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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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존재하는 땅 (2)
북조는 몽골에 많은 것을 바쳐야 했다.
장성 인근의 영토, 점점 가중되는 세폐, 이런저런 방식의 은근한 내정 간섭까지.
‘동생의 나라’로서 온갖 굴욕적인 처우를 감내하는 만큼, 몽골과의 상하 관계는 조정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데 커다란 악재로 작동하였다.
그나마 몽골이 제공하는 것이… 있기는 했다.
“달달(達達) 병사들이다! 빌어먹을… 성문을 잠궈!”
“기병들이 떼로 지어 주위 들판을 불태워 오고 있습니다! 끌고 온 대포만 하더라도 족히 수십 문이 넘습니다!”
보계(寶雞, 바오지)의 성문 너머로 우글우글하게 몰려든 몽골의 군세들.
북조가 군세를 키우지 못하는 대신, 몽골이 대신 그 세력권을 유지해 준다.
물론 점령지에서의 세폐 상당 부분을 빼앗기니 융흥제(隆興帝) 주첨선으로서는 어떻게든 개입을 배제하고 싶었겠으나, 은자 한 푼이라도 더 뜯어 갈 생각으로 가득한 에센의 몽골이 그를 두고 볼 리 없다.
황상에게 복속하기를 거부하는 지역들은 그 ‘자애로운 형님 나라’인 몽골의 말발굽 아래 짓밟혔지만 모든 이들이 사태 파악을 할 만큼 똑똑하지는 않은 법.
여기 보계의 지도자들 역시 그랬다.
“사, 산서 지역에는 우리 동맹들이 많다! 어떻게든 버텨 내기만 하면….”
“그 동맹들이 모두 얼마 전에 달자들에게 죽어 나자빠지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세폐만 바치면 복속하더라도 용서한다고 북경의 황상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냥 항복합시다!”
“닥쳐라! 그것은 궁여지책일 뿐이지, 언제 조정이 바로 서면 뒤에서 참살당할지 모른다!”
“지금 당장 참살당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평요(平遥, 핑야오)의 성주도 이미 항복했으니 이제 산서성도 끝입니다!”
그들의 격론이 탁상공론이 되기까지는 머지 않았으니.
“아곤(Огонь, 발사)!”
“아타쉬(آتش, 발사하라)!”
제각각의 언어로 소리치는 병사들 사이에서, 곧 몽골의 대포는 불을 뿜었다.
급조한 성곽은 무너져 내리고 그 틈으로 유라시아의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누비며 살육을 수련한 전력들이 달려들어 온다.
“서, 성문이 열렸다!”
“맙소사….”
“하, 항복! 항복!”
물론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열리며, 와해시키기 딱 좋은 오합지졸 농민병들만 모인 적들을 두고 항복을 받아 줄 바보들은 없다.
번성하던 도시의 수많은 저택이 그날 화염 속에서 주저앉았다.
* * *
“폐하, 보계가 평정되었사옵니다.”
“…몽골군에 의해서 말이지.”
수많은 장인이 끌려가고, 내륙의 상업 거점지이던 보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주첨선이 내리 한숨을 쉬자 뭐라 할 말이 없어진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장인들도, 상업 거점지도 지금의 북조에는 절실한 것인데… 자비도 없이 털어 간다.
물론 몽골군의 위명, 아니 악명이 두루 떨침에 따라 잔말없이 복속해 들어오는 지역들이 많아지니 그나마 상황이 나아지기는 하였다.
허나, 이렇게 주첨선의 개혁에 주된 원동력이 되어 줄 자원들이 소모되니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어쩔 수 없다. 공장 지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라고 산서 등지의 상인들에게 권고하라. 혹시 회군하는 몽골의 군세에 의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옮길 수 없다면 방비라도 단단히 하라고 전해 두라.”
“예, 폐하.”
그래도 이렇게 몽골이 대신 반대 세력들을 때려잡아 주는 덕에 북조는 군사력에 쏟을 자원을 고스란히 다른 곳으로 옮겨다 심을 수 있었다.
