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04
진지하기 그지 없는 어조로 주령이 말한다.
완전 무장을 하고 언제라도 적을 상대할 분위기를 갖춘 그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일 벌이지 마라.”
“하오나.”
“명령이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장합이랑 나머지는 언제 온다냐?”
슬슬 올때가 됐는데?
내가 궁금해하자 주령은 서찰을 꺼냈다.
“안그래도 오늘 새벽에 연락이 왔습니다. 장 교위와 서 교위, 그리고 하후 도위가 오늘 밤 쯤이면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그들이 있어주면 꽤 편할거다.
“오늘 밤이라…”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아버지가 있으니 지휘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오늘 밤이면 아마 나는 교사원에 잡혀 있을 것이다.
현명한 장합과 서황이지만 그들 역시 주령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걔들이 미쳐 날뛰면 골치아프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도록 해둬.”
“알겠습니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마침 잘… 이야~ 아버지도 그렇게 차려입으시니까 꽤 볼만하네요.”
영이가 만들어준 옷으로 단장을 한 아버지는 꽤나 근엄한 모습이었다.
손주들 앞에서 보이는 순한 할아버지가 아닌, 진짜 한 군을 다스리는 군수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씩 웃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그래봤자 중늙은이지.”
“아뇨. 아뇨. 이거 참. 위엄이 넘쳐납니다. 하하…”
주령도 감탄하며 말한다.
그만큼 아버지의 모습은 꽤나 멋졌다.
“희아가 만들어 준 옷이다. 멋있지?”
“예. 그렇군요.”
내가 감탄했을 때 안채에서 성이가 나왔다.
성이도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이다.
꽤 비싸보이는 비단 옷을 입은 그가 나오자 난 가볍게 성이를 안아주었다.
“순선이 온다고 차려입은 것이냐?”
“하하하… 뭐 그렇습니다.”
머쓱하니 웃은 성이는 내 품에서 내려온 후 빙긋 웃었다.
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안채를 보았다.
“휘는?”
“지금 시녀들에게 화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
생각해보니 기분 나쁘다.
제 아비 앞에서도 하지 않던 치장을 하려 하다니.
내가 뚱한 표정이 되자 아버지는 웃으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거 표정 풀어라.”
내가 신음하며 대꾸하려고 할 때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 잘들 있었냐? 오래간만들이야!”
기쁘게 외치며 조앙이 청이와 함께 들어왔다.
청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율이가 타박타박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아버지~”
“그래. 그래. 어제 재밌게 놀았니?”
“네! 할아버지랑 같이 놀았어요!”
율이의 순박한 미소를 보니 마음이 놓인다.
방긋 웃는 율이의 통통한 볼에 몇번 입맞춰 준 후 놓아주자 율이는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어이구~ 우리 율이! 하루만에 많이 자랐구나~”
“헤헤헤~”
아무리 봐도 손주바보다.
아버지가 율이에게 재롱을 피우는 것을 보던 나는 조앙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요.”
“그래. 오늘 휘의 남편 될 녀석이 온다면서? 상견례냐?”
“초대 정도입니다. 밥이나 한끼 같이 먹자는 정도지요.”
“순선이었지? 그 녀석은 나도 알아. 꽤 괜찮은 녀석이야.”
조앙이 말하는 거면 좀 믿기가 애매하다.
워낙 사람을 가려 사귀는 사람이다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내가 떨떠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조앙은 인상을 썼다.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쯧. 야. 그것 좀 꺼내라.”
“그거?
호위를 위해 따라 온 것으로 보이는 함진영 중 하나가 들고 있던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거울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아버님께서 보내시는 거다. 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허… 이거 참.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감사는 무슨. 나중에 율이나 좀 자주 보내라고 하더라. 아버지가 율이를 아주 마음에 들어하셔.”
“다행이네요. 청아.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와.”
“예.”
빙긋 웃은 청이가 율이를 데리고 안채로 들어간다.
그녀가 가는 것을 지켜보던 조앙은 실실 웃었다.
