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38
840화
스르륵! 스르륵!
저승식당 안에선 책장 넘기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있었다.
스르륵! 스르륵! 탓!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들리던 저승식당 안에 다른 소리가 섞여 들었다. 그에 책을 보던 김소희가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맥주잔을 내려놓다가 깜짝 놀란 듯 잔을 보고 있었다. 분명 가볍게 놓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소리가 크게 난 것이다.
그에 당황한 눈으로 잔을 보던 할아버지가 급히 김소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무표정한 얼굴로 보는 김소희를 본 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그게, 잔이…….”
“괜찮네.”
김소희의 말에 할아버지는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가 조심히 자리에 앉으며 이마에 난 땀을 슬쩍 닦았다.
“후…….”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한숨을 토하려던 할아버지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슬쩍 김소희의 눈치를 보았다.
김소희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여전히 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는 뱉으려던 한숨을 조금씩 나눠 토하고는 맥주를 따라 소리 안 나게 마셨다.
그런 할아버지와 귀신들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할아버지에게 어린 소녀 모습인 김소희가 눈치를 주는 것이 버릇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김소희는 생긴 것과 달리 오백 살이 넘었으니 말이다.
다만 김소희가 책을 보는 탓에 시끌벅적해야 할 술집이 조용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렇다고 김소희가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책을 보다가 시끄러우면 그쪽을 한 번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선이 조선 제일의 귀신인 김소희의 것이다 보니 시선을 받은 귀신들이 알아서 조용히 했고, 다른 귀신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해서 가게 안이 조용해진 것이다.
‘카페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소희 아가씨에 비하면 양반이네. 그분들은 최소한 술집에서 책을 보지는 않으시니.’
그에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주위를 보았다. 귀신들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평소 술을 마시며 잡담을 하던 이들이 지금은 아주 조용히 하다못해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소리 안 나게 음식을 조심히 씹으며 간간이 술을 마실 뿐이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작게 고개를 저은 강진이 옆을 보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직원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재밌게 보는 여직원들을 강진이 볼 때, 김소희가 말을 했다.
“집중해서 보게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강진도 손에 책을 한 권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강진은 자신이 보던 부분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적에게 붙잡힌 김소희를 검둥이가 홀로 적진에 들어가 구출해 나오는 장면이었다.
거기까지 읽은 강진은 책 모서리에 그려진 꽃을 보았다. 작은 봉오리였던 꽃은 꽤 많이 피어 있었다.
‘꽃이 피는 만큼…… 소희 아가씨의 슬픔은 더 커지는구나.’
여기까지 읽는 동안 김소희는 슬픈 일을 많이 겪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와 이별을 했다. 그리고 그녀와 싸우던 동지들도 죽고…….
게다가 이 책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아쉬움도 김소희가 직접 겪은 일에 비하면…….
강진은 작게 고개를 젓고는 책을 마저 읽었다.
***
“조심히 가세요. 그리고 오늘 좀 불편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가게 밖으로 나가는 귀신들에게 강진이 대신 사과를 하자, 그들이 슬며시 김소희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한 책인 걸요. 조용히 집중해서 보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맞아. 다른 분도 아니고 임진왜란의 영웅이신데…… 책 보시는 것 정도야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소희 아가씨가 아니었으면 우리 조상들도 없었을 수도 있어.”
귀신들이 웃으며 이해를 해 주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잘 먹고 가요.”
귀신들이 하나둘씩 갈 길을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서는 여전히 김소희가 책을 보고 있었다.
“정리는 나중에 할까요?”
이혜미가 김소희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정리한답시고 그릇 소리 내면 책 읽는데 불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괜찮으니 정리하게.”
책에서 눈을 뗀 김소희는 소주잔 쪽으로 손을 뻗다가 돌연 거뒀다.
현신이 풀렸으니 술을 마셔도 맛이 안 사는 것이다. 탁자에 있는 음식들을 보던 김소희가 말했다.
“입이 심심하네.”
뭔가 먹고 싶다는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서 JS 과자를 들고 나왔다.
봉투를 뜯어 강진이 놓자, 김소희가 과자를 보다가 말했다.
“초콜릿은 없나?”
“떨어졌는데 제가 지금 가서 사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그냥…… 다음부터는 떨어뜨리지 말게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고는 식탁을 보았다.
“그럼 이건 정리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책을 들었다. 비닐장갑을 끼지 않은 채로도 책을 드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가씨.’
강진이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하자, 직원들도 서둘러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홀을 모두 정리하자 황민성이 시간을 한 번 보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 저는 이만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를 보았다.
“자네는 책을 보았나?”
“나오자마자 일독했습니다.”
“잘 했군.”
그러고는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전에 벼루와 붓을 사 놓은 것이 있었을 텐데.”
“있습니다.”
“가져오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2층으로 올라가 전에 산 벼루와 화선지들을 가지고 왔다.
강진이 벼루가 담겨 있는 상자를 가지고 오자, 김소희가 그것을 열어서는 안에 물건들을 꺼냈다.
그리고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이름이 뭔가?”
“신용인 작가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붓을 들었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았다.
“책을 주게.”
강진이 자신이 보던 책을 내밀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새 책.”
강진이 쇼핑백에서 새 책을 꺼내 주자, 김소희가 책을 받아 펼쳤다. 그러고는 책 가장 앞 쪽 하얀 페이지에 붓을 가져다 댔다.
스윽! 스윽!
김소희가 붓을 움직이자 하얀 페이지에 글이 쓰였다. 그에 강진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와. 저 붓으로 저렇게 얇은 글씨를 쓰시네.’
서예를 하는 두꺼운 붓으로 글을 쓰는데 얇은 붓 펜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얇게 쓰이는 것이다.
번짐 없이 글을 써 내려간 김소희는 잠시 종이를 보다가 그 옆에 대나무를 그렸다.
스르륵! 스륵!
붓이 몇 번 움직이자 대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그림 잘 그리셔. 조선시대 규수들은 다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