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98
(98)
“송 선생님, 응급환자라면서요?”
가장 앞서 들어왔던 응급의학과 치프 한배손이 자신에게 전화를 했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 네. 환자가 실려 오긴 했는데…… 선생님들이 처치를 잘하셔서…….”
“처치가 잘됐어요? 전화론 인투베이션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한배손은 말을 하던 도중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살피고 있는 이민호를 발견했다.
흉부를 저렇게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면 당연 콜을 해도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콜했을 것이다. 그런데 외상외과의 이민호가 와 있고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보이지 않는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겠네요.”
한배손의 말에 간호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한배손은 간호사를 일별하고 이민호에게 다가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절로 병명이 짐작됐다.
“이민호 선생.”
“아, 네. 한 선생님.”
“뭐 같아?”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pneumothorax(기흉)을 동반한 mediastinal emphysema(종격기종) 같습니다.”
한배손은 청진기를 환자의 전흉부에 대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crepitation(염발음)이 들리네. 확실해.”
“pneumothorax이 심하지는 않으니 여기서 insertion(흉관삽입술: chest tube insertion)을 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렇지. 이 정도는 CS(흉부외과)에서 해야지. 한성현 선생, CS에 노티해.”
“네.”
한성현이 흉부외과에 전화를 하는 동안 이민호가 의구심 어린 눈으로 한배손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다들 어디 갔다 오신 겁니까?”
“어디 갔다 오긴, 밥 먹고 왔지.”
“절 바보로 보세요? 식사를 하시더라도 선배님들 몇 명은 남아 있으셨을 거 아닙니까.”
이민호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한배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어! 그러게.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네. 복선이 하고 김 선생은 어디 간 거지? 송 선생님, 유복선 선생하고 김길수 선생 어디 갔어요?”
“아! 그, 그게. 김길수 선생님이 약간의 실수를 하셔서 유복선 선생님이 데리고 나갔어요.”
“김길수 선생이 실수를 했다고요? 아니, 무슨 실수를 해? 그렇다고 다 데리고 나가?”
이민호는 송 간호사의 말을 듣고는 작년에도 김길수 선생이 실수를 많이 해 종종 고참들에게 불려 나갔다는 것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한 선생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으, 응. 그래. 고생했어.”
“네.”
이민호가 응급실을 나올 때 유복선과 김길수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김길수의 눈시울이 붉은 것으로 보아 많이 혼난 듯했다. 이민호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외상외과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외상외과에 거의 도착했을 때 선휘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기, 이민호 선생님. 조금 전 환자 복부 쪽에도 출혈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ER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아란 선생님이 거즈로 압박하고 있던데요.”
“아, 복부? 출혈은 있었지만, 그 정도면 심한 건 아니지.”
“심하지 않다고요? 분명히 이아란 선생님이…….”
선휘승과 박인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민호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서 이아란이 헛다리를 짚고 있었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동기를 보호해 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인턴들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헷갈릴 수도 있으니 제대로 알려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네.”
“환자의 몸이 비대한 편이었고 특히 복부에 살이 많은 거 봤지?”
“네.”
“상처가 크긴 했는데, 다행히 깊지는 않은 상태였어.”
“하지만 출혈은 꽤…….”
“개복을 해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일 경우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나와.”
“그렇습니까? 그럼 이아란 선생님은 왜 환부를 그렇게 열심히 압박하신…….”
“출혈 양이 적다고 방치할 정도는 아니니 압박은 해야지.”
“아, 그, 그렇군요.”
“그나저나 내가 환자의 양어깨를 잡아 누르고 있을 때 한성현 선생이 C-라인 잡는 것 봤지?”
“네.”
“외과 계열 턴 돌 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이 C-라인 잡는 것과 인투베이션이니까 틈날 때마다 연습해 둬. 두 가지만 잘해도 욕먹는 일이 확 줄어들 테니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민호야, ER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널 바라보는 두 병아리의 눈빛이 저리 초롱초롱하냐?”
외과 병동을 돌 준비를 하고 있던 변희웅은 선휘승과 박인덕이 이민호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일 없었는데? 성현이가 인투베이션을 못 하길래 해 주고 C-라인 잡을 수 있게 도와준 게 다야.”
“성현이가 인투베이션을 못 해?”
“응, 발작이 심했거든.”
“그래? 병아리들이 네가 손 쓰는 거 보고 놀란 거였구만.”
변희웅은 이민호의 실력을 알기에 피식 웃으며 병동 돌 준비를 마쳤다.
잠시 후 점심을 먹으러 갔던 심상인과 신현수가 방우성과 유수정을 데리고 돌아왔다. 변희웅은 방우성과 유수정의 얼굴이 많이 경직돼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현수 형, 방우성 선생과 유수정 선생 표정이 왜 저래요?”
“표정? 아! 오전에 교수님 수술에 들어갔다가 쫓겨났던 모양이야. 그 뒤로 줄곧 저 상태고.”
“쫓겨났다고요? 교수님이 그렇게까지 와일드한 성격은 아닌데?”
이민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이제 막 인턴이 된 이들이기에 어시스트도 시키지 않고 뒤에서 참관만 하게 한다. 참관만 하는데 쫓겨날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둘이 잡담을 하다 쫓겨났어.”
“……잡담이요?”
“더 정확히 말하면 방우성 선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수정 선생에게 알은체하다 쫓겨난 거야.”
신현수의 설명이 이어지자 방우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유수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작은아버지가 방 교수님이라더니 그동안 보고 들은 게 많았던 모양이네요.”
