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595
예상치 못한 사마의의 말에 난 당황했다.
설마 저수가 거기에 있었단 말인가.
내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자 사마의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많은 이민족들, 그리고 유주의 백성들에게 큰 인망을 끌고 있는 유화다. 그리고 유화의 밑에서 저수는 많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그래서?”
“내 생각이지만 너는 아마 유화와 대화를 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저수가 그것을 가만히 놔둘 것 같은가? 유화는 기본적으로 싸움을 싫어해. 하지만 저수는 좀 다르지. 그는 필요하다면, 그리고 승산이 있다면 충분히 전투를 감안할 수 있는 사람이야.”
“저수가 그 대화를 막을 것이라는 건가?”
“그래. 유화가 너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유주가 조조에게 넘어갈 것을 그는 알고 있을테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네가 혓바닥 놀리는 것은…”
“말이 좀 심하지 않냐?”
“그럼 사람들 현혹하는 능력만큼은 대단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 테니까. 원소의 책사들이 그렇게 서로 치고박고 싸운 뒷배경에 네가 있다는 것 쯤은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전풍이 변화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그에게 심어 놓은 독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싫어져 북방으로 떠난 저수라면 분명 조사를 한 후 나를 경계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유화와 대화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수는 자신 나름대로의 책략을 쓸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막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대화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다. 조조의, 너의 신분을 내세우며 말이야.”
“황족이라는 것을 내세운다는 건가.”
“맞아. 유화는 황족이다. 즉, 황제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다면 승상에 불과한 조조의 명령은 통하지 않아. 이번 북방 정벌은 승상직에 있는 조조에 의한 것인만큼 저수는 그것을 내세우며 유화가 대화에 나가는 것을 막을 것이다. 법도에 따르면 신분이 낮은 이가 군사를 이끌고 대화를 요청했을 때 황족들에게는 그 대화를 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으니 말이야. 신하는 신하답게 황족에게 무장을 하지 않고 다가가야 하는 것이 맞지. 하지만 그건 미친 짓이야. 행군사마로 내가 널 보좌하는 이상 그건 어떻게든 막을거다.”
“흐음…”
이번 북방 정벌의 성공을 위해서 조조를 왕위에 올리려 한다.
하지만 너무 약하다.
“그런 것이라면 안전한 다른 방법이 있었을텐데.”
“물론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첫번째 이유라고 한거다. 두번째 이유는… 북방의 문제가 아니다. 천하의 문제다.”
“천하의… 문제?”
“그래. 천하의 문제. 그리고 그 대부분은 유장에 대한 견제와 익주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얻는 것이다.”
“빌어먹을 황족이라는 게 걸리는군.”
“그래. 유장 역시 황족이지. 즉, 조조가 고작 승상이냐, 아니면 왕이냐에 따라서 천하를 공략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진다. 당연하겠지만 왕이 되었을 때 공략이 더욱 쉬워지지.”
결국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조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문화라고 해서 천하의 모든 것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또한 오나 익주의 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도 필사적일 수 밖에 없게 되지.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좋아. 뭐 그렇다고 치자고.”
“그렇다고 치자고가 아니라 그런 거다. 지켜야 할 곳이 많아질 수록 해야 할 일은 늘어나. 또한 북방 정벌에 성공하게 된다면 승상이라는 위치만으로는 모두를 다스릴 수 없게 된다. 조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던 일이야.”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했잖냐.”
“농담이겠지?”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 그를 향해 난 입을 다물었다.
그래.
만약 복 황후가 사마의에게 낚여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동소의 말대로 일일히 많은 이들을 설득하여 조조를 왕위에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순욱은 그것에 필사적으로 반대를 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삼국지처럼 조조에게 빈 찬합을 받아 자결을 했을지도 몰랐다.
이미 동소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황제의 행동에 거슬려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형주 정벌에 성공하고, 또 북방의 정벌을 하게 되어 그것을 성공시켰을 시 조조는 천하의 절반 이상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런 사람이 고작해야 승상이라니.
조조를 따르는 신하들이 인정할 리 없었다.
반드시 그들은 조조를 왕으로 승격시키려 할 것이고 조조 역시 그 필요성을 느끼고 왕위에 오를 거다.
당연히 순욱은 반대를 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내가 한숨을 내쉬자 사마의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순욱을 데리고 가려는 마음은 안다. 어차피 너는 소의를 쫓는 자이니까. 그러나 소의의 가장 큰 약점은 대의에 휩쓸리기 쉽다는 거야. 네가 아무리 순욱을 챙기려고 하더라도… 대의가, 흐름이 크게 움직인다면 그것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젠장.”
“뭐. 대의 속에서 너만의 소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간단해. 네가 절대자가 되면 된다. 그리하여 대의가 너의 소의 안에 포함되게 하면 된다. 너의 뜻이, 너의 소의가 곧 대의가 되게 하면 되는거야. 어때? 끌리지 않냐?”
“장난하냐?”
사마의는 어깨를 으쓱이며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 입을 다물었고.
세잔 째의 차를 마실 때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럼 간다.”
“그래. 아무튼 나 때문에 고생 많았겠군. 푹 쉬어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말하는데 쓸데없는 짓 할 생각 마라.”
“그러지.”
사마의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차다.
“…북방은 더 춥겠군.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어.”
*****
진유하가 나가자 사마의는 빙긋 웃었다.
