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93
시발.
좆 같은 눈 펑펑 나라에서 내 30, 40대가 다 가게 생겼다.
트로츠키에게 속고 속고 또 속은 에드워즈는 그제야 며칠 밤낮 분루를 삼키며 망할 우크라이나 안경잡이 유대인을 저주했으나 이미 열차는 떠난 상태.
마침내 출발의 그날, 간단하게 짐을 싸고 나와 보니 감동적이게도 이고납합과 이아구, 만주인들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사령관께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었소. 부디 몸 조심히 잘 다녀 오시길.”
“…에드워즈 동지! 동지가 우리 만주인들을 위해 애써 주신 노고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와아아아! 에드워즈 동지 만세!”
큭, 뭐냐. 이 싸구려 신파극에 나올 법한 뻔한 장면은.
물론 만주족공산주의대동맹의 동맹원들이 일제히 유사 나치식 경례를 에드워즈에게 올리니 일순간 흠칫했지만.
젠장, 저건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래도 이 클리셰적인 상황에 에드워즈는 심히 감동을 받아 버렸고, 저도 모르게 이아구가 주는 선물을 받아들었다.
“…이건 제 아버지께서 저에게 남겨 주신 단도입니다.”
“그, 그런 귀중한 걸… 그렇다면 저도 제 어머니께서 남겨 주신 목걸이를….”
이아구가 아버지의 유품을 전해 주니 에드워즈도 몸 둘 바를 모르고 선물을 전한다. 그 의미도 모르고.
“에드워즈 동지,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도 떼 놓을 수 없는 형제입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아… 네?”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귀중한 선물을 나누는 건, 의형제를 맺는 의식인 줄 몰랐다.
그렇게 만주족을 이끄는 이아구와 이고납합의 의형제가 된 에드워즈, 인민 위원 내정자(희망) 에드워즈는 북청을 떠나 모스크바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걷게 되었으니.
장하다, 이에드워즈. 루스를 네 손으로 적화시켜 버리렴.
* * *
한편, 그렇게 떠밀리듯 모스크바행을 결정당한 이는 에드워즈뿐만이 아니었다.
“동지, 이번 루스인들의 상황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당연히 몽고달자들의 말발굽 아래 짓밟힐 터이니 안타깝지 않겠나? 저들이 이역만리 떨어진 데 있고, 야선이 우리의 우방이라 선비이자 공산주의자로서 그들을 구제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
“아, 역시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네! 그렇다면 내 블레어 동지에게 고하지!”
김종직이 물어오니 그렇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뭘 전할 게 있다고 바쁘신 영상 대감께 한낱 필부의 소회를 고한다는 건지 그때는 몰랐다.
조금 전까지는.
“동지, 축하하네! 동지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네!”
“축하한다네! 내 꼭 가고 싶은 자리였는데!”
“축하하네! 유럽이라는 곳은 어떤지 꼭 돌아와서 전해 주게?”
갑작스레 모두가 그를 돌아보며 축하한다고 외치니 마치 억지로 싸움터에 등 떠밀려 나가는 열네 살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자네가 나선에 가고 싶다 말하지 않았나? 가서 루스인들을 구제하고 싶다고도 하였고?”
“어… 어어…?”
김종직이 그렇게 되물은 뒤에야 향민계 동지들이 축하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그,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만리타향에 떠나라는….”
“허나 자네가 선비로서 루스인들을 꼭 돕고 싶다 하지 않았나? 그렇다기에 나는 블레어 대감께 이미 자네를 천거하였네만….”
“아, 이분이 김종직 동지께서 유망한 인재라고 칭찬하시던 그 동지입니까?”
“여, 영상 대감?”
“하하하, 이름으로 편히 부르시죠. 나선으로 간다는 큰 결심을 내려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그….”