상회들, 그리고 공장들.
북조의 새로운 젖줄들에다 말이다.
세금 인하와 자금 후원으로 자신들을 뒷받침해 주니, 곧 주첨선의 친위 세력으로 자리 잡는다.
주첨선 본인이 유도하기도 했지만, 공장장과 상인들 스스로가 황제의 초상을 내걸고 행진하거나, 집과 공장에 어진을 걸어 두고 삼배를 올린다거나 하는 등의 모습으로 강력한 충성심을 보인다.
신분적으로 미천한 이들을 들어 쓰며 당당히 ‘나으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으니, 이들의 황제에 대한 깊은 충심 역시 가공할 만했다.
자신들의 유일한 구심점이자 비빌 언덕으로 그들은 모여든 것이다.
그 덕에 주첨선은 그나마 각지 토호들이나 권신 노릇 하려는 사족들에게 밀리지 않고 황제 노릇 할 수 있던 것이니.
“폐하, 각지의 ‘공장(工場)’에서 농민들을 잡아 가두며 일을 시키니 이는 분명 커다란 해악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어찌 말업(末業)을 위하여 본업(本業)에 몸담는 이들을 핍박하고 괴롭혀 못살게 군다는 말입니까? 이는 실로 가혹하고 부당한 조치이오니 필히 손써야 하옵니다!”
“…내 듣기로는 각지의 공장장들이 떠도는 유랑민들에게 일감을 주고 재우고 먹인다 들었거늘. 그것이 모함은 아닌가?”
“아니옵니다! 공장에 갇혀 있다 도망쳐 나온 유민들의 입에서 직접 이야기가 나온 바이니 백성의 몸을 상하게 한 바에 대하여 엄히 치죄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물론 이렇게 나온 ‘소소한’ 부정들 역시 주첨선으로서는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
해가 지면 잠에 들고, 농사일하다 힘들면 잠시 앉아서 다른 이들과 수다도 떨고 하던 농군들이다.
그들에게 하루 10시간 넘게 한자리에 앉아 기계만 들여다보도록 하려면 강제가 필요하다.
그런 ‘약간의 필요악’쯤이야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으리라 여기고 보호해 주었다.
이러니 북조의 권역에서 상공업에 몸담은 자 모두가 영흥제 주첨선의 선정을 노래하고, 승냥이 같은 토호들, 조정의 간신배와 맞서는 외로운 영웅으로서 그를 뫼실 수밖에.
이렇게 황제가 토호들을 견제하며 새로이 상공인들을 키우고, 몽골의 잦은 약탈과 지방 곳곳에서의 무력 충돌로 농민들이 길 잃고 그들의 공장으로 향하는 난세.
이런 난세의 맷돌에 갈려 나가는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머리 위의 황제와 장사치들을 저주할까?
* * *
“저 빌어 처먹을 새끼들!”
퇴근 후 멀어져 가는 공장과 공장장의 저택을 향하여 부도(不賭)는 침을 탁하고 뱉으며 외쳤다.
“지난번에는 이희(二喜)네까지 임금을 뜯겼다니 어쩐다?”
“어쩌기는… 그 집은 아비가 손목이 날아갔으니 다 죽는 거지…!”
동료의 말에 그리 답하고 나자 분기가 풀리기는커녕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니, 부도의 목소리 또한 커진다.
견직공장에서의 고된 노동, 공장 내부의 탁한 공기, 공장에서 이희의 손목을 날려 버린 고장 난 칼날에 대해, 모자란 어휘력 내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부었다.
“그래, 맞네! 저 달자(達子, 북방 유목민의 멸칭)처럼 악착같은 반장 놈들은 분명 지옥으로 떨어질 걸세!”
“망할 달자들! 내 농장만 그놈들이 털어 가지 않았더라면….”
“춘부장께서도 그것들에게 돌아가시지 않았나! 악귀 같은 놈들!”
“우리 남편네도 그리 죽었소! 겨우내 먹을 양식 내주기를 거부하다가….”
그리고 부도의 주위에 몰려든 동료들은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해 내며 저주의 범위를 넓혀 가기 시작한다.
