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56
홍윤성은 손가락을 피가 나올 정도로 깨물며 혼란에 빠진 전방을 노려보았다.
정말 북변에 나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빠르게 역적들의 주력군이 도착할 수 없다.
‘속았다.’
기습이 이뤄질 줄 모르고 다소 느슨히 진영을 유지하다 갑작스레 저들을 마주하니 병졸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창수들은 전방을 받쳐주지 못하고, 총통수들이 제때 기마병들을 제압하지 못하니, 팽배수들과 궁수들까지 혼란에 빠졌다.
적 기병들이 불길처럼 거세게 돌격해온 뒤 빠져나오면서는 유유히 화살과 총통을 뿌리고 가니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허나 화기를 갖춤에 있어서도, 머릿수를 동원함에 있어서도 우세한 것은 이쪽이다. 전열이 가다듬어진다면 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터.
“일단 이곳에 잔존한 총통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정방산성을 공략 중인 총통수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아야 하오.”
“좋소. 그리 하겠소.”
강순의 조언에 따라 명령을 하달하였으나, 공성 도중이던 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계곡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게다가 그동안 정방산성의 적병들이 후퇴하는 아군을 그리 쉽게 놔줄 리도 무방했으니···.
당장의 큰 피해는 어쩔 수 없으리라.
그래도 두번째, 세번째로 다가오는 기병돌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창수들이 대응을 해내면서 피해가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네번째로 적병들이 기병돌격을 감행해올 때는,
“맞받아쳐라!”
“주상 전하 천천세!!”
아군 기마병들도 맞서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대등한 난전.
만일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불리해지는 것은 병력이 열세한 대신파 쪽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홍윤성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찰나에 함성소리가 들린다.
전방이 아니라 후방에서.
그제야 떠오르는 생각.
만일 봉산군수가 준 정보가 거짓이라면
그의 항복 또한 거짓이었다면
그 놈을 끌고 온 서리 오윤수가 맡은 정탐 결과 또한 믿을 바가 되지 못한다.
정방산과 발양산 사이의 분지. 오윤수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보고한 곳.
“적 기병들이 후방에서 돌격해옵니다!”
홍윤성이 뒤돌아보니 그곳에서 수백의 기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가지런히 도열한 채 묵직하게 다가오는 말머리들이, 이번에는 중앙군의 부드러운 뒤통수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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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라든지, 충성이라든지, 이 이승평이라는 인간은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저 내 출세길 막히지 않으면 그만이오, 기왕이면 그 출세길 탄탄하게 잡아줄 어느 영감님이나 대감님이 곧 신의를 걸어볼 대상이 아니겠는가? 잡은 동아줄이 썩으면, 뭐, 그때부터는 모르는 사람인 것이고.
신하로서의 의리? 종사를 지켜내는 충의? 귀에 듣기야 좋다만은 내 집에 가득한 곡식과 보화만 하겠는가? 또 자신의 사지 멀쩡하고 자식들 입신양명시키는 것만 하겠는가?
허나 함길도와 평안도 대부분이 궐기한 이 봉기에서는 평안우도 도절제사인 이승평만 슬그머니 빠져나올 수 없었다. 떠밀리듯 저들의 회맹문(會盟文)에 이름을 올린 뒤로는 더더욱.
그러니 저 맑고 순수한 눈으로 대행대왕의 원수와 종사에 대한 충심을 외치는 박이령이나, 이징옥, 김종서 같은 양반들을 어떻게 쳐낼 방도도 없었고.
만일 그들의 제안을 물리쳤다가는 자신의 모가지도 몸통으로부터 물리쳐졌으리라.
결론은 요컨대, 이기는 편이 내 편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삼남 지방에서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결국 경상도 쪽이 지리멸렬하게 무너져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적에는 드디어 일생일대의 썩은 동아줄을 잡아 패가망신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 소식을 들은 날 이후로 몇 날 밤을 새어가며 근심하니 곧 이승평의 머리도 하얗게 새어버리는 줄 알았다.
자신도 저 경상우도 도절제사 김윤수처럼 편을 갈아타고 구명(求命)을 해야 하나··· 수양대군 측과 어떻게든 내통해야 하나··· 하고 고민했던 나날들.
본래의 역사에서 수양대군의 등극을 도와 좌익원종공신에 올랐던 이승평이니만큼 그런 고뇌는 진지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 쓸데없는 잡생각들이었다.
