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95
495화
장패는 물러나지 않고 청주를 모조리 삼키기 위해 움직이는 조비가 우스울 뿐이었다. 장패는 연신 기침을 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무리하시지 마시고 제게 시키시지요. 제가 아버지의 명대로 하고 오겠습니다.”
“무엇을 말이더냐? 폐하를 보러 갈 것인데. 그래도 아직은 황실의 이름이 있으니 예를 지켜야 할 터. 네 이름으로 충분하다고 보느냐?”
“…아니 될 것 같습니다.”
“하면 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려 들지 말고, 지금 마차에 타는 걸 돕기나 하여라.”
장패의 말에 장애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장패는 막사를 나가며 아들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전하께 내 말을 전하여라.”
“무슨 말을 하려 하십니까?”
“친정을 요청할 셈이다.”
“친정 말씀입니까? 무슨 일 때문에 친정을 요청한단 말입니까?”
“조비를 잡아 두기 위함이지.”
장애는 주군을 부르는 것과 조비를 잡아 둔다는 것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눈만 멀뚱멀뚱했다. 그러자 장패는 손을 휘휘 저으며 빨리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장애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무어라 올리면 되겠습니까?”
장패는 장애의 말에 잠시 멈칫하였다. 직접 뵙고 말한다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내면 될 일이었지만, 서신으로 전달하는 것은 다른 법이었으니까.
장패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장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가서 주군께 내 말을 그대로 올리면 될 일이다. 친정이라는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섞여 있긴 해도, 주군께서는 이해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제가… 아버님의 말을 올리기 위해 간다고 하여도 쉬이 주군을 뵐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말도 전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오래 걸릴 것입니다.”
장패도 그의 아들의 말이 맞다고 여기었는지 품에서 인장이 찍힌 서를 내주었다.
“이것을 가져가면 뵐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직접 찾아오실 수도 있을 것이지.”
장애가 보기에는 아무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는 서였는데, 얇게 무엇인가 덮여 있는 듯한 게 종이가 아니라 초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아래 보이는 인이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주사의 붉은색이 아니라, 촛농 같은 것이 찍혀 있었다.
“…이것을 누구에게 전하면 되겠습니까?”
“내관 아무에게나 전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을 말하면 아마 금방 올라갈 것이고, 주군께서도 서신을 보면 직접 너를 부르시든, 찾으시든지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패는 자신을 아직도 부축하고 있는 장애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 움직이느냐?”
“예? 예, 예.”
장애가 멀리 사라지자 위사 한명이 달려들어 장패를 도왔고, 장패는 천천히 부축을 받으며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거처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장패가 왔음을 알리는 말들이 오가고, 황제를 시종하는 인물이 나와 그를 황제의 앞에 서게 했다. 내관은 장패가 예를 취할 수 있게 도왔다.
“폐하께 아뢸 말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예는 그만하여도 되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예를 차리겠는가?”
황제가 손을 저어 예를 거두도록 하자, 내관이 장패를 일으켰다. 장패는 자리에 앉아 황제를 바라보았다.
“예를 그만 차리라고 하여 진정 예를 아무것도 안 차리니 조금 당혹스럽군.”
“폐하께서 이른 말이니 어찌 그대로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
황제의 모습에서 승태와 비슷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당한 수모를 그저 넘길 수 있는 대담함의 향기 말이다.
그러나 딱 그 정도였다. 대담함과 집요함, 그리고 영묘함 같은 것은 없었다. 장패가 그 모든 것을 느낀 승태는 거대한 세를 일구고 무엇인가 더 큰 것들을 이루어 내었지만, 황제는 아마 좋은 사람 정도로 인정받는 수준이리라.
“군을 움직일 생각입니다.”
장패의 말에 황제는 약간 화색이 돌며 물었다.
“청주를 되찾는 일이 되겠군.”
“그리될 것입니다. 요하가 흔들렸다는 소식에 조비가 겁도 없이 동래를 점령하기 위해 움직였으니, 우리는 그 뒤를 물어뜯을 생각입니다.”
“짐에게 보고하기 위해 오신 것인가?”
“아닙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온 것입니다.”
“짐에게? 짐이 무슨 힘이 있다고 말이오.”
“그래도 청주를 다스렸으며, 동조라고 부른 지역의 황제가 아니시겠습니까? 거기다가 폐하를 지지하는 이들이 아직 많이 있으니, 그저 격서를 작성해서 끝까지 버텨 달라는 것입니다.”
“짐이 그들을 독려해 달라는 것이군. 그것만 가지고 되겠는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 정확히는 송왕 전하께서 친정하실 것인데 협조하라는 내용을 격서에 써 주셨으면 합니다.”
“송왕이 이곳에 오는가?”
장패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친히 왕림하실 것입니다.”
승태에게는 존경 어린 모습으로 말하는 장패의 모습에 황제는 약간 화가 났다. 분명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내린 것은 자신인데, 이리 대하니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것이라 여기던 동조가 모조리 불타 사라지고, 그간 누리던 것들을 되찾고자 하는 욕심과 자격지심이 커져 나갔다. 특히 자신을 끝까지 지키지 않은 송왕에게 더더욱 크게 느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송왕과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하 만민이 모두 보는 앞에서 송왕이 고개를 숙인다면, 자신의 권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알았네. 내 굉장히 오랜만에 송왕을 보게 되겠군.”
