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184
8권 23화
“그래, 좋소이다. 소생도 이런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도와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니, 소저가 알아서 남자를 구하든 말든 하시오.”
백이건은 그 이후부터 일절 여기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음채아였다.
서서히 그녀의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백이건의 말마따나, 혼자 가는 것보다 남자를 대동하고 가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았다. 마군휘는 보통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그런 바람둥이에게는 아주 강렬한 자극이 더 잘 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예전에 그가 계속 자신을 피해 다른 여자들과 정을 통하고 다녔던 것도 백이건의 말처럼 자신이 너무 순진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기 말이야, 아까 내 말이 심했다면 미안해!”
그녀는 처음으로 백이건에게 사과를 했지만, 백이건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음채아가 몇 번 더 사과를 하고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해서야 마지못해 승낙했다. 물론 속으로 회심을 미소를 지은 건 당연했다.
백이건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그녀의 손을 잡아 보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걷기도 했다.
음채아는 펄쩍 뛰며 거부했다.
“손을 왜 잡아? 팔짱은 왜 끼고? 우린 그냥 오라버니 앞에서만 사귀는 척 연기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 제대로 손도 못 잡는데 무슨 연인 사이란 말입니까? 연기 시작하자마자 들통 날 일 있습니까?”
그건 그랬다.
음채아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얼굴을 찌푸리고 고민을 하다 결국 백이건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백이건은 수시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쩔 때는 깍지를 끼고 걸은 적도 있었다.
음채아는 왠지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처음처럼 펄쩍 뛰며 뿌리치지는 않았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다 보니 그녀도 이제 백이건과의 신체 접촉에 자연스러워졌던 것이다.
그렇게 백이건은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유도한 것이다.
허나, 음채아는 순진해서 백이건이 자신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니, 이 정도 상황이라면 제법 눈치 있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눈치채기 어려울 것이었다.
三
하남성에 들어서자 무림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들은 각료 대선사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소림사로 가는 팔파일방의 사람들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백이건은 지금 음채아를 데리고 소림사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음채아는 사천성으로 가는 줄 알고 있었다. 음채아가 알면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백이건은 천하태평이었다.
원래 합비에서 사천으로 가려면 하남이 아닌 호북으로 가는 것이 빠르지만, 하남성을 통해서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백이건은 그것을 이용했던 것이다. 음채아는 중원의 지리에는 그리 밝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백이건에게 가짜 연인 강습을 받고 있어서 다른 곳에 정신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소저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 본 적 있소?”
“그걸 내가 왜 사? 시녀들에게 말하면 다 사다 주는데.”
“쯧쯧, 이렇게 낭만이 없어서야 원. 시장에 구경할 것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시오?”
백이건은 사랑하는 연인이 즐겨 찾는 곳이 시장이라고 말했다.
“같이 장신구를 보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 달라고도 하고, 포목점에 들어가서 옷도 구경하고. 대담한 남녀들은 같은 비단으로 옷을 맞춰 입는 경우도 있는데, 어쩌면 소저도 본 적이 있을 거요.”
“쳇, 민망해서 어떻게 같은 비단으로 옷을 맞춰 입을 수가 있어?”
음채아는 겉으로는 비웃었지만, 속으로는 얼마 전에 그런 남녀를 보고 부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저기 시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것을 연습해 봅시다.”
백이건이 그녀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손 놓지 못해?”
음채아가 빽 하고 소리쳤다.
“이번 학습은 시장에서 연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배우는 것이오.”
“쳇, 웃기지도 않아. 누가 너하고 시장을 돌아다닌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소리요. 완벽하게 마군휘를 속이고 싶다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오.”
“그렇다고 굳이 손을 잡을 필요까지는 없잖아?”
“연인인 척하는데 손을 잡고 다녀야지, 설마 따로따로 다닐까?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하시오.”
백이건이 무작정 그녀를 잡아끌었다. 음채아는 마지못해 따라갔지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남자와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게 한창 시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누군가 등 뒤에서 백이건을 아는 척했다.
“혹시 백 공자님 아니신가요?”
“아니, 소저들은?”
