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99
00399 포기하겠습니다. =========================
진짜 후계자가 되고 싶은가 보네.
아까 견희를 처음 만났을때를 보면 완전히 빠져버린 것 같았는데.
난 그의 대답이 가소로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 포기하겠다라… 내가 사부님께 배운건데 말이지. 사람의 감정이란게 그리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라더라. 특히 사랑같은 것은 말야.”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조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보였다.
나중에 후계자가 되고 나면 견희와 결혼한 사람을 잡아 죽여서라도 견희를 얻으려고 하려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만약 조비가 후계자가 되면 오히려 더욱 더 견희와 결혼을 할 수 없게 된다.
“말해두지만 지금이 아니면 견희와 결혼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 진짜로 후계자를 노리고, 후에 사공의 뒤를 잇는 자가 되려고 한다면 빨리 마음 접는게 좋을거야.”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폭군이라도 되고 싶은건가?”
어지간하면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해주기는 해야했다.
“말했다시피 견희는 재가를 해야해. 그리고 그건 아무나와 할 수 있는게 아니지.”
조비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견희가 어떤 위치에 있는 여자인지.
“행여나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네가 함부로 노릴 수 있는 위치의 여자가 아니게 된다는 거다.”
“…알고 있습니다.”
“만약 견희가 결혼한 사람과 잘 살고 있는데 네가 죽이든 죽이지 않든 그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너는 견희를 취할 수 없게 되어 버릴텐데.”
만약 그냥 동네 백성 하나와 견희가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약탈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망나니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견희는 하북의 명가인 견가의 여식이다.
그리고 전 남편은 원소의 아들인 원희.
어중간한 신분과는 재가는 커녕 대화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즉 조조의 부하들이나 협력자 중에서도 조가와 무척이나 인연이 깊은 사람과 결혼을 해야한다.
“네가 아버님의 후계자가 되고, 또 아버님의 뒤를 잇게 된다면 견희의 남편은 자연스레 너의 신하가 될거야. 그런데 신하가 죽었다고해서 신하의 아내를 취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개망나니 폭군에 색에 미친 남자가 되겠지.”
내 말에 조비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모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이렇게까지 자신의 손으로 치고 올라가려고 하는 조비다.
내가 말하는 것을 모를리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네.”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고 자기가 첫눈에 반한 사람에게서 눈을 돌려버리는걸까.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그렇게 한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다니. 참나. 마음대로 해. 하지만 지금 말해두겠는데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견희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마라. 조공의 아들이 신하의 아내를 노리는 개망나니가 되는 꼴은 난 절대 못보니까.”
“제가… 형님 대신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다 하더라도 말씀이십니까?”
“그래. 신하의 아내를 빼앗는 쓰레기 군주가 되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아버님께서, 아니, 조가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막으려고 할거다. 그들을 전부 배제할 생각이냐? 아니, 그것을 떠나서 아버님을 따르는 신하들 대부분이 반대할거다. 왜? 언제 자기 아내를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할테니까. 기껏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평생 반란제압만 하고 싶은 건 아닐테고.”
“하아…”
“그냥 깔끔하게 후계자 자리를 포기해.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 꼭 사람이 큰 것을 보고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못하겠지?
그러니까 그냥 후계자 자리 포기해라.
만에 하나.
조앙이 죽거나 후계자권을 박탈당한다면 다음 후계자는 조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 계획은 대폭 수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 수정된 계획에는 성군이 필요했다.
그리고 신하의 아내를 빼앗는 군주는 절대로 성군이 될 수 없다.
조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날 노려보았다.
“하시려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슨 권한으로 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권한? 나도 이제 조가의 사람이란 걸 잊었나?”
만약 내가 청이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청이와 결혼을 했고 청이의 뱃속에는 내 애까지 자라고 있었다.
이쯤 되면 당당히 조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문을 위해서라도 그런 미친 짓은 막아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
내가 시큰둥히 대꾸하자 조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후계자권을 포기하든가, 견희에게서 마음을 접든가. 나같으면 그냥 후계자의 권리를 포기하겠다.”