애초에 그들의 집을 부수고 가족을 죽이며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몽골군.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꼬드겨 놓고 빚더미에 앉혀 야반도주도 못 하게 감시하는 공장장들.
채찍을 들고 베틀 사이를 오가며, 손이 느려지는 듯 보이면 가차없이 등짝을 내리치는 작업반장들까지.
그들의 세상살이를 괴롭게 하는 모든 이들을 향하여 삭여 두던 분노를 폭발시킨 이들은 곧 공장 인근의 창고에 닿는다.
“역시 우리네가 믿을 구석은 별 게 있나?”
“그렇지, 윗놈들 보기에 우리는 결국 굶으나 배부르나 거기서 거기니. 이 못난 것들이 기댈 데는 한 곳밖에 없네!”
다들 주섬주섬 보자기나 주머니를 꺼내고, 창고 앞에 서 있던 관리가 뭐라 외치기만을 기다린다.
“황상께서 근면한 노동자들을 위하여 구휼미를 내리셨소! 다들 받아 가시오!”
그러니 급히들 줄을 서고 주머니를 벌려 한 바가지씩 관리들이 퍼다 주는 쌀을 받아 간다.
“우리가 황제 폐하 말고 누굴 더 믿겠나!”
사악한 공장 주인 나으리들, 그 밑의 반장들, 다시 그 밑의 못돼 먹은 조수들.
허나 이들의 착취 속에서도 겨우 명줄을 부여잡는 바는 모두 이렇게 조정에서 내려 주는 구휼미 덕분이니.
다들 황은을 칭송하며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텃밭을 조금씩 일궈 나오는 산물과 봉급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물론, 이 구휼은 임금 지불 능력이 없는 공장을 위한 일종의 임금 보조였다.
황제가 이렇게 노임을 대신 내주는 덕에 이들이 일하는 견직공장은 그런 박봉을 주면서도 굴러갈 수 있는 것이었다.
허나, 그렇게 멀리 보는 이들은 없다. 그럴 여유가 있는 이들도 없고.
“막돼먹은 장사치들로부터 황상이 우리를 지켜 주시니 이 모든 게 은혜가 아니겠나?”
“나라님께서 겨우 우리를 먹여 살리시니….”
공장의 반장들은 가깝지만, 자금성의 황제는 멀다.
마치 그들의 몸을 덥히는 태양처럼 멀고도 아득하니 환상만이 머릿속에 자라난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주첨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그렇기에 주첨선은 그들에게 무엇이든 되어 줄 수 있었다.
반역자 이복형제에 의하여 반란을 맞아 유폐되었던 비운의 군주,
사악한 수전노들로부터 그들을 수호하는 자애로운 아버지,
몽고의 달자들에게 무릎 꿇는 수모를 겪어 가며 오직 백성을 구하려 하던 인민의 희생양.
그 주위에는 선량한 황상을 겁박하려는 장사치들과 간신들만이 들끓으니 그 광경을 상상만 해도 모두의 가슴이 애수로 차오른다.
인민들은 주첨선에 대한 감사와, 응원과, 동정과, 변함없을 사랑으로 뭉쳤다.
그들은 몽고를 원망했고, 남조의 반역자를 증오했으며,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난 자본가와 토호를 둘 다 저주했다.
공장의 한쪽에서는 공장장과 거상들의 회합에서 황제를 향한 만세 삼창이,
다른 허름한 사당에서는 황제를 위해 읊어지는 뭇 노농 인민들의 황제를 위한 기복(祈福)이 이어진다.
“우리가 언젠가 저 이족들을 몰아내고 떨칠 때가 올 것이야!”
“그럼! 한인(漢人)들끼리 맘 편히 논밭을 일구고, 황상을 업신여기는 달로갈제(達嚕噶齊, 다루가치)들도 쫓아낼 걸세!”
지주 밑에서 주린 배를 감싸 쥐는 소작농들, 계절따라 움직이는 반농반노(半農半勞)의 인민들, 그리고 착실히 부를 쌓아 혈통 잘 타고난 사족과 호족에 맞서는 상공업자들까지.