그래도 북방에서 나름 잔뼈 굵었다는 이승평은 작금의 전황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숙수(熟手, 요리사)가 꼬챙이로 고기를 찔러보고는 잘 익었음을 확인하고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과 같았으니.
저기 수양의 군세가 남북, 앞뒤 양면으로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이 몹시 보기에 좋았다.
‘역시, 이기는 편이 내 편이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적졸의 피 묻히며 말달리는 이승평의 얼굴에 환한 빛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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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패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봉산군수를 두들겨 패고 흥에 취한 홍윤성의 기분을 거슬러서라도 확실히 군수가 항복한 경위를 알아봤어야 했다.
아무리 그가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서리 오윤수에게 정탐 맡기는 일을 뜯어말렸어야 했다. 그놈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신문하여 그 허점을 캐냈어야 했다.
이징옥이 북변으로 나가 있다는 말을 믿고 정방산성 공략에만 온 힘을 쏟지 말았어야 했고.
홍윤성이 거의 모든 화력을 예비분도 남기지 않고 정방산성에만 때려 붓는 일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정작 강순 자신부터가 조급증에 걸려 홍윤성의 말에 찬동하고 나섰으니···.
모든 면에서 완연한 패장(敗將)의 행실이었다. 그 순간순간을 돌이켜 볼 때마다 곰 쓸개를 핥는 듯 씁쓸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런데 지금 강순과 마찬가지로 잘한 바는 없고 잘못한 일은 수두룩한 저 홍윤성이라는 작자는,
“젠장! 이 멍청한 놈들아! 제대로 막아내야 할 것 아니냐!! 대체 정방산성 쪽에 있던 화포들은 무슨 좆대가리로 밀고 끌고 있나, 대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대책을 짜는 것도 아니고, 지난 잘못을 곱씹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순간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폭주할 뿐. 그 와중에도 제 잘못은 없고, 다른 사람의 허물만을 입에 올리는 꼴이다.
지금 제대로 지휘를 할 사람은··· 강순 혼자뿐이다.
“후방의 군세는 그 수효가 적다! 지금이라도 총통수와 창수들을 그쪽으로 돌려 맞서 싸우게 하고, 기병들이 서쪽으로 우회해 저들을 친다면 포위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군, 늦었습니다! 지금 남쪽 후방뿐만 아니라 북쪽에서도 이징옥이 친히 기병과 보병을 모두 이끌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지휘선이 무너져 병사들이 명령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습니다!”
“투항하거나 달아나는 이들이 속출합니다!!”
‘맙소사···.’
기껏 내세운 명령들이 하나둘씩 급변하는 사세 속에서 막혀간다.
더 이상의 저항에 소용이 있기는 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저 아까운 생목숨들을 장수들과 함께 순장(殉葬)하는 꼴이 아닌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항복을···”
“저···정방산성 앞의 계곡 쪽으로 병사들을 물린다! 좁은 길목에서 최대한 버티고 산성을 무너뜨리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예로부터 군략에 수효 많은 이들이 넓은 곳에서 적은 적을 에워싼다는 말은 있었어도 도리어 좁은 곳으로 들어가 머릿수 많은 덕도 못 보고 죽으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지금 당장 일신의 도망할 길이 없으니 좁은 틈바구니에 박혀 악이라도 써보겠다는 심보다.
“상호군, 아니 되오!”
“뭐가 아니 된다는 말이오! 지금 이대로 가면 모두 포위당할 터이니 어떻게든 군사를 추슬릴 틈을 얻고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려면 이 수가 낫지 않겠소?”
아, 그렇다.
투항하면 병사들의 목숨은 살릴지 몰라도, 홍윤성만큼은 결코 살아날 길이 없다.
작금의 주상 전하께서 즉위하시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마치 사냥개처럼 안평과 금성의 무리들을 향해 앞장서 짖어대고 다니던 저 작자는 반드시 죽여야 할 인사 1순위일 터.
그래서 그 구차한 목숨 잠시라도 더 오래 인간(人間, 인간세상)에 붙여 두고자 발악하는 것이다.
황망한 마음에 강순이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에도 지금 병사들은 꾸역꾸역 정방산성의 앞으로, 사지(死地)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홍윤성의 명이 없었더라도 적들의 포위망에 알아서 달려들어가고 있던 이들이, 이제 명령까지 내려지니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달리고만 있다.