이민호가 피식 웃자 신현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랬겠지. 그랬으니 교수님이 수술하고 있는데 뒤에서 미주알고주알 알은체했겠지.”
이민호는 유수정이 이 시대의 미인상으로 꽤 예쁜 축에 속하는 것을 보고 방우성이 어떤 마음으로 알은체를 했을지 짐작이 갔다.
세상 거의 모든 남자들의 약점.
예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으리라.
* * *
인턴들에게 차트 쓰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던 이민호에게 신현수가 다가왔다.
“민호야, 오늘 저녁 너랑 나랑 오프잖아.”
“그렇지요.”
“저녁에 지혜가 같이 밥 먹자는데, 다른 약속은 없지?”
“엥? 약속 있는데요? 그냥 지혜랑 둘이 오붓하게 식사하세요.”
“네가 저녁을 약속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튕기냐? 지혜가 너에게 용건이 있는 것 같으니까 빼지 말고 이따가 마약 삼겹살로 와라.”
“지혜가 저에게 용건 있을 일이 뭐가 있어요?”
이민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신현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혜가 PS(성형외과)에 있는 건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지요.”
“거기 이미란 선생님이 너와 풀고 싶은 게 있다며 지혜에게 저녁 약속을 잡으라고 했나 봐.”
순간 이민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전 이미란 선생님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요. 그리고 풀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전화를 해야지, 왜 지혜를 시켜 형을 움직이게 하는 거죠?”
“야, 나도 너와 이미란 선생님 사이에 지혜와 내가 낀 게 탐탁지 않아. 지혜 전화 받고 짜증도 났었고. 하지만 어쩌겠냐? 당장 지혜 입장에선 이미란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데.”
신현수도 짜증을 내자 이민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때문에 지혜를 곤란하게 할 수는 없죠. 그런데 어떡하죠. 정말 오늘 저녁은 저도 약속이 있는데요.”
“도대체 누구와 약속이 있는데 그래. 다음으로 미루면 안 돼?”
“일단 전화해서 약속을 미룰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이민호는 핸드폰을 꺼내 스미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민호가 스미스 교수와 한 약속은 그의 두 딸에게 연탄구이를 맛보게 해 주는 거였다.
이민호의 전화를 받은 스미스 교수는 두 딸에게 약속을 미룰 수 있냐는 질문을 했고, 두 딸은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약속을 미루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결국 저녁 7시에 연탄구이집에서 보기로 한 약속을 8시로 미루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스미스 교수와 통화를 마친 이민호는 이미란과의 저녁 약속을 7시로 잡았다.
* * *
“이거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데.”
리사의 말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우릴 만나려고 다른 약속 파기하는 남자는 봤어도, 우리와 한 약속을 다른 사람 만난다고 미루는 건 처음이잖아.”
“혹시 여자를 만나는 걸까?”
“에이, 설마. 우릴 놔두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어쩐지 촉이 좀 오네. 닥터 리 정도 되는 능력자라면 아무래도 주변에서 여우 같은 년들이 꼬리치지 않겠냐?”
“흐음, 하긴 닥터 리 정도면 그럴 수 있지.”
“아빠, 아까 닥터 리가 우리와 만나기로 한 연탄구이집 근처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온다고 했었죠?”
“그랬지. 마약 삼겹살이라고 고추장에 재워 놓은 돼지고기와 된장에 재워 놓은 돼지고기를 구워 주는 집인데 연탄구이집 못지않게 맛이 있지. 아!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아빠, 이따가 일곱 시에 저희를 그 마약 삼겹살집에 태워다 주세요.”
“일곱 시? 닥터 리는 여덟 시에 연탄구이집에서 보기로 하지 않았냐?”
“기왕 한국의 음식을 알 거면 아빠도 좋아하는 마약 삼겹살도 한번 먹어 보려고요.”
“너희 혹시 닥터 리가 다른 사람 만나는 걸 방해하려는 건 아니지?”
“에이, 아빠도 설마 저희가 그렇게 철이 없겠어요?”
“너희 철없잖아.”
“아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정말 저랑 린이랑 택시 타고 가서 닥터 리가 다른 사람 만나는 거 방해할 거예요.”
“만약 너희로 인해 닥터 리가 곤란해지면 이 아빠도 닥터 리에게 곤란한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일 하지 않게 태워다 주세요.”
“…….”
“설마 저희가 한국까지 와서 아빠 곤란한 일을 만들겠어요?”
“조금 불안하지만, 뭐. 알았다.”
* * *
“민호야, 미안해.”
이지혜가 사과하자 이민호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네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 이미란 선생의 성격을 내가 아는데 네가 오죽했으면 현수 형에게 전화를 했겠냐.”
“이미란 선생님은 우리가 자리 잡고 있으면 온다고 했어. 오늘 이미란 선생님이 쏜다고 했으니까 마음껏 시켜도 돼.”
“나 여덟 시에 연탄구이집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많이 먹긴 어려워. 너랑 현수 형 것만 시켜.”
잠시 후 고추장 삼겹살과 마약 된장 삼겹살을 각각 3인분씩 시켜서 구워 먹고 있으니 한껏 멋을 부린 이미란이 들어왔다.
세 사람이 일어나 인사를 하자 이미란은 이민호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 후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이민호 선생.”
“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외과 교수님들이 이민호 선생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실력이 좋은가 봐.”
“아,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시는 거죠.”
“좋겠네. 난 교수님들의 눈 밖에 나서 얼마 안 있으면 병원 떠나게 생겼는데.”
“선생님이 강남에 있는 유명한 성형외과의 컨택을 받으셨다는 거 다 아는데,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