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8
“전하, 나라의 근본이 농민들을 먹이고 키우는 일이듯, 병졸을 조련하고 먹이는 일은 곧 군사의 큰 근본이옵니다.”
“나 또한 그와 생각이 같다. 허나 이번에 새로 얻은 호광과 하남의 강역에 둔전을 설치하는 바는 어찌 생각하는가?”
“신은 동의하옵니다. 백성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대군을 유지할 수 있으니 이는 좋은 방편입니다.”
“나는 반대한다. 부황 폐하께옵서도 말씀하셨듯 병권은 오로지 천자에게 속한 것이어야 하는대, 둔전을 시행하면 필히 그 지역 토호들이 병사들을 손아귀에 넣고….”
“갑작스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병부상서가 전하의 권고를 따르겠다 하옵니다.”
“그런가? 잘되었군. 마앙에게 후속 조치에 대해 대기하라고 전하게.”
태자가 앉은 자리에 공손히 고개를 숙인 신하들이 말을 이으니, 마치 작은 조정과도 같았다.
태자부였다.
* * *
본래 태자부(太子府)의 이름은 첨사부(詹事府)로서, 그저 동궁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태자를 보좌하는 부서에 불과했다.
태자태사, 태자태부, 태자태보의 이른바 태자 삼사 역시 명예직에 불과할 뿐 어떠한 기능도 없었다.
그렇기에 조선에서 망명해 온 민신에게 태자태부의 직위를 내렸을 때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던 것이고.
헌데 이러한 상황이 바뀐 것은 바로 몇 해 전, 폐하의 칙령이 내려오면서부터였다.
“태자의 자질이 영명하고 제왕의 기재가 엿보이니 이를 가만 묵혀 두기에는 너무도 안타깝구나. 마땅히 태자에게도 국정을 일임토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태자의 권한을 늘리는 일을, 태자의 자질 문제와 엮어 성교를 내리셨다. 반발하는 신하는 태자를 바보 취급 하는 작자로 만들어 뭉개겠다는 성상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니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이미 주기진이 10여년에 걸쳐 권신과 토호들을 편집증적으로 제거해 온 바, 더 이상 조정에서 황제의 발언에 반대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태자 주기진을 위하여 새로운 소조정(小朝廷)이 구축되고, 허직(虛職)에 불과하던 태자태부 역시 중책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여, 본래 금일에는 근사록(近思錄)을 강하려 하였으나… 전하께옵서 이제 병서를 강하기를 원하시니 대신 이번 정벌의 전훈에 대하여 살피겠사옵니다.”
“태부, 나는 병서를 강론받고 싶다 하였소. 이번 정벌에 대해 다루자면 너무 빠르게 끝날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제가 한번 페하께 병서를 강론하여도 괜찮을지 여쭙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니 민신 또한 바빠지기 시작한다.
명목상으로만 태사의 수업을 담당할 뿐, 결국에는 조정에 이름만 올린 신세였던 한가로운 나날은 끝이 났다.
이제 태자가 무엇이든 배우고 익힐 때마다 옆에 달라붙어 읽을 책과 배울 내용을 정한다. 그리고 다시 이를 황상께 매번 새로 보고하고 확인받는다.
만일 황제 폐하와 태자 전하 사이에 가르치고픈 것과 배우고픈 것이 달라지면 그를 조율하는 것 역시 민신의 일이었다.
민신뿐만인가? 그 아래로 있던 태자부의 관원들이 제각기 몸이 쉴 틈이 사라진다.
본래도 태자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이던 황상이셨으나, 옥체가 노쇠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태자의 건강과 인품과 지식 수준을 최상으로 유지하도록 요구하신다.
―“언제든… 곧바로 즉위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이런 뼈 있는 말씀도 황명으로 남았으니 이제 그들 중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이가 없다.
만일 황상께서 언제든 돌아가신다면 위기에 놓일 천조를 이끌 유일한 후계로서 태자 주견심을 보살펴야 했다.
아니다. 단순한 후계가 아니다.
“태자 전하, 하지무는 제 공을 탐하고 심성에 오만한 바가 있어 우시랑 같은 자리로 높이기에는 부적당한 인물이옵니다. 재고를 하시는 것은….”
“그대는 어찌 그리 이야기하는가? 하지무가 전공을 탐한다고 하나 그는 싸움을 꺼리지 않음과도 같으며, 오만함은 곧 명예를 좇음이다.
그런 이는 낮은 장수로 있을 때 도리어 상사를 원망하고 승진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아 해악이 되지만, 높이 오른다면 충심으로 윗사람을 우러르고 그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더욱 감투하는 정신이 강해지느니라.
