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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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들어간 빛들은 굳어 보석이 되었고, 땅 위에 남은 빛들은 계속해서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했다. 그렇기에 처음 빛을 그대로 간직한 보석들은 힘이 있고, 땅 위로 퍼져 나가 새로이 피고 지는 꽃은 힘이 없다고 들었다.
“그 전설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야. 이 크리스털들은 창세 시대에 만들어졌어. 빛이 닿은 자리의 흔적이라고 불리기도 하지. 그때의 기억이라고 추정되는 기억을 갖고 있는 크리스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창세 신화의 이야기는 이런 기억들을 보고 시작된 거지.”
하운의 설명에 리엘라는 어쩐지 어릴 적 부모님이 책을 읽어 주던 때가 떠올랐다. 멀고도 아득한 존재들이 아직도 우리의 옆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의 경이로움에 어쩐지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하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간들이 힘을 인지한 첫 번째 보석은 문스톤이야. 주변의 위험한 것들로부터 지켜 주는 힘을 가졌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보석들의 힘을 발견하면서 인간들은 알게 되었어. 언제나 몸에 소중하게 지니고 다닌 보석들은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들어 본 적 있어요. 세공해서 더욱 반짝이는 보석들이 더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세공한 것들이 보통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리엘라의 질문에 하운은 제 품 속에 손을 넣더니 두 개의 보석을 꺼냈다.
하나는 원석 상태를 겨우 벗어났을 정도로 투박하게 세공된 푸른 보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교한 세공의 금으로 된 테두리에 펜던트의 형태로 박혀 있는 푸른 보석이었다.
“이 두 보석은 둘 다 같은 청염의 사파이어다. 하지만 그 위력은 달라. 먼저 이것은.”
하운은 그렇게 말하며 펜던트 형태의 사파이어를 손에 쥐고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위로 마차 크기의 푸른 불꽃이 넘실대다 사라졌다. 불어오는 바람에 뜨거운 열기가 섞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꽃은 진짜였다.
“그리고 다른 사파이어의 힘을 보여 주지. 내 뒤로 물러서.”
하운이 투박한 사파이어를 들며 말했다. 리엘라는 그가 시키는 대로 말들을 끌고 하운의 뒤에 섰다.
‘뭘 하려는 거지?’
리엘라가 뒤로 물러서자 하운은 제 손 위에 올려진 사파이어를 바라보았다.
화르륵!
갑자기 하늘에 푸른 불꽃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본 것과 같은 푸른 불이었으나 그 크기가 달랐다. 조금 전의 불은 마차 정도의 크기였는데 이것은 바다가 출렁이는 듯 거대한 크기로 리엘라가 보고 있는 모든 하늘을 덮었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놀란 말들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흥분했다. 놀란 것은 리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야! 머리 위에 나타난 넘실거리는 불꽃에 리엘라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마음에 덜덜 떨다가 결국 앞에 서 있는 하운을 붙잡고 말았다.
“……!”
하운의 몸이 놀란 듯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세상을 덮어 버릴 것 같던 불꽃이 사라졌다. 하운이 보석의 힘을 거둬들인 것이다.
여전히 놀란 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찾았지만 리엘라는 하운을 놓을 수가 없었다.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전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보석의 힘이야? 이렇게 거대한 것이?
“죄, 죄, 죄송해요. 그런데 다, 다리가….”
이대로 손을 놓았다가는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더듬더듬 옷을 잡는 리엘라의 손에 하운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하아….”
그러더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리엘라가 서둘러 손을 떼려고 했다. 그렇게나 한심하게 보였나? 아니, 그래도 이런 걸 보여 줄 거면 미리 말을 하라고!
리엘라가 속으로 하운을 원망하고 있을 때, 하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 허리춤에서 꼼지락거리는 리엘라의 손가락이 천 너머로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망할 영감들….’
하운은 저택에 있는 변호사들을 떠올리면서 이를 갈았다. 그들이 자신에게 서명하게 한 서약서의 내용 때문에 지금 저렇게 허둥거리는 리엘라를 붙잡아 줄 수도 없었으니까.
변호사들이 온 힘을 다해 작성한 서약서답게 쓸모없고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한 서약서였다. 하지만 사실 내용은 간단했다.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리엘라에게 어떠한 사유든 먼저 접촉하는 것 금지. 만약 위반하면 이 저택에서는 나가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대공님의 보석의 방 접근 역시 막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누가 보면 리엘라가 그들의 딸인 줄 알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걸 써야 하냐고 하려던 하운은 뒤이어 따라온 말에 입을 닫아야 했다.
“여기에 서명을 해 주셔야 앞으로도 저희가 대공님을 믿고 많은 협조를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잖아도 저택에서 워낙에 그들이 감시하는 탓에 리엘라에게 말 한번 붙이기가 힘든 터였다. 어쩌면 오늘 이 외출은 그들의 시험일지도 몰랐다.
리엘라가 공작저로 돌아가면 그들은 그녀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게 뻔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트집 잡을 만한 일이 생기면 그걸 핑계로 국왕에게 감사관을 바꿔 달라 할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앞이 캄캄했다. 리엘라와 닿았다. 이건 서약 위반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지? 이제 그 저택에서 나와야 하나? 그러면 공작의 유언장은 손에 넣을 수 있나?