“걱정 마십시오. 동지는 혼자가 아닙니다. 이번에 저희 향민계에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보내는 인원 수가 예닐곱 명 정도 될 테니 길동무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선행에 참가하는 분은 모두 돌아오실 때쯤이면 바로 당상관에 올라있을 겁니다!”
“다, 당상관이라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만큼 몽골과의 관계 유지는 국가 중대사 아닙니까?”
수양이 집권하였다 하니 절개를 지키려, 공부도 내려놓고 시 짓기로 소일하기를 한 1년.
내전이 끝나고 나니 미친 척 돌아다니며 놀았던 1년은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왔다.
연줄이나 만들까 싶었고, 또한 한양에서 공산주의가 유행한다 하여 향민계에 가입해 어울리기를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과거에 붙어 자그마한 벼슬자리도 얻었으나 성에 차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상관?
그 정도면 이역만리에서 몇 년쯤 버리고 와도 괜찮은 보상이 아닌가?
그러니 블레어의 말에 홧김에 대답해 버리고 만다.
“까, 까짓 거 한번 해 보겠습니다!”
“역시 동지는 그럴 줄 알았어!”
“믿고 있었다네, 젠장!”
그렇게 주위의 환호가 이어지니, 낙장불입이란 것을 깨달아도 어쩔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수재라 불리던 이 김시습, 이제는 어디로 가게 될 지 모르겠다.
* * *
소련 원산. 광장 근처의 키릴 문자와 알파벳, 언문으로 적힌 간판 아래 커다란 술집.
자리를 꽉 채운 손님들은 중앙에 놓인 단상을 바라보며 박자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이름들을 연호한다.
“고르비(Горби, 고르바초프의 애칭)! 고르비! 고르비!”
“미샤(Миша, 미하일의 애칭), 본때를 보여 주게나!”
“여러분.”
소련군 정복을 차려입은, 세 사람의 남자가 단상으로 올라섰다.
그중 한 사람이 서두를 꺼내자 짧은 환성과 침묵이 이어진다.
“오늘의 연설회에는 무려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스피리도노바(Мар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Спиридо́нова) 전 사회주의혁명당 지도자,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 의원, 제2 문인 소비에트 대표께서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고르비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테이블 하나를 가리키며 인물을 소개하니, 드레스를 차려입은 중년인이 일어나 주위를 향해 목례한다.
러시아 혁명의 영웅, 그 ‘전설적인’ 스피리도노바의 등장에 술집의 모두가 환호를 지른다. 그리고 군중의 열광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단상에 오른 연사가 입을 연다.
“오늘의 이야기는 루스 민족에 대한 것입니다.”
고르비, 미샤, 보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자들. 그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입을 연다. 적백내전의 영웅적인 공훈을 통해 얻은 훈장들을 번쩍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장구하게 흘러간다.
고난에 찬 루스 민족의 역사,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런 루스의 조상을 다시 유목민적 착취의 굴레 아래 두는 것은 온당치 못한 대우라고 호소한다. 그 주장에 군중들은 열광하며 다시금 이들의 이름을 연호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연설회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같은 술집, 구석의 테이블에서 세 연사는 다시금 만났다. 이번에는 관객 없이 세 남자뿐이었다.
“좋아. 여론이 모이고 있어. 소련 군장교들이 모이는 테니스 클럽에서도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네.”
“제발! 이번에는 바보같이 ‘우리 민족’이 어쩌고, 러시아의 왕위가 어쩌고 지껄이는 머저리가 없어야 하네! 그랬다가는 러시아 패권주의자에 반동이라 또 욕 먹을 각오는 해야 할 걸세!”
“욕만 먹겠나? 어떻게 뒤집은 여론인데, 우리 트로츠키 동지에게 기회를 주겠지.”
“그건 그렇고. 보랴(Боря, 보리스의 애칭), 고르비, 들어 보게. 군사인민위원회 쪽 지인한테 들은 건데 말일세? 트로츠키 동지가 결단을 내렸다더군.”
