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04
205화
일요일 점심 장사를 마무리하고 강진은 최호철과 함께 임상옥 교수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최광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강진은 살인사건 현장 몇 곳을 돌고 있었다.
강진이 혼자 가려고 했었는데 점심 영업 끝나고 여자 귀신들을 데리고 TV 보러 온 최호철이 이야기를 듣고는 따라나선 것이다.
아무래도 귀신을 상대로 하는 수사이니 전직 형사였던 귀신이 있으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같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입에 짝짝 달라붙네.”
운전석에서 임상옥은 강진이 만들어 온 고구마 맛탕을 먹고 있었다. 어제 강진이 큰 대가를 치르고 채취를 해 온 석청으로 만든 고구마 맛탕은 달달하면서도 말 그대로 입에 짝짝 달라붙는 맛이었다.
“하나 더 줘.”
임상옥의 말에 조수석에 탄 최광현이 맛탕을 이쑤시개에 꽂아서는 그의 입에 넣었다.
맛있게 맛탕을 먹으며 운전을 하던 임상옥의 차가 신림의 한 고시원 앞에 멈췄다.
“여기다.”
“여기는 뭔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강진은 그동안 사는 곳 근처에서 있었던 사건 현장을 몇 곳 돌아다녔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귀신이 있던 곳도 있었지만, 그 귀신들은 살해당한 귀신이 아니었다.
그냥 근처를 돌아다니던 귀신들이었고, 물어보니 사건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허탕을 치며 돌아다닌 격이었다.
“몇 년 동안 진척 없던 사건들인데 쉽게 풀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돌아보자고.”
임상옥이 차 문을 열고 내리자 조수석에 탄 최광현과 뒷좌석에 탄 강진과 최호철이 뒤따라 내렸다.
차에서 내린 최호철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삼 년 전 신림 고시원 방화 사건 장소네.”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아세요?”
“내 사건은 아니었는데 그때 뉴스로 많이 나와서 나도 알고 있지.”
말을 하던 최호철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이 사건, 뉴스로 많이 나왔는데 너는 진짜 TV 안 보고 살았구나.”
신림의 한 고시원에 불이 나서 대학생 넷과 고시원 사장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발화 원인이 휘발성 물질로 인한 것이었는데 그 범인은 잡히지 않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으로 이 사건 이후 전국 고시원과 모텔에 소방 검사가 일제히 치러졌을 만큼 그때는 큰 이슈가 된 사건이었다.
“뉴스 볼 시간이 어디 있어요?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하고 하루에 네 시간 자면 행복할 때인데.”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입맛을 다셨다.
“형이 좀 살펴 줄 것을 그랬나 보다.”
“형도 먹고살기 바쁠 텐데 어떻게 보육원 동생들을 다 챙겨요.”
“그래도…… 돈 많이 주는 아르바이트라도 좀 소개해 줄 걸 그랬어.”
“그런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불법과 합법 사이 애매한 아르바이트 있어.”
“말만 들어도 위험해 보이는 아르바이트인데…… 불법 아니에요?”
“형이 경찰인데 불법인 아르바이트 소개해 주겠어? 그냥 같이 일하는 애들이 좀 거칠고 피곤해서 아르바이트 비용이 셀 뿐이야.”
“뭔데요?”
“조폭들이 하는 술집에서 서빙하는 거지.”
“조폭요? 형 조폭들하고 친해요?”
“친하다기보다는…… 강력계 일 하다 보면 아는 조폭들 몇은 생기는 법이지. 그런 애들 중에 술집 하는 애들이 많거든. 거기 아르바이트 비용이 좀 세.”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나도 술집에서는 아르바이트 많이 해 봤는데 진작에 형한테 연락할 걸 그랬네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살아서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고는 최호철이 고시원을 보며 말했다.
“고시원이라서 복도 쪽은 살필 수 있는데 방 안으로는 못 들어가.”
고시원은 여러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이지만, 고시원 내 방은 개인의 공간이다.
