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 왕관의 무게(2)
아리아의 어깨를 잡은 손이 무릎을 꿇려던 아리아를 일으켜세웠다.
강제로 일으켜진 몸이었지만, 아리아는 우악스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라본 시야 속.
“김서준··· 헌터님?”
서준이 아리아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그런 서준의 뒤로 언제 왔는지 모를 드림팀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아리아에게는 드림팀보다도 서준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바라본 서준의 표정은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쳐있지 않았다.
언제나 유쾌하면서도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맹한 분위기였건만.
지금 보이는 서준의 모습은 더없이 차갑고 또 담담했다.
“갑자기 넌 뭐야?”
갑작스러운 서준의 등장에 엘리스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거의 다 된 밥이었거늘.
그 밥에 재를 뿌리다 못해 밥상 자체를 뒤엎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엘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서준을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
엘리스는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너구나? 김서준이라는 동양인 헌터가.”
하지만 서준은 그런 엘리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살짝, 시선을 내려.
아리아를 바라봤다.
아리아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서준의 말에 아리아가 몸을 움찔, 떨어보였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천천히 떨구었다.
아리아도 알고 있었다.
서준이 도와준다면 이 상황은 해결될 수 있을 터였다.
로버트가 말했던 것처럼 서준의 강함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엘리스가 대격변의 영웅이라도 서준 앞에서는 상대가 안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서준은 결국 외지인일 뿐이었다.
자신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선 왕일 뿐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아리아는 그 질문에 스스로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려앉는 침묵.
“누구나.”
그 사이로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되고 싶은 이샹향은 존재합니다. 아리아님.”
오래 전.
서준이 몬스터 사체 업무를 하던 시절.
서준 또한 되도 않는 현실을 꿈꾸며 좌절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A급, S급 프로 헌터들과 대격변의 영웅들을 바라보며 그들처럼 되고 싶다.
그리 꿈꾸던 서준이 있었다.
하지만 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던 나날들이.
서준에게도 분명 있었다.
심지어 놀랍게도 초월자 학원을 접한 이후에도.
더 강해지지 못한 자신에게 좌절하던 나날들이.
초월자들에 비하여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자신에게 좌절하던 순간이.
서준에게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언제였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누구나.]석가모니는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되고 싶은 이상향은 존재한다.] [허나, 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우리는 절망과 고통에 빠진다.]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가.] [그렇게 이상향에 도달하는 것을 실패함으로써.] [결국 스스로가 누군지를 정의하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그 사람이 행한 일들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지일지니.].
.
“고개를 드세요. 각도가 곧 태도입니다.”
지금으로도 아리아는 충분하다.
“아리아님이 정말 이 나라의 왕이라면. 아니, 사람들을 위한 왕이 되고자 한다면.”
정답이라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서준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아리아님이 꿈꾸고 또 되고자 하는 왕이라면.”
서준은 엘리스를 똑바로 바라봤다.
“저딴 것에게 고개 숙이지 마세요.”
그리고는 말했다.
“왕관 떨어집니다.”
아리아는 정신이 멍해져갔다.
아무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저도 모르게 고개가 천천히 들어올려진다.
들어올려진 시야.
잉글랜드에 남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자신 옆에 남아있는 이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주변의 풍경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저희는 폐하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다른 것을 바랐다면 진즉에 돌아섰을 겁니다.”
“저희를 위해서라도 부디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그동안 외면했던 목소리가 비로소 들려왔다.
아리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치켜 들었다.
수십 만의 언데드 군단.
자신을 부정하는 프로 헌터들.
아리아는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하며 당당히 소리쳤다.
“엘리스! 그대는 대격변의 영웅도 뭣도 아니다!”
팔 다리가 덜덜 떨려온다.
하지만 아리아는 숙이지 않았다.
“반역자.”
아리아가 말을 이었다.
“나를 해하고자 하는 것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용서해줄 수 있다. 허나!”
여왕의 품격.
“사람들을 해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용서할 수 없다!”
왕으로서의 자격.
“사람이 곧 나라요. 나라의 모든 것일지니! 그들을 해하려는 행동이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왕관의 무게.
“칠흑의 마녀, 엘리스!!”
될 수 없었던 이상향.
“그대는 반역자다! 그러니 그 반역의 죄를 물어!”
아리아는 고개를 떳떳히 치켜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자리에서 참형을 선고한다!”
아리아는 고개를 돌려 로버트를 바라봤다.
“로버트!”
“충!”
아리아가 소리쳤다.
“반역자 엘리스를 참살하라!”
“목숨을 걸고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로버트가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번뜩이는 왕실 기사단원들에게 소리쳤다.
“기사다아아아안! 착검!”
차착!
“현 시간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반역자 엘리스를 참살한다!”
“충!”
일제히 엘리스를 향해 검을 겨눈다.
죽음조차 불사하겠다는 듯 그들의 눈빛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 뒤를 따라 잉글랜드의 프로 헌터들도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어 기세를 터트렸다.
엄청난 기세가 그들에게서 터져나온다.
“이것들이···!”
“그래 봤자 별 거 아닌 놈들이···!”
반대편의 프로 헌터들이 그 기세에 억눌려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수 적으로나, 전력으로나 앞선 것은 분명 이쪽이다.
허나, 저들에게서 터져나오는 기세를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리스.
“······ 짜증나네.”
엘리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표정에서는 더 이상 비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엘리스는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아리아를 바라봤다.
빳빳히 치켜든 고개.
호기롭게 소리쳐놓고 덜덜, 떨고 있는 몸은 정말이지 꼴사납기 그지 없었다.
능력도 뭣도 없는 계집 년이 입만 산 것에 불과해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저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서.
뭣도 아닌 계집 년에게서.
제왕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가.
