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39
841화
강진이 대나무를 볼 때, 김소희의 손이 가볍게 글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스르륵!
그러자 촉촉하게 젖어 있던 종이가 말랐다. 책을 앞으로 밀어낸 김소희가 손을 내밀자 강진이 새 책을 하나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김소희가 잠시 있다가 책을 펼쳤다.
글을 보던 김소희가 잠시 망설이다가 뒤에 한 단어를 더 적었다.
그것을 본 황민성의 얼굴에 기쁨이 떠올랐다. 고모라 적은 걸 보니 자신을 정말 가깝게 여기는구나 싶은 것이었다.
글을 적은 김소희는 고모라 적힌 부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너희가 언제까지 나를 볼지 모르겠지만…… 고모가 많이 예뻐해 줄게.’
스르륵!
다시 젖은 글씨를 말린 김소희가 손을 내밀자 강진이 새 책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두 번은 쉬운 듯 고모라고 글을 적은 김소희가 책을 보다가 붓에 먹물을 묻히고는 빈 여백에 꽃을 그렸다.
스슥! 스윽!
먹으로만 그렸을 뿐인데도 화선지에 꽃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자신이 그린 꽃을 보며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글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아가씨는 아름다운 것보다는 귀여운 쪽이신데. 꽃도 그런 화사한 것보다는 개나리가 어울리시고.’
김소희가 붓을 놓으려 하자, 강진은 슬며시 자신의 책을 앞에 놓았다.
“저도 한 글자 부탁드립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붓을 다시 세웠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글을 적어 내려갔다.
김소희가 적은 글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살짝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글이 마음에 안 드나?”
“아닙니다. 너무 마음에 듭니다. 그저…… 아가씨께서 저에게 고맙다 적으셔서…… 감동이라.”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책을 내밀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책을 받았다.
“앞으로도 아가씨께서 고맙다고 생각하도록 열심히 보필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겸손이라는 것을 모르는군.”
“요즘은 자기 피알 시대 아니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붓을 다시 집었다.
한 줄 글을 더 적어 넣은 김소희에게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하게.”
웃으며 강진이 책을 집어 들자, 황민성이 슬며시 책을 하나 그 앞에 놓았다.
“저도 한 글자 부탁드리겠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주위에 있는 이들을 보았다. 귀신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들도 자신의 책에 글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작가는 내가 아닐세. 사인은 작가에게 받아야지.”
“하지만 이 글의 주인공은 아가씨죠.”
이혜미의 말에 김소희가 그녀들을 보다가 황민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에 황민성이 책을 내밀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음식을 먹은 것인가?”
“네?”
“지금 나를 보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은가.”
“아…… 아가씨를 못 뵙는 것이 아쉬워서…….”
황민성은 주머니에서 작은 사탕 봉지를 꺼냈다.
“조금 깨서 입에 넣고 있었습니다.”
황민성이 살짝 혀를 내밀자, 그 위에 작은 사탕 알맹이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황민성의 모습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저승 음식을 조금 먹는 것 정도는 문제되지 않으나…… 이슬비에 옷 젖는 법일세.”
“주의하겠습니다.”
“안 먹는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싶어서요.”
“몸에 안 좋을 수도 있네.”
“술을 마시면 숙취가 생기는 법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는 숙취를 겪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숙취로 고생하며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개다, 개야.’라고 하면서도 마시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흥이 오르며 괴로운 일이 조금은 잊어지니 말이다.
황민성은 저승 음식을 먹어서 생기는 일보다 저승 음식을 먹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는 것을 더 중요하다 본 것이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붓에 먹을 묻힐 뿐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천천히 글을 적었다.
글을 적어 책을 내밀자, 황민성이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받았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책을 받아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모든 이의 책에 글귀와 이름을 적어 준 김소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화선지 하나를 탁자 위에 깔았다. 그러고는 붓에 먹을 다시 묻히고는 글을 적었다.
글을 적은 김소희가 붓을 내려놓고는 황민성을 보았다.
“드라마 제목은 이걸로 하시게나.”
“드라마에 나오는 제목 말씀하시는 거지요?”
책과 드라마 제목은 ‘꽃 피어나다’로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니 이건 TV에 나오는 영상 속 제목으로 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네.”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는 화선지에 적힌 꽃 피어나다를 보며 말했다.
“내 무신의 기운을 담았으니…… 이 글을 보고 도움을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네.”
“도움이라면?”
“건강이라도 찾을 수 있겠지. 아니면 호연지기라도 얻을 수 있고.”
“아…… 알겠습니다.”
황민성은 화선지를 조심히 말았다.
‘글귀는 영상에 넣고 이건 액자에 담아서 우리 집 가보로 해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던 황민성이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
붓을 내려놓고 책을 손에 쥐던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았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아시는군요. 저…… 저희 학생들이 사회 나가서 나쁜 짓 하지 않게 좋은 글 한 줄 적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건 그자의 심성이 하는 일이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그래도 좀 착하게 살도록 하는 글은 없을지요.”
황민성이 글을 보며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젓고는 새 화선지를 집어 펼쳤다. 그러고는 글을 적었다.
한문으로 멋들어지게 글을 적은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았다.
“선한 행동을 장려하기는 어려워도 악한 행동을 할 때는 겁이 날 것이네.”