그래서 귀신이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 복도 정도였다.
“귀신도 귀는 있으니 소리는 들을 수 있잖아요. 다니면서 귀신 있나 소리쳐 보세요. 그럼 나오던가 하겠죠.”
“그것도 일리 있네.”
그러고는 최호철이 고시원 문을 통해 스며들어 사라지자, 강진이 최광현과 임상옥을 보았다.
“들어갔습니다.”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크게 한숨을 토했다.
“휴우!”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그렇게 무서워요?”
“뒷좌석에 귀신이 타고 있는데 어떻게 안 무섭냐?”
몸을 떨어대는 최광현의 모습에 임상옥이 건물을 보았다.
“그나저나 건물 리모델링을 깨끗하게 잘 했군. 이렇게 봐서는 삼 년 전에 불이 난 건물이라고 누가 알겠어.”
말 그대로 고시원의 외형은 깔끔했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는데도 고시원을 운영하네요.”
“한국에 사람 안 죽은 곳이 어디 있나?”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한국 땅 어디에 사람이 안 죽은 곳이 있겠는가?
적고 많음의 차이일 뿐이지, 사람 안 죽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그냥 죽은 것이 아니잖아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그를 보았다.
“네가 고시원을 구하는데 사람이 죽었어. 그런데 가서 보니까 고시원이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하고 좋네? 거기에 다른 곳에 비해 비용도 싸. 어떻게 할래?”
“얼마나 싼데요?”
그래도 사람이 죽었다는데……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고 얼마나 싸냐고 묻는 강진의 모습에 임상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얼마면 들어갈래?”
“십만 원 정도면…… 들어가겠습니다.”
한 달에 십만 원이면 일 년이면 백이십만 원이다. 그 정도면 강진은 살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오만 원 정도 더 비싸다 해도 들어갈 것이다. 죽은 사람보다 무서운 것이 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맞아. 귀신보다 돈이 더 무서운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 몇 번 물갈이 되고 나면 사람이 죽었다는 사건도, 기억도 사라지는 법이지.”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앞에는 어떠한 사건도 묻히는 법이죠.”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쓰게 웃었다.
“잊지 말아야 할 사건도 있는 법인데…… 시간의 위대함은 그런 사건들도 사라지게 만드는군.”
“교수님이 전에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망각이 없으면 인간은 다 정신병자가 돼 버릴 거야. 하지만 삼 년…… 너무 빨리 잊혀졌어.”
고시원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임상옥을 보며 강진도 고시원을 보았다.
때마침 고시원에서 최호철이 나오고 있었다. 강진에게 다가온 최호철이 고시원을 가리켰다.
“지박령 있어.”
“이야기 나눠 보셨어요?”
“이야기 나눠 봤는데…… 아는 것이 없어.”
“없어요?”
강진의 물음에 최호철이 임상옥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
“뭐가요?”
“불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도 누가 불을 질렀는지 몰랐어. 그래서 범인을 못 잡았지.”
“그렇죠.”
“그럼 죽은 사람들은 깊게 잠이 들어 탈출을 못 했거나 불이 난 것도 모르는 상태로 죽거나, 아니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죽었다는 건데…… 너도 알겠지만 귀신이라고 다 아는 것이 아니야.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알고 있어.”
“밖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었으니 누가 불을 질렀는지 모른다는 거네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그를 보았다.
“범인에 대한 단서가 없다는 건가?”
강진과 최호철의 대화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강진이 하는 말은 들을 수 있다.
임상옥의 물음에 강진이 최호철이 해 준 말을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요.”
지금까지 허탕을 친 곳이 네 곳이니 여기까지 하면 다섯 곳이다.
하지만 임상옥은 실망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단서 하나 없이 지지부진한 미제 사건을 하루 만에 단서를 찾아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도 하지 않았다.
열 곳, 아니 백 곳을 돌아서 하나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라는 것이 임상옥의 생각인 것이다.
아쉽지만 성과가 없다면 다른 곳을 파면 될 일이다.