“어떻게 말인가?”
“아마 근시일 내에 합의안을 도출할 것 같으네. 총관 후보로는 그 로버트 에드워즈. 대신 보좌나 고문으로 러시아인들을 딸려 보낼 것 같으이.”
“흠… 그 제안을 우리가 받아야 하려나?”
“별수가 없기는 하지. 일단 그 정도 선에서 만족하지 않으면 우리도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 있네. 안 그래도 구(舊)소련계의 비(非)러시아인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알겠네.”
며칠에 걸쳐 이뤄졌던 회합은 그렇게 끝났다.
세 남자가 떠난 자리에는 빈 술병과 안주 그릇만이 남았으니.
이들이 원산에서 속 편히 술 마실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 * *
‘친애하는… 아니, 빌어먹을 료바에게.
그리고 트로츠키의 발바닥을 핥아 주는 데 익숙해졌을 볼셰비키 ‘동지’들에게.
여러분의 지적인 무능, 조직적인 미숙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이번 민족주의자들의 ‘난동’에 심히 유감을 표하오.
그리고 그 머저리들의 회합에 내가 참석할 것을 부탁한 트로츠키 동지의 비루한 전략안에도. 그 애처로운 꼬라지를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 시간 낭비를 견딜 수 있겠지만은.
아무튼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주로 취미 모임과 술자리를 빙자한 연설회를 통하여 세력을 모으고 있소.
그 주축이 되는 인물들은 소련군 장교 출신인 고르바초프, 아카토프, 바토르스키의 세 사람이오.
아마 이들에게 약간의 떡고물을 던져 준다면(벌써 나도 조선식 은유법에 익숙해졌구려.) 쉬이 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오.
이런 일에까지 나를 동원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소. 나라면 보다 교묘한 수를 썼을 것이오. 하잘것없는 일에 쓰이기에 나는 너무 큰 포석이니까.
아무튼 좋지 않은 능력으로 잘들 애써 보시오.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스피리도노바가.’
원산의 인민위원평의회로 배송된 이 편지는 곧 한양의 트로츠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편지를 읽고 순식간에 ‘트로츠키의 발바닥 핥개’, ‘지적으로 무능하고 조직적으로 미숙한 동지들’이 된 이들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하여간에 정말 기분 더럽게 만드는 인간일세. 아무튼 내용은 조금 과격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유용한 정보와 제언들이 담겨 있네.”
“대체 저런 양반이 어쩌다 의용군에 참가한 겁니까?”
“내가 스탈린이라도 소련에서 이런 양반은 내보내고 싶었을 걸세. 자발적인 거였겠나?”
“…아.”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에티앙블이 고개를 끄덕이자, 트로츠키는 편지를 흔들며 말한다.
“자 그럼, 스피리도노바 동지의 소중한 의견에 따라 머저리들을 솎아 내 보세나.
다들 러시아를 그토록 사랑하니 러시아행도 반길 것이네.”
트로츠키는 어쩐지 음흉하게 웃어 보인다.
* * *
그렇게 마침내 1461년 한양, 드디어 확정된 총관 일행의 출정식.
“보리스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네!”
이놈이 그 ‘고르비’.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아카토프”
“네, 동지!”
‘보랴’라는 놈이 이놈이고.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토르스키”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이 ‘미샤’다.
트로츠키가 단상 위에 오른 세 사람을 호명하자 당찬 대답들이 들려온다.
“여러분을 몽골 제국 나선총관으로 부임하는 로버트 에드워즈 동지를 보필할 군사 고문관으로 임명하겠소. 먼 곳에서도 훌륭하게 소임을 다해 주리라 믿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이쿠, 나이 쉰이 넘었으면서 목소리는 우렁차다.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해답.
당근 던져 주기.
이름하야 ‘나선총관 휘하 군사 고문관’으로 임명된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제1 기병군 출신, 적백내전의 참전 영웅, 러시아 출신.
