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97
998화
진세영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참 많이 울고, 많이 웃으면서 음식을 했어.”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그날이 정숙이 집에 오는 날인가요?”
“맞아. 그날, 명절, 그리고 정숙이 생일, 아빠 생일, 내 생일, 그리고 어버이날…….”
진세영의 입에서는 다양한 기념일들이나 휴일들이 나왔다. 딸에 대한 그리움이 큰 만큼 딸이 집에 오는 날도 많은 모양이었다.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에도 임정숙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말이다.
강진은 진세영이 이해가 되었다.
부모님이 자식과 통화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밥 먹었어?’였다. 자식이 밖에서 밥이라도 못 먹고 다닐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더 걱정이 되는 것이다. 산 자식은 식당에라도 갈 텐데 죽은 자식은 갈 식당도 없으니 말이다.
‘아마 저승식당이 생긴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죽은 자식이 배고파할까 걱정해서?’
귀신에게 밥을 주는 식당이 어쩌면 자식들 배 곪지 말라는 부모님들의 염원에서 출발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강진이 할 때, 황민성은 임정숙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임정숙은 엄마와 아빠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울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런 임정숙을 보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하지만 강진도 두 사람과 그 뒤의 임정숙을 보느라 황민성의 시선을 볼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을 캐치한 배용수가 입을 열었다.
“형 마음 어떤지 알지만…… 말을 할 수 없어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동시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다가 그가 황민성을 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이 정숙 씨 옆에 있다는 거 알면 기쁘고 너무 행복할 거예요.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딸이 아직 옆에 있다는 것을 알면요.”
배용수는 임정숙 부모님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가슴이 아프실 거예요. 딸이 귀신이 되어서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계속 생각하시겠죠. 안쓰러운 내 딸…… 안쓰러운 정숙이…….”
배용수가 임정숙을 미안한 얼굴로 보았다.
“그래서 강진이는 말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배용수가 임정숙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귀신들이잖아요. 그럼 남은 두 분은 다시 한 번 사랑하는 딸을 또 보내야 해요. 그런 아픔을 또 겪게 하는 건 너무 가슴 아파요. 그래서 강진이는 누군가의 부모님,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형제들을 보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아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 임형근과 진세영은 자신들의 옆에 귀신이라도 임정숙이 있고,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 행복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과 행복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딸이 귀신이라는 것을 알면 가슴이 너무 아플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임정숙이 승천을 하게 되면 자식을 두 번 떠나보내는 셈이 된다. 한 번도 감당하기 어렵고 가슴이 찢어지는데 그걸 두 번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하며 작게 고개를 저을 때,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그도 생각을 해 보니 이해가 되었다.
자신도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힘들 것 같았다.
귀신을 볼 수 있으니 어머니가 귀신이 되면 같이 있을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지만 어머니가 힘드니 말이다.
‘강진이가 참 힘든 일을 하는구나.’
강진에게 이런 상황이 참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황민성이 고개를 저을 때, 진세영이 슬며시 말했다.
“제가 너무 무거운 말을 한 모양이에요.”
진세영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도…… 정숙이 생각 자주 합니다.”
임정숙을 잠시 보던 황민성이 다시 진세영을 보았다.
“음식이 많이 식었습니다. 일단 식사하시죠.”
“그러게요.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어서들 드세요.”
진세영이 웃으며 말을 하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버님 소주 한 잔 안 드세요?”
“소주? 좋죠.”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일어나려 하자, 강상식이 먼저 일어났다.
“내가 가져올게.”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들을 꺼내 왔다.
“아버님, 제가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조금 처진 분위기에 강상식이 일부러 목소리를 살짝 높이자, 임형근도 그것을 알고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강상식이 웃으며 맥주와 소주를 들어 보였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섞어서 먹죠. 맥주만 먹기에는 너무 약하니까요.”
“마실 줄 아시는군요.”
강상식이 맥주와 소주를 따자, 강진이 웃으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말했다.
“네가 한 잔 말지그래?”
폭탄주 장인에게 배운 기술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강진이 폭탄주를 만들면 보는 맛도 있고 먹는 맛도 있다.
풍부한 거품과 맥주에 섞인 소주의 날카로움이 입을 자극하니 말이다.
하지만…… 폭탄주는 기분으로 마시는 거다. 그리고 지금 강상식이 그 기분을 내고 있었다.
임정숙 부모님을 위로해 주려고 말이다. 그러니 그냥 강상식이 따르게 하는 것이 맞았다.
일류 요리사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음식을 하라는 법은 없었다. 간단한 라면 정도는 먹고 싶은 사람이 만들어도 된다.
강상식이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따르자, 임형근이 웃으며 술을 받았다.