무엇보다도 하지무의 품성은 몰라도 그 전과는 훌륭하니 나는 그의 자급은 결코 내리지 않겠다. 반드시 그를 병부우시랑으로 둘 것이네.”
주견심은 이미 국정의 일부를 도맡고 있다. 앞서 태자부를 소조정이라 한 바가 바로 그것이다.
태자부의 업무는 시시때때로 달라져서 세법을 점검하거나, 흉악한 죄인의 처결을 논의하거나, 지금처럼 군사의 일에 관여할 때도 있으니 진정으로 보위에 오를 이가 맞닥뜨려야 할 모든 문제에 관하여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안배해 두었다.
“진법을 이리 써서는 아니 되었다. 기병을 앞세워 적들을 먼저 포위하고 그 후위를 무너뜨리면 퇴로가 무너진 적들이 알아서 자멸했을 것을.”
“하오나 전하, 이런 방식으로 병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병과 보병이 한몸처럼 함께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잘 조련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군이 어째서 그 정도로 조련되어 있지 않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대와 내가 직접 병사들의 조련법에 대하여 서책도 남기지 않았는가?”
개중에서도 주견심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무학(武學).
태자가 배우고파 하던 분야일 뿐 아니라, 황제 역시 태자가 가르침을 받길 원하던 것이었다.
이렇듯 명나라 역사상 여느 황태자들보다도 체계적이고 꼼꼼한 교육을 받고 있는 태자 주견심.
그런 태자와 권력을 분할하면서까지 제위의 공백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천순제 주기진.
유폐의 경험, 잠깐의 복벽, 파천의 굴욕을 겪으며 부자의 생각은 하나로 모였다.
“적어도 상시 숙련병 10만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은 군사를 유지해야 한다.”
“허면 둔전병을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둔전을 가꾸기 위해 끊임없이 밭을 가는 이들이 어찌 숙련병이란 말인가? 오롯이 창칼을
다루고 적을 섬멸하는 일만을 배우고 익히는 이들이라야 숙련된 병졸이라 할 수 있을 터.”
“하오나 그 소요가 막대할 터인데….”
“그는 상인들에게서 거두면 메울 수 있는 바다.”
모든 역량을 다해서라도 되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마음.
잃어버린 고향, 집, 그리고 보좌.
그 조상의 위패가 모셔진 종묘.
지금은 반역자와 오랑캐의 발아래 짓밟혔으나, 그 모든 것이 기실 자신들의 것이니.
“이 안을 내 직접 폐하께 전하겠다.”
가장 강대한 군사를 꾸리고, 그로써 가장 혹독한 방식으로 제신들을 압박한다. 나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북쪽으로 찌를 날카로운 비수를 만들기 위해.
“10만의 숙련병이라….”
“폐하, 이는 효시일 뿐이옵니다. 역적 주첨선의 뒤에는 몽고의 달자들이 강대한 군세를 거느리고 있으니 이에 모두 대항하려면 10만으로도 모자랍니다. 앞으로 20만, 30만을 모아 북쪽의 역도와 오랑캐를 단숨에 올려쳐야 합니다!”
“흠, 태자의 뜻이 장하고 그 말에는 틀림이 없다.
가납한다. 경들은 태자의 말에 그대로 따르라.”
‘모든 것을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놓겠다.’
정당한 황제를 정당한 자리로, 반역자는 그에게 마땅한 지옥으로, 오랑캐는 장성 너머 벽지로.
다시금 천하가 갈라지기 이전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 * *
한낮인데도 누군가 호롱불을 켠 채 붓으로 무언가 길게 써 내려간다. 창호 너머로 보이는 등은 이제 나이를 먹어 굽었고, 목선 또한 살이 빠져 가느다랗게 변했다.
“이 정도면… 다 되었군.” 하고 혼잣말로, 조선말로 중얼거리는 노인.
민신은 잠시 자신이 써 놓은 서찰의 전체 내용을 훑다가, 그를 옮겨 적고는 원본을 호롱불로 태워 버린다.
잿가루가 날리니 저도 모르게 기침이 나오나, 아직 안 탄 부분은 다시 모아서 불 가까이에 두어 꼼꼼히 살라 버렸다.
이제 편지의 원본은 없고 옮겨 적은 바만이 남았다.
민신은 잠시 고민한다. 자신의 집에 딸린 몸종 중에서 누가 누구의 세작이고 누가 믿을 만한지 명단을 꼽아 본다.
“…복귀(福貴)?”
“예, 나으리.”
“늘 가던 곳에다 옮겨 놓고 오거라.”
“예.”