“이거 참. 내 동생이 결혼해서 저렇게 딸도 낳고 현숙한 부인이 될 줄이야. 이게 다 산양군수님 덕분입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아. 안에서 차라도 한잔 하시지요.”
조앙에게는 귀뜸을 해놔야 한다.
아버지가 조앙을 데리고 들어간다.
잠시 후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주령과 흑귀대원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들이 무기를 잡았을 때 문 안쪽으로 병사 두명이 들어왔다.
“승상께서 오셨습니다.”
왔구나.
순욱을 호위하기 위한 병사들인가보다.
정예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순욱은 진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순선까지.
순욱은 부드럽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진 가주의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 어서 드시지요. 그래. 자네도 어서 오게.”
“예에…”
순선도 꽤나 잘 차려입었다.
어색해하며 나에게 인사를 한 그에게 마주 인사한 후 그들을 데리고 사랑방에 들어갔다.
“아버지.”
“그래. 옆에 앉아라.”
성이가 내 옆에 앉자 순욱은 빙긋 웃었다.
“오래간만이네. 그래. 잘 지냈는가? 듣자하니 좌풍익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순 승상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하하하… 내가 뭘 했다고.”
“순 승상께서 전해주시는 금과옥조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가…”
내 아들답다.
아주 그냥 아부하는 솜씨가 끝내준다.
순욱은 가볍게 웃은 후 탁자를 톡 쳤다.
“그럼 너희들은 잠깐 나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거라. 어른들 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야.”
“예.”
“형님. 가시죠.”
순선과 성이가 나가자마자 순욱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순가에 도둑이 든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만…”
“그 문서가 자네 집에서 발견되었다는데. 사실인가?”
“예. 곽영이 보낸 상자에서 그런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어제 교사원에서 사람이 왔었고…”
“그런가…”
순욱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지금 하루만에 소문이 좀 이상하게 돌고 있어. 자네가 익주군을 공격하지 않고 놔준 이유가 그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습니까?”
곽영이 아주 개수작을 열심히 부리고 있구나.
내가 심드렁히 대꾸하자 순욱은 턱을 매만졌다.
“거기에 자네는 그 위치나 업적에 비해서 가진 것이 별로 없지. 그것에 불만을 품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까지 퍼지고 있다네.”
“어디에서 그럽니까?”
“상서부와 승상부 뿐만이 아니야. 민조, 그리고 시조와 다른 부서에서도 그렇다네. 내 아침에 등청하여 헛소문을 퍼트리지 말라 말했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소문은 점점 커지는 법이라네.”
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는 이의 몰락을 즐거워한다.
그것이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이번에 큰 공을 세운 나를 시기하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곽영과 손을 잡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거슬리는 이들은 있겠지.
그들도 이 소문에 조금씩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소문을 퍼트린 이들에 대해서는…?”
“승상부주와 상서령이 조사를 하고 있네만.”
“그럼 됐습니다.”
“허… 뭘 그리 편하게 있는건가?”
“헛소문이고, 또 교사원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겠지요.”
“이건 틀림없이 곽영의 수작일 것이야. 자네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눈치는 챘습니다.”
순욱은 그제서야 표정이 풀렸다.
“대비하고 있는건가?”
“예.”
“누가 움직이는 건데?”
궁금해하는 그를 향해 난 웃어보였다.
“비밀입니다.”
“지금 중달은 경조에 가 있고 서복은 북방에, 그리고 방통은 형주에 있어. 움직여 줄 사람이 없다면 내 나서주지. 위국의 승상으로서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에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구만.”
순욱은 나를 도울 생각이 충분한 듯 보였다.
그렇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냥 모르는 척 해주십시요.”
“이 상황을 이용할 생각인가?”
“예.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야지요.”
수경원의 수칙.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라.
적의 책략마저도 이용할 수 있다면 쓰는 것이 옳다.
내가 쓰게 웃으며 말하자 순욱은 한숨을 푹 쉬었다.