“…..”
“아무튼 후계자 권리와 견희. 둘 모두를 얻으려고 한다면… 나 뿐만 아니라 나와 연을 맺고 있는 모든 이. 그리고 조가의 모두를 적으로 삼아야 할거다.”
조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렇게까지 말해놓았으니 욕심을 버리겠지.
조비는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묵묵히 들었다.
“나가봐. 고생 많았어. 잘 생각해보고 내일까지 결정해줬으면 좋겠네. 견희를 오랫동안 놀려먹을 수는 없으니까 말야.”
“예.”
자리에서 일어난 조비는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후계자 자리를 포기해주면 좋을텐데 말야.”
견희와 다른 사람을 혼인시킴으로서 견가와 연을 맺어야 한다.
마땅한 대상이 없는만큼 나로서는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젠장. 하북에서 제일 아름다우면 뭐해.”
당장 써먹기도 힘든데.
난 견가와 어떻게 엮여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힘없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얼추 주변의 정리가 된 듯 보였다.
“뭐냐? 이것들은.”
“죽어도 원소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꽤나 많다.
관청 바깥의 넓은 광장에 포박되어 있는 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와 방통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개새끼!!”
“저주받아라!!”
“조조따위가 감히!!”
“진유하!! 네놈!! 사지를 찢어죽일 것이다!”
“소원대로 죽여줘.”
어지간하면 다 데려가고 싶지만 어쩌겠나.
나와 조조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이들의 처분을 방통에게 떠넘겼다.
방통은 기다렸다는 듯 신호했고 하나씩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근데 너무 많잖아. 머리 자르는 것도 일이네.”
“그럼? 어떡해?”
목치는 것도 일이다.
저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이걸 어떻게 한다.
난 고민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여범!!”
“예?”
“이런 거 만들 수 있겠냐?”
이유하의 지식에 있는 물건을 땅바닥에 그려주었다.
길로틴.
프랑스 대혁명때 빠른 처형을 위해 고안된 처형도구다.
내가 그려주는 것과 설명해준 것을 전부 본 여범은 감탄했다.
“허. 이런 물건을. 알겠습니다.”
여범이 단두대를 만들러 가버리자 방통은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야. 항상 네가 이런 걸 만들어내거나 고안하는 걸 생각하면 말이지.”
“응.”
“네놈 머릿 속에는 뭐가 있는거냐?”
“그러게.”
내 머릿 속에 있는 이유하.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난 그를 향해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고보니 영이에게도 아직 이유하에 대해서 말해주지 못했구나.
업성의 정리만 끝나면 바로 말해줘야겠다.
“아무튼 이상한 놈… 서복에게 연락이 왔어. 남피에서 공격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별반 마찰이 없었다고. 공격하는 둥 마는둥 하고 적은 복귀했다고 하네.”
“너무 늦어서 그런걸까?”
“글쎄. 내일 정도면 서복이 올거야.”
“흠…”
서복이 데려 오는 병력은 약 일만 가량.
이제부터는 나도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업을 지키느냐, 아니면 남피를 치느냐, 그것도 아니면 원소의 후방을 공격하느냐.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백마항부터 공략하자.”
“그게 낫겠지.”
업에 소속되어 있는 항구인 백마항을 공격하여 그곳을 손에 넣음으로써 황하를 완전히 우리 손에 넣게 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원소에게 심리적인 압박도 줄 수 있었다.
“복이가 오면 바로 가야지. 그리고 포로들은 어떻게 하냐?”
“포로?”
“원가의 여인들. 견희야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유부인이라든가 왜 있잖아.”
“그것도 그렇군. 유부인은 원상을 공략하는데 쓰면 될 것 같은데. 나머지는 어쩐다…”
“적당히 몸값 받고 풀어 줄 수 있는 이들은 풀어주는게 낫지. 가족관계 확인해서 포섭할 수 있는 가문과 연계되어 있으면…”
이거 하는 짓이 도적이나 해적들이 하는 짓 같다.
말하면서도 찝찝하네.
“뭐 아무튼 그렇게 하자.”