주첨선은 이리도 모두의 사랑을 받는 군주였다.
…아, 아니다. ‘모두’의 사랑은 아니겠다.
* * *
“빌어먹을… 이번에도 몽고 놈들이 떼 가는 세폐가 한도 끝도 없네!”
“장인바치들한테 뭐만 거두려 하면 벌떼같이 일어나니 남는 것이 있어야지, 원….”
“망할 것들! 이리 상하가 뒤집히고 음양이 흔들리니 천하가 망할 징조일세!”
“자, 자네… 그 말은 불궤(不軌)라도 꾸릴 참인 듯하네! 목소리를 줄이게!”
“우리끼리인데 뭘 목소리를 줄이란 말인가?”
토호들로서는 울화통이 터지도록 만사가 돌아가니 말이다.
처음에는 자치도 보장해 주고, 지위도 드높여 준다니 좋다 싶어 북조에 입조한 이들이 꽤 되었다.
그러다 달자들이 떼어 가는 세폐가 워낙에 크니 버티는 작자들도 생겼고. …물론 다들 말발굽에 두개골이 깨져 죽었겠지만.
아무튼 영리한 이들은 대강 북경에 입조를 하든, 암묵적으로 세폐 거둬 가는 바를 방관하든 다들 주첨선을 황상으로 인정해 목숨을 챙겼건만. 그 뒤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달자 놈들이 떼어 가는 건 차라리 이해를 하겠네! 헌데 장사치들이 제깟 게 뭐라고 상납을 거부한단 말인가?”
주첨선의 이런저런 안배하에서 자라난 상단과 공장들은 토호들에게 호락호락 고개 숙이지 않았다.
몇 번 병졸들을 데려가 호되게 괴롭히면 굽신거리던 옛적의 아랫것들이 아니다. 감히 얼굴을 당당히 쳐들고 다니며 저들이 뭐라도 된 양 설쳐 댄다는 말이다.
게다가 황상은 은근히 견제해… 번번이 달로갈제들이 손 벌려와… 이들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간장이 모두 끊어지도록 화가 쌓여 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네!”
“저, 정말 불궤라도 꾸밀 셈인가?”
“자네 미쳤나? 나 보고 달자들에게 사지가 찢기고 구족이 멸문당하라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랫동네에는 주걸 같은 폭군도 없다는데.”
물론 이들이 이야기하는 ‘아랫동네’가, 토호들은 미친 듯이 척살하는 남조는 아니다.
사천(四川)이나 호광(湖廣) 같은, 남조와 북조 사이의 지배권 다툼이 이어지는 미묘한 회색 지대.
양쪽의 세력이 비등비등하니 누구도 장악하지 못하고 독자 세력들이 자라는 곳.
“내 아무리 인심을 잃었다 해도, 우리 집안이 이 땅을 뜨면 따라 나올 이들이 수천에서 수만일세! 그곳이라면 장부가 뜻을 펼치고 제 몸을 간수하기에는 괜찮지 않겠는가?”
“…허면 나도 따르겠네.”
“나 역시 그리로 가지!”
자신들 역시 하나의 세력을 일궈 놓으면 그곳에서 장군 노릇이라도 하며 살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들이 모이니 해당 지역들에 군벌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지사.
안 그래도 남북에서 중복으로 세금 바치라고 엄포를 놓고, 독립 성주들의 전투와 착취로 어지럽던 해당 지역들은 한 발짝 더 인세의 지옥에 가까워졌다.
“폐하, 지금 조정의 덕치로써 다스려지지 않는 땅들에서 백성의 고통이 심하니 필히 다스려야 합니다.”
“짐 또한 생각이 그와 같다. 천하를 갈라 먹으며 제 인군을 섬기는 법도도 잊은 역적들을 토벌하겠다.”
그리고 그렇게 혼란해진 땅들을 향하여 남조의 정벌이 시작되니.
그 군세가 사천성에 다다랐을 때, 핍박받던 민초들의 만세 소리가 끊이지 않더라.
