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20
◈ 620화 거신의 창조물 (3)
갑작스러운 늑대의 등장은 전장에 자그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늑대? 지금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지?”
“이 섬에 동물이 살았던가?”
이슬라 마키나는 기계로 이루어진 섬이지만, 그렇다고 짐승이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까마귀나 새들, 고양이와 시궁쥐 정도가 전부였다.
덩치가 3m가 넘는 늑대는 이 섬에서 목격된 바도 없으며 살기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보다, 저런 늑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평범한 늑대는 애초에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는다.
털의 색상이 하늘색이 섞인 청명한 빛깔도 아니며 몸 전체에서 기묘한 아우라를 뿜어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똑같이 생긴 늑대의 숫자가 50마리나 되는 경우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았다.
아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리며 먼 곳까지 밀려났던 해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주변을 뒤덮었다.
뿌옇게 변한 시야의 사이로 푸르스름한 늑대들이 허공을 질주하는 광경은 마치 한 여름밤의 공동묘지에서 볼 법한 것이었다.
“영수?”
가장 가까이서 늑대를 관찰할 수 있던 안드라슈는 자신을 구해 준 늑대가 영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수가 대체 왜 이슬라 마키나에?’
대자연이 살아 숨 쉬며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인간과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영수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구해 주다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수가 우리 편이라는 것은 확실하네.’
안드라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는 양 손바닥의 입까지 모두 동원해 계속해서 언령을 전장에 넓게 퍼뜨렸다.
[모두 진정해라]공포에 질린 마법사들이 하나둘 이성을 되찾았다.
기도가 멈췄고, 신앙심이 사라졌다.
기계 장치의 신의 머리 위에 떠오른 3번째 헤일로가 흐릿해지더니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괴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사실에 안드라슈가 즐거워하는 순간, 기계 장치의 신이 안드라슈를 응시했다.
직후 쏘아지는 거대한 힘.
안개에 희미하게 가려졌지만, 놈은 이 정도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안드라슈를 노렸다.
아우우!
멀리서 다른 늑대가 하울링을 했다.
안드라슈를 물고 있던 늑대 영수는 허공을 박차더니 바람처럼 해무 사이를 질주했다.
쿠와아아앙!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척력의 힘이 해무를 때리며 거대한 터널 같은 구멍을 만들었다.
단순히 해무를 뚫는 것을 넘어 하늘의 구름마저 일부 찢어발길 정도의 위력.
하지만 안드라슈를 물고 달아난 늑대를 잡지는 못했다.
늑대들은 현란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계 장치의 신을 현혹하듯 포위했다.
기계 장치의 신은 헬멧 안쪽의 황금빛 안광을 더욱 강하게 태우며 푸른 도깨비불 같은 늑대들을 주시했다.
갑자기 등장한 영수의 존재에 내심 놀란 것은 루드거도 마찬가지였다.
그 영수를 끌고 온 당사자가 아는 얼굴이었다는 점이 더더욱.
“프로이덴 울부르크.”
루드거는 허공을 밟고 나타난 영수와 그 등에 올라탄 프로이덴을 응시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질문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도움을 받은 것은 이쪽이니, 루드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 두었군.”
“그러는 그쪽도, 여기서 새로 친구를 사귄 모양인데.”
“싸우면서 친해지게 되더군.”
“저 녀석을 쓰러뜨리면 되나?”
“가능하다면.”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네.”
“몸 사리면서 해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아, 그리고 가기 전에 친구한테 이빨 하나만 달라고 해 주고.”
이빨은 왜?
프로이덴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질문은 이어지지 못했다.
방해를 받은 기계 장치의 신이 짜증 어린 감정을 드러내며 강렬한 기파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검은 먹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강철의 조각들이 폭풍과 같은 기세를 담으며 더 빠르게 움직였다.
콰직!
늑대 영수 한 마리가 기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것은 그때였다.
“……?”
늑대의 이빨은 기계 장치의 신이 두르고 있는 갑옷을 뚫지 못했지만, 혼란을 심어 주기에는 충분했다.
기신은 팔을 뻗어 목덜미를 깨문 늑대를 붙잡으려 했다.
늑대는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기계 장치의 신을 희롱하듯 사라졌다.
뭐지? 어떻게?
기계 장치의 신이 의문을 품는 순간, 또다시 등 뒤에서 늑대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반응했다.
기계 장치 신은 몸을 회전시키며 본체의 팔을 휘둘러 다가오는 늑대를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리려 했다.