군말 없이 서찰을 받아 든 몸종은 뒷문으로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곧 사람이 많은 대로로 섞여 드니, 주인의 심부름을 받고 달리는 몸종쯤이야 크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몸종이 ‘실수로’ 종이 한 장 떨군다고 해서 그리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몸종이 위장용으로 두부 가게를 향해 뛰어가는 동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거지 하나가 그 서신을 줍는다.
그는 질질 발을 끌면서 걷고, 산발로 된 머리를 길게 늘어 뜨리며 고개를 내린다.
물론 그 머리카락 아래에서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주위를 경계하나 누구도 거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두셋 정도가 신경 쓰다가 말았다. 아마 민신의 저택에서부터 따라온 눈들 중 주의 깊은 것들이리라.
그렇게 추적을 대강 따돌렸다 생각하던 거지는 뒷골목을 괜히 돌아다니며 동선을 꼬아 둔 뒤, 슬슬 성문 근처로 향한다. 곧바로 거지가 도성을 넘으면 안 되고… 옳지.
거지는 정해진 곳에 멈춰 있던 마차를 발견하고 그 사이에 서신을 끼워 놓는다. 거지가 마차 뒤편을 정해진 박자로 두드리자 마부는 꾸벅꾸벅 조는 척하다가 벌떡 일어나 말을 달린다.
마차는 도성을 넘는다. 몇 번의 감시와 의심 어린 눈초리가 있었으나 대부분 떨쳐 내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관문인 통주(通州, 난퉁)에 다다를 때까지는.
그는 괜스레 침을 꿀꺽 삼키며 항구 가까이 다가간다. 닻 위에 붉은 십자 문양 깃발을 달린 배가…?
저깄다.
그곳으로 짐을 실어 나르던 돛단배에 동전 한 닢과 함께 편지를 전달하니,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다.
배에 타고 있던 한 남자에게 편지는 전달되고, 그가 펼쳐 보자 편지는 순 백지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종이를 촛불로 그슬린다.
―“…여기부터가 신이 긴히 전할 사항이옵니다. 황제 폐하는 결코 북벌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으셨으며, 그에 따라 10만의 군병을 양병하려 하십니다. 또한 태자 전하의 기질이 드세고 복수심을 불태우시는바, 금상께서 승하(升遐)하시면 머지않아 전화(戰火)가 피어오르고 지아비 잃은 부녀들의 울음소리가 천하를 채울 터입니다.”
모든 내용은 확인되었다.
“한양으로 돌아가지.”
“출항하라! 당장 출항하라!”
남자의 어깨에는 붉은 별이 그려져 있고, 안주머니에는 ‘蘇聯情報總局(소련정보총국)’이라 적힌 신분증이 들려 있었다.
* * *
/ 작가의 말
이번 소제목은 헤겔이 ‘법철학’에서 ‘중국에는 역사가 없다’고 언급한 데서 따왔습니다.
신세계로부터 (1)
첩보는 빠른 정보 전달과 기민한 대처, 그리고 기밀성과 조직력이 받쳐 줘야만 유지될 수 있다.
소련이 각국의 공산주의자들을 통해 영국과 미국의 속사정을 손금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19세기부터 투쟁해 온 공산주의 지하 조직들의 치밀한 침투력과 조직력이 이룬 결과다.
아무튼 소련의 무선 전신망이 이제 일본과 만주, 그리고 불완전하게나마 북조와 몽골로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으니 신속 대응을 위해 당연히 첩보망은 전신망과 함께 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소련 정보총국의 중앙청이 한성 전신국에 은밀하게 붙어 있는 이유였다.
제물포의 전신국으로부터 들어온 내용을 옮겨 적은 뒤, 한 전신수가 조심스레 전신국의 ‘뒷문’, 즉 정보총국 청사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통해 국장의 사무실에 다다른다.
그가 건넨 서류를 찬찬히 넘기던 국장은 한숨을 내쉰다.
“이 보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실일 겁니다, 동지. 민신은 현재 명 조정의 핵심부에 위치한 인물이자 황제가 안배한 황태자의 최측근입니다.
정치적 기반이 미약해 쉬이 제압할 수 있다 여겨 태자의 곁에 두었으니, 민신은 조정의 핵심부에서 황제의 견제 없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을 겁니다.”
“흐으음….”
전 연방 외무인민위원회 산하 정보총국 국장은 잠시 이마를 주무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기는 한번 기가 막히는군요. 당장 오늘이 전 연방 인민위원평의회 소집일이니.
자세한 보고서로 정리해서 보내십시오. 이런 전보 몇 장으로 끝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뒤, 국장은 양손을 싹싹 비볐다. 아까 시계를 봤을 때 4시였고, 회의 시간은…
늦었군.