그러나 저 길은 살아나는 길이 아니다. 죽으러 들어가는 길이고, 아귀의 입속으로 직행하는 길이다.
막아야 한다.
홍윤성이 이리저리 날뛰며 도망가려 애쓰는 판에, 강순이 말을 걸어본다.
“상호군.”
“아니, 왜 자꾸 부르쇼!”
강순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홍윤성의 얼굴을 가로베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고통에 웅크린 그의 등허리에 깊숙이 날을 박아 넣었다.
칼을 뽑자 더운 피가 새어 나오고.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린 장졸들의 표정이 경악감에 굳는다.
“···백기를 들어라.”
전투는 끝났다.
곧 승자의 만세 소리와 패자의 울음 소리가 사방에 퍼지니, 더 이상의 피는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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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다행히도 그리 크지 않았다. 약 1천 명 정도가 죽었으나, 저보다 우세한 병력을 맞아 대승을 거둔 것 치고는 미미한 피해였다.
물론 숫자로서 미미하다 할지라도 천 구의 시체는 그 규모부터가 남다르니 그를 모아서 파묻는 일에는 상당한 공력이 들어갔다.
그러나 피아를 가리지 않고 제 친구, 동료, 가족을 파묻는다는 슬픔만큼이나 이제는 혈투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병사들의 만면에 드러나고 있었다.
이징옥은 그 모습을 보며 절로 고개를 저었다.
결국 저들을 다시 이끌고 한양까지 가야 한다. 앞으로 이런 싸움이 계속될 것이며, 그 중 몇몇은 이보다 불리하거나 참혹할 터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병사들이 안심에 잠겨 있다면 앞으로의 정벌이 고될 것이 뻔했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자, 박이령이 술을 따라다 건네며 말을 붙여왔다.
“싸움에 크게 이겨 공을 세웠거늘 어찌 그리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시오?”
“앞으로 이런 공을 못해도 한두 번은 더 세워야 이길 수 있소. 어찌 국운을 짊어지고서 수심을 떨쳐낼 수 있겠소?”
“오늘은 그래도 기쁜 날이니 긴장을 푸십시다그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이승평 또한 벌게진 얼굴로 이징옥에게 술을 마시라 권한다. 낯빛을 보니 저도 이미 몇 번 걸치고 온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나는 되었소.”
“참, 재미라는 걸 모르고 사시는구려.”
그렇게 입맛을 다시면서도 이승평과 박이령 역시 앞날이 걱정되는지 슬며시 남쪽을 바라보았다.
봉산군 읍내 바깥 멀리, 임진강 건너, 삼각산 아래 웅크린 한양.
그곳에 당도할 수 있을까?
지금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승평 역시 술맛이 나질 않는지 들고 있던 술잔을 탈탈 털어버린다.
아직까지는 수양대군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었다 뿐이지, 그의 멱을 따려면 멀었다.
한양까지는 수백 리 길이 남아있으니까.
그렇게 세 사람이 생각하던 중, 필마로 달려오는 어느 사람의 형체가 흐릿하니 보인다.
남녘이 아니라 북녘에서.
“함길도 도절제사 영감! 함길도 도절제사 영감께 올릴 서찰이 있습니다!”
군영 앞에 서서는 그리 소리를 지르니, 들여올 수밖에.
“무슨 소란인가?”
“평양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군호(軍號, 군에서 쓰는 암호)도 모두 일치하니 우리 병사가 맞습니다.”
이징옥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전령을 안으로 들였다.
전령은 세 장수 앞에 서서는 체신머리 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이···이긴 겁니까?”
“그래, 적을 대파했다. 이제 흉적을 베러 남진하는 일만 남았다.”
그 말을 듣고서 전령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자, 그제야 이징옥은 서찰의 내용을 짐작했다.
뒤늦게 이승평과 박이령 또한 옆으로 다가와 함께 서찰을 훑으니 곧 곡소리가 군막에 가득하더라.
60여년의 종사여. 허망하구나.
-‘還來爲宗社’
종사를 위하여 돌아오라.
에센이 압록강을 넘었다.
전투는 이겼으나 전쟁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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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 (4) – 여기까지 무료였습니다.
칙서(勅書).