다행히 머리는 곧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운은 그 서약서의 문장들을 떠올려 보았다. 잘 생각해 보니 어디까지나 자신이 리엘라에게 접촉하는 것이 문제지 그녀가 먼저 닿을 경우에는… 문제가 없었다!
서약서의 허점을 발견한 하운의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떠올랐다. 다행이었다. 그러다 하운은 벌벌 떨고 있는 리엘라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말했다.
“미안하군.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사실 조금은 리엘라가 놀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두 번째 보석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말하지 않았었다. 두 번째 청염의 사파이어는 하운이 갖고 있는 보석 중에서도 위력이 꽤 큰 편에 속했다.
솔직히 리엘라 앞에서 이 정도로 큰 힘을 문제없이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 정도 힘을 갖고 있는 보석술사란 찾기 힘드니 루시안이나 다른 보석술사들에게 도움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실수했군.’
리엘라가 보석에 관심을 갖는 모습에 자신 혼자 신나 버린 것이다. 잠시 후 리엘라의 손이 하운의 허리에서 떨어졌다.
“멋대로 잡아서 죄송해요. 이젠 괜찮은 것 같아요.”
이대로 공작저로 돌아가겠다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자신과 같이 나오지 않겠다 말할지도 모르지. 무섭다고 도망부터 가려나.
하지만 리엘라는 그의 상상과는 다르게 도망가지 않고 무언가 기다리는 눈빛으로 하운을 바라보았다.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건지 몰라 하운이 당황하자 리엘라가 질문했다.
“그래서 왜 보석의 힘에 차이가 나는 건데요? 왜 더 투박한 보석이 더 강한 힘을 가진 거죠?”
“…안 무섭나?”
“좀 놀라긴 했는데 이제 무섭지는 않아요. 대신 조금 전처럼 엄청난 힘을 쓰실 때는 미리 말 좀 해 주세요.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하니까.”
그 말에 하운은 겨우 안도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 리엘라는 더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조금 전에 그가 사용했던 보석이 그의 손 위에 놓여 있었다.
“첫 번째 사용했던 청염의 사파이어는 왕실 소유의 보석이지. 많은 보석술사들이 사용하긴 했지만 이걸 특별히 아낀 사람은 없었다.”
하운은 그렇게 말하며 그 사파이어를 리엘라의 손 위에 올려 주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정작 보석술사은 별로 찾지 않았다니. 자신이었다면 매일같이 옆에 두고 바라보았을 건데.
리엘라가 보석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을 때, 하운은 그녀의 손에 두 번째 사용했던 보석을 올려 주었다.
“이건 보면 알겠지만 원석에 가까운 상태야. 이것을 사용했던 보석술사는 기록을 뒤져야 이름을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고. 하지만 그는 평생을 이 보석 하나만을 사용했어. 기록에 따르면 그가 태어났던 날 그의 아버지가 발견했던 원석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이 보석은 사르지안이 수면기에 들어가기 전 근처에 있던 도시를 습격했던 날, 자신의 주인이 쓰러짐과 동시에 힘을 가진 보석으로 다시 태어났지.”
거기까지 말한 하운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크리스털 원석을 다시 하나 집어 리엘라의 손바닥에 올렸다. 그녀의 손바닥에 세 개의 보석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보석은 인간과 함께 지내며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것을 경험할수록 강해져.”
리엘라는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우나 사랑받지 못한 보석, 투박하나 평생을 함께했던 소중한 보석,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의미가 되지 못하고 태어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방치된 보석.
생각에 잠긴 리엘라가 조용히 있자 하운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재미없는 설명이 길어졌군.”
“아니요! 재미있었어요!”
급히 대답하며 리엘라는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하운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다 문득 저택에 있는 보석의 방이 생각났다.
호슨 공작이 남겨 주었지만 어차피 자신이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보석들. 얼핏 보았던 그 방 안에는 얼마나 많은 보석들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카밀라가 문을 열었던 날 몰아쳤던 바람을 생각하면 그 안에 있는 보석들도 모두 강한 것들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보석들은 다들 어떤 시간을 보낸 보석들일까.
리엘라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하운은 주변을 돌아보다 말했다.
“마침 다 왔군. 이 언덕이 이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이야. 저 위에 올라가면 볼 수 있겠어.”
“무엇을요?”
“오늘 그대에게 보여 주려고 했던 것들.”
하운은 그렇게 말하고 말을 끌고 언덕 위로 향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였기에 리엘라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보여 주려고 했던 것?’
생각해 보니 오늘 이렇게 수도 밖으로 나왔던 이유는 자신이 상속받은 재산의 일부를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보인다는 말에 리엘라는 자신들이 가려는 곳이 한참이나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좀 먼 곳에 있는 저택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와아.”
시원한 바람과 함께 끝없는 밭이 보였다. 그리고 몇 채의 저택과 호수들도. 그것을 보면서 리엘라가 물었다.
“어디가 공작님께서 남겨 주신 곳인가요?”
미색의 대리석으로 된 저택? 아니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저택? 아니면 저기 호수 옆에 보이는 작은 농지들? 리엘라가 살펴보고 있을 때 하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부 그대의 것이야.”
“네?”
하운이 다시 말했다.
“이 언덕에서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그대가 상속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