“만약 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큰 기회가 될 수 있겠군. 조앙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자신에게 적대적인 이들을 쳐낼 수 있는데다가…”
“새로운 왕이 등극하며 생기는 혼란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조앙의 매제이며 위국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최종적으로 이 일이 마무리 된다면 지금 곽영이 퍼트리고 있는 소문에 휩쓸린 이들은 발목에 족쇄가 채워지는 셈이 된다.
만약 조앙에게 거슬리는 짓을 하면?
이번의 일을 빌미로 처단이 가능해진다.
그것을 노리고 있는 나를 향해 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선이 녀석을 진가의 사위로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구만.”
“왜요?”
“왜기는. 자네같은 능구렁이가 장인이라니. 이거 참. 예전의 전하와 자네가 겹쳐보이는군.”
“음…”
그러고보니 그러네?
청이와 결혼을 할 때 조조가 그랬었지.
난 그를 향해 씩 웃었다.
“다 업보입니다. 업보.”
그때도 순욱은 말리기보다는 부추기는 쪽이었지?
난감해하는 그를 향해 난 웃었다.
“그래도 잘 살지 않습니까. 선이와 휘도 잘 살겠지요.”
“하하… 그랬으면 좋겠군.”
순욱과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주령이 들어왔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순욱은 안채로 향했다.
“엇? 승상?”
“허. 자네도 왔는가?”
“하하하! 휘가 남이 아닌데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전해들은 걸까?
조앙은 여전히 푼수같은 얼굴이었다.
“쯧. 괜한 소리로 남의 혼사를 막지는 말게나.”
조조와 오랫동한 함께 일한 순욱이다.
그런만큼 조앙에게 하대를 해도 조앙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럼 어디 가볼까?”
안채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넓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많은 음식들.
그것을 보며 조앙은 감탄했다.
“이야~ 많이도 차렸네. 선아. 이게 다 네 덕이다.”
“가, 감사합니다.”
성이와 함께 온 순선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부담갖지 마라.
뭘 이정도 가지고.
“자. 다들 앉으시지요.”
진가 최고의 어른인 아버지의 말에 다들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어째 내 부인들이랑 딸들이 안보인다?
“휘 아가씨는 이제 곧 나올거에요. 걱정마세요.”
두열이 방긋 웃으며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와…”
영이가 저렇게 예뻤었나?
물론 평소에 봐도 무척이나 예뻤다.
하지만 이렇게 차려입은 걸 보니 더 예뻐보인다.
아니, 영이 뿐만이 아니다.
청이도, 완이도, 그리고 희도.
내 부인들은 그야말로 선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후훗. 조금 힘을 써봤어요.”
멍하니 지켜보는 우리를 향해 영이가 대표로 말했다.
감탄하던 조앙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흑…”
“왜 그러십니까?”
“청아… 너도 하면 하잖냐.”
“뭐라는 거에요.”
평소에 무복이나 갑옷만 입고 다니던 청이다.
그런 청이가 이렇게 아름답게 차려입고 화장까지 하다니.
그녀들이 자리에 앉았을 때 문이 열렸다.
“…허.”
저게 휘란 말야?
성이와 율이와 함께 좌풍익에서 양을 타고 놀러다니던 말괄량이의 모습은 없어졌다.
영이와 닮은 길고 아름다운 긴 머리칼.
새하얀 피부.
붉게 물들어 있는 도톰한 입술.
상냥하게 웃고 있는 표정과 단아한 차림새까지.
아버지와 나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어…”
늘 휘를 보는 나조차도 당황할 정도다.
그런만큼 다른 남자들은 더더욱 기겁을 하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약간 까칠하다 싶었던 말투는 어디가고 조신하고 아름다운 말투가 자리잡았다.
휘의 모습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 승상. 이번 혼례는 없던… 크억!?”
아니 내 딸을!
저렇게 천사같은 딸을 어떻게 줘!
아버지는 내 팔을 당기며 옆구리에 주먹을 날렸다.
“녀석아. 좀 체신머리라는 것을 갖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