황제는 자신을 일컬어 짐(朕)이라 하고, 그 대를 이을 이는 태자(太子)라 부르며, 그 명(命)은 제(制), 그 령(令)은 조(詔), 그 인장을 옥새(玉璽)라 한다.
그리고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글을 칙(勅)이라 하였으니···
지금 야선(也先, 에센)이 보낸 사절이 칙사(勅使)를 자칭하며, 자신이 가진 글을 칙서(勅書)라 일컬음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허나 저 ‘칙사’라는 자도 감히 김종서를 무릎 꿇게 할 만용을 부리지는 않았던지라, 얌전히 가져온 서찰을 넘겨줄 뿐이었다.
김종서는 그 내용을 읽고 금성대군, 또는 주상 전하에게 넘겼다.
“···그래서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김종서의 눈매가 날카로워지자 야선이 보내온 칙사··· 아니 사신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을 건네 온다.
“조선국의 선왕께서 불시에 붕어(崩御)하시니 내란이 일어 백성들의 목숨이 상하고, 땅에 붙어먹고 사는 농민들이 땅을 버린다 들었습니다. 이에 우리 카간께서 조선국 백성들의 목숨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선국왕 전하께 화친의 뜻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조(前朝) 적부터 아국과 삼한(三韓)의 사이가 형제보다 가까워 중원의 한족들을 질투케 하습니다. 그 우애를 잊지 않으신 카간께서 조선땅을 휩쓰는 흉적을 토벌하고 조선국에 올바른 왕통(王統)이 서게 하리라 다짐하신 것입니다.”
제안. 저들이 가져온 것은 단순한 공갈도, 협박도 아닌 제안이었다.
야선은 함께 수양을 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저들도 조선의 사정을 살피면서 지금 지방군 측이 열세임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터.
만일 승리와 생존을 바란다면 그들의 제안을 내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으리라.
김종서가 슬쩍 주상에게 눈짓을 보내자 주상께서는 짐짓 근엄한 흉내를 내며 말씀하신다.
“내 너의 서신은 잘 받았다. 낯선 강산에 왔으니 노독이 쌓였을 터, 숙소를 내어줄 것이니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라.”
“전하의 살피심에 감복하옵니다.”
그리 말을 올리고서 낯선 머리모양을 한 사신이 털레털레 대동관(大同館, 평양의 행궁이자 객사)을 나선다.
그리고 사신의 발걸음이 대동관 섬돌을 넘자마자, 바로 김종서가 굳은 얼굴로 주상을 향해 뒤돌아 엎드렸다.
“전하, 저들의 태도가 심히 오만하오나···”
“알고 있소.”
김종서가 망설이며 차마 아뢰지 못 하자 주상은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우리가 저들의 제안을 물리치면 야선은 곧장 말머리를 이곳으로 향하여 들이칠 것이고, 우리는 북쪽으로는 몽고, 남쪽으로는 역도들에게 둘러싸여 패배할 테요.
만일 저들의 제안을 받는다면··· 그건 어찌 될지 모르겠소. 아마 수양을 이기긴 할 터인데 내가 어떤 임금이 될지 모르겠소.
아마 후진(後晉)의 고조(高祖) 석경당(石敬瑭)처럼 나라를 팔아 왕위를 얻은 자로 남으려나?”
“전하!”
“굳이 더 덧붙이려 하지 마시오. 나도 알 것은 알고 있소.”
주상은 김종서의 말을 막았다. 이제는 소용 없다는 듯.
“우리는 끝났소. 이징옥이 얼마나 잘 싸워내든, 설령 그가 패왕 항적(項籍, 항우)이 살아돌아온 것처럼 일당백을 해낸다 하더라도 수양을 죽인 뒤 다시 북쪽으로 돌아와 야선까지 당해낼 여력은 없지.”
그 말에 김종서는 입을 떼지 못 하고 그저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주상의 목소리 끝이 갈라지고 떨려옴을 느낀 것이다.
“허나 나···나는 끝내 모르겠소. 어찌해야 할지··· 이 몸에 내려오는 대임의 무게가 너무 커서 더는 버틸 수가 없소.
나는 왕의 재목이 아니라 그저 필부인 듯하오. 경이 정하시오. 경이 나를 세우고, 또 곁을 지켜왔으니 경의 뜻에 따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