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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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디아의 모든 거리마다 사람들이 넘쳐 흘렀다. 평소에도 늦은 시각까지 복잡한 길이었지만 오늘은 한 걸음 내딛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얇은 옷을 입고 걸어 다니기 딱 좋을 정도의 상쾌한 밤바람이 불어와 짙은 색의 꽃과 나무를 흔들었다.
대목을 놓칠 수 없었는지 길가에는 갖가지 간식과 음료수를 파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손에는 먹을 것들이 잔뜩 들려 있었고, 그것은 리엘라와 하운도 마찬가지였다.
“맛있네요.”
리엘라는 제 손에 들려 있는 음식을 크게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식빵 사이에 새우 살을 곱게 갈아 튀긴 덩어리와 달콤하고도 매콤한 소스가 잔뜩 뿌려진 음식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디얼 컷에서 마련해 준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로 따로 먹은 것이 없었다. 평소라면 네아와 누얀이 간식과 음료수를 가득 챙겨 주었겠지만 카지의 일을 처리하느라 두 사람도 소르디아 의회 직원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을 삼켰다.
“맛있다니 다행이네.”
하운은 리엘라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웃었다. 하운의 표정에 리엘라는 그가 언제부터 이렇게 잘 웃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돌로 만들어진 것 같은 표정 없는 얼굴이었는데.’
이제 하운은 제법 잘 웃는다. 네아를 보며 짜증 내는 표정도 더욱 다양해지긴 했지만.
“그보다 한 입 먹어 봐요. 정말 맛있는데.”
리엘라는 제 손에 들려 있던 것을 하운에게 들이밀었다가 아차 했다. 자신의 잇자국이 크게 남아 있는 음식이다. 자신이 먹던 것을 맛보라고 들이밀다니.
리엘라가 손을 내리려 하는 순간 하운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크게 덥석 베어 물었다.
“어….”
리엘라가 베어 물었던 것보다 배는 더 크게 베어 문 하운은 고개를 들고 우물거렸다. 잠시 후 입에 있던 것을 꿀꺽 삼킨 그가 말했다.
“맛있네. 카르디아에서는 먹어 본 적 없는 맛이야.”
“…….”
“왜 그래?”
하운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리엘라에게 물었다. 리엘라는 그를 한참이나 더 빤히 바라보더니 그의 손에 들린 것을 가리켰다.
“저도 그거 한 입만 주세요.”
“응?”
하운은 제가 들고 있는 음식을 보았다. 허기진 탓에 크게 몇 번 베어 물었더니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모양도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고.
“먹고 싶어? 그럼 새로…!”
하운이 새로 사 주겠다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리엘라가 쓱 얼굴을 들이밀어 남은 것을 입에 물었다. 리엘라는 몇 번 오물거리다 입 안에 있는 것을 삼켰다. 하운 역시 조금 전의 리엘라와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가 먹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먹었다. 그 사실에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다.
다 삼킨 리엘라는 울상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매워….”
잠시 후 리엘라의 손에는 시원한 과일 주스가 들려 있었다. 한 손에는 주스, 다른 한 손으로는 하운의 손을 잡은 채 리엘라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부터 뭘 하지?’
처음 왔을 때, 분명 하운과 함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며 긴 목록을 짰었는데, 움직이기도 힘든 지금 상태로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불꽃놀이를 기다리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리엘라는 하운을 이끌며 길을 걸어 다녔다. 배가 부르니 식당에 가기도 좀 뭐하고, 그렇다고 카페에 가서 앉아 있자니 사람이 너무 많아 빈자리가 없고.
‘차라리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곳으로 미리 가 있는 게 낫겠어.’
리엘라는 예전에 누얀과 함께 돌아다니다 본 곳을 기억하고 하운을 잡아 이끌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한참을 걷자 강변의 모습이 나왔다.
일찌감치 도착한 사람들은 천을 깔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엘라도 그들 사이에서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러다 리엘라의 눈에 장사를 접고 있는 가판대가 보였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맞다! 오팔 뽑기!”
