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87
487화
순욱은 하인의 도움으로 조복으로 갈아입었다. 늙은 하인은 순욱을 도우면서 서글픈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었다.
“죽는 길이 다가오니 그리 걱정이 되는가?”
“이 나이를 먹어서 죽음이 무섭겠습니까? 주인께서 소인의 아들들을 돌봐 준 덕에 그놈들도 글줄깨나 읽어 군리를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들들도 출세하였으니 한 줌의 미련도 없지요.”
“한데 어찌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가?”
“주인께서 이러한 대우를 받으니 그러한 것입니다. 본시 저들은 언제나 주인의 발길이 닿는 곳에 달려와 고개를 숙이며, 내려 주던 은혜를 받아먹던 이들인데, 칼을 들고 나타났으니 이 어찌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입니까? 또한, 주인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관복을 입고 그리 행동하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도망가시는 편이…….”
순욱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온화하여 늙은 노복도 차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인 뒤 눈물을 훔쳤다.
“드디어 나는 모든 것을 놓을 수 있게 되었네. 그간 너무 많은 것을 어깨에 지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였지. 그런데 이제 그 걱정을 놓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인은 안타까운 눈으로 순욱을 바라보았다.
“정녕 모든 것을 놓으셨습니까?”
순욱은 바로 답하지 못하다가 이내 말했다.
“모두 놓았다는 것은 거짓이군. 미련 정도는 남았다고 해야겠네. 나는 한조의 충신으로 남고 싶었고, 한조가 재건되어 천하에 그 이름을 남기를 바랐네. 한조야말로 이 중원의 법도가 천하를 덮었던 진정한 법도를 가진 나라이니 말이야.”
순욱은 아련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욱은 자신이 보지 못한 한조의 전성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아마 순욱은 한조의 전성기를 직접 보지 못하였기에 더더욱 아련한 것으로 보였다.
왕좌지재라 불리며 자신의 능력으로 진정 한조의 부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희망이 산산이 조각나 이제는 마지막까지 품었던 마음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순욱이 조복을 입고 옷매무새를 만지는 그때,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순가의 대문을 박살 내고 들어왔다.
“죄인 순…….”
순욱은 조심스럽게 나오자 병사들은 차마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분명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그의 분위기에서 풍기는 수려함과 단정함은 기품으로 나타나 범접하기 어려운 그것이었다.
그러면서 순욱이 황실의 명을 성심껏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알리는 듯 병사들에게 예를 표하자, 병사들도 차마 역적이라는 말로 순욱을 욕하지 못하고 마주 예를 차리며 말했다.
“폐하께서… 죄를 물어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응당 받아야겠지. 성지는 내려졌는가?”
그럴 리가 없는 일이었다. 황실에서는 자신들이 들고일어난 순간, 순가에서도 칼을 뽑고 맞대응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단숨에 들이쳐 순욱을 잡고, 순가의 인물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순가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그 수장인 순욱이 순순히 벌을 받겠다는 듯 이렇게 서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하니 즉결 처형을 위해 온 병사들이 성지 따위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성지도 없이 나를 죽여 치욕을 주려 했음인가?”
순욱의 말에 병사들은 절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소인들이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어찌 상국을 욕보이고자 하겠습니까?”
순욱은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하다면 내 폐하를 뵙고 죄를 청한 뒤 벌을 받겠네. 성지가 없다면 그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병사들은 약간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생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순욱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벌을 청하고자 궁으로 향하겠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국…….”
“그대들이 나를 잡아 궁으로 향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시겠다면… 소인들, 상국의 명예를 위하여 그리하겠습니다. 혹시 모를 일이니 궁을 지나는 길에 이를 알리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게. 궁문을 넘지 못하고 화살에 맞는다면 품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하하하.”
순욱의 웃음에 병사들은 얼굴을 하얗게 뜨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십장은 바로 다른 병사들을 시켜 이를 황궁에 고하도록 하였고, 남은 병사들은 혹 다른 일이 생길지 이리저리 살피었다.
순욱은 그들이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는 데도 도리어 그들에게 물을 내주었다. 보내었던 병사가 돌아와 무엇이라 이야기하자 십장이 말하였다.
“궁문에서 화살을 맞을 일은 피하였으나, 폐하를 만나 성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그럼 도와주겠는가? 내 나이가 드니 등청하기가 어려움이 있군.”
순욱은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가마에 올라 등청을 시작했고, 순욱이 가는 길에 병사들이 이를 따라 움직였다. 누가 보면 벌을 받는 것이 아닌 권신이 등청을 하는 모습과 같았다.
십장이 자신을 힐끔거리자 순욱이 이에 물었다.
“무엇이 궁금하던가?”
“두려우시지 않으십니까?”
“두렵지 않은 일이 있겠는가?”
순욱은 그러더니 잠시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하나가 죽는 것의 두려움은 자그마한 것이네. 나에게는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네. 자네는 어떠한가?”
“소인은… 목숨이옵니다…….”
십장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자 순욱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일이네. 어찌 그것을 부끄러워하는가? 나와 같은 이들이 더욱 우스운 것이라네. 아마 자네 같은 생각이 없어 나는 이렇게 실패했던 것이겠지…….”
“나는 한실의 법도와 전통이 사라질까, 또 혹여나 한조의 이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고 있네. 그것이 더욱 웃긴 일이 아니던가? 나를 지키지 못하고 가문은 지키지 못하였는데, 혹여나 나라가 잘못될까 두려워하다니 말이야.”