* * *
승태는 갑자기 내관에게 들어온 서신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청주에 있는 장 장군의 아들이 보내온 서신이옵니다.”
“그런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승태는 서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틀린 것은 없는데, 그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없어서 말이야.”
“소신… 이해하질 못하였습니다.”
“아니네. 이 서신을 누가 가져왔다고 하였지?”
“장패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가? 끄응, 장 장군의 저택으로 가지.”
승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움직이자, 내관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병사들을 준비하겠습니다.”
“병사들까지 필요하겠는가? 어차피 성내에서 움직이는데 말이야.”
“최소한의 호위들은 언제나 대동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방은 절대 불가하옵니다.”
승태는 이번에 보즐의 직을 이어받은 장소의 아들 장승이 그야말로 답답함의 극치라 생각했다. 시키는 일은 굉장히 잘했으나, 명령이 법도와 맞지 않는다면 모든 게 멈춰 버렸고 보즐이 있을 때와는 달리 승태가 매달리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성이지 않은가? 병사들까지 대동하면 성내의 사람들이 동요할 것이네.”
“맞는 말씀이시지만 전하의 안위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소신은 만에 하나라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내관부입니다.”
‘보즐이 그립군.’
아마 보즐이었다면 우선 승태의 말에 맞추고, 승태를 지키기 위해 조금 있다가 병사를 데려왔을 것이었다. 그러나 장승은 달랐다. 절차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첫 번째 원칙을 세우며 승태를 설득하였다.
이러한 모습이 승태와도 달랐다. 장승은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던 승태와 달리 높은 곳에 오르는 방법에 대해 논하는 인물이었다. 설령 본인이 오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유학으로 똘똘 뭉친 인물조차 아니라…….
“그것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전하. 전하께서 병사 여섯을 이끌고 가시면 추가적인 요청을 할 필요는 없으나, 전하께서 병사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시겠다 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병사를 전하께서 볼 수 없는 곳에 배치하여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이미 짜인 동선도 아니옵니다. 그저 장 장군께서 보내신 서신을 가져와 일어난 갑작스러운 일이지요. 그런 곳에 무엇이 어떻게 나타날 줄 모르는 일이옵니다.”
“알았네, 알았어. 뭐 내가 더 이야기해 봐야 그대를 이길 수 있겠는가?”
장승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군왕이 법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법을 따른다면… 아래에서부터 왕부의 인물들까지 법도를 따르고 법의 엄중함을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 군왕이 법을 마음대로 한다면 뭇 백성들도 법을 가볍게 여길 것이니 이를…….”
“설교는 그 정도만 하지. 나도 그 정도는 아는 일이네. 쓴소리가 달고 달콤한 말이 몸을 망친다는 것도 알지만, 매일 쓴 것만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가끔은 단것도 먹어야 힘이 나지.”
승태가 먼저 나아가자 장승이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승태가 장패의 저택에 도착했고, 그 주변은 그야말로 엄중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장애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엎드려 예를 표하고 있었다.
“장 장군이 이 서신을 그대에게 전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하옵니다.”
“하면 그 바라는 점을 이야기해 보게. 생에 한 번 쓰게 해주겠다고 하였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이루어 준다고 하였는데, 장 장군이 무엇을 바라던가?”
장애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눈을 감고 고하였다.
“전하께서 직접 친정을 부탁드린다고 전하셨습니다.”
장애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건국을 도운 건국 공신이라고 하지만, 군왕을 전장에 오고 가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승태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친정을 하게 되면 드는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느냐?”
“모르옵니다.”
“조비의 군세에 어느 정도 위협이 될 것인지는 알고?”
“모르옵니다. 그저 아버님의 명을 전달할 뿐이옵니다.”
승태는 자리에 앉아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조건은 아니겠지.”
아마도 장패는 이것을 알기에 이런 일에 그 서를 쓴 것이었을 것이었다. 감녕처럼 가족이 사고를 일으켜 이를 무마하는데 쓴 인물도 있었고, 조운과 같이 반납한 인물도 있었다. 그중 장패는 끝끝내 가지고 있다가 이번 일에 사용한 것이었다.
“허하시는 것입니까?”
“허한다. 공신에게 한 약조는 지키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청주로 친정을 떠나겠다.”
장승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승태는 손을 들어 이를 막았다.
“이것 또한 법도의 일이다. 왕의 약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니까. 내탕고가 충분하고, 장수가 청하여 군왕에게 요청하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할 일이던가?”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준비하도록 하여라. 위국과 결전을 벌인다. 서주의 군세들과 수춘, 단양, 청주병들을 불러 모아 태산으로 갈 것이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승태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서를 쥐고 화로에 던지며 장애에게 말했다.
“장 장군에게 전하여라. 내 그대의 약조를 지켰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