하운과 함께 사러 올 생각으로 몇 번이나 그냥 지나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강가에 줄지어 있던 가판대는 대부분 철수를 한 상태였다. 그나마 영업하는 거로 보이는 가판대들 역시 점점 몰리기 시작한 사람들 때문에 접고 있었고, 남아 있는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빨리 가요!”
하운은 영문도 모른 채 리엘라와 함께 뛰었다. 리엘라가 다가간 곳은 아직 접지 않고 남아 있는 유일한 가판대였다. 하지만 리엘라의 기대와 달리 가판대 위에는 작은 돌 조각 몇 개만 굴러다닐 뿐 오팔 원석은 보이지 않았다.
“다 팔려 버렸나 봐….”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리엘라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때 짐을 정리하고 있던 가판대의 주인이 다가왔다.
“뭡니까? 오팔 뽑기 하시게요?”
“네에. 그러려고 했는데 보니까 다 팔렸나 보네요….”
그러자 주인이 황급히 말했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가 따로 빼 둔 것들이 있으니까.”
가판대의 주인은 허리를 숙이더니 가판대 아래 붙어 있는 서랍을 뒤적거렸다. 곧 그의 손에 두 개의 원석이 들려 나왔다.
“이게 말이야, 우리 마을 뒷산에 있는 광산에서 나온 건데 아주 품질이 대단한 것들이에요. 보기에는 별로일 것 같지만 갈라 보는 것마다 파이어가 살아 있는 오팔이 툭툭 나와요. 올해 여기서 대박 난 사람이 아주 줄을 섰어.”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리엘라의 손에 원석 두 개를 쥐여 주었다.
“으음….”
리엘라는 제 손에 들린 원석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거… 내가 봐도 좀 아닌 것 같은데?’
보석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편에 속하는 그녀였다. 세공소에서 많은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공되어 있는 보석에 관한 것이었을 뿐, 이렇게 세공은커녕 광산에서 막 캐어 낸 것 같은 돌멩이 상태일 때의 지식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리엘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아니야.
리엘라의 표정이 별로인 것을 눈치챈 것일까. 가판대 주인이 급히 말했다.
“마지막 손님이니까 내가 싸게 떨이로 드릴게요. 두 개 해서 9길더만 받을게.”
그 순간 리엘라의 본능이 대답했다.
“에이, 떨이라고 하실 거면 확실하게 싸게 주셔야죠. 게다가 저 다른 오팔 원석들도 봤었는데, 이렇게 작진 않았거든요? 두 개 해서 5길더에 주세요.”
“5길더라니! 큰일 날 아가씨네! 말하는 거 보니까 소르디아 사람 아니죠? 어디 보자… 테티아? 아닌가? 그럼 카르디아? 어쨌든 멀리서 온 것 같은데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소르디아에서는 그런 식으로 흥정하는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리엘라는 그 말을 삼켰다.
소르디아 세공소 직원들의 영혼을 털어 버린 그녀였다. 리엘라가 기합을 넣고 다시 흥정하려고 하자 하운이 그녀를 말렸다.
“그냥 사는 게 어때?”
“그냥 사다니요. 저거 분명 품질이 별로인 원석일 거예요. 하나는 그래도 좀 괜찮아 보이는데 작은 쪽은 절대 오팔 안 들어 있을걸요? 딱 보기에도 꽝인데 그걸 어떻게 한 개에 5길더 가까이 주고 사요?”
리엘라의 말에 하운은 웃음이 나왔다. 네멘테스의 오팔 원석에는 망설임 없이 5억 길더를 부르더니 지금은 5길더가 아깝다고 울상이다. 아무래도 그때 말했던 가치에 맞는 정당한 지불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운은 이 시간조차 아까웠다. 상인과 흥정하는 것보다 좀 더 자신을 봐 주면 좋겠는데. 그래서 그는 주머니에서 10길더를 꺼내 상인에게 쥐여 주었다.