하지만 늑대 영수는 다시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사라질 뿐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팔.
희롱하듯 몸을 한번 훑고 지나가는 바람.
기계 장치의 신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들, 공기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바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주위로 아무리 빡빡하게 강철의 조각을 흩뿌려 놓는다고 한들, 점으로 면 전체를 뒤덮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철은 아무리 많고, 예리해도 바람을 벨 수 없다.
상성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늑대 영수는 집요하게 기계 장치의 신을 건드리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사냥감 하나를 두고서 차륜전을 벌이는 무리의 사냥법.
번쩍!
기계 장치의 신이 안광을 쏘았지만, 늑대 무리는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손쉽게 피해 냈다.
“크아아아!”
분노의 고함을 터뜨린 기계 장치의 신은 금속들을 모아 하나의 형태를 만들었다.
4개의 날개가 달린 그것은 흔히들 에어스크루(Airscrew)라 부르는 물건이었다.
그 크기가 날개 하나만 해도 20m가 넘는다는 것이 차이점이었을 뿐.
후웅. 후웅.
에어스크루가 회전을 시작했다.
회전 속도에 순식간에 가속이 붙으며 날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날개 하나가 20m가 넘는 거대한 에어스크루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회전하니, 주변에 소용돌이가 생성되었다.
기계 장치의 신은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강철들을 이용해 늑대 영수를 노렸다.
바람으로 변해서 사라지려 한 늑대 영수는 소용돌이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바람화가 해제됐다.
푸푸푹!
그 직후 뾰족한 강철 창이 늑대 영수의 몸이 연달아 박혔다.
깨갱!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늑대 영수는 자신의 강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을 가장 귀찮게 굴던 늑대 영수를 무력화한 기계 장치의 신은 다시금 자신의 원래 목표를 떠올리며 루드거를 응시했다.
루드거는 적대감으로 가득 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를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놈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의지는 이쪽의 피부 위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증오와 분노.
하지만 동시에 기쁨의 감정마저도 느껴졌다.
“창조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새로운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로군.”
루드거의 말은 기계 장치 신의 정곡을 찔렀다.
움찔하는 기계 장치의 신을 향해 루드거가 비웃음을 날렸다.
“실로 같잖은 목표이지 않나.”
“네, 놈!”
기계 장치의 신이 강렬한 분노를 불태우며 루드거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만들고 끝내 자신을 내버린 신.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가 루드거에게 붙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느낀 배신감이 얼마나 거대했던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의 분노란 그런 것이었다.
기계 장치의 신의 주위로 8개의 팔이 모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8개의 팔은 각기 또 하나의 팔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루드거는 차가운 시선으로 응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네가 취하려는 모습은 끝내 그 아버지를 닮으려 하는구나.”
“……!”
루드거의 말은 정답이었다.
기계 장치의 신이 만든 거대한 팔들.
그것은 세상을 빚던 거신 테라론과 매우 흡사했다.
거신 테라론은 총 16개의 팔로 세상을 어루만지며 창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아버지에게 애정을 받지 못해서 비뚤어진 애송이나 다름없군.”
“닥, 쳐!”
기계 장치의 신은 즉시 새로운 팔을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그 대신 8개의 기계 팔을 움직여, 루드거를 8방에서 노렸다.
루드거 또한 얌전히 당해 주지만은 않았다.
그의 등 뒤로 세피로트의 나무 문양이 나타나더니, 강대한 빛을 뿜으며 기계 팔을 요격하려 들었다.
허공에서 번뜩이는 빛과 충격파.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기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뭣들 하는 거야! 계속 공격해!”
“저 괴물을 막지 못하면 이 섬은 끝이야!”
바깥에서 마법의 포격이 날아오고, 늑대 영수가 끝 없이 주위를 배회했으며 마탑에서도 계속 지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기계 장치의 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귀찮은 놈들.
여러 개의 팔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날아오는 공격을 쳐 내고는, 주변 일대를 휩쓸어 버리며 엄청난 파괴를 자아냈다.
한 번의 손짓에 여러 생명이 꺼져 갔다.
한 번의 손짓에 마탑의 실드가 유리창처럼 부서졌다.
마탑의 일부가 무너지며 안쪽의 마법사들이 휩쓸렸다.
기계 팔들이 주변을 알아서 헤집는 사이에 기계 장치의 신 본체는 루드거와 대적했다.
“내게는 그 잘난 본체로 와 주는 거냐?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는군.”