병사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눈으로 순욱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배우고 익힌 모든 것에 부합하는 충신이 바로 순욱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뿐이었다.
십장이 몰래 그에게 물었다.
“도망가시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 도망간다고 한들 멀리 갈수 없고, 어딘가에 의탁한다고 한다면 도리어 한조에 짐을 지우는 것이네. 달아난 나 자신이 명분이 되어 한조를 무너트릴 수 있을 터이니 말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인이 향할 곳이야 어디겠는가? 평생을 고향과 같이 삼은 곳을 찾을 뿐이네.”
“그곳이 조정이옵니까?”
순욱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하다네.”
궁문이 열리고 더 많은 병사가 순욱을 에워쌌지만, 그 누구도 순욱을 공격하지는 못하고 그저 둥글게 포위하며 움직일 뿐이었다.
황궁의 조회가 여는 곳에 당도한 순욱은 예를 표하고 몸을 숙였다. 내관은 그것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상국 순욱 드옵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병의 발소리가 아닌 신료들의 조복이 쓸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욱은 그간 많이 들어 온 그 소리에 약간의 편안함을 느꼈다.
“고개를 들라!”
동시에 황제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순욱은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동소와 함께 서 있었다. 그것을 본 순욱은 숨을 짧게 내뱉었다.
“죄인 순욱은 들어라!”
동소가 큰 소리를 내자 순욱은 눈을 감았다.
이윽고 대전에 동소의 목소리로 순욱의 죄가 하나하나 울려 퍼졌다. 지금껏 순욱이 쌓아 온 모든 업적이 죄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논할 수는 있는 바이지만, 지금껏 순욱의 노력으로 한조가 버텨 온 것은 의심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황제는 순욱의 모든 공을 동탁과 같은 모습으로 비틀어 버렸다.
순욱에게 적대적인 신료들까지 이렇게 깎아내릴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이에 모든 관직을 파하고 구족을 멸하여 이일을 끝내야 하나! 본인 스스로 죄를 청하고자 하였고, 직접 자신의 죄를 청하여 벌을 받고자 하니 삼족을 멸하여 끝을 내겠다. 그대가 혈족을 다시 부를 때 형을 집행할 것이다.”
동소의 목소리가 멈추자 황제가 다시금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병사들은 죄인을 잡아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병사들이 순욱을 잡자 순욱의 몸이 떠올랐고, 그의 몸이 가벼워 마치 둥실 뜨는 것 같았다.
“마지막 할 말이 있는가?”
“폐하, 스스로 서기로 하셨다면 의지를 세우셔서 천하를 움직이소서. 천하의 그 누구도 폐하의 권위를 논할 인물은 없으니 권신을 만들지 마소서.”
권신인 순욱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의 말은 정말 절절한 모습이었다. 동소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권신이 자신의 자리를 알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는가? 이는 기군망상의 일이옵니다! 죄인을 즉참하여 황실의 권위를 세우소서!”
동소를 따라 몇몇 인물들이 외치자 황제, 유협은 빤히 순욱을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가?”
동소는 눈을 껌벅이고 슬쩍 뒤를 돌아보려 했는데, 황제가 일어나자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이런 욕을 보고자 이곳에 남았는가! 차라리 가문의 사람들과 도망을 가지 그랬는가? 죄의 멍울을 진 채로 떠나서 살아남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하다면 그것은 제 명예를 내주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소신은 반드시 죽겠으나, 도망치지 않았으니 죽어서 사는 길이 될 것입니다.”
유협은 이를 갈았다. 죽어서 산다는 말에 더더욱 화와 짜증이 몰려왔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 자신이 내지 못한 용기를 순욱은 당당히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모든 일이 죄가 될 것이다! 그대는 부정될 것이다!”
“그러소서. 소신의 이름이 더럽혀져 한조가 영속할 수 있다면 응당 더럽혀지도록 하소서. 하여 한조가 바로 서게 하소서.”
순욱이 손을 휘두르자 병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풀어 주었다. 분명 자신들이 붙잡을 때만 해도 너무나 가볍던 인물이 이토록 강한 힘을 낼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순욱은 유협을 향하여 대례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임이 멎은 순욱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주춤주춤 다가가 상태를 살피더니, 대경실색해서 말하였다.
“주… 죽었습니다…….”
황제는 순욱이 죽었다는 말에 쿵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홀로 서고자 벌인 일이지만, 순욱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은 것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치워 버려라! 폐하의 앞에서 어찌 저런 것을 두느냐!”
동소의 외침에 병사들은 순욱의 시신을 치웠고, 동소는 조심히 예를 표하며 말했다.
“송국은 순욱에 대한 원한만 있을 뿐이니, 이제 낙양에 대한 위협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순가의 인물들을 모조리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응당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이라는 것인가? 그자들은 관우와 같이 움직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현재 장안에서 유비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니, 관우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관우마저 죽는다면 유비 삼형제를 보고 모인 이들은 다른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폐하의 결정 한 번에 다시금 한조가 일어설 수 있는 단초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는 동소의 얼굴은 완전한 악인의 모습이었다.
반면, 시신으로 끌려가는 순욱의 모습은 너무나 편안한 모습을 보이었다. 모든 일을 마쳤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