두 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백이건이 그녀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아는 척했다.
“모용 소저와 제갈 소저가 아닙니까?”
일전에 북경의 형빈객잔에서 만났던 여인들이었다.
“아! 아직도 저희를 기억하고 계셨군요.”
모용강설과 제갈사란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들은 혹시 백이건이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며칠 뒤에 각료 대선사의 칠순 잔치가 있어요. 소림사에서 각 문파에 초청장을 보냈거든요.”
“아! 그거라면 소생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백이건은 그녀들과 말을 하는 중에 조용히 잡고 있던 음채아의 손을 놓았다. 아예 그녀가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구파일방과 육문칠가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하던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군요. 전에도 소림사에서 회합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휴! 사이가 그리 좋은 건 아니랍니다. 회합을 통해 예전처럼 결속을 다지려 했지만, 서로의 이견이 너무 많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헤어졌으니까요.”
그녀들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각료 대선사의 칠순이 두 번째 회합인 셈이었다.
구파일방과 육문칠가는 화합을 하지 못하면 백안문과 천마성에 밀려 어쩌면 무림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화합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 잘난 자존심과 욕심 때문에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잘됐군. 같이 소림사에 가면 되겠어.’
백이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헌데, 모용 소협과 제갈 소협은 어디에 계시고 두 분만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오라버니들은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휴! 그럼 다행이군요.”
“뭐가 말인가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악합니까? 두 분처럼 아름다운 여인들끼리만 여행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모용강설과 제갈사란의 얼굴이 능금처럼 붉어졌다. 그녀들은 백이건이 걱정해 주는 것이 결코 싫지 않았던 것이다.
“호호! 지금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앗! 죄송합니다. 소생이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백이건은 실언인 척 머리를 긁적였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물론 음채아의 손을 놓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명 질투 유발 작전.
아무리 콧대 높은 여인이라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음채아의 아미가 위로 살짝 올라가 있었다.
“헌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
사실 가장 처음 묻고 싶던 말이었다.
모용강설과 제갈사란은 아까부터 계속 음채아가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핫핫!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냥 오다 가다 알게 된 사이입니다.”
“그런가요?”
모용강설과 제갈사란의 목소리는 대단히 밝아져 있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데 그녀들이 왜 이렇게 기뻐하는지 음채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자님은 어디 가시는 중이셨나 봐요?”
“헛헛! 그러면 좀 좋겠습니까? 하지만, 소생은 지금 정처 없이 구름 따라 바람 따라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그럼, 객잔에 같이 가시겠어요? 오라버니들도 백 공자님을 만나면 좋아하실 거예요.”
그거야말로 백이건이 먼저 하고 싶던 말이었다.
“핫핫! 좋습니다. 소생도 오랜만에 두 분을 보고 싶군요.”
“호호! 저희를 따라오세요.”
모용강설과 제갈사란이 기꺼이 앞장섰다. 백이건이 그녀들을 따라 나서려는 순간, 음채아가 백이건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오다 가다 알게 된 사이였어?”
그녀의 얼굴은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혹시 모용강설과 제갈사란이 들을까 봐 귓속말로 속삭였지만, 조용한 말투에서도 그녀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험험! 내가 그렇게 말했나?”
“사천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줄 미처 몰랐네.”
“음 소저가 소생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둘러 댄 것뿐입니다. 설마 소생이 아는 척을 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누, 누가 그렇대?”
음채아는 빽 소리를 질렀지만, 기분이 이상하게 더러웠다. 그녀는 그것이 일종의 질투심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 점점 젊은 청년 기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구파일방과 육문칠가의 회합에 한발 들어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인 건가?’
백이건은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천하를 손에 넣는 원대한 계획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며칠간 그는 음채아의 시중을 들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제비의 역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구파일방과 육문칠가.
그리고 음채아와 북해빙궁까지.
백이건은 누구도 하지 못한 거대한 신화를 새롭게 써 내려가려 하고 있었다.
과연 백이건은 선후인이 감지하지 못하게 이 모든 세력을 자신의 손안에 넣을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었다.
(절륜공자 9권에서 계속)