루드거가 그렇게 비웃거나 말거나, 기계 장치의 신의 시선은 루드거의 머리 위 자그마한 검은 구멍을 향해 있었다.
‘쉽지 않겠는데.’
차라리 상대방이 일반적인 생명체였다면, 약간의 부담을 안고서 여신의 힘을 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은 이름 그대로 기계이며, 그 본체는 테라론이 만든 렐릭이었다.
생명체를 상대로 힘과 권능을 발휘하는 여신과는 상극의 존재였기에 루드거는 고민을 해야했다.
[────.]루드거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테라론은 루드거에게 방법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당연하게도 그 방법은 테라론 본인의 힘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게 진짜 목적이었나?”
루드거는 테라론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테라론의 힘을 빌리는 것이 맞기도 했다.
렐릭을 만든 것은 테라론이었고, 당연히 저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또한 테라론이었다.
테라론에게 딱히 흑심이나 악의는 없었다.
지금까지 다른 신들이 루드거에게 관심을 보일 때도, 그저 얌전히 지켜만 보고 있던 것이 테라론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루드거가 렐릭을 멈춰 주길 바라며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루드거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망설임을 보이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네놈의 힘은 가성비가 맞지 않아. 네 힘을 빌리려면 지금보다도 문을 넓혀야 한다.”
루드거가 신의 힘을 빌릴 때는 항상 봉인술식의 1단계만 해제했다.
그것이 딱 루드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1단계의 봉인을 해제하면 지금처럼 머리 위로 자그마한 구멍 정도가 생기는 것이 전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라론은 달랐다.
신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 다른 형질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중 테라론은 거신이라는 이명답게 그 힘의 규모가 너무나도 거대했다.
1단계의 봉인을 해제했음에도 그저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인 것이 그 이유였다.
본격적으로 테라론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루드거로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2단계까지 해제해야 했다.
루드거의 시야에 기계 팔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영수를 타고 나타난 프로이덴의 모습도 보였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로테론과 휘론이 보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리빙 아머를 걸치며 싸우는 베롬과 자신의 밑천을 모두 드러내며 마탑을 지키려는 안드라슈도 보였다.
그 외에도 싸우는 사람들은 많았다.
방위군이 나서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고, 마탑의 마법사들이 최선을 다해 마법을 쏘아 댔다.
크라바트의 모습도 보였다.
까마귀를 대동한 그는 검은 저주의 힘으로 금속들을 녹이거나 부식시키며 기계 팔 하나를 제대로 붙들고 있었다.
이슬라 마키나의 종말을 앞두고, 서로를 견제하던 조직들이 하나 되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을 가리엘 코스모까지도.
“…….”
모두가 저마다 각오와 결의를 지니고서 최선을 다해 투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루드거는 자기 혼자만 힘을 아낀다거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민의 순간은 짧았다.
“어쩔 수 없나.”
지이이잉.
루드거의 머리 위, 검은 구멍의 주위로 희미하게 헤일로가 생성되었다.
“제2 봉인술식 해제.”
투웅!
헤일로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주위로 파장을 일으켰다.
기계 장치의 신은 무언가에 억눌린 듯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검은 구멍을 통해 이쪽으로 향하는 목소리와 시선이 늘어난다.
-너는 이로써, 한층 더 전능해졌노라.
동시에 여러 힘이 루드거의 몸에 스며들어 고취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신의 힘은 마치 강렬한 마약과도 같았다.
한번 맛보는 순간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꿀사탕처럼 말이다.
그래서 루드거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너희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야. 너희가 내 덕에 힘을 쓰는 거지.”
루드거는 허튼 생각을 하려는 신들을 향해 가볍게 일갈한 뒤, 테라론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저 말썽꾸러기 아이를 멈추게 만들 열쇠를 보여 봐라.”
루드거의 말에 응하듯 검은 구멍의 틈새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기계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팔이었다.
기계 장치의 신이 다루는 기계 팔과 달리, 너무나도 비쩍 마르고 곳곳에 녹이 슬었으며 내부 프레임 밖에 남지 않은 기계 팔.
툭 치면 바로 부러질 것만 같인 생긴 팔은, 기계 장치의 신이 지닌 것과 비교하면 건장한 성인 남성과 노인 그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
분노라는 감정만 보였던 기계 장치의 신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쩌억 벌렸다.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루드거로부터 거리를 벌린 녀석이 보이는 감정은, 명백한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