“알았어. 그럼 잡을 놈들은 단두대? 그게 만들어지면 잡으면 되겠지? 포로에게 매번 밥 챙겨주기에는 쌀이 아깝다.”
“응. 그렇게 해둬. 그리고 서복이 오면 회의할거니까 바로 모여.”
******
부대로 복귀한 조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업성의 공략에 성공했지만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했다.
아쉬워하는 부대원들을 달래 준 하후상은 조비에게 다가갔다.
“앞으로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뭐냐? 왜 죽을상이야?”
“으… 힘들다.”
“그렇게 무식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라니까. 아무튼 아쉽네. 전풍을 잡았다면 관직까지 노릴 수 있었을텐데. 비. 역시 주목의 인장으로는 어떻게… 분위기가 왜 이래?”
점호를 마치고 적당히 부대를 쉬게 한 전만과 위풍은 하후상과 조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 역시 하후상과 마찬가지로 조비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풍을 잡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전공을 올릴 기회는 아직 많이 있었다.
업을 함락했을 뿐이지 아직 원소의 세력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빨리 올라가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비. 너는 너무…”
“…포기할까?”
“뭐?”
“너 지금 뭐라고 한거냐?”
조비가 작게 중얼거리자 전만과 위풍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하후상의 얼굴은 딱딱히 굳었다.
그가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이 부대에서 유일하게 조비의 정체를 알고 있는 하후상은 조비를 잡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진심이냐?”
“…..”
“너 아까 견희를 봤지.”
“…그래.”
“그 여자 때문이냐?”
“하아. 그렇다면?”
경험이 적다 뿐이지 하후상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진유하가 견희를 얻음으로서 쓸 수 있는 수를 예상하고 있었다.
견가와의 결합을 통해 하북 내에서의 영향력을 올린다.
견가와 연을 맺고 있는 명가와 호족들이 조조에게 손을 들어준다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될 전투를 크게 줄여줄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북을 차지한 후에도 하북의 관리를 위해 인력의 교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가지게 된다.
“진동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디? 견희를 얻고 싶으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라고?”
“…응.”
“고작 계집 하나 때문에 네가 목표로 하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냐?”
딱히 조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해 온 조비였다.
“모르겠어. 하지만… 진동장군이 말하더군. 견희, 아니면 후계자 자리.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한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견희는 하북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패로 중히 쓰여야 한다.
그런데 조조의 아들이 아닌 일개 삼백인대장 따위와 결혼을 시킨다?
오히려 견가와 대놓고 싸우자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틀린 말씀은 아니네.”
“젠장.”
조비는 이를 갈며 근처의 나무상자를 발로 걷어찼다.
그런 그를 딱하게 바라보던 하후상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어쩔거야? 진짜 포기할건가?”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 것인가?
조비는 입술을 비틀었다.
“둘 다 갖고 싶은데.”
“욕심이다.”
“원래 난 욕심쟁이었어.”
“하.”
조비의 말에 하후상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진동장군께서 견희를 네가 공을 세울때까지 놀려먹을 것 같냐? 당장 내일이라도 견희를 다른 이와 결혼하게 하려 하실텐데? 네가 지금 말하는건 말이지. 조가는 둘째치고… 진동장군의 뜻을 거스르려는 행위다.”
“…그래서?”
“어?”
조비의 눈이 번뜩였다.
“거스르면 좀 어때?”
“야…”
이 자식이 드디어 미쳤나?
하후상은 움찔했다.
“미친 짓도 좋지만 그건 나중에 너 혼자해라. 괜히 우리를 휘말리게 하지 말고.”
“흥.”
콧방귀를 뀐 조비는 마음을 잡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설임을 지운 듯한 그의 모습을 훔쳐보며 하후상은 떨떠름히 말했다.
“말해두겠지만…”
“알아. 그냥 화가 나서 투덜거린 것 뿐이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러냐… 그럼 다행이지만.”
조비는 원래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갈등과 고민이 사라진 그가 터덜터덜 부대로 돌아가자 하후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확실히 경국지색이라는 이유를 알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