엘리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옆으로 향했다.
아리아의 마음을 일깨워준 당사자.
엘리스와 서준의 시선이 교차했다.
“······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였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일이 상당히 틀어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결과는 예정되어 있다.
어차피 이 모든 일의 끝에는 파멸만이 있을 뿐.
그 어떤 누구도 이 일을 막아낼 수 없다.
엘리스의 표정에는 다시 한 번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이어 엘리스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우중충한 런던의 하늘.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엘리스는 실소를 흘리며 소리쳤다.
“어디 이래도 그 뻣뻣한 고개가 들려있을지 한 번 볼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끼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
우오! 우오오오오─!
엘리스가 가리킨 하늘에서 돌연 소름끼치는 괴성들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검은 하늘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저게 무슨···!”
그 압도적인 광경에 엘리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먹구름이··· 아니었어···”
누군가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재차 하늘로 향했다.
일렁이는 하늘.
런던의 하늘을 뒤덮은 건 먹구름이 아니었다.
그건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게이트였다.
끼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
우오! 우오오오오─!
그 거대한 게이트에서 수많이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쏟아져내린 몬스터들은 런던의 시내를 무차별적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대, 대체 어떤···!”
보통 게이트의 크기는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에 비례한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뒤틀림으로 발생하는 게이트의 크기도 같이 커진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하늘 전체를 뒤덮은 게이트의 크기.
이 안에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어떤 존재일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이미─.
번뜩.
검은 하늘 아래, 거대한 눈동자가 번뜩인다.
포악한 광기가 공간 전체를 훑는다.
감당할 수 없는 재해.
“대, 대격변···”
그것은 가히 대격변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아리아, 너의 주제를 알았어야지.”
엘리스의 표정에는 광기만이 비쳐보일 뿐이었다.
“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입니까!”
아리아가 재차 소리쳤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왕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건 상관없어.”
엘리스는 두 손바닥을 펼쳐보이며 답했다.
“여기 이 많은 언데드 군단들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해?”
“서, 설마!”
“우리 북 아일랜드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엘리스의 광기 어린 웃음 소리가 터져나온다.
그 모습에 아리아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저 끔찍한 괴물 앞에서 그 어떠한 것도 의미를 갖지 못했다.
‘아리아. 사람은 원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단다.’
전대 여왕, 베아트리체의 말.
지금 이 순간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
그건 당신의 세상에서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나의 세상에서는 불가능─.
“그럼.”
아스라히 부서지는 하늘 아래.
“그 세상을 바꾸면 되겠네요.”
한줄기 빛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라보는 시야.
서준이 터벅, 앞으로 한 발 나선다.
그리고는 손을 옆으로 길게 뻗었다.
파지지지지직!!
서준의 뻗은 손 주변으로 푸른 뇌전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풍처럼 터져나오는 푸른 뇌전 속.
그 주변으로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가 현신하듯.
일렁이는 공간 속으로 희끄무리한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서준의 손에는 한 자루의 창, 롱기누스의 창이 들려있었다.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힘이 그곳에서 느껴진다.
‘뭐지···?’
그 괴이한 힘에 엘리스가 일순간 의문을 품었다.
뭔가··· 위험하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공포가 엘리스의 전신을 짓눌러왔다.
‘그럴리가 없지.’
엘리스는 금방 고개를 털어내었다.
런던의 하늘을 잠식한 거대한 게이트.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베세르크였다.
‘위대한 목소리는 어디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때맞춰 베세르크를 드러낸 것을 보면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베세르크가 있는 한, 결국 계획은 이루어진다.
베세르크는 과거 대격변 시절.
자신과 같은 대격변의 영웅이 모두 달려들어도 감히 어찌하지 못했던 존재였으니까.
아직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마지막 단계였다.
왕궁에 심어져있을 드래곤 하트.
그 마력과 함께 전대 여왕이 왕궁 내부에 봉인한 성물의 힘을 이끌어 베세르크를 완전히 해방시킨다.
엘리스는 눈을 감아 마력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 응?”
어째서인지 아무런 반응이 일지 않았다.
“이, 이럴리가···?”
엘리스는 계속해서 마력을 이끌어냈지만 그럼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 이러면 안되는···”
바로 그때.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서준의 전신에서 끔찍한 힘이 터져나왔다.
일순간 폭사하는 힘 앞으로 천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솟구친 대지의 파편과 찢겨진 건물들이 순식간에 아스라져 모래알로 화한다.
시간이 길게 늘어지는 듯한 시공간 속.
찰나의 순간이 쪼개지고 또 쪼개진다.
휘몰아치는 폭풍은 아스라진 수 억개의 모래알을 휘감아 소름끼치는 모래의 파도를 만들어내었다.
그 중심에 서준이 서있었다.
서준은 그 중심에서 롱기누스의 창을 치켜들었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주변의 대기가 찢어지며 요란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모든 것들이 찰나에 이루어졌으나, 쪼개진 시간 속에서는 한없이 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화───────악!
일시에 터져나간 초월의 힘은 수 천, 수 만개의 덩어리가 되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마치 공간 전체를 잠식하는 듯 해보였다.
움켜쥔 롱기누스의 창 주변으로.
서준이 지배하는 공간의 주변으로.
시퍼런 마력의 다발들이 부풀고 또 터져나온다.
멀지 않은 하늘에서 별들이 폭발한다.
터져나간 파편들은 수 천의 유성(流星)이 되어 떨어진다.
초월급 병기, 롱기누스의 창.
초월기, 천월유성창(天月流星槍).
그 두 가지가 합쳐진 진정한 초월(超越)의 힘이.
현실에 강림한다.
천월유성창(天月流星槍).
제 1식(第 一式).
멸절뇌성(滅絶雷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