“아쉽군.”
진유하에게 말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게 된다면 조조와 순욱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조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시 신뢰할 만한 사람을 끌어올려야겠지.
그리고 그 신뢰할 만한 사람은 바로 조조의 사위이며, 조조가 순욱 수준으로 신뢰하고 있는 진유하 밖에 없었다.
“아쉬워. 정말 아쉬운 일이야.”
만약 진유하가 그만큼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면 가후와 자신의 계획은 한단계 더 목표에 가까워 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뭐.”
이미 끝난 일이다.
현인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법.
스스로 현명해지고자 노력하는 사마의에게 있어서 이미 실패한 계획은 그저 실패한 계획이다.
그 실패에서 얻어낼 것을 얻어내면 될 뿐이지 그 실패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그 녀석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많았는데 말이야.”
새로운 승상부주.
아니.
잘하면 새로운 승상이 될 수도 있었던 진유하에게 해 주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나중을 기약해야겠군.”
어차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조조에게 왕이 될 가능성이 열린 이상, 그리고 그가 왕이 되는 것이 거의 확정된 이상.
진유하는 얼마든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네가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결국 소의는 소의. 그 소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대의를 따를 수 밖에 없게 될거다.”
빙긋 웃은 사마의는 빙긋 웃으며 터벅터벅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날씨가 춥다.
“북방은 더 춥겠군. 준비를 많이 해야겠어.”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사마의는 진유하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창문을 닫았다.
그가 창문을 닫고 방을 정리한 후 잘 준비를 하려고 할 때 한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 왔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사마의는 쓰게 웃었다.
“덕분에 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어.”
“서방님의 편함이 곧 저의 편함이에요.”
장춘화.
스스로의 이름을 버리고 사마가의 하녀가 된 여인.
그녀가 예쁘게 웃자 사마의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은 장춘화는 베시시 웃었다.
“제가 도움이 되었나요?”
“그래.”
사마의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춘화의 얼굴이 밝아졌다.
살며시 자신의 팔을 끌어안은 그녀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사마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제 약속을 지켜주시겠어요?”
“하아…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했지. 이번 일에 네가 큰 도움이 되었다면 말이야.”
장춘화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던 사마의는 짧게 혀를 찼다.
“쯧. 너에게까지 수고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수고고 뭐고 없어요.”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고.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사마의는 장춘화를 똑바로 마주했다.
스스로를 동이족이라 말했지만 그녀의 정체는 명가의 사람이다.
그런 여인이 자신을 숨기고 사마가에 들어왔다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것따위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마의는 이제 장춘화를 놓아 줄 생각을 했다.
이제 정규군 소속이 되어 북방으로 향해야 한다.
그리 된다면 장춘화도 함께 따라오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 잘못한다면 장춘화의 목숨까지도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필요에 의해서 그녀를 함께 데리고 다녔지만 더 이상은 위험하다.
북방의 험난함보다 정략이 판치는 세상이 몇천, 몇만배는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사마의는 장춘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목숨을 걸고 움직여야 한다. 내게 휩쓸려서 네가 죽는 것까지는 보고 싶지 않아. 자. 이제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주지. 무엇을 원하나?”
사마의의 생각에 장춘화가 원하는 것은 사마가의 비고에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사마가의 비고에는 많은 기서들이 있었다.
명사들이라면, 명가라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어하는 기서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서 북방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그녀다.
자신과 사람들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음식이나 물, 생활 전반에 불편함을 느끼고 밤에 흐느끼던 것을 보았던 사마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춘화는 떠나지 않고 자신의 옆에서 힘을 빌려주었다.
이렇게까지 해줬다면.
준다.
“세상은 점점 위험해질거다. 그리고 나는 정략의 중심으로 나아가겠지. 이제부터는 상관없는 남의 목숨따위 책임져 줄 수 없어.”
이제 천하는 움직일테니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정도까지 왔다면 되었다고 생각한 사마의가 여유롭게 말하자 장춘화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저희가 결혼을 한지 꽤 되었지요?”
“한 일년, 아니 이제 이년쯤 되는 건가?”
“그동안… 서방님께서는 저와의 동침을 거절하셨습니다. 왜 인가요?”
“사실대로 말해?”
“예.”
“너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 애초에 신분에 대한 거짓을 말한 여자를 믿을 이유가 없잖아.”
이번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춘화의 인맥을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동이족이라고?
동이족이 불기후의 작위를 가진 복완과 연을 맺을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그녀의 가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작위를 가진 가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쨌든 결국은 장춘화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사마의의 말에 장춘화의 미소가 딱딱히 굳어졌다.
그녀의 예쁜 얼굴을 마주하던 사마의는 천천히 말했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사마가에 왔다면, 좋다. 그정도 배짱이라면 받아줘야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장난이 아니다. 자. 이야기해라. 네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마. 그리고 너의 가문으로 돌아가라.”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언제부터? 처음부터 알았다. 분명 우리는 어렸을 때 한번 만났던 것 같은데. 아닌가?”
“….”
장춘화가 입을 떼지 못하자 사마의는 천천히 말했다.
“부담갖지 말고 말해라. 원하는게 무엇이지? 이제부터는 나도 너를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이 생길지도 몰라.”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까?”
“그래.”
“그럼…”
장춘화는 눈을 살짝 감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사마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제대로 들은건가?”
“아이를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