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60
361화
“여기 음식이 맛이 좋구나.”
할아버님의 말에 정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희 직원들이 매일 와서 점심을 먹는 곳입니다.”
“자취를 하든 회사를 가든 주변에 맛있는 음식점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일이지.”
“맞습니다. 직장인한테 식사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없죠.”
할아버지의 말에 아버님도 동감이라는 듯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정민이 막걸리를 그 둘에게 따라주었다.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이 스팸 구운 것을 내려놓았다.
“서비스입니다.”
“스팸이라…….”
아버님이 웃으며 스팸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스팸 정말 오랜만이네요.”
“스팸 안 좋아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아버님이 고개를 저었다.
“스팸 좋아합니다. 다만…… 애들 있을 때나 스팸 반찬을 아내가 해 줬지, 요즘은 애들도 다 커서 이런 반찬이 안 올라오더군요.”
소시지나 스팸 같은 것은 어른 반찬이라기보다는 아이들 반찬이라는 인식이 강하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스팸 같은 것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할 법한 반찬이었다.
굽기만 해서 따뜻한 밥에 올려 먹으면 그걸로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니 말이다.
아버님의 말에 어머님이 그를 보았다.
“스팸 반찬 해 줘요?”
“자주는 말고 가끔.”
웃으며 스팸을 다시 입에 넣는 아버님을 보던 강진이 이번엔 할아버님을 보았다.
“필요하신 것 더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도 스팸을 하나 집어 먹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맛있게 먹습니까?”
정복남의 물음에 강진이 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게 드시네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미소를 지으며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옛날에 저 녀석 꿈이 스팸을 배 터지게 먹어 보는 거였습니다.”
“그래요?”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
그때 기억이 나는 듯 미소를 짓는 정복남을 보던 강진이 스팸 통조림을 보다가 말했다.
“부대찌개 드실래요?”
스팸 하면 또 부대찌개가 생각이 나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맛있죠.”
“부대찌개 드셔 보셨어요?”
“제가 살았을 때는 먹어 보지 못했지만, 드라마 보니 맛있게들 먹더군요. 옛날 부산 저승식당에서 먹은 꿀꿀이죽하고 비슷한 맛일 것 같더군요.”
“꿀꿀이죽?”
강진이 그게 뭔가 싶을 때, 배용수가 냉장고에서 육수를 꺼내며 말했다.
“꿀꿀이죽이라고, 먹을 만한 것들 통째로 넣고 팔팔 끊인 거야. 부대찌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
“전쟁통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잖아.”
“그렇지.”
“그래서 먹을 만한 것들을 다 넣고 끓인 거야. 상한 것도 팔팔 넣고 오래 끓이면 먹고 죽지는 않으니까.”
“상한 것도 넣어?”
“상한 것만 넣었겠어? 그때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도 넣고 끓였어. 그래서 빵도 들어가고 햄도 들어가고 그러는 거야.”
“아, 그래서 부대찌개에 햄이 들어가는구나.”
“민족의 슬픈 사연이 담긴 음식이라고 볼 수 있지.”
배용수는 JS 햄과 고기들을 썰어 부대찌개를 만들 준비를 하며 말을 이었다.
“아까 복남 씨가 부산 저승식당에서 이것저것 다 넣고 끓였다고 했잖아.”
“응.”
“그게 꿀꿀이죽이라고 보면 돼.”
“그때는 저승식당도 재료 수급이 어려웠나 보네?”
“우리도 신수 형제 없으면 당장 재료 수급 어려워지지.”
“그건 그러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홀에서 강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그 소리에 강진이 밖으로 나갔다.
“뭐 필요하세요?”
아버님이 홀로 나온 강진을 보고 말했다.
“저기 김치찌개에 스팸 좀 넣고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요?”
“아버님이 부대찌개가 드시고 싶다고 하시네요.”
아버님의 말에 강진이 할아버님을 보았다.
‘형제라 그런가?’
지금 주방에서도 부대찌개를 만들어 정복남을 주려고 했는데, 동생도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으로 부대찌개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할아버님하고 저하고 마음이 통했나 보네요.”
“그러셨습니까?”
“부대찌개 되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식탁에 있는 김치찌개와 스팸을 가리켰다.
“여기에다 해 주십시오.”
“새로 해 드려도 되는데요.”
“김치찌개에 햄 많이 들어가면 그게 부대찌개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부대찌개 먹으면 이 음식이 남을 것 같아서요.”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남은 김치찌개와 스팸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 남기면 안 좋죠. 알겠습니다.”
강진이 김치찌개와 스팸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부대찌개?”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스레인지에 김치찌개를 올리고는 물을 부었다.
그냥 소시지와 스팸을 넣고 끓이면 짜니 물을 조금 더 넣는 것이다.
국자로 김치찌개의 건더기를 한 번 살핀 강진이 김치를 조금 더 넣고는 햄과 스팸을 잘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배고픈 시기를 겪어서 그런지 동생이 음식 낭비하는 것을 안 좋아합니다.”
“그럼 좋은 거죠. 무슨 사과를 하세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입맛을 다셨다.
“가끔 동생이 이런 주문을 하면 식당에서 안 좋게 보더군요.”
“아……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는 거죠.”
강진도 이해는 되었다. 김치찌개에 햄을 넣고 새로 끓여 달라는 것은 식당 사람들이 안 좋아할 일이었다.
부대찌개값을 따로 받기도 뭐하고, 햄값만 받기도 뭐하니 말이다.
그러니 가게 입장에서는 차라리 새로운 메뉴를 받는 것이 낫지 이건…… 좀 아니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저는 괜찮아요.”
웃으며 강진이 두 그릇을 보다가 말했다.