“겁이요?”
“내 살기를 담았네.”
살기라는 말에 황민성이 놀란 눈으로 글을 보다가 침을 삼켰다.
“살기요?”
“나쁜 짓 하면 혼난다는 그런 의미라고 해 두지.”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글을 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침을 삼켰다. 살기를 담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글이 좀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황민성이 글을 보는 사이, 김소희가 말을 했다.
“학생들이 이 글의 뜻을 알겠는가?”
“모르면 알려 주면 됩니다.”
“그럼 알려주게나.”
“글 감사합니다.”
황민성은 종이를 잘 말아 쇼핑백에 조심히 넣었다.
“자네는 이만 가 보게.”
“아가씨께서는?”
“나는 책을 더 보겠네.”
“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황민성이 고개를 숙이자 김소희가 책을 쥐고 탁자에 앉으려다가 그를 보았다.
“애들한테 가지 말게.”
“네?”
“괜히 보고 싶다고 들어가서 애들 깨우지 말라는 거네.”
“아…… 잠시 얼굴만…….”
“애들이 깨면?”
눈을 찡그리는 김소희의 모습에 황민성이 슬며시 말했다.
“제가 다시 잘 재우겠습니다.”
“자네가 애 둘을 감당할 수 있겠나?”
“그게…….”
주저하는 황민성을 보며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슬이가 집에 있다 해서 노는 것이 아닐세. 애 둘을 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그러니 보겠답시고 애들 깨우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황민성이 답을 하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에 황민성이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를 나서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가게를 나서며 대리운전을 부른 황민성에게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애들 깨우면 아가씨한테 많이 혼나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애들 깨우지 마세요. 정말 혼납니다.”
“쩝! 애들 얼굴 보고 싶은데…… 얼굴도 못 보겠네.”
아쉬워하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술 마시고 애들 깨우는 것이 아빠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말이죠.”
“즐거움?”
“예전에 저희 아버지도 야근하거나 하면 가끔 제 방에 들어와서 저 보고 가더라고요.”
“그러셨어?”
“그때는 쉬시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후!”
강진이 뒷말을 하지 않고 작게 웃자, 황민성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었다.
“일이 힘들어도 내 새끼 얼굴 보면 하루 피로가 사라지니까. 아버님도 너 보고 힘 얻으려고 했나 보다.”
“그러신 모양이에요.”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때 ‘수고하셨어요.’ 할 걸 그랬어요.”
“넌 뭐했는데?”
“그때 애들 하는 거 하고 있었겠죠. 자거나 게임했거나.”
강진은 아쉽다는 듯 하늘을 보았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어요. 들어오셨어요? 이렇게 말을 할 것을.”
강진의 말에 황민성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잠시간 두 사람은 하늘을 보았다.
그러다가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요즘 어떠세요?”
“며칠 전에 보고는 물어보냐.”
“그것도 그러네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손에 들린 쇼핑백 안의 화선지를 보았다.
“아무래도 학교에 걸 종이는 집에 안 들이는 것이 좋겠지?”
“아가씨께서 아이들 몸에 해가 될 것을 담지는 않으셨겠지만, 살기를 담았다고 하니…… 좀 그렇죠.”
“게다가 무신의 살기잖아.”
“그러게요.”
두 사람은 쇼핑백 안의 화선지를 보았다. 그러다가 황민성이 트렁크를 열어서는 쇼핑백을 그 안에 넣었다.
그러고 있을 때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사장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기사에게 키를 준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형 간다.”
“잘 가세요.”
강진의 인사에 손을 흔들어 준 황민성이 차에 올라타 문을 닫자 차가 출발했다.
멀어져 가는 황민성의 차를 보던 강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서는 직원들이 홀을 마저 정리하고 있고, 김소희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 김소희 옆에 선 강진이 물었다.
“책은 마음에 드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책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말했다.
“당시의 풍습과 맞지 않는 장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몇 백 년 전의 일을 작가 선생께서 모두 다 알기는 어렵겠지.”
“이거 집필할 때 아가씨께서 조언을 해 주신 걸로 아는데도 틀린 부분이 있으세요?”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은 조금씩 틀어지기 마련이네. 그리고 난 이야기 흐름을 말했지, 사소한 것까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 않나.”
김소희는 책에서 시선을 떼서는 강진을 보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마음에 들게 잘 나온 듯하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책을 보다가 말했다.
“음료 하나 주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이 음료를 하나 꺼내 가져다주고는 말했다.
“저는 이만 올라가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였네.”
재차 고개를 숙인 강진이 직원들을 보았다.
“수고들 하셨어요.”
“강진 씨도 수고했어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강진은 책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음식 냄새가 밴 옷을 벗고 샤워를 한 강진은 이불 위에 누웠다.
“끄응!”
이불 위에 누운 강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책을 들었다. 김소희의 이야기라서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 책이 재밌으면 안 되는 건데…….”
사람들 재밌게 보라고 유명한 작가 섭외해서 만든 것인 만큼 재미가 있었다. 슬픔도 있고 통쾌함도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 내용을 보면서 재밌어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김소희의 슬프고 힘들었던 삶이 담긴 내용이니 말이다.
입맛을 다시던 강진은 엎드려서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