갑작스레 들어온 보고 때문에 출발이 늦춰지고 말았다. 국장은 시급히 서류를 챙기고 근처에서 운행하던 궤도 마차에 올라 한양 도성을 남쪽으로 빠져나갔다.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궤도 마차에서, 국장은 점차 가까워지는 한수(漢水)의 도도한 흐름을 보게 된다. 그 위로 오후의 햇살이 비껴가며 물비늘들이 주르르 솟았다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이질적인 벽돌 건물들.
궤도 마차가 멈추자 국장과 다른 승객들이 바삐 내린다. 마차는 다시 한성으로 되돌아가지만, 국장은 개중 가장 커다란 벽돌 건물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이게 무슨 꼴이람.
고작해 봐야 스피리도노바 쪽에 줄을 섰을 뿐인데. 첩보니, 정보 전략이니, 하는 기기괴괴한 분야와는 평생 연을 쌓아 본 적이 없는데.
이게 다 어머니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정치적 거래를 해 버려서 그런 게 아닌가?
―“인민 위원 자리는 근시일 내에 신설해 주긴 어려울 것 같고… 대신 직급을 한 단계 내려서 연방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어떻겠나? 더 큰물에서 놀아 보게나!”
그 말에 좋다고 홀려서 들어갔다가 이상한 일들이나 떠맡게 되었으니….
소련 정보총국 국장, 유자광은 회의실의 문을 밀고 들어가며 그런 잡생각을 지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네. 귀하신 분이니 각국의 지도자들까지 모셔 놓은 자리에 한 다경씩 시간을 지체해도 괜찮겠지.”
“…죄송합니다.”
트로츠키의 돌려 까기도 어느덧 익숙해진 유자광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헛기침 소리를 내던 해사인민위원 박팽년이 이내 입을 연다.
“흠, 흠… 허면 1473년 2월 14일, 전 연방 인민위원평의회 정기 회의의 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회의의 서기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해사인민위원인 본인, 박팽년이 맡게 되었으니, 이의 있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없다면 회의를 시작하겠으니… 잠시 국기들을 바라보십시오.”
명목상 가맹국이 아닌 조선의 군주 이홍위를 제외한 모두가 조선, 원산, 만주, 마지막으로 소련의 깃발을 올려다 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소련 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 * *
유자광은 기다란 탁자에 하나씩 둘러앉은 면면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의장인 트로츠키의 오른쪽에는 그의 연정 파트너이자 유자광 자신의 상관 격인 스피리도노바가 있다.
거기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쭉 돌아서 보면…
농업인민위원 바빌로프.
산업인민위원이신 어머니.
군사인민위원으로 새로이 뽑힌 만주인 이시애. 함길도 군관 출신으로서 ‘만주군’ 창설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만주국 정부의 강력한 추천으로 신임 군사인민위원의 자리에 올랐다.
극동인민위원 신숙주. 그와 투닥거리는 해군인민위원은 당의 노선에 맞춰 해외 확장에 걸맞은 자리를 꿰찬 박팽년.
신숙주와 유자광 자신이 중국을 견제책을 내놓고 박팽년이 해군 병력을 움직여 해적을 몰아 중국의 무역 루트를 조정하니 그 두 사람은 익숙했다.
교육인민위원 김종직, 그 옆의 비어 있는 의자는 민족인민위원이어야 할 에드워즈의 자리.
토목교통의 이명민과 건축인민위원의 마이어가 서로 음흉한 눈빛으로 속닥거리고,
보건복지의 노먼베순과 문화예술의 블레어가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묵던에서 특별 참관인으로 들어온 이고납합 수상, 트로츠키의 바로 왼편에 앉아 이야기를 건네는 조선 국왕 전하 이홍위.
그리고… 이번 회의에 비정규 의원 자격로 좌석을 배정받은 자신,
“유자광 동지? 들어 보니 급히 상정하려던 안이 있다고 들었소. 사전에 자료도 분배되지 않았을 만큼 급박하게 보고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신숙주의 말에 벌떡 일어난 유자광은 보고서를 한 줄 한 줄 읽어 나간다.
“…민신 동지의 추론에 의하면 남조의 황태자 주견심은 분명히 호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적인 권위와 제도를 회복하려는 열망이 강하기 때문에 즉위와 함께 반드시 전쟁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미 부황에게 상비군 양성을 건의하면서 그를 위한 준비도 착실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부황 역시 그러한 기조에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허면….”
신숙주가 손을 들었다.
“황제의 수명은 몇 년이나 남았소? 그게 가장 중요하오.”
현재의 황제인 주기진 역시 북조와의 전쟁을 바란다면 어째서 그 스스로 정벌을 준비하지 않는가?
추론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파천 이후로 국가의 기틀을 제대로 다지고 다시 군사력을 회복하는 데까지 전력을 쏟았다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곧 후사를 준비함이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