“재료 안 섞이게 조심해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한쪽은 JS 식재로 만든 부대찌개고, 하나는 이승의 것이니 JS 햄이 들어가면 큰일이었다.
“그나저나 어린애 한 명이서 그 피난민들 사이에 있었으니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특히 또래 고아들이 더 극악이더군요.”
“또래 고아요?”
“어린애가 할 수 있는 것이 뭐 없으니, 구두닦이를 하려고 어떻게 준비를 해서 나갔는데…… 첫날 구두닦이 패거리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자기 구역을 침범했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던 정복남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덕에 동생의 운이 트였습니다.”
“운?”
“두들겨 맞은 동생이 씩씩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구석진 곳에서 사람이 볼일을 보고 있더군요. 그때 볼일을 보던 사람이 ‘아유 배야.’ 하는 거였습니다.”
“아유 배야?”
“전쟁통이라 먹을 것이 부실하기도 했지만, 물갈이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배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긴 여행 가서도 물갈이로 배앓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피난 중엔 더 심했겠네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동생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되겠다 생각을 했는지 바로 약장수를 찾아갔습니다.”
“약을 살 돈이 있었습니까?”
“돈은 없었지만…… 권총이 있었습니다.”
“권총?”
“제가 죽기 전에 녀석한테 쥐여 줬습니다. 정말 위험한 순간에 쓸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라고요.”
“애한테 권총을 주셨어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보자, 정복남이 미소를 지으며 홀을 보았다.
“부대 내에서 자라서 애도 총은 다룰 줄 알았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애한테…….”
“그때는 감자 한 덩이에 목숨도 잃을 때였습니다. 저도 없는데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했습니다.”
“아…….”
위험한 시기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애한테 권총이라니.’
황당해하는 강진 대신 배용수가 물었다.
“그럼 구두닦이 애들이 때릴 때 왜 안 꺼낸 겁니까?”
“권총은 숨겨 놨었거든요.”
“하긴, 애가 권총을 들고 다니면 그게 더 위험하기는 했겠네요.”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복남이 말을 이었다.
“동생이 약장수에게 권총을 들고 가서 약과 바꾸자고 했습니다.”
“약장수가 그걸 받아 주던가요?”
“약장수가 호기심을 가지기는 했지요. 피난민들이 워낙 많이 들어온 상황이라 강도와 도둑들이 늘 말썽인 시대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약장수가 약을 안 주고 권총을 뺏으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고아한테 약을 주고 권총을 받는 것보다는, 그냥 두들겨 패고 권총을 뺏는 것이 더 이익이니 말이다.
“하지만 동생이 총알을 빼놓은 상태였습니다.”
“아! 권총에 총알이 없으면 위협용 외엔 쓸모가 없으니 그랬군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총알은 다음에 가져다주기로 하고 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요?”
배용수가 궁금하다는 듯 보자 정복남이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동생이 판자촌에 가서 나름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약을 팔았습니다.”
“판자촌에서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사람요?”
옷을 잘 입고 다니면 판자촌에 살 이유가 없지 않나 싶었다. 그에 정복남이 고개를 저었다.
“전국 각지에서 다 부산으로 피난을 오는 터라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치들 중에도 판잣집에서 살거나 헛간에서 비 피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복남이 끓고 있는 부대찌개를 보며 말했다.
“약은 잘 팔렸습니다. 집마다 배앓이로 고생하는 사람은 있었으니까요. 약을 다 팔고 바로 약장수에게 가서 판 돈으로 약을 다시 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큰돈이었죠.”
“약장수가 돈 뺏으려고 하진 않았나요?”
“후! 첫날 가져간 약을 하루도 안 돼서 다 팔아 온 것을 보고는 동생을 통해 약을 팔기로 마음을 먹더군요.”
“그래도 멍청한 사람은 아니네요. 한 번 팔고 마는 것이 아니라 거래처를 유지하고요.”
“욕심이 많긴 했지만, 다행히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때부터 약장수는 배앓이약을 많이 만들고, 동생은 그것을 팔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애 한 명이 그렇게 다니면 위험했을 텐데?”
피난통에 어린애 한 명이 약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꼬이는 놈들이 있었을 것이다.
“맞습니다. 그때 많이 위험했습니다. 동생이 약을 팔고 다니니 돈이 있을 거라 생각을 한 건달이나 거지 패거리가 많이 노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구두닦이 애들을 모으더군요.”
“구두닦이요?”
“동생 때린 애들 말입니다. 말이 구두닦이지, 거지와 다름없는 애들이라 동생이 꿀꿀이죽 사주면서 꾀어내니 곧 말을 듣더군요.”
“그래도 거기 대장 격인 애가 있었을 텐데요?”
“일대일로 싸웠습니다. 자기가 이기면 너희들 배 곪지 않도록 해 주는 대장이 되고, 지면 너희들 배 곪지 않는 부하가 돼 주겠다고 하고서요.”
“오! 그래서 누가 이겼어요?”
“싸움에서 이기기는 그 대장이 이겼습니다. 동생보다 네 살이나 많고, 덩치도 컸거든요.”
“싸움에서면 다른 쪽으로는 이겼다는 거네요.”
“독기로는 동생이 이겼습니다. 때리다 지쳐서 상대가 쓰러졌는데 동생이 아등거리며 끝까지 서 있었습니다. 그걸 본 대장 놈이 자기가 졌다고 하면서, 우리 배부르게 해 주라고 머리를 숙였지요.”
정복남의 말에 강진이 탄식을 토했다.
“동생분 완전 멋지네요.”
이건 완전 드라마, 아니 영화 시나리오였다. 그것도 아주 재미가 있을 것 같은…….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까지 서 있던 제 동생은…… 정말 멋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