즉, 적백내전 중 차리친에서 방어전에 참가하며 무려 스탈린, 보로실로프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신 동지들이라는 이야기.
이들은 적백내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쌓아 이후 그 공훈을 승진 가도를 달렸다. 일례로 여기 이 고르바초프 동지로 말하자면 무려 우랄 군관구장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노농적군 내에서 착실히 입지를 쌓아 올릴 꿈에 부풀어 있었으리라.
…자, 그런데도 스페인으로 내팽개쳐졌다. 그게 무슨 뜻일까?
“아, 오늘 우리는 보드카를 마시지 않고도 취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혁명 정신에 취했습니다! 루스에서 최선을 다하여 의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젠장, 대체 스탈린이 보기에도 얼마나 한심했으면….’
아마 높은 확률로 군기 문란 때문이겠다.
스탈린이 보기에는 적백내전 때 운 좋게 승진해서! 밥만 축내는! 군기 문란 머저리들이란 판단이 섰으니까 트로츠키에게 짬 처리한 거다!
심지어 스탈린과 친분이 있음에도 숙청당한 걸 보면 눈치조차 없었을 것이 명약관화. 괜히 스피리도노바가 경멸에 가득 찬 눈빛을 보냈을까?
그런 자신들의 처지를 알기에 조선으로 온 뒤에 조용히들 지내다가, ‘루스 사태’와 관련하여 트로츠키가 흔들리니 득달같이 달려들어 러시아 민족주의를 외친 놈들….
결국 민족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해 이들을 루스로 파견하게 되었다. 즉, 여차하면 트로츠키에게 숙청 1순위인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장 동지!”
“허허허. 고맙소, 고르바… 초프 동지….”
아니, 이 새끼들은 눈치도 없이 번쩍번쩍 소련군 정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왔네? 숙청해 달라고 애원하는 건가?
심지어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고르바초프’라는 놈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불길하고 기분이 나쁘다. 대체 어째서지?
아무튼 이들에게 악수를 하고 덕담을 좀 나누는 것만으로도 트로츠키는 기운이 빠진다.
돌아보니 에드워즈 또한 마찬가지 상태인 듯하다…. 앞으로 네놈이 이것들을 감당할 테니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될 텐데.
이렇게 힘이 빠질 때는 역시 갈구는 맛이 좋은 인간에게서 기력을 뺏는 게 상책이다.
트로츠키는 고개를 돌려 조선 측이 선정한 총관 보좌역과 마주한다.
“…권람 동지?”
“네, 넵! 트로츠키 동지… 아니, 섭정 전하!”
에센에게 사절로 오간 경험도 있는, 적당히 중신 정도 급이 되는 인사.
게다가 수양대군파의 정치적 숙청이라는 쓸모도 다했으니 저기 루스로 보내 버리기에는 딱이다.
“…잘하시오.”
“아, 아, 알겠사옵니다!”
그걸 본인도 아니 이렇게 빠릿빠릿하다. 하, 이 맛에 조선 생활 한다.
물론 보좌역이 한 사람일 수는 없으니 권람 밑으로 딸려 있는 이들도 있다. 모두 7명.
나로드니키들 중에 정치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이 없으니, 개중 유망한 자원자들을 선발하였다고 한다.
트로츠키는 그중 대표로 한 사람을 호명한다.
“김시습 동지!”
“예, 의장 전하!”
아, 좋다. 젊음이여. 이렇게나 척척 대답도 잘하고 눈빛도 총명해 보이는 게 아주 물건이다.
“그대와 그대의 동기들이 힘을 합쳐 권람 동지와 에드워즈 동지를 잘 보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트로츠키의 격려 인사들이 끝나니, 이번에는 한쪽에서 그들을 내다보던 조선 국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들으시오.”
“예, 전하.”
소련군 장교들, 에드워즈, 권람과 나로드니키들까지.
이 이질적인 인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홍위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