 공을 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내 개인적인 욕심이다.”
“야. 맨날 그렇게 싸움만 하면서 뭘 하려고?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은 그것 밖에 없냐?”
“그것 말고 뭐가 있지?”
“예를 들면 가족을 만든다거나…”
관평은 하후상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 무감정한 시선에 하후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관평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북방에 있을 때 장 장군께서 말씀해주신 것이 있지.”
“뭘?”
“한계를 넘는 방법에 대해서 말야.”
그건 하후상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무관들에게 있어서 꿈이나 다름없는 경지다.
지금까지 그 경지에 오른 사람은 여포 정도 뿐이라 들었었다.
하후상 역시 무관.
강함을 동경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흥미를 보이자 관평은 천천히 말했다.
“한계를 넘으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공포를 즐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무슨 소리야?”
“수많은 죽음의 위기와 공포를 넘어서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한계를 넘을 수 없게 된다. 그게 한계를 넘는 법이라고 하시더군. ”
관우와 장비도 그랬다.
그들은 유비를 위해서 죽음의 공포따위는 모르고 싸워나갔다.
그렇기에 인간답지 않은 힘과 위용을 보인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안위보다 사명, 그리고 무에 대한 욕망이 앞서게 된다면 더욱 강해진다.
이번에 진짜 죽음을 눈 앞에 뒀었던 덕분인지 관평도 그것을 알 것만 같았다.
“야. 그 말은…”
“그래.”
관평은 무심한 눈으로 하후상을 보았다.
“한계를 넘는 방법은 단 하나. 죽음을 즐겨야 한다. 이번 전쟁에서 나는 한계를 넘어 볼 생각이다.”
그의 말에 하후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글러먹었군. 그런 미친 짓을 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삶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그렇기에 아버지도… 오로지 사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렸다. 나도, 어머니도.”
한계를 넘기 위해서 죽음을 즐겨야 한다고?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험지에서 생환하면 생환할 수록 점점 더 강해지니까.
훈련을 할때도 마찬가지다.
검을 휘두르다 팔이 빠지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넘어서고 나면 그 한계는 넓혀진다.
하지만 전투는 달랐다.
그런 식으로 죽음을 즐기는 것을 계속 반복하다간 언젠간 진짜로 죽고 만다.
하후상이 질린 눈으로 바라보자 관평은 피식 웃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주군뿐이다. 그러니… 주군을 위해서라면 난 한계를 넘을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불가능하겠지.”
그랬다.
하후상에게는 아내도 있고, 첩도 있고 자식도 있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결코 무리를 할 수 없었다.
하후상이 심각해지자 관평은 다 닦은 갑옷을 옆에 두었다.
“나에게 있어서 결혼같은 것은, 연인 같은 것은 사치다.”
냉정한 그의 말에 하후상은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관평을 봐왔기에 알 수 있었다.
관평도 손상향에 대한 호감은 어느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무의식적이든, 아니면 의식적이든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한계를 넘고 죽음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를 질린 듯 바라보던 하후상은 웃었다.
“이보게. 친구.”
“응?”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 그러다가 너 죽는다.”
“아마 그러겠지.”
“장 교위님이나 서 교위님은 아시냐?”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실거다.”
장합이나 서황은 결코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할 뿐 한계를 넘기 위한 싸움은 결코 하지 않았다.
위험하다 싶으면 물러난다.
그리고 전략과 전술로 승부를 본다.
결코 감녕이나 장료, 여포처럼 싸우지 않았다.
하후상은 관평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 너는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한계를 넘겠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아니냐?”
“…아니 왜 그렇게 이야기가 되지?”
“애인도 없고, 정혼자도 없고. 자식도 없고. 지켜야 할 것도 없고. 그래서 그런 짓을 하겠다는 거잖아?”
“그야 뭐… 나는 그저 주군의 칼일 뿐이니까.”
“그게 문제라는거다. 그게 사람의 삶이냐?”
하후상의 매도에 관평은 히죽 웃었다.
“난 그렇게 살아왔어.”
“그럼 바꿔. 자식아.”
그의 머리를 한대 친 하후상은 성을 내며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 나온 하후상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자 그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계를 넘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 오라비도 알고 있습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닌데… 그것을 선택하실 줄은 몰랐군요.”
“…헉!? 손 도위?!”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하후상은 당황했다.
설마 들은 걸까?
하후상이 머뭇거리자 손상향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그에게 주었다.
“이게 뭡니까?”
“간단하게나마 야식거리를 준비해왔습니다. 교주에서 자주 먹는 음식인데. 스승님께 해드리고 나서 좀 남아 가져다 드리는 것입니다. 관 도위님과 함께 드십시요.”
“으음…”
그녀가 내민 접시에는 쌀을 눌러 만든 듯한 과자가 있었다.
꿀과 견과류가 듬뿍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것과 손상향을 번갈아 바라보던 하후상은 머뭇거렸다.
“저기…”
“그리고 하후 중랑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저와 관 도위님은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손상향이 바로 몸을 돌려 떠나간다.
하후상은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망했다.
주군의 말대로 그냥 끼지 말걸.
괜히 나서서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든 것 같다.
하후상은 울상을 지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뭐냐?”
“손 도위가 가져다 주라더라.”
“흠. 이거 맛있다.”
“…응? 먹어봤냐?”
“어. 교주에서 자주 먹는 것이라고 하더군. 손 도위가 몇번 해줘서 먹어 본 적이 있지.”
“…나는 처음 보는데?”
“그래? 꽤 넉넉하게 만들어서 가져다 준 것이라고 했는데. 야식으로 먹기는 좋더군.”
관평이 무뚝뚝하게 말하고 과자를 입에 넣는다.
그것을 지켜보던 하후상은 엎드려 절망했다.
“아아아아…”
“뭐하냐?”
“몰라도 돼. 자식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후상은 곧장 진유하의 방으로 달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