말과 함께 임상옥이 미련 없이 다시 차에 오르려 하자 최호철이 강진에게 말했다.
“너 먼저 가.”
“형은요?”
“고시원 안에서 죽은 귀신들은 몰라도 이 근처에 떠도는 귀신들은 뭐라도 아는 애들이 있을 수도 있지.”
“떠도는 귀신요?”
“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경이 뭔 줄 알아?”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요?”
“귀신도 마찬가지야. 귀신도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은 좋아해. 아마 불날 때 이 근처 귀신들은 모두 몰려와서 구경했을 거야.”
“귀신도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을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늘 말을 하지만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된 존재들이야. 사람하고 다를 바가 없어. 다른 건 살았냐 죽었냐 딱 그 차이지.”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은 이승을 반영한다라……. 알겠습니다. 그럼 형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고시원 주변에 귀신들한테 여기 불났을 때 수상한 것 있었는지 물어볼게. 다음 장소 가서 불러.”
“알았어요.”
그러고는 강진이 임상옥을 보았다.
“호철 형은 여기서 탐문 좀 하고 간대요.”
“그럼 다음 장소에는?”
“가서 부르면 오실 겁니다.”
“부르면 온다고?”
“네. 부르면 오세요.”
임상옥이 신기하다는 듯 강진이 최호철을 보던 곳을 한 번 보고는 차에 타려다가 최광현을 보았다.
“네가 운전해라.”
“제가요?”
“호철 씨 안 타니까 네가 해도 되잖아.”
최광현이 뒷좌석의 최호철이 무서워 운전을 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임상옥이 이때까지 운전을 한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임상옥이 차 키를 툭 하고 던지자 그것을 받은 최광현이 서둘러 운전석에 앉았다.
다음 행선지는 같은 신림에 위치한 다리 밑이었다. 다리 밑에 조성이 된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임상옥이 말했다.
“여기는 사 년 전에 변사체가 발견이 된 곳이야.”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이 사장!”
주위를 둘러보던 강진은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여기 어쩐 일이야?”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는 할아버지 귀신은 한끼식당에 자주 오는 단골 귀신이었다.
할아버지 귀신은 멀쩡한 옷에 멀쩡한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 중에서는 그나마 많이 멀쩡한 모습인 그는 흔히 말하는 ‘자다 죽은’ 케이스였다.
“어르신 혹시 사 년 전에도 여기 계셨나요?”
“사 년 전이라…… 글쎄. 우리는 시간관념이 없어서. 오늘 내일이나 알지, 몇 달 뒤 그런 개념은 몰라.”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혹시 예전에 여기에 사람 죽는 것 못 보셨어요?”
“모르겠는데?”
고개를 젓는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임상옥을 보았다.
“모르겠다는데요.”
“그럼 다른 곳으로 갈까?”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최호철, 최호철, 최호철.”
스윽!
강진의 부름에 허공에 최호철이 나타났다.
“뭐 찾았어?”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어르신이 계시기는 한데 못 보셨다네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할아버지 귀신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할아버지 귀신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형은 고시원에서 뭐 찾았어요?”
“주위에 있던 귀신 몇한테 물었는데 죽은 지 얼마 안 됐는지 고시원 방화는 못 봤다고 하더라고.”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저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건부터 찾아보죠.”
그러곤 강진이 임상옥에게 흔적이 없다는 말을 하려 할 때, 할아버지 귀신이 말했다.
“고시원 방화? 혹시 저기 고시원 불났던 것 말하는 거야?”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아세요?”
“알지. 아! 나 그때 불 낸 놈도 봤는데.”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최호철이 그를 보았다.
“범인 보셨어요?”
“봤지. 그때 마침 거기에 내가 있었거든.”
“누구예요? 아니, 어떻게 생겼습니까?”
최호철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그를 보다가 강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요한 건가?”
“사람이 다섯이나 죽은 불을 낸 놈이니 잡아야죠.”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하고 거래하지. 그럼 알려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