그리고 임형근이 병을 건네받아서는 황민성과 강상식, 강진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당신도 한잔해.”
“그럼 나도 한잔할까?”
웃으며 진세영이 잔을 들자, 임형근이 그녀의 잔에도 소주와 맥주를 따라 주었다.
쪼르륵! 쪼르륵!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섞어서 따른 임형근이 잔을 들었다.
“오늘 정숙이 아는 분들이 이렇게 와 주셔서 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딸…… 정숙이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형근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정숙이 참 좋아합니다.”
“정숙이는 지금 좋은 곳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상식의 말에 진세영이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좋은 이들과 이런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걸로 되겠어요? 더 좋은 곳에서 일을 해야죠.”
“식당이 뭐 어때서요.”
진세영이 웃으며 강진을 보다가 황민성과 강상식을 보았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학생을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주는 손님이 있고.”
진세영이 강진을 보았다.
“같이 일을 한 동료를 잊지 않고 부산까지 찾아온 사장님이 있는 가게라면…… 저는 찬성이에요.”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공 살려서 일을 못 한 것이 아쉽지만 나도 찬성이야. 그리고 요즘 전공대로 취업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
부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괜찮지.”
임형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주를 이루잖아.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도 어디 혼자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지내니까.”
“그렇죠.”
“아무리 좋은 회사에 들어갔어도 나와 맞지 않고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면…… 최악이지.”
“그것도 그러네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면…… 그게 최고의 직장이지.”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우리 정숙이는 이렇게 잘 해 주는 분들과 잘 해 주는 손님들이 있는 곳에서 일을 했으니 참 복받은 거지.”
부모님의 말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정말 여기가 좋아. 여기 있는 분들은 다 나한테 잘 해 주고, 다 나한테 마음을 써 줘. 그래서 난 여기가 너무 좋아.”
임정숙이 미소를 지으며 엄마와 아빠를 보았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정말 잘 지내고 있으니까.”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을 알지만, 임정숙은 웃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던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잔 채우고 또 말이 길어졌네요. 자, 한 잔씩 하시죠.”
“하하하! 그러게요. 어서 듭시다.”
임형근이 한 잔 쭈욱 시원하게 마시자 강상식과 황민성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며 밥을 먹기 시작할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띠링!
가게 문이 열리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문을 보았다. 이 시간은 손님이 올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든 강진은 가끔 저녁에 와서 식사를 하는 손님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지금 영업하시나요?”
“그럼요. 손님이 오셨으면 영업해야죠.”
“다행이네요. 오늘 퇴근이 늦어서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 들어가서 밥 달라고 하면 아내가 화낼 것 같아요.”
웃으며 손님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불 켜져 있는 거 보고 혹시나 해서 왔는데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늘 왜 이리 늦으셨어요?”
“직장인들이야 일하라고 하면 해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식사 어떻게 해 드릴까요?”
“계란 볶음밥 빠르게 되죠?”
“계란 볶음밥이야 삼 분이면 완성입니다.”
“그럼 그거에…… 국물 뭐 남은 거 있나요?”
“가자미 미역국 좀 있는데 그거 드시겠어요?”
“가자미 미역국요? 가자미로 미역국을 끓여요?”
“바닷가에서는 가지미가 아니라 다른 물고기로도 미역국을 끓이죠. 맛있습니다. 사골처럼 진해서 몸에도 좋습니다.”
“음…… 그럼 그렇게 주세요.”
손님의 말에 강진이 몸을 돌려 주방을 보았다. 배용수가 곧장 주방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에 강진이 임형근에게 다가갔다.
“손님이 오셔서요. 드시고 계세요.”
“주방에서 용수 씨가 음식 만드는 거 아니야? 그럼 여기 앉아서 같이 먹지그래?”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손님이 계신데 주인이 신경을 써야죠. 편히 드세요.”
강진이 일어나서 손님들이 식사할 때 서 있는 자리에 가서 서자, 임형근이 그 모습을 보다가 맥주와 소주를 따라 마셨다.
그렇게 술을 마시던 임형근은 한 곳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곳에선 강진이 손님에게 음식을 서빙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란 두 알 들어간 초 간단 계란 볶음밥입니다.”
“이게 참 계란하고 간장만 들어갔는데도 맛있어요.”
“마늘도 들어간 걸요.”
“아! 마늘도 들어가죠.”
“김치를 올려서 먹으면 더 맛이 좋죠.”
손님과 편하게 대화를 하며 음식을 놓는 강진을 보며 임형근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정숙이가 저렇게 일을 했겠지.’
음식 서빙을 하는 강진의 모습에서 임형근은 딸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임형근은 멍하니 강진을 보다가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
‘내 딸…… 여기서 이렇게 일을 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