“여기 10길더 받게.”
“아이고, 남자 친구분이 시원시원하시네. 잘 생각했어요.”
남자 친구라. 상인의 말에 하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10길더 더 받게.”
“하운 님!”
리엘라는 하운을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면서 상인과 다시 흥정을 했다. 결국 원석을 반으로 갈라 주는 공임비 3길더는 1길더로 합의를 보았다.
“큰 것은 리나의 사업 운을 점칠 용도니까 그냥 카르디아에 가서 가르기로 하고… 작은 것만 갈라 주세요.”
“…그럽시다.”
리엘라와의 흥정에서 패배한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판대 아래에 두었던 원석을 자르는 기계를 올렸다. 기이잉.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동그란 원형 톱날이 빠르게 회전했다. 리엘라는 두 손을 꼭 쥐고 갈라지는 원석을 바라보았다.
“오팔… 오팔… 제발 오팔 나오게 해 주세요….”
“엄청난 오팔을 갖고 있으면서 또 갖고 싶어?”
“그거랑 이거랑 다르잖아요.”
하운의 핀잔에 리엘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사람이란 원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얻어지는 작은 행운을 기대하는 법이다. 그것은 리엘라와 하운도 다르지 않았기에 피식 웃었던 하운도 원석이 갈라지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쪽에 집중했다. 볼품없는 원석이다. 그 안에서 뭐가 나올까? 오팔? 루비? 사파이어? 그것도 아니면 가넷?
가판대 주인은 반으로 갈라진 원석을 붙어 있는 상태 그대로 가져와 리엘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자, 여기 있어요. 이건 미신인데 불꽃놀이를 보면서 안에 무엇이 있나 확인하면 하늘의 빛이 보석 안으로 들어와 오팔이 된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까 꼭 불꽃놀이 보면서 확인해 봐요.”
그 말에 리엘라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 좋은 게 나오더라도 다른 데 가서 확인하고 찾아오지 말라는 뜻이 담긴 미신인가요?”
“어흠! 크흠!”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재빨리 가판대를 정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어, 어쨌든 그럼 좋은 시간 돼요!”
그는 리엘라가 쫓아올세라 재빨리 가판대를 끌고 사라져 버렸다.
“그럼 일단 앉을 곳을 찾아보지.”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이미 좋은 자리는 누군가 이미 다 앉아 있는 상태였다.
“앉을 곳이 없네요.”
“그러게.”
그렇다고 계속 서 있을 수도 없다. 하운은 주변을 둘러보다 잠시 고민하더니 리엘라를 잡아 골목으로 이끌었다. 사방이 건물로 가려진 곳인 탓에 불꽃놀이를 볼 수 없었기에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운이 자신을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는지 몰라 리엘라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골목 옆 건물의 위를 바라보더니 리엘라의 허리를 끌어안듯 붙잡았다.
“꽉 붙잡아.”
“……!”
뭘 하려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옆에 있던 건물의 옥상 위에 내렸다.
“여기면 잘 보이겠군.”
하운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고, 리엘라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대로 올라와도 되나요?”
게다가 이런 좋은 자리가 있는데 왜 아무도 이곳에 올라와서 보지 않는 건지.
“여기는 소르디아 의회 소유의 건물이야. 다들 퇴근했을 테니 이곳에 올라올 사람은 없어. 그리고 혹시나 문제 되면 아직 쓰지 못한 면책권 써 버리지, 뭐.”
살인도 면책받을 수 있는 권리를 옥상 무단 침입에 쓰겠다는 말에 리엘라는 할 말을 잃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낮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위해 놔둔 것 같은 벤치가 보였다. 두 사람은 그곳으로 가 불꽃놀이가 펼쳐질 하늘을 바라보며 앉았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건물 아래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북적거림, 시원한 밤의 공기, 꽃의 향기 그리고 맑은 밤하늘까지. 무척이나 기분 좋은 밤이었다.
잠시 소르디아의 밤을 느끼던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친 순간 동시에 말했다.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