역사가 존재하는 땅 (3)
“신 마앙(馬昂)이 성칙(聖勅)을 받들어 사천 일대를 정벌하니 뭇 도적 떼가 두려움에 떨며 천조의 위엄에 굴하였습니다! 저항하는 이들은 주살하였고, 그들이 수탈한 바를 모아 놓은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먹이니 모두가 천자의 은혜에 감복하였나이다!”
이리 외치는 것은 갑옷을 걸친 채 무릎 꿇고 아뢰는 병부상서 마앙.
벌써 일흔이 넘어 말할 때마다 기침 소리와 쇳소리가 조금 섞이기는 해도 여전히 괄괄하고 힘차게 외치며 황제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의 뒤로 선 병사들 역시 눈빛이 늠름하고 창칼은 날카롭다.
“아주 장하다! 역적들은 충분히 죽이었는가?”
“예! 폐하! 여기로 가져오라!”
마앙이 부르자 병졸들이 입구가 봉해진 항아리를 질질 끌고 오더니 그 뚜껑을 연다. 황제는 그 내용물을 능히 짐작하고서 굳이 목을 빼 들지 않는다.
소금에 잘 절여진 적장들의 수급이다.
“저들 중 상당수가 화북에서 온 것을 보아 역적의 신하가 아니었는지 의심되옵니다.”
“어쩌면 주첨선이 폭정을 펼치니 도망쳐 온 이들일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 하여도 천자에게 마땅한 세폐를 바치기를 거부하였으니 역적이다. 수급은 장대에 꽂아 도성 문밖에 내걸라.”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저들의 수탈 아래 신음하던 백성들이 많고 많으니 저희 천병(天兵)이 행군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환호하고 만세 부르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사옵니다.”
주기진은 마앙의 말이 으레 따라붙는 아첨이라 생각하고 넘겼으나, 놀랍게도 그는 사실이었다.
남북조의 영향력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되, 양쪽에서 쫓겨 온 세력들이 자리 잡을 정도로는 가까운 사천 등에서는 이 피난자들이 군벌이 되어 서로 각축을 벌이니 그야말로 아귀도와 다른 바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주기진이 보낸 군세가 그런 도적 무리를 한 번 크게 소탕하니 지역 민초들로서는 그야말로 구원이 아닐 수 없던 것.
남조로선 해당 지역의 민심까지 크게 사로잡아 놓는, 꽤나 커다란 결실을 거두었다 할 수 있으리라.
조회가 끝나니 황제 앞에 도열해 있던 신하들 역시 제각각의 관서들을 향하여 흩어져 간다. 마앙 역시 갑옷을 벗고 상서로서의 직임을 위하여 병부 청사로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관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개중 절반은 한 아름 서책들을 둘러 안고 뛰어다닌다.
파천 이래로 가장 많은 군세가 가장 넓은 지역을 향하여 정벌을 나섰다.
일은 규모가 클수록 그 전후 처리가 더욱 바빠진다. 새로 넓힌 점령지에는 얼마나 많은 군사를 배치해야 할지, 어떻게 그들 지역에서 북조의 침공을 대비할지, 어디까지를 직접 통제할 수 있고 어디는 세폐만 받으며 간접 지배로 남길지에 대한 숱한 제안들이 굴러다닌다.
허나, 가장 중요한 문제일 듯한 인사의 논의는 마앙의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곧 그의 앞에 당도해 오는 환관의 말을 들으며, 그 이유를 마앙은 알게 된다.
“병부우시랑에는 하지무(何志武)를, 사천의 새로운 도지휘사사에는 아성(阿星)을 임명하라. 또한 노주(瀘州, 루저우)에 보낼 병사 팔천은 명봉(明鋒)이 지휘하도록 하라.”
갑작스레 상서에게 전달되는 명령. 황제의 성칙도 아니나 마앙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전달받았음을 표현한다.
임무를 수행한 환관은 곧 돌아가니 그 방향은 황궁의 동편, 즉 황태자가 머무르는 곳이다.
그곳 역시 병부에 못지않게 바삐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